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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적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모험: 공동생활전선(2)

담론적 주체로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모험: 공동생활전선(2)

공동생활전선

1. 전선의 시작과 구성원의 모임

이 글은 지난 <자음과 모음> 가을 호에 이어 공동생활전선을 소개하기 위해 쓴 두 번째 기록이다. 지난 글에서는 군 인트라넷 커뮤니티 책마을을 중심으로 벌어진 공동생활전선의 논의에 대해 다루었다면, 이번 글에는 책마을 이후 공동생활전선 기획이 구체화되면서 시작된 공동생활전선 준비모임의 활동과 준비 과정에서의 이루어진 논의를 중심으로 우리 모임의 문제의식과 목표,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2010년 4월 30일 공동생활전선의 기획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1)에 모여들었다. 이른바 ‘공동생활전선 준비모임’이 시작된 것인데, 몇 번의 준비모임을 거치면서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이 확정되었다. 각자 다른 욕망과 기대를 가지고 모인 이들이었으나 이들에게는 ‘공동생활’을 할 만한 공통의 이유가 있었다.

구성원들의 첫 번째 공통점은 이들 모두 ‘좌파 대학생’이라는 것이다. 사회운동을 통해 좌파적 실천을 해왔건 이론 학습을 통해 좌파 이론을 공부해왔건 우파에서 좌파로의 이념 전향을 반복해 왔건, 그들은 모두 젊은 좌파들이었다. 구성원의 정치적, 이론적 성향이 모두 좌파적이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처음에 공동생활전선의 기획 의도는 ‘공동생활을 통해 집으로부터 자립하여 사는 젊은이들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었으나, 구성원 모두가 좌파라는 점으로 인해 앞으로 우리 모임의 논의는 “좌파 대학생들의 공동생활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로 좁혀졌기 때문이다. 좌파 대학생의 모임이라는 공동생활전선의 정체성은 앞으로 진행할 세미나와 담론투쟁의 성격을 규정해주었다.

두 번째 공통점은 이들이 모두 (정도에 상관없이) ‘이론적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구성원들의 전공은 정치학, 철학, 법학, 사학, 경제학, 문학, 국문학, 심리학 등으로 다양했으나 이들은 모두 ‘공부를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공부를 하고 있었고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는 데다 앞으로도 공부를 할 생각이었다. 바로 이 사실이 기존의 학생운동과 공동생활전선의 차이를 가장 크게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공동생활전선에는 학생운동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대학생들도, 사회운동 혹은 정당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대학생들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기존의 운동이란 것의 한계를 직, 간접적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의미에서의 실천과 개입을 추진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었다.

세 번째 공통점은 바로 ‘자립과 공동생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준비모임 과정상에서 준비모임 구성원 중 한 명이 “도대체 왜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했다. 공부하는 좌파 대학생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단체는 이미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정체성을 일컫는 ‘공부하는 좌파 대학생’이라는 주어가 “공동생활전선을 준비한다.”는 술어와 결합하기 위해서는 “왜 집을 떠나와 살아야 하고, 왜 함께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이 추가적으로 요청된다.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립을 강력히 요청하는 이유는 ‘공부하는 좌파 대학생’이라는 우리의 정체성 그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들이 취업하고 돈 많이 벌어서 사회에서 성공하길 바라지, 바로 ‘그 사회’를 변혁하고 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길 바라지 않는다. 실제로 우리들은 이런 점에서 부모들과 표면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갈등해왔다. 집회, 시위에 나가 정치적 요구를 내세우려는 우리를 만류하려는 부모 밑에서는, 마르크스 책만 있으면 집어던지는 부모 밑에서는, 돈은 언제 벌거냐고 압박하며 스펙 쌓기와 취업을 강요하는 부모 밑에서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준비모임 과정에서 만난 다른 자립공동체의 어떤 이는 “혁명은 엄마 돈으로”라고 말했으나, 우리는 원리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자립하지 않고서는 ‘공부’도 ‘좌파’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공동생활’을 강력히 요청하는 이유는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그동안 매우 외로웠다. 홀로 보수적인 부모 밑에서 투쟁해야 했고 홀로 사회와 국가에 불만을 느끼고 저항해야 했으며 홀로 돈도 되지 않는 공부를 한답시고 지젝이니 고진이니, 많은 이들이 공감도 하지 못할 책들을 읽고 있었다. 우리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던 많은 이들이 이미 부모와 타협하여 ‘철없던 나’를 반성하고 ‘한 때의 운동’을 접었을 것이며 아니면 중2병2)에 걸려 현실과 괴리된 채 제 잘난 맛에 살고 있을지 모른다. 자본주의의 가장 무서운 공세는 개인들을 파편화하여 충분히 외롭게 만들거나 개인들의 관계를 상품관계로 전환하여 그들을 연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얼마나 물신적인지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체제와 국가에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저항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혼자 읽으면 절대 안 읽을 이론 책들을 함께 읽어나가야 한다. ‘나보다 나를 더 믿는 너’희들의 연대는 우리에게 외로울 틈을 주지 않을 것이다. 즉 우리는 이념대로 살 권리를 위해, 좌파가 좌파답게 살 권리를 위해 ‘공동생활’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었다.

