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받지 않는 권력, 국정원은 존재 자체가 위헌”
[인터뷰]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안보 명분으로 통제 벗어날 순 없어”
국정원 해킹 사건은 국가가 첨단기술을 이용해 개인을 어디까지 감시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국내 사찰용으로 사용했다는 정황이 계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보안전문가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번 사안을 “국민의 정보인권 문제”로 규정했다. 국가기관이 불법적으로 국민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은 인권침해인 동시에 민주주의에도 어긋난다는 것. 미디어오늘은 21일 헌법학자로 정보인권 문제에 천착해 온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나 이번 해킹 사건이 정보인권 차원에서, 또 헌법의 차원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물었다.
한상희 교수는 이번 사건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헌법유린 행위라는 시각에 동의했다. 한 교수는 “개인정보를 함부로 들여다본 것이니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했으며, 권력을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정책을 만들어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며 “국가가 법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는 법치주의도 무시했다. 국정원의 행위는 헌법 제1조부터 마지막 조항까지 총체적으로 위협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국정원은 국정 책임자의 자문 역할이나 정보수집의 역할을 넘어서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이었다. 헌법에 의하면 국가권력은 항상 투명하고 국민이 견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정원은 이 모든 원칙에서 예외”라며 “헌법이 잘 알지 못하는 방법에 의해 국가권력이 행사되고 인권과 민주주의를 침해하기에 대한민국 국정원은 존재 자체가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에서 불법으로 의심되는 국정원의 행위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나테크가 허가 없이 해킹프로그램 구매하고 국정원이 이를 신고하지 않은 것은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제10조 위반의 소지가 크다. 국정원은 이 과정에서 국회 보고, 법원의 허가, 대통령 승인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국회 정보위 새누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은 “4개월에 한 번씩 대통령의 허가를 받는다”며 법적으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상희 교수는 “허가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반박했다.
한 교수는 “감청이나 해킹을 할 때는 어떤 혐의가 있기에 누구를 상대로 언제 무엇을 대상으로 하겠다는 식으로 그 때 그 때 사건별로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한다. 주기적으로 형식적인 승인만 받은 것은 승인을 안 받은 것과 같다”며 “국정원이 감청 시 대통령 승인을 받는 이유는 대통령이 국정원을 통제하기 위함인데, 이런 식이면 통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국정원을 옹호하기에 바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가 안위를 위해 해킹할 필요가 있으면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황교안 국무총리는 “안보와 고유 업무를 통해 해킹 프로그램 구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국정원이 오히려 국가안보를 해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 교수는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것 정도를 국가안보라 부르지 않는다”며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선언하는 국헌 수호가 국가안보의 핵심 의무이자 내용이며, 국가를 지킨다는 것은 헌법과 법질서를 지킨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이어 “해킹할 필요가 있으면 해킹을 해야 하고 그런 이유로 법은 해킹을 허락한다. 다만 해킹을 위한 절차를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국정원은 이를 어긴 것”이라며 “국정원이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모든 법의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은 개인의 정보인권을 침해한 사건이기도 하다. 한 교수는 “정보인권은 개인정보자기통제권과 사생활의 비밀 두 가지를 기본 축으로 하고, 인격권 등도 이에 포함된다”며 “이번 사건은 내가 모르게 개인정보가 빠져나갔다는 점에서 개인정보자기통제권, 사생활을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사생활의 비밀을 위협한다. 그로 인해 부끄러운 치부가 국가기관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인격권 침해 요소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국가는 개인정보를 마음대로 수집함으로써 개인을 통제할 수 있다. 이는 민주주의에도 위협”이라며 CCTV를 예로 들었다. 그는 “민원실에 CCTV가 설치되면 거기서 난동을 부릴 수 없게 되고, 집창촌에 CCTV를 설치하면 사람들이 그곳을 꺼린다”며 “그 행동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 감시는 개인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국정원의 불법감청은 국민들이 권력자를 비판하는 행위를 꺼리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큰 문제는 당사자가 인권침해 여부를 알 수 없다는 것. 한 교수는 “한국의 감청 제도의 문제점”이라며 “감청을 했을 때 기소하거나 불기소하면 당사자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아무런 처분을 안 하면 안 알려줘도 된다. 법의 맹점인데, 불법사찰은 오죽 하겠나”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어떤 혐의로 인해, 나의 행동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감시됐는지 알아야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불법사찰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나의 생활 전체가 감시대상이 되니 극도의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헌법에 따르면 국가가 이렇게 개인 생활에 깊숙이 개입하는 일은 삼가야한다. 근대국가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불법사찰 외에도 우리 주변에는 일상적인 정보인권 침해가 만연하다. 직장에서 스마트폰 위치추적을 당하거나 특정 앱을 깔아 노동자를 감시하는 것 모두 정보인권 침해다. 한 교수는 “휴대폰을 살 때 반드시 주민등록번호를 제출해야 한다. 통신사가 신분 확인해주는 기관이 될 정도”라며 “이 주민번호는 나의 모든 통신내역을 국가나 제3자가 들여다볼 수 있는 틀과 같다”고 지적했다.
