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경력직만 뽑으면 난 어디서 경력을 쌓나”
[뉴스해설] 왜 언론사는 신입공채 안 하고 경력직만 뽑을까
지난해 10월 SNL코리아 시즌5 ‘면접전쟁’의 한 장면이 취업준비생들의 많은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취업준비생으로 등장하는 유병재씨는 “우린 경력직 뽑는다”는 면접관의 말에 다음과 같이 일갈합니다. “아니 X발 무슨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난 어디서 경력을 쌓나”
언론사 사정도 비슷합니다. 지난 18일 미디어오늘 보도를 통해 공영방송 MBC가 신입공채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MBC가 대졸신입 공채 대신 경력 위주의 수시채용 방침을 세웠다는 겁니다. 예비 언론인들은 “채용 자체를 하지 않을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허탈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관련기사 ① <MBC, 신입 공채 더 이상 안 한다>
관련기사 ② <MBC 신입공채 중단? “입맛 맞는 사람만 뽑겠네”>
비단 MBC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최근 취임한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은 지난 4월 30일 ‘사원 여러분들께 드리는 긴급 호소문’을 통해 비상경영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는데요, 비상경영 대책에는 ‘경영정상화까지 수습기자 공채 중단’이 포함돼 있습니다. (관련 기사 : <연합뉴스 구조조정은 기자 길들이기 수순?>)
▲ SNL코리아5 ‘면접전쟁’의 한 장면. | ||
언론사들이 점점 신입공채를 줄이고 이를 경력직으로 대체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MBC가 신입공채 제도 대신 경력위주의 수시채용 방침을 마련한다는 말은 이전부터 공공연하게 떠돌았던 이야기입니다. MBC는 김재철 전 사장의 후임으로 들어온 김종국 전 사장 취임 직후였던 2013년 12월을 끝으로 공채를 하지 않았습니다.
언론사 지망생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언론사 채용 공고가 뜰 때마다 밑에 ‘이번에도 경력이네’라고 한탄하는 이들의 댓글이 달립니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하면서 많은 이들이 ‘일자리 창출’을 기대했으나 출범초기 대규모 채용 이후 2012년부터 이전수준으로 회귀했습니다. 늘어난 공채도 대부분이 경력직입니다.
경력직 선호 현상은 일반 사기업 채용 시장과 비슷합니다. 온라인 취업포탈 ‘사람인’이 지난 4월 28일 2015년 1분기 자사 사이트에 등록된 채용공고 83만 752건을 분석한 결과 ‘경력’만 채용한 공고가 25.4%였습니다. 이는 ‘신입’만 채용한 공고(5.5%)보다 4.6배나 높은 수치입니다. ‘사람인’이 지난해 12월 1일 기업 230개 사를 대상으로 “신입 채용을 줄이고 경력직 채용으로 대체한 적 있느냐”고 물었을 때도 응답자의 40.4%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언론사 지망생 커뮤니티 ‘아랑’의 운영자 이현택 중앙일보 기자는 1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사의 경력직 선호 현상은 사기업의 경력직 선호와 맥을 같이 한다. 경제상황이 팍팍해지다보니 변화에 늦게 반응하는 언론사마저 그렇게 가고 있다”며 “이미 검증이 된 인재를 쓰는 것이 비용절감 차원에서 신입 채용보다 싸게 먹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언론사들은 회사가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연합뉴스의 수습기자 공채 중단은 비상경영대책의 일환입니다. 안광한 MBC 사장은
지난달 28일 MBC 사옥에서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신입공채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격화된 경영 환경에서 효율을 높이기 위해
대졸신입 정기공채는 하지 않겠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는 언론사의 구조적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CBS 기자협회는 지난해 7월 사측에 신입사원을 채용하라며 성명서까지 발표했습니다. 2년 간 공채가 이루어지지 않아 기자들의 노동강도가 너무 세다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CBS는 인력 노후화가 심각해 공채 이전에 시니어 기자들의 효율성을 증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일보는 지난 1월 사원들에게 ‘경영정상화 계획에 따른 희망퇴직 공고’를 전달했습니다. 구성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희망퇴직을 감행한 이유 중 하나는 인사적체 현상을 해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40-50대 비중이 54%, 차장급이 20%, 부장급 22%로 간부직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이들을 모두 떠안고 신규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관련 기사 : <“흰 머리 휘날리며 현장 뛰어다니는 기자가 왜 없나”>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4년 한국언론연감’에 따르면 2013년 신문산업 종사자 중 50세 이상 종사자가 7319명(21.9%)으로 가장 많습니다. 29세 이하가 4,844명(14.5%)입니다. 기자직 종사자만 따로 빼서 추려도 50세 이상 기자가 5,395명(23.4%)으로 가장 많고 29세 이하가 3002명(13.0%)입니다.
2012년 대비 연령별 기자직 증감 현황을 보면 29세 이하, 35~39세, 40세~44세 종사자는 감소한 반면 50세 이상 기자직은 30.1%로 가장 많이 증가했습니다. 일간신문의 50세 이상 기자직은 2012년 대비 52.9% 늘어났습니다. 쉽게 말해 언론사의 인력 고령화 현상이 심각해 신입을 채용할 여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언론사들 입장입니다. 특히 이직과 퇴직이 많지 않은 언론사일수록 이런 현상은 심각합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2014 한국언론연감’ 발췌 | ||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기자를 통제하기 쉬워지기에 신입공채보다 경력직 채용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MBC의 신입공채 중단 소식에 언론사 지망생들이 “입맛에 맞는 사람만 골라서 채우려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 이유입니다.
신입공채 제도는 ‘기수 문화’로 이어집니다. 이런 기수문화가 언론사 내 권위적인 문화나 ‘기수 이기주의’를 낳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언론인들은 기수를 중심으로 뭉쳐 회사의 전횡이나 편집권 침해에 저항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곤 합니다. 경력직 수시채용은 기자들 간의 유대감을 약화시킴으로써 언론사 내 조직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겁니다.
이런 변화가 언론사 스스로에게 독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현택 기자는 “기자들을 데려오는 입장에서 좋은 인재를 데려올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뒤집어 말하면 키워놓은 기자들을 쉽게 뺏길 수 있다는 의미”라며 “당장은 필요해서 경력직을 쓸 수 있지만 기자들의 로열티가 떨어지면서, 기자가 한 회사에 오래 머물며 성장함에 따라 오는 효과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허행량 세종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재 언론사 채용 시스템이 기자의 능력을 검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경력직 상시채용이 뛰어난 기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허 교수는 그러면서도 “유럽 축구시장을 보면 레알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가 좋은 선수들을 다 데려가지 않나. 자금력 있는 대형언론사에게 유리한 시스템”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억울한 건 시장에 진입할 기회도 갖지 못한 언론사 지망생들입니다. 2년 째 언론사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현모씨는 “더 막막해졌다”고 합니다. 현씨는 “다른 기업은 시즌이라는 게 있지만 언론사 시험은 원래부터 비정기적이다. 그런데 처음 시작했던 2년 전보다 신규채용 규모는 눈에 띠게 줄었다”며 “경력직 뽑는다는데 인턴을 해봐야 6개월이고, 유관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어디서 경력을 쌓아야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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