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화가 최선, 감청설비 들고오면 막을 방법 있나”
[현장] ‘카톡 사찰’ 피해자들 카카오 항의방문… “비밀채팅 도입하니 금지법 만든다더라”
시민들이 검찰의 감청 영장(통신제한조치) 요청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카카오를 항의 방문했다. 카카오는 “기업 입장에서 불법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웠다”며 현행법이 바뀌어야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20일 오전 ‘사이버사찰 긴급행동 버스’가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카카오를 방문했다. ‘사이버사찰 긴급행동 버스’에는 진보네트워크, 인권운동사랑방,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정진우 전 노동당 대표와 같은 대화방에 있었다는 이유로 대화내역이 털린 시민들 30여명이 참가했다.
시민들이 버스를 타고 카카오를 방문한 이유는 검찰의 감청 영장에 응하겠다고 밝힌 카카오 측에 항의의 뜻을 전하고 카카오 측 관계자들과 면담하기 위해서였다. 오후 11시 반부터 1시 반까지, 2차례로 나눠 면담이 진행됐다.
카카오가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대목은 왜 갑자기 1년 만에 입장을 바꿨냐는 것이다. 1년 전 감청 논란이 일었을 때 이석우 당시 다음카카오 대표는 감청 영장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년 만에 입장이 뒤집혔다. 카카오는 “검찰에 협조하는 대신 프라이버시 침해를 최소화했다”는 입장이다.
감청 논란의 당사자였던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는 “카카오가 이용자보다는 정권이나 검찰, 정보기관을 더 무서워하는 것 같다. 작년 10월 수많은 이들이 사이버망명을 떠났을 때는 시민들을 두려워했으나 1년 만에 백기를 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봉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사무처장 역시 “법이 바뀐 게 없는데 갑자기 태도를 180도 바꿔서 영장에 응하겠다고 한다”며 “최근 김범수 의장의 해외도박 관련 보도가 나왔는데, 권력에 의해 협박을 받고 굴복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카카오 측 관계자는 “1년 전 검찰의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환영한다는 입장도 있었으나 국내기업이 법을 지키지 않는다, 위법행위라는 언론이나 국회의 지적도 적지 않게 받았다. 기업 입장에서는 불법 기업이라는 말은 부담일 뿐더러 중대범죄도 있는데 일괄적으로 감청 영장 요청을 거절하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도 있었다”며 “시민사회 및 다양한 전문가들의 논의를 가져가고자 노력했고, 작년 12월 인권위 토론회와 1월 언론법학회 토론회 등에 참석해 통신비밀보호법제의 개선방안이 없을지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가 감청 영장 요청에 응하는 대신 내놓은 프라이버시 침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이 익명화(블라인드) 조치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의 경우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을 익명으로 처리해 자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용의자 A에 대해 감청영장을 요청하면 A와 함께 대화한 사람들의 이름과 개인정보를 가려 수사 남용을 막겠다는 것이다.
과거 검찰이 정진우 전 노동당 부대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카카오톡 대화방에 있던 2300여명의 대화명과 전화번호까지 싹 쓸어갔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명 발전된 조치다.
관련 기사 : <익명화하면 괜찮아? 카톡방 털리는 건 그대로>
카카오 관계자는 “두 번의 토론회에서 익명화라도 해야 보호가 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거기서 고민이 시작됐다. 단순히 익명화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용자 개인정보를 제공하더라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뜻으로 국내기업 최초로 투명성 보고서도 냈다”며 “그래도 불안하다는 이용자들이 있을 수 있어서 ‘비밀채팅’ 기능도 도입했다. 비밀채팅은 압수수색, 통신제한조치, 패킷감청 등으로부터 안전한 것으로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카오 측은 감청 영장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기까지의 과정도 설명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검찰은 처음부터 열쇠공을 부르겠다고 했고 (카카오가) 감청 영장에 응하지 않아서 감청설비의무화법이 힘을 얻고 있다는 말까지 들렸다”고 밝혔다.