또한 스스로 ‘공부만 해왔다는’ 많은 구성원들은 정치적 실천으로서의 공동생활과 자립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들은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운동에 열심히 투신해 온 운동권들이 아니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책을 읽으며 모순을 이론적으로 관념적으로 먼저 깨달아 온 이론좌파에 가깝다. 이 이론좌파들은 스스로의 관념성과 추상성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실천의 측면에서 공동생활의 필요성을 실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실천이란 정치적 행동(시위나 데모)이라기보다2) 사회경제적 모순3)을 직접 대면함으로써 좌파에게 요구되는 물질적 토대를 구축한다는 의미에서의 실천이다.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들이 정치적 실천을 위한 공동생활을 요청한 이유는 그들이 ‘공부’를 통해 좌파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구성원들 중 세 명은 강남좌파이며, 그게 아니더라도 부모가 사회의 고위층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비아냥거리는 의미로 쓰이는 ‘강남좌파’의 의미 그대로, 잠재적으로는 골수우파가 되거나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재생산할 가능성이 높은 이들이다. 이들은 이념대로 살 권리를 위해서 부모의 물적 조건을 의식적으로 거부해야만 한다.


2. 무엇을 할 것인가?

이렇게 모인 공동생활전선 준비모임 구성원들은 이제 공동생활전선을 구체적으로 구상하는 일,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에 착수했다. 이 논의는 크게 (1) 경제적 자립, (2) 이론적 학습 (3) 담론 투쟁이라는 쟁점으로 나뉘어 전개되며, 각 쟁점마다 어떤 사항들이 구체적으로 논의되었는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 경제적 자립 : 20대는 어느 정도 수준까지, 어떻게 자립할 수 있는가?

먼저 공동생활전선이라는 기획이 담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식인 ‘20대는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모토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었다. 일단 앞에서도 언급했듯 이 구성원 모두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공동의 생활공간 겸 학습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는 합의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것이 당장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 인해 내부에서 ‘자립’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우선 지금 당장 구성원 모두가 집을 나와 같이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학생들 몇 명이 노동을 통해 단기간에 보증금 500~1000에 월세 30~50을 감당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이 비용도 4인 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또한 대학생들이 부모에게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생활비라기보다 등록금인데, 이 등록금을 부모로부터 지원받지 않는 것은 매우 힘들다. 대학등록금이 평균적으로 한 학기에 500만원에 달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을 통해 등록금을 벌게 될 경우 우리는 한 학기 일하느라 휴학하고 그 돈으로 한 학기를 다니는 짓을 반복할 것이고 이런 상황에서 담론 투쟁과 학업을 병행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점진적으로’ 완전한 자립을 추구하되, 지금 당장은 ‘현실 가능한’ 자립을 달성하기로 합의했다. 구성원 모두의 돈으로 공동공간을 마련하되, 당장 가출을 할 수 있거나 가출이 필요한 이들이 공동의 공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하면서(실제 공간에 거주하면서) 나머지 구성원들의 경우 새로운 공간이 마련될 때까지(자금이 모일 때까지) 완전한 자립을 연기하되 이들 역시 이 공간을 언제나 사용할 수 있으며, 세미나나 운영 회의 등의 공동의 작업을 할 때도 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반(半)가출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보증금처럼 유지되는 비용은 구성원이 모두 동일한 비율로 출자하고 실제 공동으로 거주하면서 사용되는 생활비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부담하기로 했다. 또한 정기적으로 비정기적으로 각자가 노동으로 얻은 수입을 같이 모아서 공간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비용으로 쓰기로 했다.4)

