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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강경론과 햇볕을 넘어서

지난 11월 23일 오후 ‘대한민국이 공격당했다.’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인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고, 이로 인해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북한은 한국 군대가 연평도 일대의 북한 측 영해에 폭격을 가하는 군사적 도발을 감행했기에 이에 대응해 정당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북한이 문제 삼은 호국훈련은 이전에도 몇 차례 진행되던 통상적인 훈련에 불과했다. 더욱이 북한이 한국군이나 한미연합군의 합동훈련을 비난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이전에는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북한의 함선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온다거나 해안포나 지대함미사일 사격훈련을 실시하는 식의 ‘군사적 긴장 조성’ 행위에 그쳤다. 그런데 이번에 북한은 영공이나 영해도 아닌 대한민국의 영토에 ‘즉시적이고 강력한 물리적 타격’을 가했으며, 민간인들이 살고 있는 연평도의 마을에까지 무차별적으로 포격을 퍼부었다. 이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경우였다면 당장 국가 간 전면전으로 이어졌을 침략이다.

그렇다면 연평도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번 연평도 사태가 전·현 정권 간의 대북정책과 그 철학을 둘러싼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즉 이러한 북한의 강경한 대응을 불러일으킨 요인이 지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때문인지, 아니면 이명박 정부 들어서 진행된 ‘강경대응’ 때문인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을 비롯한 대북 강경론자들은 천안함 사태에 이어 제기될 야권의 ‘안보 무능’론에 대응하여 사태의 책임을 회피하고 지지 세력인 보수우익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동시에 ‘더욱 더 강경한 대응’을 추진하기 위해 ‘햇볕정책 책임론’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을 비롯한 햇볕정책 지지자들은 전 정권이 이루어놓은 남북관계 개선으로 인한 평화체제 구축의 과정을 현 정권이 망가뜨려놓음으로써 국가적 위기상황을 초래했다는 ‘안보 무능’론을 통해 대(對)정부 공세를 이어나가려는 기세이다.

현 정권 실세들과 강경론자들의 주장은 대략 다음과 같다. “지난 10년 간 이루어진 무분별한 퍼주기가 북한의 버릇을 잘못 길들였으며, 이로 인해 지원이 중단되자 쌀을 달라고 난동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한 가지 전제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북한은 호시탐탐 전쟁을 준비하는 우리의 주적이며 애초에 평화체제 같은 것은 관심도 없이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고로 그들은 햇볕정책을 이용해 정권 유지를 위한 돈줄을 확보한 것이며 이런 북한 수뇌부의 태도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북한을 말라 죽이는 대북 압박 정책이 아니면 한반도의 평화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미 실패한 햇볕정책으로 정책기조를 돌리는 것이야말로 이번 공격을 통해 북한이 의도한 바라는 것이다.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햇볕 정책 책임론은 조선일보 기사 댓글에 종종 달리는 ‘김대중에게 노벨 물리학상을!’과 같은 주장이다.)

