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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기타 칼럼 기고

청년을 위한 정치는 없다

청년이 화두다. 언론과 정치권이 너나 할 것 없이 2030(더 나아가 2040)세대를 대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2012년이 총선과 대선이 있는 정치의 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2011년 청년 세대가 보여준 힘 때문이다. 청년들은 정치권과 언론에서 이야기하지 않은 의제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반값 등록금이다. 서울시장 선거도 있다. 언론과 정치권은 박원순 시장이 7% 차이로 나경원 후보에게 승리한 것이 청년 세대의 힘 덕분이라고 분석한다. 먹고 살기 힘든 현실과 경쟁에 지친 청년 세대가 부자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아니라 나를 대변해줄 정치세력을 찾아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찬밥 대우를 받던 20대가 어느새 정치권이 신경 써야 할 뜨거운 밥으로 변했다. 너네가 투표 안 해서 이명박이 뽑혔다고 혼나던 게 엊그제 같은 데 어느새 투표 혁명의 주역이 되어버렸다. 얼떨떨하다. 마치 내가 무슨 대단한 존재라도 된 기분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청년을 대표하겠다며 화려한 말잔치를 펼친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청년 세대가 왜 열 받았는지 분석한다. 얼마나 살기 힘든지 분석한다. “안철수 현상은 기성 정치에 실망한 청년 세대가.....”. “이런 청년들의 요구를 기성 정당들이 받아들여야 합니다.”라고 떠든다. 이제 희망을 가져도 되나?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정말. 청년을 위한 정치는 없다.

 

한나라당을 부자 정당이라고 비판하는 민주당부터 살펴보자. 한나라당을 심판하겠다며 ‘통 크게 통합’한 민주통합당의 청년 정책은 딱 하나다. ‘청년고용할당제’. 공공기관에서 신규인원을 채용할 때 청년을 일정 비율 이상 반드시 고용하게 만들고, 민간기업의 경우 다양한 유인책을 이용하여 청년고용할당제를 장려한다는 취지다. 그 이상 그 이하 아무것도 없다. 딱 하나다.

 

한나라당은 정책보다 인물을 선택했다. 박근혜 의원이 주도하는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는 27세의 하버드 출신 사업가 이준석을 비대위 위원으로 임명했다. 청년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제스처다. 게다가 안철수 현상을 의식했는지 ‘벤처 기업’ 대표를 데리고 왔다.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중에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코너가 있다. 이 코너의 명대사는 청년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벤처 기업 사장을 비대위원으로 앉힌 한나라당에게 딱 이다. “야 안 돼~!” “안 되겠다 사람 불러야겠다. 더 잘 아는 사람으로다가......”하버드? 벤처기업 사장? 그가 20대를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우파논객 변희재는 일전에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론을 인용하며 조선일보에 20대가 88만원 세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가 내놓은 대안은 다음과 같다. “20대가 취직하기 힘드니 해외취업을 하세요. 그것도 힘들면 창업을 하시면 됩니다.” 변희재의 헛소리와는 달리 88만원 세대론의 핵심은 고작 20대가 취직하기 힘들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20대가 30대가 되어도, 지금의 30대 정도의 경제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88만원 세대론의 핵심이다. 즉 이 문제는 단순히 특정 세대가 살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한국 경제의 재생산과 관련된 구조적 문제다.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며 하버드 출신의 사업가를 앉혀 놓은 건 한나라당이 청년 문제를 변희재 정도의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다. 비대위 자문으로 위촉된 20대는 또 있었다. 표철민 위자드윅스 대표다. 그러나 그는 “저는 20대의 대표성이 없다.”며 스스로 사퇴했다. 그의 말이 맞다. 이준석은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으며, 그가 걸어온 길은 청년 문제를 해결할 대안도 아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내놓은 대안은 또 있다. 청년비례대표제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다가오는 총선부터 청년을 비례대표 당선권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25세부터 35세까지의 남녀 각 2명을 전국구 국회의원(비례대표)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어떻게 뽑을까? 방식은 슈스케다. 전국에서 예비후보들을 뽑은 뒤 슈퍼스타K 방식의 오디선 경선을 열어 최종 4명을 선발하겠다고 한다. 경쟁이 너무 힘들다고 사정하는 청년들에게 그걸 해결하고 싶으면 치열한 경쟁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란다.

 

솔직히 말해보자. 한국 정치에 문제가 많다고 누구나 말한다. 그런데 그 문제 여태까지 해결 못 한 게 참신한 인물이 없어서였나? 개혁적인 인물이 없어서였나? 젊은 피가 없어서였나? 세대교체, 젊은 피 수혈, 한국에 민주주의 도입 된 이래로 늘 했다. 그런데 늘 정치개혁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건 한국 정치에 구조적인 문제, 한국 정당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개혁적인 정치인과 청년 한 두 명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 말이다.

 

공천권 당대표가 행사하고, 기득권에 젖은 정치인들이 정당 내 의사결정 구조를 지배한다. 계파가 나뉘어 계파끼리 권력을 놓고 암투를 벌이면서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 한 두 명이 들어간다고 도대체 뭐가 바뀔까? 우리 당이 청년을 위해 이렇게 신경 쓴다는 생색내기용이고 얼굴마담 용이다. 처음에 뭔가 해보려던 젊은 정치인들은 당이라는 벽에, 기득권의 벽에 부딪쳐 결국 기성 정치에 동화되거나 상처만 받은 채 정치판을 떠나게 될 것이다.

 

‘개인으로써의’ 청년은 기성 정치 안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중요한 건 ‘조직으로써의 청년’이다. 각 정당이 진짜 정치개혁을 하고 싶으면 당 내 청년조직을 키울 생각부터 해야 한다. 당 예산의 많은 부분을 청년 조직에 배정하고, 이 청년조직이 자율적으로 청년 사업을 주도하고 당 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청년조직은 당 내에서 청년의 목소리를 ‘집단적으로’ 요구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당 내의 세대교체를 이뤄내야 한다. 정치개혁, 정당개혁은 이렇게 이루어져야 한다. 손인석 한나라당 중앙청년위원장은 슈스케 방식의 청년비례대표에 대해 “2만여 열성 청년 당원들의 불만이 크다”며 “청년 당원들의 당에 대한 공헌도를 먼저 따져본 뒤 외부에서 청년 비례대표를 영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의 말이 옳다.

 

청년 세대가 반값 등록금 투쟁과 10.26 지방선거를 통해 배운 것은 우리의 목소리는 우리 자신이 내야하며, 우리 자신의 힘으로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연대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경선을 통해 뽑힌 몇 몇 개인들이 당의 눈치를 보며 의원이 되는 건 별 소용이 없다. 청년들의 목소리가 커지니 이를 대충 무마하고 대변하는 척 하려고 내민 청년비례대표라는 카드에 혹해서도 안 된다. 그 카드를 갖고 싶다면 우리가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쟁취의 주체는 잘난 청년 몇 몇이 아니라 조직으로써의 청년, 집단으로써의 청년이어야 한다. 청년에 의한 정치가 필요하다.


<진보신당 R 칼럼>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