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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청목회 수사, 그들만의 ‘사다리 걷어차기’

개혁을 원하는 많은 한국인에게 정치인의 비리에 대한 수사는 공정사회를 위한 첫 걸음으로 인식된다. 정치인의 뇌물 수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정치인의 사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입법 및 행정을 바로잡아야 사회가 공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당연하고도 올바른 생각이다. 우리는 죄를 짓고도 돈과 권력으로 아무렇지 않게 무죄 판결을 받는 기득권 세력의 횡포에 당할 만큼 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 집행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요청이 항상 ‘공정’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법 자체가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법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는 말은 법이 만인에게 ‘실제로 평등하게’ 적용될 때 생기는 법의 불공정성을 의미한다. 실제로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법은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유지 및 개혁에 대한 ‘진입장벽’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불거진 청목회 사건은 ‘공정하기 위해 엄정하게 집행되는 법의 불공정성’을 매우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검찰에 따르면 청원경찰법 개정 과정에서 현직 국회의원 33명이 전국청원경찰친목협회로부터 500~5000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고 한다. 정부기관, 지방자치단체에 근무하는 청원경찰들의 모임인 청목회가 입법을 통한 처우개선과 정년연장을 위해 8억 원을 로비자금으로 모았고, 법 개정을 두 달 앞둔 지난해 10월, 이 8억 원 중 2억 7000만원을 국회의원들의 후원계좌에 입금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관계자들을 압수 수색, 긴급 체포하고 검찰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 구인에 나설 수도 있다고 밝히는 등 이례적일 정도로 강경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민주당 및 야5당은 이를 야당에 대한 표적 수사로 규정하고 검찰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으며 권력 실세가 연관된 대포폰 사건을 덮기 위한 물타기 수사라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1)

조중동 등의 보수언론들은 이 청목회 사건이 소액 후원금 제도를 이용한 편법의 전형적 사례라고 주장한다. 17대 총선을 앞둔 2004년 3월 여야는 기업, 기관 단체의 후원금을 금지하는 대신에 개인에게서 소액 헌금을 걷을 수 있도록 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 그리고 이 소액 헌금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10만원 정치후원금 세액공제’라는 제도를 함께 도입했다. 정치 후원금을 내면 10만원까지 연말세액공제에 포함시켜주는 제도이다. 실제로 이 법이 통과된 이후 기업이나 이익단체가 합법적으로 정치인에게 의도성 있는 돈을 제공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검찰과 보수언론들은 이 소액후원금 제도의 허점을 이용한 편법이 판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10만 원 이상 돈을 내고 10만 원 이하로 걷은 것처럼 쪼개거나, 대기업이나 노조 등의 기관 단체들이 대량의 후원금을 모아놓고 단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10만원씩 후원한 것처럼 꾸미는 수법 등이 그것이다. 자, 그러면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대로 이런 편법을 차단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한국 정치의 뿌리 깊은 폐단을 근절시키기 위해 후원금 제도를 악용한 이 의원들과 청목회 회원들을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처벌하고 앞으로도 이런 ‘엄정한 수사’를 엄포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사건이 몇 번 반복될 경우 소액 후원 방식을 선호했던 단체나 개인은 정당 후원을 꺼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소수정당들은 어떻게 당을 유지하란 말인가?

당원이 적은 소수정당들은 거대 정당들만큼 재정이 탄탄하지 않다. 평소에는 당비로 어떻게 운영을 한다고 해도, 문제는 막대한 비용을 한꺼번에 지출해야 하는 선거 때이다.3) 선거자금의 출처는 크게 후원금, 당지원금, 개인자금, 은행대출 등으로 나뉘는데 쌓아 놓은 개인자금이 없고 당이 지원도 해주기 힘든 소수정당은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거나 후원금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후원금으로 선거자금을 채우지 못한 소수정당들은 선거를 치르고 나면 빚이 가득하다. 노회찬과 심상정이 밥상 앞에 앉아 있던 진보신당 총선 팜플렛은 몇 쪽에 걸친 다른 정당들의 팜플렛과 달리 고작 한쪽짜리였다. 즉 소수정당들은 당에게 주는, 의원에게 주는 후원금이 없으면 운영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10만 원 이하의 후원금은 세액 공제로 돌려받기에, 사람들에게 ‘10만원을 후원금으로 내면 10만원을 돌려받으니까, 당신은 후원금을 내도 손해가 절대 아니라는 점’을 열심히 홍보하면 당 후원금도 많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1000만원을 정말 마음에 드는 소수정당에게 후원금으로 주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현행 제도상에서는 10만원을 내도 10만원을 세액공제를 받고, 1000만원을 내도 10만원을 세액공제 받는다. 그런데 내가 돈이 넘쳐나지 않는다면(그 정도로 내가 부자라면 난 거대정당에 ‘투자’하지 소수정당을 후원하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나는 49명의 신상명세를 확보하여 10만원을 50명이 내는 것처럼 한 다음, 10만 원 짜리 영수증을 50장 가지고 세무서에 가서 세액 공제를 받을 것이다. 기관이나 단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청목회는 재직기간과 관계없이 순경 봉급에 맞춰 지급되던 보수를 재직기간에 따라 올리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복지에 신경 쓴다는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주었다. 그런데 이 과정은 정당후원금의 명목으로 한꺼번에 특정한 양의 돈을 걷은 다음 회원 명부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실제로 노조들은 이렇게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같이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하는 정당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후원금 모금 순위에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상위를 차지하곤 한다. 청목회가 걸린다면 노동조합도 죄다 걸려야 한다. 실제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불법 정치자금법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았다. 이것이 ‘편법’이기에 하지 말아야 한다면 소수정당들은 도대체 무슨 돈으로 당을 운영하라는 말인가? (이상의 내용은 아래의 글을 참조했다 : http://127thshelter.tistory.com/6)

