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 엎드린 유승민의 사과? 유승민의 반박이다
“경제활성화법 23개 통과됐다”고 반박…결과적으로 사퇴 요구 거부한 셈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머리를 숙였다. ‘죄송’하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한 사과였다. 이를 두고 대통령과 각을 세우던 유 원내대표가 굴복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의 사과문을 엄밀히 뜯어보면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주장에 반박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26일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정책자문위원 위촉장 수여식 인사말 도중, 준비해 온 사과문을 읽었다. 그는 “박 대통령께서 국정을 헌신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계시는데 여당으로서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 데 대해 송구한 마음 금할 길 없다”며 “대통령께서도 저희들에게 마음을 푸시고 마음을 열어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의 사과를 두고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불신임’ 압박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27일 주요일간지들은 고개 숙인 유 원내대표의 사진을 실었다.
그러나 유 원내대표의 사과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사과문은 박 대통령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이루어졌다. 유 원내대표는 “어떻게든 공무원연금법 개혁을 꼭 이뤄내서 이 정부의 개혁 성과로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은 저나 우리 당 대표님, 국회의원 모두의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앞서 25일 국무회의에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아무런 연관도 없는 공무원연금법 처리와 연계해서 하룻밤 사이에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그간 공무원연금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수차례 국회를 압박했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자신이 주도한 공무원연금개혁안 통과가 대통령이 요구한 것 아니었냐고 반문한 셈이다. 유 원내대표는 “대통령께서도 100% 만족스럽지는 못하셨지만, 공무원연금법 개혁의 국회통과를 가장 절실하게 원하셨던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유 원내대표를 직접 겨냥해 불만을 쏟아냈다. 박 대통령은 “정부가 애써 마련해서 시급히 실행하고자 하는 일자리 법안들과 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여전히 국회에 3년째 발이 묶여 있다”고 국회를 비난했다.
유 원내대표의 사과문에는 이에 대한 반박도 담겨 있다. 유 원내대표는 “경제활성화법도 30개 중 23개가 처리가 됐고, 크라우드 펀딩법과 하도급법도 어제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본회의가 무산 됐습니다. 이제 5개 정도 남은 법은 야당이 제일 강하게 반대하는 법들”이라고 강조했다.
유 원내대표가 사과한 26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대국민호소문을 통해 “소위 경제활성화법으로 여당이 제안한 법안은 30개인데 이 중 21개는 국회를 통과했고, 2개는 곧 처리를 앞두고 있다”며 “몇 개 안남은 법안 중 2개는 정부여당 내부 이견으로 처리를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우리 국회 사정상 야당이 반대하면 꼼작할 수 없는 현실에서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하지만, 제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는 유 원내대표의 말도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우리 국회 사정이란 국회선진화법을 뜻한다.
국회선진화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2012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회가 꼭 필요한 법안을 당리당략으로 묶어놓고 있으면서 본인들이 추구하는 당략적인 것을 빅딜을 하고 통과시키는 난센스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국회를 비판했다. 이는 국회선진화법의 부작용으로 거론되는 사안이다.
▲ 25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
그러나 박 대통령이 국회를 비난하면서 든 사례 중에는 사실관계가 틀린 점이 많다.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 의장은 26일 의원총회에서 “하나하나 밑줄 치며 따져보니 박 대통령의 발언이 거짓과 국회를 호도하는 것으로 점철됐다”고 비판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특별법(특별법)을 영유아보육법과 연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시급한 영유아보육법은 2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했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거짓이다. 영유아보육법은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에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2월 국회에서 부결됐기 때문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국회에서 3년째 발이 묶여 있다”는 박 대통령의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한겨레는 “3월17일 영수회담에서 여야가 합의한 사실마저 왜곡하고 있다”며 “당시 여야 대표는 논란이 됐던 보건·의료 부문을 빼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처리하기로 합의했지만 보건·의료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새누리당 내부 이견이 불거져 처리가 미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에게 사과하면서도 박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26일 CBS <시사자키>와 인터뷰에서 “유 원내대표의 사과문은 문재인 대표의 성명과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며 “사과문이 ‘죄송합니다’ ‘송구스럽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되어 있지만 내용을 보면 해명 내지 반박으로 들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과는 박 대통령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사퇴 요구’를 거부하고 대표직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당내의 사퇴 요구와 청와대의 불신임 모두를 거부한 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압박은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가 당정협의체를 거부하며 불만을 드러내고, 친박 의원들이 유 원내대표 거취에 대한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는 이 압박을 이겨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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