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은 왜 이리 다를까
의원시절 국정원 정치관여 통제 법안 발의, 대통령 되자 침묵… 무상보육법도 박근혜 의원 발의
국회법 개정안 논란을 두고 ‘의원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가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의원 시절 지금의 국회법 개정안보다 ‘더 센’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새정치민주연합은 ‘박근혜법’ 발의를 추진 중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98년 발의명단에 이름을 올린 국회법 개정안을 그대로 제출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법안은 정부에 시행령 시정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으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국회법 개정안보다 더 강한 법이다. 현재 국회법 개정안에는 강제성이 없다.
이처럼 박 대통령이 자신이 발의했던 법안의 내용과 다른 주장을 한 사례는 또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겨냥한 발언으로 인해 묻히긴 했지만,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 사업’이 대표 사례다.
공약이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 대통령 되더니 ‘당략적인 것’
박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여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특별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한 것을 일컬어 ‘당략적인 것을 빅딜하고 통과시키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개정안은 오는 9월 개관할 아시아문화전당을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두되 일부 기능만 민간 위탁한다는 내용이다. 민간에 전부 위탁하겠다는 정부의 개정법안을 절충한 결과물이다.
박 대통령은 “이렇게 통과시킨 법안들은 국민들의 민생과 삶에 직결되는 삶도 아니고, 국민세금만 가중시키는 것들”이라며 “매년 800억 이상의 운영비를 지원하는 아시아문화전당같이 자신들이 급하게 생각하는 것은 적극적으로 빅딜을 해서 통과시키면서 민생과 일자리창출 법안은 몇 회기에 걸쳐서도 통과시켜 주지 않는 것은 경제 살리기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 25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
그러나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은 박 대통령의 공약이다. 제18대 대통령선거 새누리당 정책공약 시·도 공약집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및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창조적 문화콘텐츠를 활성화할 수 있는 인프라를 지원하겠다”고 나와 있다. 박 대통령은 의원시절이던 2006년 아시아문화전당을 문화부장관소속 하에 둔다는 내용의 2006년 아시아특별법최초개정안에도 찬성 투표했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2008년 의원시절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공동발의 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의원 대표발의) 개정안의 내용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중요정책 결정의 신속성을 제고하고 부처 중심의 책임행정을 구현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회를 폐지하고 문화부장관이 그 기능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비록 이 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진 못했지만, 박 대통령이 의원시절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던 박 대통령이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을 ‘당리당략적 사업’으로 규정하고 비난한 것이다.
‘무상보육’법 발의한 박근혜 의원, 지금은?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회를 비난하며 “정작 시급한 영유아보육법은 2월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연계법안만 처리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도 영유아보육법을 발의한 적이 있다.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이 2012년 5월 30일 대표발의한 ‘영유아보육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박근혜 의원의 이름도 올라가 있다.
이 법안의 내용은 ‘무상보육’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무상보육의 대상을 ‘기초생활수급자와 일정 소득 이하 가구 자녀’로 제한한 구절을 삭제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보육에 필요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고 문구를 넣었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는 비용은 표준보육비용을 기준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이 예산의 범위에서 관계 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정한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도 있다. 이 법은 같은 내용을 담은 법이 마련돼 폐기됐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는 각종 시행령을 만들어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예산을 지방정부와 지역 교육청에 떠넘기고 있다. 관련 예산을 우선 편성하지 않으면 다음해 예산을 삭감하는 취지의 시행령까지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정부가 예산이 없다고 아우성을 치면서 무상보육이 표류를 반복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발의했던 법의 내용, 무상보육 실현과 ‘예산은 관계 행정기관과 협의한다’는 원칙은 온데간데없다.
‘국정원 정치관여 신고’ 법안 발의한 박근혜 의원, 이 법만 통과됐어도…
2005년 발의된 국가정보원법, 국가정보원법 일부개정안에서도 ‘두 얼굴의 박근혜’가 보인다. 김정훈 한나라당 의원은 2005년 8월 17일 ‘국가정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을 막기 위한 법으로 알려졌으나, 법안에는 정치관여의 금지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법안은 “누구든지 원장‧차장 및 그 밖의 직원이 이 법의 규정에 따른 정치관여의 금지, 직권남용의 금지 또는 도청의 금지 또는 도청의 금지 등을 위반하는 것을 알게 된 때에는 이를 신고할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또한 신고자에게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1억 원 이상 20억 원의 범위 안에서 포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도 있다.
같은 날 김정훈 의원은 국가정보원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발의했다. 국가정보원 17조 ‘비밀엄수’ 조항 바로 밑에 ‘비밀엄수의 예외’ 조항을 신설하는 것이 골자다. 정치관여의 금지, 직권남용의 금지, 도청 금지를 위반 사항에 대해 신고하는 경우 징계처분 혹은 처벌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 두 개의 법안 모두에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이 올라가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됐더라면 국정원 대선개입은 내부고발을 통해 알려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17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됐다. 현재 국회법 개정안도 임기만료 뒤 자동폐기 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이후인 2014년이 되어서야 상부에서 정치관여 행위를 지시할 경우 직원이 이의제기 혹은 집행 거부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경우 ‘비밀엄수 의무’의 예외에 해당한다는 내용, 신고자가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 등이 국가정보원법 안에 신설됐다.
이처럼 박 대통령은 의원 시절 국정원의 정치관여를 신고하도록 독려하는 법안을 내놓았음에도, 정작 자신이 국정원 정치관여의 대상이 되자 침묵을 지켰다. 박 대통령은 2013년 10월 31일이 돼서야 “국민들께 정확히 밝히고 책임을 물을 것이 있다면 물을 것”이라고 첫 입장을 밝혔다. 정치공방이 이어지던 몇 개월 동안 침묵하다 뒤늦게 입장을 밝힌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집역 3년을 선고받았을 때도 박 대통령은 침묵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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