물론 이 글을 읽고 어떤 비판이 쏟아질지 나는 예상하고 있다. 원칙대로 하자면, 법대로 하자면 청목회나 노조의 이런 관행은 이 법의 허점을 이용한 편법이라는 것이다. 이런 편법은 노조나 청목회 뿐 아니라 기업이나 이익단체에서 거대 정당에 합법적으로 로비할 때도 써먹을 수 있다. 그러나 법은 공정하지 않다. 소액 후원금 제도를 도입해야 할 정도로 이 나라 정치를 부패하게 만든 이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2002년 대선 당시 SK의 비자금 100억 원을 비롯한 다른 대기업들의 불법정치자금이 한나라당에 유입된 사실이 확인되어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남긴 것, 2003년 취임 이후 굿모닝 게이트로 시작되어 쏟아진 노무현 정권의 측근 비리 의혹은 17대 총선 직전에 이루어진 정치자금법 개혁의 직접적인 계기였다. 권력을 이용해 이미 수많은 돈을 쌓아두고서는, 청렴한 사회를 만든답시고 청목회나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정당 후원을 편법이라 비난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보호무역과 국가 주도의 개발로 선진국에서 올라선 이후 개발도상국과 후진국들에게 자신들이 경제 발전을 위해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는 거리가 먼 방법을 택해야한다고 설교를 일삼는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유사하다.(장하준, 2004) 기업들이 정계, 언론계, 법조계에 뿌리고 다니는 억, 조 단위의 ‘불법’ 비자금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고 그 액수가 1년에 1억 5천으로 정해져 있는 데다 그 통장의 수입과 지출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전부 감사가 가능한 후원회 계좌로 입금된 정치자금을 털러 다니는 이들은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 것인가?

내가 청목회 사건을 통해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이 사건의 ‘실제 피해자가 누구인가’가 아니다. 이번 청목회 사건에는 소수정당 의원들보다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같은 거대정당의 의원들이 더 많이 연루되어 있다.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누가 손해를 보고, 누가 이익을 볼 것인지에 대한 그 ‘장기적인 효과’이다. 거대정당들은 청목회로부터 후원을 받지 않아도 충분히 정치자금을 마련할 루트가 있다. 예컨대 검찰이 하고 싶을 때만 수사하는 ‘불법정치자금’도 있을 것이고, 수많은 당원들의 당비와 당의 지원, 의원들의 사비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청목회 사건을 계기로 보수언론들이 외치는 것처럼 소액 후원금을 ‘실질적으로’ 기관이나 단체가 내지 못하게 한다면(쪼개내기를 전면차단!)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것은 소수정당들이다. 물론 이 대목에서도 법은 매우 공정하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들의 50~60%가(많게는 70%까지) 검찰의 청목회 수사가 정당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민주당이 최근 검찰소환 불응에서 소환에 응하자는 식으로 당의 방침을 바꾼 것도 이러한 여론의 추이 때문이다.) 정치인의 뇌물 수수와 비리에 대한 수사는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정한 법은 그 자체로 현실 개혁에 대한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거대정당의 부패를 견제할 새로운 정치세력들은 자금력 부족이라는 현실의 문제로 점점 더 소수로 전락하고, 우리는 대안 없이 거대정당에 투표할 수밖에 없다.

1) 민주당 이춘석 의원에 따르면 청목회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북부지검의 지검장이 대포폰 사건의 주역으로 알려진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의 고등학교 후배라고 하며, 지난 7월 박 차관의 후배가 북부지검장으로 발령 나면서 청목회 사건에 대한 수사가 시작되었고 대포폰 의혹이 터지자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한다.

2) 17대 대선 직전에 이루어진 정치자금법 개정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임성학,『17대 총선의 정치개혁의 효과』를 참조하라.

3) 총선 출마자들이나 정당 선대위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2000년 총선에서 수도권 후보는 최소 10억, 중소 도시 및 지방에 출전한 후보는 최소 5억 원이 필요하다고 한다.(시사저널 2000/3/30; 주간동아 2000/5/25) 인터뷰 조사에 의하면 실제 조달된 선거자금은 평균 5억 원이라고 한다. 새로운 정치관계법(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이 통과로 16대 총선보다 4분의 1 정도 줄어든 17대 총선의 평균 선거자금비용은 1억 4천 1백만 원이었다.(임성학, 2005)

<힌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