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 각오, 단호한 응징” 전쟁 부추기는 언론 |
[비평] 응징으로 도발 막는다? 전쟁 불사하자는 위험천만한 주장… "끌려다니는 악순환 끝내야" |
‘지뢰 도발’로 불거진 남북 간의 갈등이 포 사격으로까지 이어졌다. 21일 대다수 언론이 남북 간 포 사격을 주요 이슈로 다뤘다. 이 중 몇몇 언론은 우리 군보다 더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20일 오후 북한이 오후 연천 일대 휴전선 서부전선에 고사포탄과 직사포탄 수발을 쏘는 ‘화력도발’을 감행했다. 우리군은 자주포 29발의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북한은 지뢰도발 이후 우리 군이 설치한 대북 확성기를 문제 삼았고, 결국 포 사격까지 했다. 하지만 북한군이 전통문을 보내 48시간 내에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을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황이라 갈등이 더 격화될 가능성도 있다.
양측이 포 사격을 주고받았으나 다행히 양측에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럼에도 언론은 과하게 흥분하고 있다.
보수언론은 우리 군이 ‘원점 타격’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우리 군은 북한의 고사포 및 직사포 도발에 대해 K-55
자주포 155mm 포탄 29발로 대응사격하면서 도발 원점을 파악해 타격한 것이 아니라 DMZ 내 북측 지역을 포격했다. 우리
피해도 없었고, 원점에 대한 제대로 된 파악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동아일보는 사설에 서 “우리 군은 첫 번째 도발 뒤 1시간 정도 지나 대응사격에 나섰다. 북측의 사격지점 파악에 시간이 걸렸다지만, ‘도발 원점까지 응징한다’는 다짐과는 거리가 있다”며 “국군통수권자가 결연해야 군도 북한의 도발을 철저하게 응징해 국가를 지킬 수 있다. 지금까지 북의 도발에 제때 제대로 응징을 하지 못해 북한이 남한을 우습게보도록 만든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3면 기사 <71분 지나 대응포격…원점타격도 없었다> 에서 “군 수뇌부는 그동안 ‘북한이 도발할 경우 주저함없이 과감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라’고 예하 부대에 지시해왔는데 이와 거리가 있는 대응이 아니냐”며 “북한의 추가도발을 예방하기 위해선 원점 타격 등 더 단호한 대응을 해야했다”는 군 일각의 지적을 전했다.
‘원점 타격’ ‘철저한 응징’이 추가 도발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은 보수언론의 희망사항이다. 우리 측이 피해를 입지 않은 상황에서 원점 타격을 실시할 경우 북한이 이를 이유로 추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은 우리 군의 대응사격에 다시 대응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 군이 북한군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추가 대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명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 언론은 전쟁도 불사하자는 식의 제안을 서슴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사설에 서 “우리 군사적 능력은 모자라지 않다. 부족한 것은 결의와 인내심”이라며 “우리 국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만큼은 북에 끌려 다니는 악순환을 끝내겠다고 결심하고 불편과 희생을 각오한다면 북의 도발 습성은 여기서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고 밝혔다. 전쟁도 각오해야한다는 말로 들린다.
▲ 조선일보 31면 | ||
세계일보의 표현은 더 거칠다. 세계일보는 사설에서 “추가 도발을 하면 김정은체제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며 “우리 군은 휴전선 전역에 걸쳐 한 발의 포탄이 떨어져도 원점을 초토화한다는 각오로 응징 태세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3면 기사에 서 “우리 군은 대응 사격에 나서는 데 1시간 이상이나 걸려 북한군에 어떤 인적, 물적 피해도 입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살 수 있는 대목”이라고 비판했다. 우리 군이 피해를 입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군에 인적, 물적 피해라도 입혔어야 한다는 걸까. 그러면 북한이 가만 있었을까.
북한군은 대북 확성기를 끄라고 하면서 확성기를 타격한 게 아니라 야산에 포탄을 쐈고 우리 군도 원점을 타격하는 대신 DMZ 내 북측지역을 타격했다. 남북 양 측이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경향신문은 “겉으로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한 듯했지만 서로가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인명 또는 물적 피해는 입히지 않는 방식으로 퇴로는 열어놓았다”고 해석했다. 언론이 양국 군대보다 더 흥분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명의의 다른 전통문에서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 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대화의 길은 아직 열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이를 “전형적인 화전 양면전술”(동아일보)“이라 규정했다.
북한의 화력도발을 둘러싼 언론보도에서 주목할 점은 조선‧동아와 중앙의 논조차이다. 중앙일보는 사설에 서 “테러집단에나 어울리는 추악한 범죄행위”라며 북한을 비판하면서도 “우리는 끝까지 침착함을 유지하고 단호하되 냉정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일보는 “북한의 공격이 목표물인 확성기를 맞히지 못한 것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행동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우리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시위성 공격”이라고 해석했다.
중앙일보는 또한 “남한 역시 흡수통일을 하지 않는다는 선언 등 북한 정권을 안심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점 타격을 해야 추가도발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논조와는 확연히 차이가 있다.
진보언론으로 분류되는 경향과 한겨레도 논조 차이를 보였다. 경향은 사설에 서 “보름 전 지뢰 도발 때는 젊은 장병 두 명이 크게 다치고도 우리 군은 우왕좌왕 하느라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이번에는 비교적 침착하게 대응했다”며 군의 대응을 칭찬했다. 또한 “누구에게 이롭자고 북한이 이런 무모한 행위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며 북한을 강하게 비판했다.
반면 한겨레는 사설에 서 “그냥 넘길 수 없는 도발”이라고 북한을 비판하면서도 “작은 충돌들이 심각한 교전으로 확산될 수 있다. 신속하지 못한 대응도 문제지만 과잉 대응은 더 큰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며 우리 군의 대응사격이 적절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 한겨레 31면 | ||
나아가 한겨레는 “북쪽의 요구에 무조건 응할 이유는 없지만 갈등 고조가 확실한 확성기 방송을 무작정 계속하는 것이 능사인지도 따져 봐야한다”며 확성기 방송을 멈추고 대화에 나서야한다는 점을 시사했다.
이번 화력도발에 대한 중앙일보와 경향신문의 논조는 거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북한 문제가 기존 언론의 좌우 진영을 새롭게 가로지르고 있다.
'나의 글 > 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당의 남북대치 해법, 대화라고? 정부에서 해라 (0) | 2015.08.23 |
---|---|
전쟁 부추기는 TV조선, ‘노무현-종북’ 편가르기도 (0) | 2015.08.23 |
한명숙 징역 2년 확정, 의원직 상실 (0) | 2015.08.23 |
"엠바고인 줄 알았으면 내려야지" (0) | 2015.08.23 |
“국정원이 국회 무시하면, 국정원 예산 깎아버려라” (0) | 2015.0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