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무원 연금개혁을 둘러싼 여야 갈등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국회선진화법’이다.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가 무산되면서 다른 법안들이 처리되지 않자. 여당 지도부와 몇몇 언론을 중심으로 ‘국회선진화법이 문제’라며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몸싸움 방지법’이라 불리는 국회 선진화법은 2012년 5월,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여야 쟁점법안의 경우 재적의원 5분의 3(180명) 이상이 동의해야 본회의 상정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엄격히 제한해 다수여당의 날치기를 방지했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여당이 무리하게 법안을 날치기하고, 이를 야당이 몸으로 막으면서 벌어지는 폭력 사태는 모습을 감췄다.
그러나 여당에서 국회선진화법 개정 요구가 나오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여야 합의가 무산되면서 국회의 법안처리가 스톱되자 나온 볼멘소리다. 여야는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개혁과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등에 합의해 5월 6일 첫 국회 본회의에서 이를 처리하기로 했으나 청와대가 강력 반발하면서 합의가 깨졌다. 이후 열린 12일 첫 본회의에서 소득세법 개정안 등 3개 법안만 처리됐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다수결로 표결하는 국회를 만드는데 방해가 되는 선진화법이라면 개정할 필요가 있다”며 19대 국회에서 개정안을 만들어 내년 총선 전 통과시키고, 법 적용은 20대 국회부터 하겠다는 로드맵까지 내놨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3일 ‘퓨처라이프 포럼’ 토론회 자리에서 “국회선진화법이 어떤 법인지 공무원연금 개혁안 협상 과정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야당 합의 없이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김태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앞서 11일 “정치개혁 차원에서 국회선진화법이 우선적으로 폐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도 ‘국회 선진화법’ 때리기에 동참했다. ‘민생법안’이 야당 때문에 통과가 안 되고, 야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자신들이 주장하는 법안을 끼워팔기 하고 있다는 논리다. 동아일보는 12일 사설에 서 “새누리당은 과반인 160석을 갖고도 법안 처리에서 야당의 처분만 바라보거나 야합해야할 만큼 무기력하고, 오히려 130석인 새정치연합이 법안 처리의 주도권을 휘두르는 제왕적 모습을 보이는 게 우리 국회의 현 주소”라며 선진화법을 “국회후진화법, 야당결재법”이라 규정했다.
“국회는 소수당의 횡포에 발이 묶여 ‘식물국회’가 되거나, 아니면 법안 하나를 처리하려면 야당이 요구하는 법안과 맞교환하는 정치적 흥정을 해야 한다”(5월 13일 한국경제 사설)
“‘국회선진화법’ 독소 조항에서 비롯된 야당의 국회 무력화(無力化) 횡포가 도를 넘었다.”(5월 13일 문화일보 사설)
“형편없는 국회선진화법을 폐기하고 그 대신 법안 끼워 팔기나 바터를 불가능하게 하는 법안을 만들어 시행하라”(5월 13일 매일경제 사설)
국회선진화법은 정말 ‘제왕적 야당’을 만들어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들었을까. 박근혜 정부 1년차인 2013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된 법안은 676건으로 집계됐다. 노무현 정부 1년차인 306건, 이명박 정부 1년차인 314건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관련 기사 : <국회선진화법, '폭력' 사라졌지만 '발목' 잡았다?>
이한수 경희대학교 교수의 논문 <제 19대 국회 평가 : 국회선진화법과 입법 활동>(의정연구, 2014)에 따르면 18대 국회 전반기 법률안 처리 비율은 27.69%고,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이후인 19대 국회 전반기 법률안 처리비율은 28.94%다.
법률안 평균처리 기간을 비교하면, 18대 전반기에 통과된 법률안의 평균 처리 기간은 약 157.76일이었다. 반면 19대 전반기에 통과된 법률안의 평균 처리 기간은 약 175.4일로 18일 정도 증가했다. 법률안 처리비율은 늘어나면서도 법률은 검토하는 기간 역시 늘어났다. 수치만 보면 ‘식물국회’라는 비판은 적절치 않다는 것.
결국 국회선진화법이 ‘식물국회’를 만들었다는 말은 국회가 전반적으로 활동을 멈췄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들이 통과시키고 싶은 법안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후 여야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는 법안으로 인해 다른 법안까지 ‘연계’되어 처리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일면적으로 보면 선진화법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진화법은 여든 야든 한 쪽만 동의하고 밀어붙이려는 법안이 일방적으로 급하게 통과될 수 없도록, 숙성기간을 가지도록 한 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민생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며 야당을 탓하고 있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이 내세우는 민생법안이란 국제의료사업지원법,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 관련 특별법, 의료법, 관광진흥법 등 각종 규제완화법이 대부분으로,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은 법이다.
지난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야당의 반대로 지연되자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를 합의처리한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야당이 정부가 내세운 법안에 반대한다며 법을 비난한 것이다.
▲ 5월 13일자 동아일보 사설 | ||
더 큰 문제는 국회가 멈춘 것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이 아니라 새누리당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상향 조정을 포기했기 때문인데도 여당과 몇몇 언론이 이러한 점을 강조하는 대신 국회선진화법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박수현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여야 간 합의를 해서 싸인한 것을 깨버려서 국회가 파행됐지 선진화법이 문제라서 국회가 파행된
것이 아니다. 선진화법을 고치자는 주장은 국회를 다수당의 힘으로 일방적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깔린 술수”라며 “선진화법 탓하기
전에 공무원연금개혁에 합의한 대로 원칙을 지키면 국회 파행은 풀릴 수 있다”고 밝혔다.
'나의 글 >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숨’ 박근혜 ‘답답’ 김무성 지지율 동반하락 (0) | 2015.05.18 |
---|---|
넘쳐나는 북한 오보, 죽은 현영철은 다시 살아날까 (0) | 2015.05.15 |
‘비타500’ 이완구 “진실 이기는 것 없다” (0) | 2015.05.15 |
중앙·동아는 국정원 칭찬, 경향·한겨레는 "미확인 첩보" (0) | 2015.05.14 |
문재인 ‘정청래 자숙’ 요청? 위기는 계속된다 (0) | 2015.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