이런 인식은 실제 현 정권을 구성하는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지난 24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민주당 전병헌 의원의 질문에 대해 “평화를 지향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과연 그들(북한)이 호응을 하면서 자기들의 태도를 변화시켜 왔느냐, 겉으로만 다소 유연한 자세를 보이다가 안으로는 계속 도발을 준비하고 감행해 오지 않았느냐”고 받아쳤다. 이어 그는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과 터키 간 3~4위 결정전이 열린 그 시점 연평해전이 일어났다”며 “그때 저는 ‘북한이 이래도 되는가, DJ 대통령께서 동족으로서 얼마나 북한을 껴안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시는데, 세계인의 축제가 한반도에서 이뤄지는데 북한 사람들 참 이상하다. 납득하지 못할 사람들이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정부도 노력을 해야겠지만,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지난 25일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상은 한나라당 의원은 찢겨진 포탄 추진체를 들고 와서 “햇볕정책은 실패했다. 금강산 박왕자 씨 피살 사건과 연평 주민에 대한 무차별 포격이 이것을 증명한다.”고 말했다. 26일 한나라당 배은희 대변인은 공식 논평을 통해 “극악무도한 맹수는 평화 시에 발톱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지난 정부의 햇볕정책은 맹수를 살찌우고 숨겨진 발톱도 더욱 강력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햇볕정책으로 더 강력해진 맹수의 발톱에 천안함의 장병들이 산화했고, 대한민국의 영토인 연평도가 폐허가 됐다.”며 천안함 사태에 이어 연평도 사태의 책임으로 지난 정권의 대북 정책을 지목했다.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28일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북한군의 공격으로 우리 민간인과 군인들이 사망하고 중경상을 입은 사태는 (우리를) 위장평화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며 “연평도가 불바다가 됐는데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대화를 촉구하는 정신 나간 친북·종북주의자들은 이제 정신을 좀 차리고, 햇볕정책은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평도 사태로 인한 충격 속에서도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이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개발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은 이러한 정권 인사들의 발언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반면에 민주당을 비롯한 햇볕정책 지지자들은 햇볕정책은 남북의 평화체제 구축에 효과적이었으며 이명박 정부 들어서의 강경책이 북한 군부강경파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이런 사태를 초래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개성공단과 남북 교류의 확대 등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성과들을 언급한 뒤 “지난 3년 동안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연 옳았는지, 심각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냐”고 김황식 총리에게 질의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햇볕정책 책임론 발언에 대해 “출범한 지 3년이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전 정권을 탓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햇볕정책을 승계하지 않고 대북 강경정책을 펴온 것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29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통일부 장관들은(임동원, 정세현, 정동영, 이재정) 연평도 사태와 북핵 등의 사안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남북대화가 이번 위기의 해결책이며 이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전 정권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개발 사실을 알고도 은폐했다는 정진석 정무수석의 의혹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데 이어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는 데 남북이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10.4 선언) 이 정권이 구체적인 이행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강경 일변도로 대응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의견 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에 무엇이 ‘진정한 원인’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헷갈릴 법도 하다. 그러나 내 생각에 햇볕정책 지지자들과 강경론자들은 위기에 대한 해결책은 상반적이지만 동일한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 바로 ‘한국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다. 다시 풀어서 묻자, 한국의 대북정책은 과연 강경론자들의 주장대로 북한의 붕괴를 가져올 만한 변수인가? 또한 한국의 대북정책은 과연 햇볕정책 지지자들의 주장대로 북한의 양보와 이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을 불러올 만한 변수인가? 이들 쌍방의 대북정책에는 놀랍게도 ‘대(對)’만 있고 ‘북(北)’은 없다. 물론 한국의 여야 정치인들이 대북정책을 가지고 공방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정권유지 혹은 정권교체에 있기 때문에 이런 복잡한 상황을 논하지 않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정치인들이 양자택일의 대북정책 중에서 무엇이 옳으냐를 가지고 무한랠리를 벌이는 동안 이 쳇바퀴는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가고, 계속 돌아가는 이 쳇바퀴는 결국 과열해서 폭발해버린다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현재의 햇볕정책과 강경 대응은 모두 틀렸다!

북한에 대한 강경책이 틀렸다는 건 북한이 ‘무엇을 원하는지’만 살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북한 정권 최대의 외교적 목표는 체제안보이다. 그들은 총을 든 외교. ‘선군외교’를 내세워, 즉 군과 군사력을 외교적 도구로 삼아 강대국 중심의 국제체제 속에서 힘의 투쟁을 통해 제국들의 식민국가나 종속국가로 전락하지 않고 대외적인 자주성을 유지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강대국들에게 유리한 국제외교안보 환경에 군사력에 기초한 위협을 제기함으로써 자신들에게 유리한 외교적 상황으로 만들어가는 외교 전략이 바로 선군외교이다. 그리고 이 선군외교가 가능한 이유는 북한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겹치는 지역이라는 지정학적 요인과 핵이라는 전쟁 억지용, 협상용 무기 때문이다.(장성민, 2009:124-128)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비롯한 군사적 도발은 ‘나 좀 봐줘.’라는 울부짖음이고 북한에게 필요한 건 ‘옛다, 관심.’이다. 군사적 위협을 통해 동북아 질서를 위협함으로써 체제 유지를 위한 약속과 지원을 받아내는 것이 그들의 목적인데, 그들에게 협상의 여지를 주지 않고 강력하게 대응할 경우 그들은 자극적인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 미국을 직접 공격하지는 못하니 이번 연평도 사태와 같이 만만하고 공격당할 염려도 없는 한국을 툭툭 건드리면서 으르렁거리는 전술을 일삼을 것이다. 이로 인해 연평도 사태와 같은 국지전이 반복될 경우, 손해 보는 쪽은 대한민국이다. 강경론자들이 북한에 대해 압박과 제재, 봉쇄 같은 정책을 실시한다 해도 중국이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한 북한은 경제적 타격도 별로 없을 것이며, 독재국가인 탓에 내부의 패배를 은폐할 수 있고 민간인 피해야 그들이 원래 그랬듯이 신경도 안 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국지전이 반복될 경우 자본 이탈로 인해 ‘실제로’ 경제적 타격을 받을 것인데다 민주국가인 탓에 막대한 민간인 피해와 소득 없는 국지전의 반복으로 지친 국민들이 강경론자들의 정권을 갈아치울 것이고 결국 다시 정책 방향을 햇볕정책으로 돌리게 될 것이다. 결국 한국의 강경대응은 북한을 붕괴시키지 못한 채, 엄청난 손실만 가져온다. 중국의 협조가 없이는 말이다.