지난 2012년 대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상 ‘감청’을 그 대상이 되는 전기통신의 송·수신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경우라 규정했다. 카카오는 이미 서버에 수신된 내용을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상황이라 이를 감청이라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 카카오는 검찰의 감청 영장에 응할 이유가 없다. 감청을 할 수 있는 설비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이 일자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 등이 국내에 사업을 하는 인터넷 및 SNS 사업자에게 감청협조 설비 구비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감청설비의무화법’을 발의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감청설비를 의무화해야한다는 요구가 있었고 그 상황에서 어떤 방식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현명할까, 어떻게 해야 이용자를 보호할 수 있을지 고민을 지속하면서 검찰과 논의했다”며 “검찰은 익명화 조치에 대해서도 ‘말도 안 된다’ ‘그냥 법을 지켜라, (영장 요청에) 응해라’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못한다고 했고, 익명화 조치를 통해 프라이버시 침해를 줄이자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카카오 관계자는 또한 “어떤 의원은 (카카오가) 비밀채팅을 도입했다고 하니 비밀채팅도 공개하는 법을 만들겠다고 하더라”며 “이런 상황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 이용자 프라이버시와 정보인권을 지켜나가는 것이 책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석우 전 대표에 대한 세무조사, 김범수 의장의 원정도박 의혹에 대한 수사 등의 외압으로 정책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수사 때문에 준비한 건 아니다. 익명화 조치는 지난해 12월 토론회에서 논의가 나왔고, 상당히 오랫동안 준비하고 마련한
것”이라고 답했다.
카카오톡 ‘익명화’ 조치에도 한계가 있다.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수사과정에서 익명 처리한 사람 중 범죄 관련성이 있는 사람이 나올 경우에 한해 대상자를 특정해 추가로 전화번호를 요청할 수 있다. 관할 수사기관장의 승인을 받은 공문으로 요청하면 된다.
이에 대해 카카오 관계자는 “처음 보내온 영장에 적시한 기간 내에, 적시된 요구대상에 한해서 추가로 익명화를 풀어서 정보를 요청할 경우 응하는 것”이라며 “영장기간을 넘겼거나 처음 영장에서 요구하지 않는 내용을 공문 보냈다고 익명화를 풀어주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카카오 측은 이용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달라는 요구에 대해 현행법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을 취했다. 검찰의 감청 영장에 응하기로 입장을 바꾼 이유에 대해 카카오 관계자가 “아날로그 시대 법이라 디지털 시대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지적에 대해 고민이 있다. 법이 개정되길 바라지만, 그럼에도 법을 지켜야한다는 이야기도 많았다”고 설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사이버사찰 긴급행동 버스’ 참가자들은 자신의 정보가 빠져나갔음에도 이용자가 이를 알 수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통신비밀보호법상 비밀유지여부 때문에 이용자 통지는 어렵다”면서도 “프라이버시 관련 법 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하고, 이를 공론화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시민사회와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고 답했다.
카카오 측은 “영장 관행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영장이 남발되는 상황에 대한 부담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검찰이 영장에 ‘상대방 정보를 다 제공하라’는 식으로 포괄적으로 정보를 요구한다는 것.
카카오 관계자는 “‘기타’ 혹은 ‘등등’이라는 표현으로 대화 전체 내용을 달라고 적시한 영장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담당자들이 수사기관에 전화를 해서 포괄적 내용에 대해서는 일체 제공을 안 한다는 점을 일일이 설명하고 명시된 자료만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카카오에 요청하는 자료가 감청대상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상황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훈민 진보네트워크 변호사는 면담을 마치고 난 뒤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검찰이 왜 카카오가 영장 요청에 응해야하는지, 정확한 법리에 대해 말해줘야 한다. 그러나 적법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법리 검토는 없다”고 비판했다.
신 변호사는 “감청영장에 응하지 않는 것이 확실히 불법이었다면 검찰이 1년이나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카카오 역시 검찰
요청에 응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검찰의 요구가 위법한지 적법한지에 대한 입장이 없었다”며 “결국 수사기관의 요청은 다 들어주면서 법에
따른다는 식으로 비판은 피해가는 방식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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