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안철수 끌어들이는 진짜 이유는
‘정치쟁점화 안 된다’더니 ‘현장검증 빨리하자’고 압박… “증거인멸하고 눈속임 의도, 자료 제출이 우선”
국정원 해킹 사건에 대해 며칠 간 침묵으로 일관하던 새누리당이 역공에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의 제안은 크게 두 가지, ‘빨리 현장검증하자’와 ‘안철수가 정보위로 들어와라’ 두 가지이다. 이러한 제안에는 이번 사안을 축소시키고, 빨리 정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국정원 해킹 사안과 관련된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가 있었던 지난 15일 여야 정보위 간사는 국정원을 현장방문하겠다는 계획을 세웠고, 17일 현장방문에 합의했다. 여야 정보위 간사는 20일 열린 2+2 회동에서도 현장방문에 대해 논의한다.
사건 초기 여당의 입장은 ‘정치쟁점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인제 최고위원이나 김정훈 정책위의장 등은 16일까지 만 해도 “정치쟁점화 하지 말라”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같은 날 신의진 새누리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의혹만으로 국정혼란을 부추기는 것은 제 1야당이 할 일이 결코 아니다.”고 밝혔다.
이러한 입장은 이후 ‘현장검증을 빨리하자’는 공세로 전환됐다. 정보위 간사인 이철우 새누리당 의원은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신경민 간사에게 ‘의혹이 너무 많이 부풀려져 오늘이라도 하자’ 이렇게 말하니 거기에서는 준비가 덜되었다고 미루고 있는 형편”이라며 “같이 가자고 하는데 자꾸 미루고 있으니 안보장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계속 독촉을 해보겠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 임모씨가 유서를 남긴 채 사망한 이후에도 새누리당은 ‘빨리 현장검증하자’는 입장을 고수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실관계 파악을 위한 국정원 현장조사와 일정 등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들을 신속히 확정해서 의혹을 낱낱이 규명하고, 국정원이 본연의 업무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같은 날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국정원 현장방문은 사실확인을 위한 기초단계”라고 밝혔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국정원 해킹 의혹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현장검증이라는 방식을 통해 매듭지으려는 의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반면 야당은 진상이 어느 정도 규명된 이후에 현장방문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언주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19일 서면브리핑에서 “국정원과 여당은, 국정원 현장방문으로 이번 사건을 어물쩍 넘어가려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진 후 현장방문을 해도 늦지 않다. 현장방문은 이번 사건의 진상을 규명과정의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야당이 ‘선 진상규명 후 현장방문’을 주장하는 이유는 국내사찰용으로 의심되는 내용들이 나오지 않는 한 현장검증은 무의미하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보안전문가 안철수 의원까지 앞세워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를 구성하고 공세를 이어가는데, 확실한 증거가 없이 현장방문을 할 경우 자칫 현장방문 이후 해킹 사건이 진상규명 없이 끝나버릴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는 국정원 직원 임씨의 유서까지 나온 상황이다.
유서에는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 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는 내용까지 있다. 현장검증을 앞두고 사찰 의혹을 밝힐 자료들이 이미 삭제됐다고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은혜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19일 현안브리핑에서 “국정원은 삭제된 자료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삭제했는지 밝혀야 한다”며 “의혹을 검증할 수 있는 증거를 인멸해놓고 현장방문 손짓을 하는 건 얄팍한 눈속임으로 국회와 국민을 속여 보겠다는 것 아닌가. 현장조사는 보조적 수단이며, 국정원의 자료제출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삭제된 자료들을 100% 복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야당 입장에서는 그것도 믿을 수 없다. (관련 기사 : <숨진 국정원 직원, 현장검증 앞두고 자료 삭제했다>
현장검증의 각론도 합의되지 못했다. 여야는 국정원 방문시 민간인 전문가를 동행할지 여부 등을 두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민간인 전문가 대신 안철수 의원이 정보위로 들어와 국정원에 현장방문을 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조원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17일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회동에서 “안철수 의원이 정보위로 보임해 현장을 직접 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20일 “안철수 의원은 이번 국정원 해킹 의혹에 대해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려면 정보위로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15일 안철수 의원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정보위에 들어갈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내의 위원회가 꾸려지면 위원회 차원에서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을 검토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새정치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철수 의원에게 정보위에 들어오라는 제안은 곧 이 문제를 정보위 차원에서 축소해서 다루라는 제안이나 다름없다. 안 의원은 “국민의 인권과 관련된 문제이니 만큼 여당도 함께하는 국회차원의 특위 구성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상황이다.
안철수 의원 측의 한 관계자는 “정보위 차원에서 정리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번 해킹 사건에 대해 여야 같이 특위구성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일각에선 특검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인데 정보위 안에서 해킹 사건을 정리하겠다는 것”이라며 “(새누리당 입장에서) 의혹에 대해 아무것도 안 할 수 없는 입장이니,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안 의원이 정보위로 와서 역할을 해라’ 정도인 것 같다”고 밝혔다.
정보위 소속 박민식 새누리당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특위다, 국정조사다, 시간 끌지 말고 국정원에 같이 가자”는 글을 남겼다. 야당 내 최고 전문가인 안 의원의 현장방문을 통해 이 의혹을 마무리 짓겠다는 모습이다.
안철수 의원 측 관계자는 “안 의원이 정보위에 들어가면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것 등 여러 가지 제한을 받게 되고, 사안을
확대하기가 어렵다.”며 “현재로선 정보위 보임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 상임위가 아니라 특별위원회 차원에서 다뤄야하는 사안이라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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