(2) 이론적 학습 :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 모두 공부에 대한 욕망을 가진 만큼, 우리가 이론적 학습을 위한 공통의 세미나를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에는 쉽게 동의할 수 있었다. 다만 무엇을 학습할 것인가가 문제였는데, 각자가 공부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논의할 결과 모두가 욕망하는 근(현)대 (좌파)정치철학이 우리의 첫 번째 공통 세미나로 선정되었다. 구성원 모두가 근현대 정치철학을 욕망한 이유는 정치철학이 다른 범주의 이론들보다 우리의 모임이 고민해야할 국가, 사회, 그리고 개인이라는 문제를 가장 철저하게 사유하고 있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또한 좌파로서 우리가 이론적 전거로 삼아야 할 마르크스주의에 큰 영향을 준 것이 헤겔, 스피노자와 같은 근대정치철학자들이며 현대에 마르크스주의를 재정의하고 그 가치를 되살리려는 역할을 현대 (좌파)정치철학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현대 좌파 정치철학자 전반에게 영향을 준 스피노자를 탐독하고, 이어 토대-상부구조라는 마르크스주의의 고전적 토픽을 생산-재생산이라는 토픽으로 전환함으로써 현대 마르크스주의의 새 장을 연 알튀세르를 탐구함으로써 좌파로서의 이론적 지반을 다지고자 했다.

그러나 스피노자-알튀세르주의 세미나는 곧 논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논쟁은 우리가 스피노자-알튀세르주의를 공부하는 것에 대한 두 가지 비판으로 인한 것이었는데, 첫 번째는 우리가 마르크스를 읽는 것이 우선이지 않느냐는 비판이었다. 우리가 탐독하고자 하는 현대 좌파 정치철학은 결국 마르크스를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키느냐는 문제와 맞닿아 때문이다. 더욱이 공동생활전선은 심플한 마르크스주의자로써,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을 가지고 국가 권력과 자본주의 권력에 대한 투쟁을 수행한다는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만큼 일단 마르크스 자체에 대한 공부가 우선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즉 현재 유행하고 있는 스피노자 마르크스주의 혹은 현대 좌파정치철학을 조급하게 읽으려 하기보다 그 기반이 되는 마르크스의 저작들을 읽는 것이 공통 세미나의, 공동생활전선의 ‘첫 번째’ 공통 세미나의 성격에 더 잘 부합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두 번째 비판은 이론의 ‘쓰임새’와 관련된 비판이었다. 공동생활전선이 더 ‘실천적’이기 위해서는, 스피노자 알튀세르주의 같은 철학이론들보다는 우리가 직면한 모순들에 대한, 그리고 그 모순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즉 주거권, 노동권, 교육권에 대한 학습을 통해 우리가 처한 모순에 대한 분석과 해결을 도모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는 공동생활전선이 기타의 학습 공동체들과 차이를 드러내야 한다는 인식과 맞닿아 있다. 들뢰즈나 니체를 공부하고자 한다면 수유+너머 강좌에, 데리다나 스피노자에 대해 공부하고자 한다면 진태원 교수의 세미나에, 네그리와 자율주의를 공부하고 싶다면 다지원 강좌에,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 대해 알고 싶다면 곽노완 교수의 세미나에 참여하면 된다. 우리가 단지 ‘말 그대로 이론적인’ 것들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다면 공동생활전선에서 할 것이 아니라 여타의 기존 연구자들 밑에서 공부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비판은 곧 재 비판을 받게 되었다. 우선 우리가 주거권, 노동권, 교육권과 같은 구체적 정치적 쟁점들을 지금 당장 공부한다고 해서 신통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없으며, 이는 오히려 전문적인 정책 연구자들이나 돈 받는 아카데미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정책 연구자나 돈 받는 아카데미가 아닌 20대 학생들로서, 지식의 습득이나 현상에 대한 분석보다는 오히려 이론적 훈련을 해야 한다. 공동생활전선 구성원들은 ‘담론적/이론적 개입’에 대한 서로의 욕망을 확인했고,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담론적/이론적 개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 개입의 절차들을 훈련해야 한다. 알튀세르를 첫 목표로 삼은 이유는 바로 그가 이 이론적 개입 그 자체, 그리고 그 개입의 절차들에 대해 논한 인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아카데믹한 욕망과 같이 지식을 ‘생산’, 혹은 정리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당대의 논자들에게 어떻게 개입했는지, 그 방식을 교본으로 삼아 이론적인 군사 훈련을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 공부해야 한다. 우리의 목적은 레닌에 대한 마르크스에 대한 알튀세르에 대한 지식을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개입방식’을 통해 ‘훈련’하는 것이다!

