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영업으로 취재 방해 받았다” 10.7%
[지령 1000호 특별 설문조사 ③] 기사 수정·삭제, 기업 압력 때문이 35.7%… ‘근로시간’ ‘자기계발 부족’ 가장 힘들어
미디어오늘과 사회동향연구소가 실시한 기자 여론조사에서 부당한 기사 삭제 혹은 수정 요구 등에 시달리는 기자들의 고충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최근 1년 간 정치적 이유 혹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기사에 대한 부당한 수정이나 삭제 지시를 받은 적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3.0%가 ‘있다’고 답했다. ‘없다’는 답변은 74.6%, ‘잘 모르겠다’ 혹은 무응답은 2.5%였다.
또한 ‘최근 1년 간 출입처와의 관계 때문에 부당한 이유로 기사를 수정/삭제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7.9%가 ‘있다’고, 72.1%가 ‘없다’고 답했다. 출입처나 취재원과의 친분을 유지하기 위해 기사를 수정 혹은 삭제한 경우를 의미한다.
‘23.0%’ ‘27.9%’를 적은 수치라 볼 수도 있지만 ‘정치적 이유’ ‘외부의 압력’ ‘부당한 이유’ 등 매우 직접적이고 단정적인 질문에도 응답자의 4분의 1에 가까운 기자들이 부당한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것에 주목할 만하다.
수정·삭제 지시의 이유로는(복수응답) ‘사주나 경영진의 성향’이 53.6%로 가장 많았다. 편집부(데스크) 간부의 성향이 39.3%, 기업(광고주)의 압력이 35.7%, 정치권/정부기관의 압력이 28.6%로 뒤를 이었다. (‘기타’와 ‘잘 모르겠다’/무응답이 각각 3.6%) “(삭제 이유가) 여기 항목에는 없는데 말로 하긴 그렇다”고 답한 기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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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크로부터 정치적 이유 혹은 외부의 압력에 의해 기사에 대한 부당한 수정이나 삭제 지시를 받은 적이 있느냐,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 | ||
그러나 정치권·정부기관·기업(광고주)이 데스크나 사주·경영진을 통해 기자에게 삭제 혹은 수정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사주나 경영진, 데스크 간부의 성향’이라는 응답에는 외부로부터의 각종 압력이 포함돼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석연치 않은 기사 수정·삭제는 미디어오늘의 단골 기사거리다. 지난해 8월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이 자신과 관련된 기사를 쓴 아시아투데이의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한 뒤 기사가 삭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기사를 쓴 강세준 기자는 우종순 사장에게 항의하며 사표를 썼다. (관련 기사 : <김성태 의원, 언론사주에게 ‘고발장 준비해놨다’ 전화>
김 의원 측은 기사 삭제를 요구한 적이 없고 항의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우 사장은 문제가 있는 기사라 삭제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강세준 전 기자는 협박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우 사장과 김 의원을 고소했다.
‘언론외압’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이완구 전 국무총리 역시 부동산 문제에 대해 기사를 쓴 언론을 압박했다. KBS <뉴스9>는 지난 1월 31일 이완구 당시 총리 후보자의 양도소득세 축소 논란에 대해 기사를 썼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이 기사는 삭제됐다. 보도 이후 이완구 후보자 측이 ‘내일 매매계약서를 공개할 테니 기사를 내려달라’는 취지로 전화를 걸었고 기사가 삭제됐다는 것.
관련기사 : <이완구 “내일 해명할 테니 기사 먼저 내려달라”>
2012년 7월 몇몇 언론사들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간의 소송을 전하며 이건희 회장 쪽에 부정적인 기사 제목(“이건희 도둑놈 심보” 등)을 수정하거나 삭제했다. 해당 언론사에서는 자체적인 판단이라 밝혔으나 삼성은 일부 언론에 전화를 한 것은 맞다며 ‘일상적인 홍보활동’이라 해명했다. (관련기사 : <“이건희 도둑놈 심보” 기사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광고주나 정치권의 압력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이해할 수 없는 기사 삭제 및 수정 지시도 빈번하다. 한 뉴스 통신사 기자 A씨는 “정치/경제 기사가 아니라 사회면 기사를 써도 기사가 삭제되는 경우가 있다. 일단 기사를 내보냈다가 상대 쪽에서 명예훼손이나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하면 기사를 슬쩍 내린다”고 전했다. 미디어오늘 역시 택배 기사들이 파업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가 노사 협상이 타결된 이후 사측으로부터 “협상이 타결됐으니 이전 기사를 내려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
방송사 기자 B씨는 “광고나 회사 이익과 결부되어 부당한 지시를 하는 경우도 많지만, ‘YTN이랑 KBS는 이렇게 썼는데 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썼어?’라며 기사를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며 “기자가 취재한 결과가 타사보도와 달랐는데도 위에서는 타사와 비교하면서 기사를 수정하라고 한다. 데스크가 타사보도와 다른 내용을 주장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요인은 ‘광고영업’이다. 이번 조사에서 ‘광고영업으로 인해 취재, 보도 업무를 하는데 방해를 받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응답자는 10.7%에 그쳤다. ‘그렇지 않다’고 답한 응답자는 89.3%였다. 하지만 경제지 기자들의 26.7%가 광고영업으로 본연의 업무에 방해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것에 주목할 만하다. 이는 전체 기자 평균인 10.7%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표본의 한계도 있다. 기자들에게 광고영업을 맡기는 것으로 알려진 영세 지역 언론은 표본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미디어오늘 보도로 인천일보가 기자들이 수주한 광고금액의 일정 부분을 기자들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한다는 것이 드러났다.(본사 기자는 10%, 지역주재기자는 30%) 당시 인천일보 관계자는 “지역 언론들은 다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근로시간’과 ‘자기계발 부족’을 가장 큰 직업적 고충으로 꼽았다. 근로시간이 28.7%로 가장 많았고, 자기계발 부족이 19.7%, 임금이 14.8%, 조직 분위기가 12.3%, 소속 언론사의 전망이 11.5%로 뒤를 이었다.(사회적 인정이 4.9%, 기타가 7.4%, 잘 모름/무응답이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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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로서 느끼는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 | ||
기자로서의 고충을 ‘한 가지만 선택해 달라’는 질문에 많은 기자들이 임금과 근로시간이 아닌 ‘자기계발 부족’을 선택했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3년 펴낸 언론인 의식조사 보고서에서는 응답자 1527명 중 96.1%가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관련 기사 : <기자는 현장에서 배운다? 그걸로 충분합니까?>
몇몇 기자들은 설문과정에서 “왜 복수응답은 안 되고 하나만 선택해야하나” “여러 문제가 중첩되어 있다”고 밝혔다. 한 기자는 “1번부터 6번까지 모두 다 해당한다”고 답했다. 그 외에도 기자들은 “가치 없는 단발성 기사들을 양산하는데 시간을 허비하느라 업무 강도만 높아지는 것” “언론사 간 지나친 보도경쟁” “전문성 발휘 못하는 업무환경” “종이신문의 불투명한 미래” 등의 고충을 토로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범위 종합일간지, 뉴스통신사, 방송사, 인터넷종합신문, 경제지 차장급 이상을 제외한 취재 기자들을 상대로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 동안 진행됐고 전화면접(CATI)과 모바일, 이메일 조사를 병행 실시해 380명 중 122명이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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