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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곧 무너질 것처럼… 망명설 보도 쏟아지는 이유는

북한 곧 무너질 것처럼… 망명설 보도 쏟아지는 이유는
[비평] 정부는 “사실 아니다”, 기자들도 “기사 안 된다”는데 확인 안 된 '단독' 기사 남발

최근 언론을 통해 북한 고위인사들의 ‘망명설’이 대거 보도되고 있다. 몇몇 언론은 단독보도를 통해 고위급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평양 엑소더스(대탈출)’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나 정작 정부당국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런 확인 안 된 보도가 남북관계는 물론 북한 주민들의 안전까지 위협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일자 조선일보 1면 톱기사 제목은 <北장성‧해외간부 100여명 최근 亡命>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북한 김정은 정권의 공포정치가 계속되면서 신변에 위협을 느낀 당‧정‧군 간부들의 탈북과 망명이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1일 알려졌다”며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빌려 중국과 동남아 등에 파견된 북한 간부와 외화벌이 일꾼 등 10여명이 망명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또한 김정은의 비자금을 담당하는 노동당 39호실 중견급 간부, 북한군 고위장성, 김정은의 해외 비자금 담당하는 조선대은행 간부,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간부 등이 망명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 7월 2일자 조선일보 1면
 

이 보도를 시작으로 언론에서 북한 고위급 인사 망명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조선일보에 익명으로 등장한 인사들의 실명이 거론된다. 채널A는 4일 “남북 국방장관회담에서 북측 차석대표로 참석했던 고위 장성이 탈북해 한국에 온 것으로 확인됐다”고 단독 보도했다. 마식령스키장 건설의 총책임자인 박승원 인민군 상장(별 세 개)이다. 채널A는 “지난 4월 모스크바의 제3국 대사관으로 망명했고 현재 우리 정부에 인계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인터넷매체 아시아엔은 6일 “러시아를 통해 망명한 북한 인민군 박승원 상장이 한국에 도착 후 정보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6일 알려졌다”며 박승원 상장의 망명설에 힘을 더했다.

채널A는 박승원 망명설을 보도한 데 이어 4일 “김정은의 금고지기와 당 간부 등의 망명도 잇따르고 있다”며 노동당 39호실 부부장급 이모씨와 다른 인사 2명,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과 대외경제위원회 국장급을 지낸 70대 인사 등의 망명 소식을 ‘단독’으로 전했다. 

  
▲ 7월 4일자 채널A뉴스 갈무리
 

노동당 39호실 인사들의 망명 소식은 YTN의 ‘단독’보도이기도 했다. YTN은 4일 채널A와 같은 소식을 단독 보도로 전했다. YTN은 6일 “북한의 군수경제 전반을 관할하는 제2경제위원회 고위급 인사 등이 국내로 망명한 것으로 전해졌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러한 단독보도의 출처는 ‘대북 소식통’이다.

그러나 정작 정부 당국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통일부 당국자들은 9일 출입 기자들에게 박승원 상장 등의 망명설에 대해 “별을 단 장성급은 망명 사실이 확인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안다. 주목할 만한 거물급의 망명도 확인된 바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 통일부 출입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최근 몇몇 언론에 나오는 망명설은 신빙성이 없다고 본다. 통일부에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며 “통일부 기자들 몇몇이 모여서 ‘이거 기사가 안 되는데 언론이 자꾸 쓴다’는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는 8일 칼럼 <망명과 망령 사이>에서 “핵심 당국자는 ‘김관진 안보실장도 망명설이 자꾸 나오는데 어찌된 거냐며 보좌진에게 물었다더라’고 귀띔했다”며 “망연자실이다. 대통령에게 대북 상황을 직보하는 당국자도 모르는 고위 탈북망명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북한 고위인사 망명설의 결론은 북한이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언론은 망명설을 전하며 이 같은 사실을 부각시키고 있다. “체제 운영의 두 축인 인력과 자본 유출로 정권 안정성이 흔들리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8일자 국민일보) “고위층 인사들의 탈북 행렬이 이어지면서 북한 내부 붕괴가 가속화될 것”(4일자 채널A) “잇단 고위급 간부 탈북설, 평양 엑소더스 예고?”(8일자 TV조선)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 인사들의 망명을 북한 체제의 불안정성으로 해석하는 보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정 실장은 “북한에서 장성급이나 원스타 등 고위인사가 오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 중간급 간부가 망명하는 일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며 “김정은의 공포정치로 과거보다 늘어난 것 같기는 하지만 북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황장엽이라는 거물이 넘어왔어도 북한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 7월 4일자 YTN뉴스 갈무리
 

확인 안 된 ‘망명설’ 보도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일부는 최근 북한 가뭄을 지원할 대책을 준비 중이었다. 통일부 출입기자들은 통일부 내부에서 ‘북한 가뭄을 계기로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했는데 망명설 보도로 틀어질 것 같다’는 불편한 기류가 있다고 전했다. 이희호 여사 방북도 예정돼 있었다.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이런 보도가 많아지면 정부 당국자들과 국민들 사이에서 북한하고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금방 무너질 것이므로) 대화무용론이 퍼진다”며 “그럼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대화가 아닌 핵무기나 미사일 개발에 집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망명설’ 보도는 남북관계는 물론 북한 주민들의 인권도 위협한다. 정 실장은 “망명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보도가 쏟아지면 북한으로서는 감시망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며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을 악화시키는 사태를 가져온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