두 가지 내부 비판을 거쳐, 공동생활전선의 첫 번째 공통 세미나는 ‘마르크스-엥겔스 저작 선집 읽기’로 정해졌다. 그러나 이 세미나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데, 바로 ‘우리끼리 읽다보니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들을 밀도 있게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밀도 있게 읽어내지 못한다는 것의 의미는 마르크스의 특정한 주장이 후대에 어떤 논쟁을 일으켰는지(예컨대 알튀세르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가 사용한 이데올로기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물론 마르크스의 특정한 저작과 주장이 어떤 역사적 맥락, 즉 어떤 정치적, 이론적 적들을 겨냥하고 쓰인 것인지 잘 알지 못한 채 저작들을 독해한다는 의미이다. 논의를 거친 결과 마르크스주의의 역사, 저작들 간의 유기적 관계와 후대의 논쟁들에 정통한 연구자의 세미나에 다 같이 참여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는 강의가 아닌 세미나라는 형식 때문에 구성원들이 자신의 텍스트 독해에 대한 견해나 논의거리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권위자의 주도로 이루어지다보니 우리가 처음에 공통세미나를 통해 의도했던 만큼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지금도 모색 중에 있다.

공동생활전선은 학습 공동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마르크스-엥겔스 저작 읽기 세미나 이후에도 공통의 세미나를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다른 이론적 욕망을 고려하여 다양한 서브 세미나들도 다양하게 운영하여5)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한 이론적 분업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3) 담론 투쟁 : 무엇과 싸우고, 무엇에 개입해야 하는가

공동생활전선의 기획 의도와 구성원들이 공동생활전선에 참여하게 된 문제의식을 고려했을 때 ‘담론 투쟁’ 혹은 ‘담론적 개입’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애초에 공동생활전선은 ‘20대의 담론적 주체화’라는 목표를 가지고 출범했기 때문이다. 부모로부터의 자립은 공동생활전선의 가장 기본적인 모토이기는 하지만 최종목표는 아니다. 저번 호 원고에서도 밝혔듯이 공동생활전선은 선생님들의 언어에 의존하는 20대 운동을 당사자 운동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20대 담론을 우리의 언어로 재정식함으로써 담론적 주체로 거듭나는 것을 당면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립과 공동생활은 이를 위한 물적 토대이다. 우리가 담론 투쟁이나 개입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취생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준비모임의 과정에서 이에 대한 논의는 자립이나 이론적 학습에 관한 논의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우리에겐 노동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우리의 공간을 마련하는 일이 당장 시급한 과제였다. 또한 공부하는 데 익숙한 이들의 모임이다보니 아무래도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 주력을 하느라 이 과정에서 공동생활전선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이었던 ‘담론적 주체’라는 문제는 소홀히 다루게 되었다. ‘일단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공부‘라는 식의 결론에 암묵적으로 합의하기도 했다. 노동과 학습을 병행하며 현실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어려울 뿐더러, 일단 지금은 ‘이론적 역량’을 어느 정도 기른 뒤 나중에 개입하자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공부’라는 이 암묵적인 합의에 대해 7월 말 즈음에 처음으로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이루어졌고, 8월 말이 되어서야 ‘담론 투쟁’을 공동생활전선의 당면 과제로 설정하는 것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있었다.

우선 담론 투쟁과 학습, 노동을 병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지적은 담론 투쟁에 대한 서로의 상이 달랐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였다. 이런 지적은 담론 투쟁을 마치 엄청난 체력 소모를 필요로 하는 대중시위나 군중데모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공동생활전선은 이런 시위나 데모 등의 실천보다는 언론이나 공공적인 담론 영역에서 20대 의 목소리와 좌파적 입장을 드러내는 자기표현을 주목적으로 한다.

