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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는 뭉개고 대법관 단독처리… 재보선 부작용?

합의는 뭉개고 대법관 단독처리… 재보선 부작용?
공무원연금 합의, 청와대 입김으로 뒤집혀…“‘레임덕은 없다’는 태도로 밀어붙일 것”

재보선 승리의 부작용일까.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포기했다. 반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야당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처리했다. 야당과 합의한 사안은 청와대와 친박계 의원들의 반대에 못 이겨 뒤집고, 야당이 합의 안 해준 사안은 단독 처리한 셈이다.

여야는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6일 본회의에서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처리하는데 실패했다. 지난 2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공무원연금 개혁 및 국민연금 강화를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을 때만 해도 여야가 어렵게 합의한 만큼 본회의 처리는 무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조윤선 정무수석의 반대에도 밀어붙인 안이었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4일부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여야가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을 50%로 올리기로 합의한 것에 대해 “국민에게 큰 부담이니 반드시 국민 동의가 필요하다”고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중동 등 보수언론도 새누리당이 무책임한 합의를 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권은희 새누리당 대변인이 5일 현안브리핑에서 “대통령께서도 지적하셨듯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한 번 확대하면 다시 줄이기 매우 어려운 만큼,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며 신중히 진행해야 한다”며 한 발 물러선 입장을 내비쳤다.

당 내에서도 반대가 쏟아졌다. 친박계 좌장이라 할 수 있는 서청원 최고위원은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칫 잘못하면 국민에게 큰 재앙을 주는 것”이라며 “최종적으로 최고위원회를 열어 이 문제를 같이 논의하자고 이야기 했는데 우리도 언론을 보고 알았다”고 비판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6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번 합의안은 국민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은 중대한 사건”이라며 “진정 국가의 미래를 걱정해서 나온 안인지 아니면 양당 두 분 대표의 미래만은 위한 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6일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도 합의를 주도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그리고 친박계 의원들 간의 충돌이 벌어졌다. 새정치연합은 본회의 처리 예정이었던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기구 구성’ 관련 국회 규칙에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인상’을 명기하자고 주장했으나 새누리당은 ‘사회적 기구에서 논의할 사안’이라며 반대했다. 이에 새정치연합은 국회 규칙의 부속서류에 이를 첨부하는 수정안을 제시했고, 이에 대한 입장을 정하기 위해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열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찬반 표결을 하자”고 제안했으나 반대에 부딪쳤다. 김태흠 의원이 “표결로 처리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무능한 원내지도부가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대통령 특보인 윤상현 의원이 “50% 명기는 절대 안 된다”는 등 강하게 반발한 것. 결국 새누리당 지도부는 야당 안 수용불가를 선언했고 본회의 처리는 불발됐다. 의총 직전에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야당안 수용을 반대했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오히려 6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청와대를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가 의원총회에서 “(청와대가) 다 알고 있었으면서 하고 나니 이럴 수 있냐”고 지적하고, 유승민 원내대표는 “논의 과정에 청와대 수석이 참석해 다 알고 있었는데 문제 제기하는 게 말이 되냐. 따져보겠다”고 불만을 드러낸 것. 

직접적인 계기는 ‘소득대체율 50%’ 명시 문제였으나 이번 사건을 통해 청와대‧친박계와 새누리당 비박 지도부가 정면충돌한 셈이 됐다.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 처리하겠다고 공언한 새누리당의 약속도 공염불이 됐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6일 저녁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공무원연금개혁을 기대하셨던 국민 여러분께 너무나 송구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며 사과했다.

반면 같은 날 새누리당은 야당이 동의하지 않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청문 보고서 채택이 안 된 박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으로 본회의에 올렸고, 야당이 불참한 상황에서 임명동의안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58명 중 찬성 151, 반대 6, 무표 1)

새정치연합은 강하게 반발했다. 우윤근 원내대표는 6일 저녁 의원총회에서 “대법관 후보를 직권상정해서 처리한 것도 모욕적인데, 공무원연금개혁과 공적연금강화는 국가의 중차대한 일이기 때문에 제가 그 온갖 수모를 감수했다”며 “(그런데) 대통령 말 한마디에 전문가, 이해관계인, 정당 대표가 합의한 일이 하루아침에 수포로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표도 “국민들 앞에서 보증한 내용을 오로지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뒤집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재보선 승리를 계기로 개혁 과제들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이 과정에서 야당과, 여당 내부 갈등이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여야 균형을 맞추려 했던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고, 야당이 불참한 가운데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단독 처리했다. 19대 국회에서는 보이지 않던 모습”이라며 “청와대가 ‘레임덕은 없다’는 태도로 개혁과제를 밀어붙이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영일 평론가는 “대통령이 못 박았던 공무원연금 개혁 시한을 청와대 입김으로 무산시킨 셈이 됐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노동개혁 등 다른 개혁 드라이브들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려 할 것”이라며 “청와대 드라이브를 방어하려는 야당과의 갈등은 물론 여당 내부의 갈등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허영일 새정치연합 부대변인은 7일 논평을 통해 “재보궐 선거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칭송받으면서, 차기대권후보 1위로 도약했던 김무성 대표의 ‘일주일 천하’도 신기루가 되었다. 청와대의 일사불란한 친위쿠데타로 인해 김무성 대표의 처지는 풍전등화”라며 “친박 의원들이 이제 조직적으로 김무성 대표의 손발을 묶고, 새누리당을 박근혜 대통령의 직할체제로 바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