또한 강경론자들의 소원대로 북한이 붕괴되어도 문제이다. 최근 폭로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국무부 외교 문건에 따르면 중국 내부에서도 북한의 지속적인 위기 조성과 도발에 대해 “더 이상 북한을 지원할 이유가 없으며 몇 가지의 요구(주한미군의 북한 지역으로 확대되지 않는 것, 경제적 인센티브, 신의주 등 북한 영토 일부의 중국 영토화)를 들어주면 한국 주도의 통일도 고려할 만하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설사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지 않아 북한이 붕괴한다 해도 중국에게 떼어줄 엄청난 이권과 붕괴 이후의 대혼란은 한국이 감당해야 할 비용이다. 흔히 한국이 부담하게 될 막대한 비용 때문에 통일을 반대하는 이들이 동시에 북한에 대한 강경론을 주장하곤 하는데, 차라리 햇볕 정책으로 쌀 좀 주면서 북한 정권을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게 더 싸게 먹히지 않겠는가? 어떤 강남 사는 분이 연평도 사태 직후 모 언론과의 거리 인터뷰 중에 한 불평은 이러한 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 “돈 좀 주고 말지 왜 상황을 이렇게까지 만드느냐!”

그렇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시 우리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해야 하는가? 그러나 강경대응책과 마찬가지로 햇볕정책 역시 한반도의 갈등을 봉합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에 별 효력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은 김대중 정부 하에서 일어났고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의 성과가 슬슬 드러나야 했을 2006년에도 남북관계 최대의 위기인 북한 핵실험 사태가 벌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한국이 강경대응을 하건 햇볕정책을 하건 큰 상관없이 북한은 자국 사정에 따라 도발하고 싶으면 도발하고 협상하고 싶으면 협상한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햇볕정책이 지속되었다면 3대 세습과 내부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북한의 무력 도발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한국의 대북정책은 북한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아니다. 이에 대해 햇볕정책 지지자들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의 북한의 도발은 미국 부시 정권의 강경책 때문이라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그 말이다.” 즉 한국이 햇볕정책을 하건 퍼주기를 하건 북한은 결국 미국의 태도에 훨씬 민감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6자 회담을 통한 해결보다는 조미 양자회담을 선호해왔으며 미국이 6자회담의 틀에서만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밝히면 그제야 6자 회담에 참가하는 패턴을 몇 차례 반복해 왔다. 한국은 주로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위한 매개의 역할을 담당해 왔을 뿐이다. 김정일의 남북정상회담 수락은 공화당의 집권 이후 이어질 미국의 대북강경대응을 누그러트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되었으며, 앞에서도 밝혔듯이 북한은 미국을 직접 공격하지는 못하지만 군사 도발을 통해 관심은 끌어야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영토를 침범하거나 포격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4년에, 8년에 한 번씩 집권당이 어디냐에 따라 바뀌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한 정권이 불안함을 느끼는 한 한국이 아무리 뜨듯하게 햇볕을 비춰줘도 그들은 늘 도발을 해올 것이고, 이는 ‘햇볕정책의 실패‘로 간주되어 강경론자들의 목소리를 드높여줄 것이다. 즉 햇볕정책은 다른 외부 요인들 속에서 북한을 달래서 그들의 군사적 도발을 일정 부분 ’통제‘하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평화체제 구축이나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현 상태를 유지하는 한, 즉 한국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고려 해야 할 요소가 아닌 이상 ‘어떠한 협상’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외교관이 나타나 북한과 김정일을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는 협상에 성공한다 해도 북한은 슬금슬금 협상 내용에 반하는 행동을 하다가 한국이나 미국이 이에 반발하는 언사를 취하면 “선의에는 선의로 힘에는 힘으로 대응하는 것이 선군 정치의 기질.”이라며 한국과 미국에게 합의 파기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자신들이 원하는 새로운 원칙과 조건들을 제시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북한은 ‘체제 유지’라는 목표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 결국 북한 정권은 미국이 자기네들을 위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이는 평화체제 구축을 아무리 ‘구두로’ ‘문서로’ 약속한들 슬그머니 깨버릴 것이다.