또한 현실적인 이유를 배제하고서라도 ‘일단 학습을 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은 매우 위험하다. 공동생활전선의 개입은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만이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공부만 해왔기에 이 관념성에서 벗어나 실천적인 일을 하고 싶다.”며 공동생활전선에 참여해놓고 “그것은 아직 시기상조, 일단은 공부하자.”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렇다면 그냥 하던 대로 공부를 계속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얼마나 더 공부해야 개입할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인지도, 또 그 ‘역량’을 갖추고 개입했을 때 그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20대 당사자 운동을 위해 모인 것이지 좌파적인 연구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다. 지금은 공동생활전선을, 이후엔 30-40대 당사자운동을, 아니면 연구자나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당사자 운동을 하는 것이 운동을 ‘지금 당장’ ‘항상 언제나’ 가능한 말 그대로 ‘운동’으로 만들어 좌파답게 살 권리를 쟁취하려는 우리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다.

담론 투쟁이 공동생활전선의 당면 과제라는 데 합의했다면, 이제 어떤 담론 투쟁을 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싸울 것이며 무엇에 개입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남는 것이다. 이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기 때문에 합의된 사항이 체계적이진 않으나 몇 가지 기본적인 전제들을 바탕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공동생활전선은 20대 세대 담론에 적극 개입하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공동생활전선은 ‘20대 당사자 운동’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고로 우리는 제일 먼저 20대 당사자 운동을 돕는답시고 오히려 그것을 방해하고 있는 세대담론에 대해 투쟁하고자 한다. 이 투쟁의 대상은 이른바 진보적 어른들에 의해 전유되는 세대담론이다. 20대 당사자 운동을 하라고 주장하는 진보적인 어른들은 그들이 20대 운동과 세대론을 주도함으로써 20대의 주체화를 오히려 방해하고 있다. 공동생활전선의 첫 담론 투쟁은 이처럼 ‘20대 당사자 운동을 방해하는 20대 세대 담론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다.

20대 세대 담론에의 개입은 이처럼 이른바 사회개혁적인, 진보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 뿐 아니라 기존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보수적 20대를 대상으로도 이루어질 것이다. 대부분의 20대, 대학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담론 영역에 접근조차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20대라는 세대 담론을 진보적으로 전유하는 20대 당사자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세대 담론의 대상인 대부분의 20대는 열심히 노동하고 열심히 스펙을 쌓기에 바쁘다. 공동생활전선은 이런 20대들을 대상으로 한 담론 투쟁에도 적극 참여할 것이다. 예컨대 스펙 쌓기와 돈벌이를 위해 G20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대학생들이나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 전경련의 후원을 받으며 자기계발에 열중하는 대학생들이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담론 투쟁을 함에 있어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을 견지할 것이다.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을 견지하는 까닭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 째 20대 내부에서도 좌파담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사회 개혁적이고 비판적이라는 20대 대부분이 상상적인 자유주의에 빠져 버릴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자본주의의 수혜를 누리며 그것을 찬양하는 이들 뿐 아니라 모순을 인정하되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돌아가게 하는 자유주의자를 비롯한 모든 개량주의자들과 적대함으로써 진보적인 20대를 넘어선 좌파적인 20대를 위해 투쟁할 것이다. 우리가 비판할 대상에는 취업준비생을 공장이나 농촌으로 보내버리겠다고 말한 이재오뿐만 아니라 ‘취업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이재오를 비난하는 민주당도 포함된다. 둘 째 비록 우리의 담론 투쟁이 세대 담론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결국 근본적인 모순은 계급모순이며 자본주의 그 자체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하기 위해서이다.

즉 공동생활전선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20대 세대 담론을 시작으로 담론 투쟁을 수행할 것이다. 이 담론 투쟁은 온라인/오프라인 매체를 가리지 않는 기고/대자보/출판 등의 방식을 통해 전방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3. 공동생활전선 강령

위에 설명한 논의 과정을 거쳐 마침내 공동생활전선의 강령이 만들어졌다.

