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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문, 사회과학

뉴스 홍수시대, ‘사실’보다 ‘편향’이 더 가치 있다

뉴스 홍수시대, ‘사실’보다 ‘편향’이 더 가치 있다
[서평] 뉴스의 시대 / 알랭 드 보통 / 문학동네 펴냄

바야흐로 ‘뉴스 전성시대’다. 사람들은 출퇴근길에서 뉴스를 보고, 회사나 학교에 가서도 모바일이나 PC로 뉴스를 본다. 사람들은 점심시간, 저녁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뉴스 이야기를 한다. 신문이 없어지니 기자가 없어지니 공중파 뉴스를 아무도 안 본다느니 걱정하지만 그건 ‘언론의 위기’지 ‘뉴스의 위기’는 아니다. 뉴스로 인해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고 연예인이 활동을 접는다. 
 
우리는 이처럼 수많은 뉴스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는 뉴스가 하나 있다. ‘뉴스 그 자체’다. 알랭 드 보통의 책 <뉴스의 시대>는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뉴스 그 자체에 대한 사용설명서다. 온갖 별나고 중요한 이야기들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지만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헤드라인은 없다. “삶을 인도하는 원천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헤겔)되는데도, 우리는 뉴스 그 자체에 너무 무지하다.
 
시와 소설에는 플롯이 있고 창작자의 의도, 시대적 배경이 있다. 뉴스도 마찬가지다. 뉴스에도 ‘해석’이 필요한 일종의 플롯이 있으며 창작자의 의도, 뉴스가 탄생하게 된 시대적 배경이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뉴스가 매시간 제공하는 언어와 이미지에 대해서는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교육에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일생을 ‘교육’시키는 뉴스의 이면에 대해서는 교육받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를 정치뉴스/해외뉴스/경제뉴스/셀레브리티 뉴스/재난뉴스/소비자 정보 뉴스 등 6가지 형태로 분류해 설명한다. 언론은 특정한 뉴스들을 폭탄처럼 쏟아냄으로써 오히려 무관심을 선도한다. ‘정치뉴스’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정치 뉴스를 보며 분노하고, 분노하다 결국 허탈해진다. 언론은 독자들에게 이슈의 맥락을 설명해주는 ‘이정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긴 이야기 속 아무데나 빠뜨렸다가 재빨리 꺼내 다른 긴 이야기 속으로 빠뜨려 버린다. 


뉴스의 시대

저자
알랭 드 보통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7-3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이제 뉴스를 보는 우리의 눈은 달라질 것이다!일상의 철학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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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는 여야 정치인들이 ‘왜’ 싸우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여야의 공방만 비춘다. 어쩌다 저런 비리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잡혀가는 정치인의 모습만 비춘다. 결국 ‘그놈이 그놈’이라는 냉소만 남고, 중요한 사회 이슈들은 ‘여야 간 정쟁’이 된다. 알랭 드 보통은 민주주의 이후의 독재자들이 ‘무리한 언론통제’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단신뉴스만 쏟아내는 상황이 정치적 무관심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는 ‘무리한 언론 통제’도 이루어지고 있다.
 
해외뉴스도 마찬가지다. 언론은 낯선 국가의 정치부패, 내전을 전하지만 독자들은 이를 중요한 뉴스라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볼리비아에서 학교에 간다는 것이, 소말리아에서 괜찮은 결혼식이 가능한 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뉴스는 지진과 마약사건 등을 통해 우리가 그 사건들에 대해 충격을 느끼고 몰입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끔찍한 사건들 속에서 인류의 구체적 삶들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남는 건 반복되는 뉴스에 대한 무관심 뿐이다.
 
다른 뉴스도 마찬가지다. 통계는 넘쳐나지만 경제뉴스는 ‘어려운 것’이 되어버렸다. 끔찍한 재난뉴스가 넘쳐나지만 우리는 타인의 죽음에 점점 무뎌진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에 대한 보도는 넘쳐나지만 ‘안주거리’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사를 쓰지만 사람들이 세상에 점점 무관심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은 무선 신호를 끊고 멀리 기차여행을 떠나라고 조언한다. 뉴스를 보지 말라는 것이다. ‘황당한 소리’처럼 느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은 우리 주위를 둘러싼 훨씬 낯설고 경이로운 헤드라인에 주목하기 위해 가끔은 뉴스를 포기하고 지내야하며, 뉴스가 더 이상 우리에게 가르쳐 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는 뜻이다. 뉴스가 오히려 세계에 대한 무관심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뉴스란 세계와 나, 타자와 나의 만남을 이끄는 ‘매개’다. 생생한 인간의 이야기로 가득찬 뉴스다. 뉴스는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며, 인간에 대한 관심과 세계에 대한 사랑을 주선해야 한다. 

알랭 드 보통은 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한 가지 방법을 덧붙인다. 우리가 사실이 아닌 ‘편향’에 주목해야한다는 것. 넘쳐나는 사실 보도가 세계와 인간에 대한 무관심을 부추겼을 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이 ‘편향’을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하는 것”이라 규정하는 이유다. 뉴스 홍수 시대, 우리는 팩트가 아닌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아야 할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