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황교안 총리가 살아남는 법
차분한 저음의 황교안, 야당 질의에 원칙적 입장만 반복…구체적 ‘팩트’ 없으면 야당이 밀린다
국회에게는 정부의 잘못을 밝혀낼 수 있는 상시적인 무대가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가 국회 본회의에서 이루어지는 대정부질문이다. 대통령을 대리하는 총리가 직접 출석해 각종 국정현안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잘못이 드러나기도 한다.
의원들의 공세를 막아내야 하는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 황교안 국무총리는 최적의 카드라 볼 수 있다. 황교안 총리는 국회 데뷔전이라 할 수 있는 19일부터 24일 간의 열린 대정부질의를 무난하게 치렀다. 의원들의 지적에 공감을 표하면서도 ‘최선 다했지만 부족했다’ ‘검토하겠다’는 식의 교과서적인 답변을 반복하며 공세를 이리저리 피해나갔다.
황교안 총리의 대정부질의는 ‘사과’로 시작했다. 19일 그는 청문회 과정에서 문제가 된 자료 미제출 관련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의원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 같아 유감이다. 국민들께 송구하다”고 밝혔다.
황 총리는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도 ‘노력했지만 부족했다’는 식의 화법으로 대응했다. 24일 추미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메르스의)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나”고 묻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아직 부족하다”고 답했다. 추 의원이 국민안전처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지적하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비판이 거세지면 ‘앞으로 잘하겠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19일 심윤조 새누리당 의원이 메르스 대응실패에 대해 묻자 “미비한 점이 있었다. 우려가 가라앉을 수 있도록 범정부적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메르스 대응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며 공격적으로 질의했으나 황 총리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더 알아보겠다’는 식의 답변도 이어졌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24일 정부의 메르스 관련 정부 보도자료에서 ‘공기감염’이 삭제된 부분 등에 대해 지적하자 “자세한 경위는 알아봐야겠다”고 답했다.
여야 간 쟁점이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원칙적인 입장만 반복했다.
황 총리는 총리 청문회에서도 많은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료에 접근이 가능한지 검토해야 한다” “지금은 기억할 수 없으니 자료를 찾아봐야한다”며 민감한 의혹들에 대해 즉답을 피했다.
특유의 저음으로 원칙적인 말을 반복하는 황교안 총리의 모습은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까지 하며 적극적인 해명을 하는 이완구 전 총리의 모습과 대비된다. 언성을 높이며 의원들을 향해 “사실관계를 알고 이야기하라”고 충고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모습과도 다르다. 정부의 무능을 드러내고 각을 세워야하는 야당 의원들 입장에서 황 총리 같은 스타일이 상대하기 가장 힘든 스타일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야당 입장에서 이런 스타일의 총리와 각을 세우려면 구체적인 ‘팩트’를 토대로 공세를 가하는 수밖에 없다. 대정부질의
내내 차분한 저음으로 답변하던 황 총리가 ‘발끈’한 순간이 있었다. 황 총리는 24일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 특별사면 의혹을
언급하며 변호사단체로부터 고발당한 사실을 거론하자 “고발은 잘못하면 무고가 된다. 신중히 해야 할 일을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
아닌가”라고 반박했다.
황 총리는 5.24 조치 해제, 대북지원에 대해 묻는 야당 의원들에게 “공감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앞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다”고 밝혔고, 사드 배치에 대해서는 “안보와 국익 측면에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황 총리의 이런 대응태도는 예견된 일이다. 황 총리는 법무부장관 시절에도 대정부질의,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국정감사 등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찰, 통합진보당 해산 등 민감한 사안들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공세에 시달렸으나 그 때마다 “검찰이 수사 중이다” “법에 따라했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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