공동생활전선은 우선적으로 우리 세대가 담론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기 위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목적 하에 1) 사회적 자립 2) 학습의 일상화 3) 담론적 개입을 실천하는 것을 수행하려 한다.

1) 사회적 자립

가계에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 주체가 되기 위해 노동으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자립을 현실화한다. 이로써 우리 세대의 경제적 자립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 뿐 아니라 주거비와 생활비의 자립을 통해 각자 자유롭게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공동생활전선은 사회적 자립을 지향한다. 원래 자립의 의미가 경제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다가 논의를 거쳐 사회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자립 시도는 단지 경제적 의미만을 지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노동을 통해 가계로부터 자립함으로써 우리는 사회구조적 모순(주거권, 노동권, 교육권)을 드러낸다. 우리가 이 모순에 부딪쳐 고생하고 갈등할수록, 우리는 더 ‘주체화’된다. 또한 이 경제적 자립은 부모의 물질적 조건으로부터 벗어난 20대의 자유로운 연대의 조건이다. 고로 이 자립은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다.

우리는 이 사회적 자립을 지향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세 가지 사항을 지키고자 한다. 첫 번째, 사회적 자립이라는 이념적 지향을 우리의 삶 속에 구현할 수 있도록 힘쓴다. 두 번째, 사회적 자립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가난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좀 더 가난해질 필요가 있다. 세 번째, 공동생활과 학습을 병행하는 자율적 공간을 마련한다. 우리는 지금 마련한 공간을 넘어서 계속 공간의 확장을 도모할 것이다. 공동생활전선이 확장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물적 토대가 바로 ‘우리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2) 학습의 일상화

이론적 학습의 일상화를 통하여 개개인이 지닌 문제의식을 첨예화하며, 궁극적으로 담론 투쟁에 필요한 이론적 무기를 갈고 닦는다. 이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각자의 이론적 욕망을 견인한다.

공동생활전선은 학습과 일상을 공유하는 생활학습공동체이다. 우리가 함께 공부하는 이유는 혼자 공부할 때 생길 수 있는 게으름을 방지하여 공부를 일상적인 삶으로 만들기 위해서이자 중2병에 걸리지 않고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유지, 발전, 첨예화하도록 서로를 독려하기 위해서이다. 담론 투쟁에 있어서건 일반적인 학습에 있어서건 이론적 분업관계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

이 학습의 일상화를 위해 세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첫 째, 학습의 방향은 이해관계가 아닌 대의를 공유하는 학습 연대체의 목적에 걸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생활전선은 대학원진학 모임도 예비 교수들의 모임도 아니다. 둘 째, 각자의 이론적 욕망을 확인하고, ‘따로 또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 다른 이론적 욕망을 포괄할 수 있는 전체의 세미나와 서브 세미나를 동시에 운영하며, 세미나 외에 자신이 개별적으로 학습한 내용을 편하게 공유할 수 있는 살롱의 자리를 마련한다. 공간에 거주하는 구성원들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같이 모여서 번역이나 강독 등의 짧은 시간에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을 진행한다. 셋 째, 이론은 학문적 영역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견지한다.

3) 담론적 개입

공동생활전선은 20대 내부에서의 당파성을 점화하는 것을 당면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하여 이에 반하는, 20대의 담론적 주체성을 방해하는 기존의 담론들과 대결해야 한다. 실천적인 영역에서 이것은 공론영역에서의 개입을 불사하면서까지 당파적인 20대의 입장을 표출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생활전선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학문 연구나 사회비판을 거부한다. 우리는 정치적 중립성을 가장한 보수성을 물리치기 위해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급진성과 당파성을 추구한다. 우리가 20대 당사자 운동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이 당파성은 20대 내부에서 점화를 그 목표로 하며 이를 위해 20대 당사자 운동을, 담론적 주체성을 방해하는 보수적 세대론과 진보적 세대론 양자 모두와 대결할 것이다.

