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 /기사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데, 2014년 무더기 법안 통과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데, 2014년 무더기 법안 통과

원자력안전법·진주의료원 방지법 등 의미 있는 법안 상당수…실적 늘리기 치중했다는 비판도

국회가 2014년 마지막 본회의에서 148개 안건을 처리했다. 안건 중에 법률안만 123건이다. 이렇게 무더기로 통과된 법안 중에는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법안들이 있다. 

여야는 지난 29일 올해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148개의 안건을 무더기로 처리했다. 본회의와 동시에 상임위를 열어, 상임위에서 처리한 법안을 바로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방식의 속전속결이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 선출안과 공무원 연금 특위 및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이 핵심 쟁점이었다.

핵심 쟁점 외에도 이번 본회의에서는 원자력, 의료, 근로와 관련해 중요한 법안들이 통과됐다. 한수원 해킹 사건과 원전비리 등으로 원자력 안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원들은 원자력 관련 법안을 여러 건 발의했고, 원자력 안전법 일부 개정법률안 등이 2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원자력 안전법 개정안은 원자로 시설 해체 관련 규제요건과 내용을 명확히 했다. 원자력 관계시설을 건설 및 운영하려는 사업자가 원자력위원회에 해체계획서를 제출하고, 이 계획서를 주기적으로 갱신하도록 했다. 위원회가 관련 시설의 해체가 완료된 이후 검사를 실시해 시정 및 보완을 명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넣었다.

원자력안전법 개정안은 또한 사업자의 해체계획서 초안을 공개하고, 공청회를 개최해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여 이를 해체계획서 내용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경우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주민 의견을 반영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진주의료원 방지법’이라 불리는 법안들도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방의료원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지방의료원이 공공보건의료 사업을 수행하다 적자가 발생할 경우 정부가 보조금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공공보건의료법 개정안’은 공공보건의료 등에 필요한 비용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의 범위 내에서 전부 또는 일부 보조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경영상의 손해를 평가에 불리하게 반영하지 않도록 규정했다.

‘환자안전법’은 지난 2010년 9살 종현 군이 의료사고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져 ‘종현이법’이라고도 불린다. 환자안전법은 △5년마다 국가 차원에서 환자안전종합계획 수립 △ 국가환자안전위원회를 설치 △ 일정 규모 이상의 의료기관에 환자안전위원회 설치 의무화 및 환자안전 전담인력 고용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환자안전법의 경우 실효성 문제가 제기됐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30일 논평을 통해 “큰 의의를 갖는다”며 미흡한 점을 짚었다. 상임위를 거치면서 병원계와 의료계의 반대로 벌칙 조항이 삭제되었다는 것. 환자단체연합회는 “다소 미흡한 점은 법률시행 후 신속한 개정을 통해 보완하면 된다”고 밝혔다. 

구직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의 ‘직업안정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직업소개 업체가 구직자에게 일자리를 소개할 때 최저임금에 미달하거나 구인자의 신원이 불확실한 정보는 제공하지 못하게 하고, 임금 체불 사실 등을 함께 고지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최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아르바이트생의 노동 착취를 두고 “방법이 없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는데, 직업안정법 개정안은 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법이라 볼 수 있다.

   
▲ 29일 오전 알바노조 등이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발언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알바노조 페이스북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으로 인해 국민 누구나 화학사고 이력을 조회할 수 있게 된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환경부는 화학사고 관련 정보시스템과 사고정보대응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청와대나 국정원, 소방방재청 등 사고대응기관에만 공개될 뿐 사고 발생지역 거주 주민을 비롯한 국민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유해화학물질 관리법 개정안에 따라 누구나 이 정보를 조회할 수 있게 됐다.

국회가 속전속결로 여러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 3법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회는 주택법 개정안, 재건축초과이익 환수법 일부 개정안,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개정안을 모두 처리했다. 정부와 여당은 부동산3법이 부동산시장을 활성화시켜줄 민생 법안이라 주장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전월세 대책 없이 부동산 투기만 조장하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김상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9일 본회의 반대토론에서 “강남재건축 특혜법이자 투기조장법이고 강남3구 집주인과 건설업자만 돕는 법”이라고 반대했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 역시 "가계소득 증대가 아니라 집값 부양책만 써서는 일본식 불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반대 투표를 호소했다. 하지만 여야 지도부가 합의한 부동산 3법은 결국 통과됐다.

쟁점 법안들은 그대로 남았다.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및 보상특별법이 처리되지 않았고, 관피아 대책으로 제시된 김영란법도 마찬가지다. 임차인의 권리금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내용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도 과제로 남아 있다. 국회가 많은 안건을 처리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