국가권력보다 더 무서운 정보인권 침해자는 ‘기업’이다. 통신사에 모든 고객의 개인정보가 모이고, 인터넷 사이트 하나 가입할 때도 온갖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한 교수는 “정보감시는 보통 국가의 국민 감시, 사용자의 노동자 감시, 상품생산자의 소비자 감시 등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지금까지 사회적 문제가 안 된 것은 소비자 감시인데, 사실 가장 심각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 <기업과 국가권력이 협력하면? ‘감시사회’ 온다>
한 교수는 “강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추첨해서 사은품을 주겠다는 식으로 개인정보를 다 가져간다. 국가는 주민번호 수집만 통제하는 것 빼고는 이런 개인정보 수집에 아무런 통제도 가하지 않는다”며 “이렇게 수집된 정보들이 빅 데이터와 결합하면서 국민들 생활을 하나하나 감시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 상점의 마네킹에는 카메라가 달리고, 그 카메라는 고객의 얼굴을 인식해 정보를 수집한다. 이 데이터를 토대로 특정 시간에 특정고객이 좋아할 만한 상품광고를 내보낸다. 한 교수는 “내가 가방에 관심이 많다면 컴퓨터 사러갔다가 가방을 살 수도 있다. 개인의 구매 패턴을 바꿔버리는 것으로, 더 나아가면 일상까지 통제될 수 있다”며 “국가의 감시는 법, 국회, 선거를 통해 벗어날 수 있는 틀이 있는데 소비자 감시는 현재로선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개인정보를 수집한 기업과 국가권력이 상시적으로 협력할 경우 “전체주의 사회로 넘어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교수는 또한 정보 수집을 바탕으로 한 ‘빅데이터 정치’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교수는 “서울시가 빅데이터를 이용해 심야버스노선을 만들었는데, 최대다수에 속하지 않는 이들은 버스 서비스로부터 소외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른다는 점에서 빅 데이터가 민주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소수자들을 보호할 장치가 없다”며 “이런 빅
데이터가 국가권력에 의해 이용되면 다수의 의지를 권력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나가며 다른 말 하는 사람들을 소외시킬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한 교수는 감시사회를 막기 위해 정보를 독점한 국가권력을 분산시키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국가권력부터 정보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분산시켜야 한다. 이런 국가권력을 바탕으로 소비자 감시를 통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한 교수는 “소비자들이 기업의 정보인권 침해에 저항하고 싶어도 포털이나 카톡의 독점력이 너무 강하다보니 응징할 수가 없고, 소비자들의 편익이 매우 크다. 카톡은 택시까지 잡아주지 않나”라며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의 권력이 너무나 불균형한 상태로, 이를 바로잡으려면 국가가 제 역할을 하는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카톡이나 포탈에 이야기하기보다 국회와 정치인을 향해 요구해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인 새누리당은 오히려 정보감시를 강화하는 통비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국가안보나 범죄수사를 위해 국정원 등 수사기관이 감청을 요구할 경우 이동통신사가 협조하고 이통사에 감청장비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여당 내에서는 통비법이 완비되지 않아 국정원이 이런 불법해킹 방식을 썼다는 주장도 나온다.
관련 기사 : <통신 사업자에 감청설비 의무화? ‘빅브라더’ 3법 논란>
한 교수는 이에 대해 “국정원은 역사적으로 법의 감시와 견제를 벗어나려고 해왔다. 여당 말대로 감청을 폭넓게 인정해줘도 계속 그 틀을 벗어나려 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통비법 정비는 국정원의 권한 오남용의 근거를 넓혀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정보사회에서 정보인권은 중요한 문제지만 많은 이들이 ‘나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국정원 해킹 사건이 터져도 대다수가 ‘나 같은 사람을 국정원이 왜 감시 하겠어’라고 생각한다. 한 교수는 “국정원이 내 휴대폰을 감시하지 않겠지만 누군가는 감시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은 6000원 밖에 안 되는 것일지 모른다”며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국가에게 촛불시위 등 각종 대중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 교수는 “국회의원에게 요구해서 좋은 법을 통과시키기로 했는데 그 의원이 국정원의 감시대상이라서 약점이 잡혀있고, 그래서 강하게 그 법을 주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해보자. 감시사회는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며 “국가기관이 특정인을 감시한다는 것은 그 체제에 대한 비판을 막는다는 뜻이며 이로 인해 그 체제의 권력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 권력은 이를 이용해 특정 계층의 이권만 보장하고, 이로 인한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온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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