이 담론적 개입을 위해 구체적으로 세 가지 사항을 명심한다. 첫 번째, ‘공동생활전선’이라는 이름으로 글쓰기를 통한 전방위적 담론 투쟁에 나선다. 우리는 각자가 아니라 ‘공동생활전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글을 써서 온/오프라인 매체에 투고할 것이다. 어느 글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구성원 모두가 합의하고, 특정인이 쓴 글이라도 공동생활전선의 이름으로 투고할 때는 모두가 검토하여 기고한다. 두 번째, 기성 담론 내부에서 20대가 담론적 주체로 표상되지 못하는 상황을 문제 삼는다. 세 번째,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적 상황에 대한 개입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파성에 기반한 판단과 주장을 저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20대 세대 문제만을 담론 투쟁으로 삼지 않는다. 정부나 정당의 정책에 대한 당파적인 비판이나 김예슬 선언과 같이 급작스럽게 발생한 사건에 대한 논평도 수행할 것이다.

4. 공동생활전선, 앞으로의 과제와 방향

공동생활전선은 준비모임에서의 논의과정을 거쳐 우리의 문제의식과 지향점을 강조한 강령을 확정했다. 마지막으로 이 강령에 기초해 앞으로 공동생활전선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과제 몇 가지에 대해 언급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1) 학습과 생활을 병행하는 공동공간과 생활양식의 확장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공동생활전선은 20대의 자립에 필요한 경제적 비용을 공동생활을 통하여 최소화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공동생활 공간을 확충시켜 나가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경제적 부담을 덜면서 학습과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기 위하여 적절한 공간을 물색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생활과 학습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이전과 다른 생활양식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공간의 확장과 더불어 이 생활양식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는 지금 공동생활전선이 진행되고 있는 고려대학교 근방인 서울북부를 넘어서 공동생활전선의 생활양식이 퍼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컨대 현재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 중 한 명이 다른 지역의 대학원으로 진학한다면, 그곳에서 뜻이 맞는 20대들과 함께 공간을 마련하여 공동생활전선의 생활양식을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 공동의 소득 창출

생활과 공간 확장을 위한 비용은 기본적으로 각자의 노동에 의한 자금의 공동 관리를 통해 확충된다. 하지만 동시에 함께 작업함으로써 가능해 질 수 있는 공동의 소득을 창출하려고 노력해야한다. 예컨대 <자음과 모음> 기고를 통한 원고료가 그런 방식의 소득 창출이 될 수 있다. 현재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 중 한 명인 박가분은 지난 5-7월에 진행한 세미나 내용을 바탕으로 단행본을 기획하고 있는데, 공동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출판하는 방식 또한 공동으로 소득을 창출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3) 20대 문제의 쟁점들의 첨예화

20대의 주거권, 노동권, 교육권 등과 관련한 다양한 부문 운동들과 연대하여 20대 문제의 직접적인 쟁점들을 보다 첨예화해야 한다. 이는 20대 담론들이 기성 지식인 중심으로 규정되었다는 점을 비판하고 20대에 의한 당사자 운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담론 투쟁의 연속선상에 있기도 하다. 우리는 준비모임 과정에서 수유+너머, 지행네트워크, 연구 공간 공명, 성공회대 꿈꾸는 슬리퍼, 빈집 등의 대안공동체들에 대한 인터뷰와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를 통해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었다. 대안공동체들 말고도 다양한 사회. 경제적 모순에 투쟁하는 운동들 역시 연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예컨대 20대 노동권과 관련된 쟁점들을 첨예화하는 과정에서는 청년유니온과, 20대 교육권과 관련된 쟁점들을 첨예화하는 과정에서는 김예슬 선언 카페와 연대할 수 있다.

4) 서로 다른 전공 공부를 통한 이론적 분업 관계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들은 각자 서로 다른 전공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전공이란 모두 학부생인 구성원들이 현재 전공하고 있는 학문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는 만큼) 대학원 이후 전공하게 될 학문을 가리킨다. 물론 같이 공부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같이 공부하되, 각자 전공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즉 우리는 흔히 폄하되기 마련인 '전공 공부' 역시도 급진적인 관점에서 정치화하여 우리의 이론적 자산으로 삼을 수 있음을 증명해야한다.6) 서로 다른 각자의 전공과 관심사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곧 이론적 분업 관계를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그러나 물론 이 다른 관심사의 공부는 모두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책마을에서 처음 논의가 시작된 이래, 올해 여름을 거쳐 그 문제의식과 지향점이 구체화된 공동생활전선은 이러한 과제를 남긴 채 2010년 9월 25일 공식적인 출범식을 가졌다. 이제 우리의 기획은 ‘실천’으로 향하고 있다.