그럼 이 상황에서 한국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적당히 줄타기를 하다가 내부의 불만이 극에 달해 무너지는 상황을 대비해 북한에 출동할 날만 기다리고 있으면 되는 것일까? 매우 어렵겠지만 햇볕정책이 실패하게 되는 ‘조건’을 바꾸면 효과적인 대북정책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한국의 대북정책을 북한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할 요소로 만드는 것이다. 이는 결국 미국의 결정으로부터 독립된 결정을 한국이 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북한의 입장에서 ‘협상할 만한 상대’가 되는 일이기도 하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이러한 ‘조건의 변화’에 긍정적인 작용을 할 수 있는 정책 중 하나일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단지 한국이 전쟁 시 자신들의 군대를 통제할 수 있다는 사전적 의미는 물론 북한과 대등한 입장에 서서 군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북한은 왜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미국’하고만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가? 이는 단순히 미국이 세계최강대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미국이 한반도 군사 문제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해 실질적으로 제일 필요한 합의는 이번 연평도 사태를 통해서도 드러났듯이 휴전선에 배치된 남북의 엄청난 전력을 휴전선 뒤로 빼는 일이다. 휴전선에 남북 전력의 60~70% 이상이 몰려 있다 보니 작은 국지전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서해의 평화지대 구축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이 열심히 노력해서 북방한계선과 휴전선 근처의 평화지대를 만들자고 해도, 전작권이 미국에게 있는 등 미국이 한반도 군사 문제에 발휘하는 영향력이 지나치게 비대한 이상 북한은 한국과의 합의를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전작권이 환수되어 하는 이유는 또 있다.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위해 한국의 영해를 침범하거나 연평도 사태와 같이 영토를 직접 포격하는 이유는 한국이 공격하지 못할 것이란 확신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혀 있는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할 북한과의 전면전을 원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북한의 공격에 대한 대응 사격 정도야 가능하지만, 영토의 침략 행위에 대해 확전을 각오하고 전시상태로 가려면 방어준비태세, 데프콘을 3단계 이상으로 높여야 하고 한미연합사령관에게 한국군의 지휘권을 맡겨야 한다. 미국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성이 있는 군인이라면 무모하게 확전을 시도했다가 북한에게 얻어맞기만 할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에게 있다면 북한은 함부로 도발을 했을 경우 확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물론 이는 위험천만한 ‘억지력’의 효과이고, 전작권 환수의 가장 중요한 효과는 한국의 정책이 실제로 (미국과는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북한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음을 보여줌으로서 북한이 한국을 협상할 만한 상대로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수우익들이 전작권 환수를 친북 행위라고 규탄하고, 이명박 정부가 2012년 4월 17일로 예정되어 있던 전작권 환수를 2015년 12월로 연기한 것은 규탄 받을 일이다. 보수우익들 소원대로 ‘주석궁에 태극기를 꽂을 때까지 전진’하고 싶다면 전작권 환수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멍청하거나 입만 살았거나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바람대로 북한의 추가적인 도발을 막기 위해서는 전작권 환수가 오히려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의 짧은 상식의 한계로는 기존에 제시된 국방, 외교, 대북정책 중에 북한에게 영향력 있는 협상자가 되기 위해서 효과적인 방안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뿐이다. 이 이외에도 ‘조건의 변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제기되어야 결국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전작권이 미국한테 있는 게 차라리 나았다고 생각하게 만들 만큼, 받아놓은 전작권을 이용해 전쟁 선동이나 하고 있을 이들이 정권을 잡지 않기를 희망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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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