 

각주

1) 고려대학교 생활도서관은 학문, 사상의 자유 쟁취, 진보적 사상의 대중화를 목적으로 고려대 학생들에 의해 직접 운영되고 있는 인문, 사회과학 도서관이다. 고려대 생활도서관이 공동생활전선 활동의 모임 장소와 주 활동영역이 된 데에는 공동생활전선의 구성원 일부가 생활도서관 운영위원들이라는 이유 외에도 생도가 다량의 학술도서 자료들을 보유하고 있는 학술 공간이라는 점, 많은 인원들이 출입하는 까닭에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유리한 공간이라는 점, 세미나, 토론회 개최가 가능하다는 점 등 때문이다.

2) 중2병은 일본에서(中二病 주니뵤) 유래된 신조어로 자아 형성 과정, 즉 사춘기에 ‘자신은 남과 다르다’ 혹은 ‘남보다 우월하다’ 등의 착각에 빠져 허세를 부리는 사람을 일컫는 속어이다. 일본 라디오프로그램 “이주인 히카루의 심야의 엄청난 힘”(伊集院光 深夜の馬鹿力)에서 처음 등장해 대한민국까지 퍼지게 되었다. 한국으로 넘어오면서 일본에서 쓰일 때는 없었던 ‘비하적인 의미’가 추가되었다.(위키백과 참고) 이 글의 맥락에서는 중2병이라는 용어가 인문학 공부 혹은 독서를 통해 이론좌파가 된 이들이 현실과 괴리된 채 자신이 남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며 자위하는 현상을 가리키고 있다.


3) 그렇다고 공동생활전선이 여타의 정치적 행동(한마디로 ‘발품을 팔아야하는’ 일)을 등한시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른 정치조직들, 예컨대 시민단체나 정당들, 혹은 다함께와 같은 대학생정치조직들과 공동생활전선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실천’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공동생활전선은 언론 영역에서의 담론 투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대자보 등을 활용한 사회 개입 역시 기획하고 있다. 이는 뒷부분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다.

4) 공동생활전선이 직접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사회. 경제적 모순이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첫 번째는 성인이 되었으니 이제 독립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주체로 나서야 할 20대가 자신의 공간을 가지지 못하고 기성세대에 의존하여 살아가야 하는 주거권의 문제이다. 두 번째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생계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노동권의 문제이다. 세 번째는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시장영역의 확대로 인해 대학생이 취업준비생과 동일시되고,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없는 교육권의 문제이다.

5) 현재 공동생활전선은 고려대학교 근처에 공간을 마련했다. 구성원 중 3명이 그곳에서 살고 있으며, 1~2명이 내년에 추가적으로 그 공간에서 거주할 예정이다.

6) 공동생활전선 구성원들은 현재 ‘근대일본정치사상사’ 세미나와 ‘자본론 강독’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다. 근대일본정치사상사 세미나는 근대 일본에서 벌어진 사상사적 논쟁과 흐름에 대해 탐독하는 세미나이다. 자본 강독 세미나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전공자와 함께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강독하는 세미나이다.

7) 공동생활전선 구성원들이 전공하고 있는 학문들 중 흔히 좌파들에 의해서 폄하되곤 하는 대표적인 학문이 국제정치학, 그리고 경제학이다. 국제정치학은 미국의 패권 전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현실적 쓰임새와 힘의 관계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는 이론적 경향으로 인해 우파 학문으로 비판받는다. 그러나 좌파 국제정치학도라면, 국제정치학이 어떻게 정치철학자들을 편의대로 읽어내면서 계급모순을 은폐하고 있는지 비판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정치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국제정치철학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주류 경제학을 부르주아의 학문이라고 매도하기 이전에 우리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무려 ’정치경제학 비판‘이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좌파 경제학도라면,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르는 채 ’그 짓‘을 하는 주체들의 무의식을 넘어가기 위해서라도 주류 경제학과 그것이 드러내는 무의식적 징후들을 공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을 비판했던 당시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무의식을 망각하며 의기양양해 하는 새로운 몽매주의의 역사적 형태에 대한 비판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음과 모음> 계간지 2010년 겨울호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