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서술 교과서가 위험하다고…조선노동당 열병식 생중계는?
[인터뷰] 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경제성장과 민주화, 둘 다 써야 긍정사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오늘만 사는’ 것처럼 역사교과서를 밀어붙이고 있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친다” “역사교사 90%는 좌파로 변환” 등 색깔론까지 등장했다. 미디어오늘이 좌파 교과서로 낙인찍힌 ‘천재교육’ 역사교과서의 집필자인 신주백 연세대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를 만나 국정화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신 교수는 천재교육 교과서 중 가장 논란이 된 ‘한국전쟁 이후’ 부분을 집필했다.
- 정부여당은 기존 교과서가 좌편향 됐다고 한다.
“교과서에는 본문 말고도 하단의 읽기자료나 생각 넓히기 등이 있다. 본문 중심의 서술은 6차 교육과정까지의 교과서이고, 지금
교과서는 본문과 읽기자료, 사진자료가 어우러져야 한다. 이런 내용의 연계성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네들이 원하는 문장만 따서 인용하면
세상에 좌편향 아닐 교과서가 어딨나. 가위와 풀로 오려붙인 억지 비난이다”
- ‘김일성 주체사상’을 서술한 부분도 마찬가지인가
“소주제 제목이 ‘김일성 1인 체제’다. 그 아래 쓴 내용을 규정하는 제목이다. 그런데도 여기저기 ‘독재’라는 똑같은 표현을
반복하라는 건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교과서가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교과서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의 날 것으로 보여주면서 재평가를
하도록 교과서를 구성했다. 한국전쟁의 북한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하던데 남침이라고 분명히 썼다. 남침이라고 안
쓰면 교과서 검정에서 탈락이다”
- 교육부 지침에도 주체사상과 세습체제를 설명하라고 돼 있다.
“교육과정에 북한사회의 변화를 설명하라고 되어 있다. 주체사상에 대해 말하지 않고 북한 사회의 변화를 말할 수 있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하던 북한은 60년대 중반에 대외적 상황과 내부 권력이 변화하면서 주체사상을 택했고 이는 김일성 1인 권력이
강화되는 과정이었다”
- 어떤 새누리당 의원은 김일성 ‘독재’라는 표현이 없다고 비판하더라.
“한글의 기본 원리도 모르는 무지한 발언이다. 1인 체제, 유일체제, 독재 다 같은 말이다. 왜 굳이 독재라는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해야하나?”
- 교과서를 안 읽어본 걸까.
“여당 교과서 특위 위원들이라는 사람들이 교과서를 읽어봤는지 모르겠다. 정당의 대표라면 교과서를 제대로 읽어보고 말해야 한다.
두세 시간이면 8종의 북한 관련 부분을 다 읽을 수 있다. 어디에 찬양발언이 있고 칭송발언이 있나? 교과서는 지난 15년 간
논란거리였는데, 15년 간 교과서 집필진과 토론해보자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국민통합을 이유로 색깔 공격이나 했지 왜 다른
생각을 가졌는지 이야기해볼 생각을 안 한다.”
- 왜 북한은 국가수립, 대한민국은 정부수립이라고 쓰냐는 지적도 있다
“천재교육은 둘 다 정부수립이라고 썼다.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대해선 자료가 있다. 허나 북한 부분은 연구가 잘 안 됐다. 의도를
갖고 한 건 아니라 학문적인 상황이 초래한 결과다. 그것이 문제라면 객관적 실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논의를 하는 게 건설적이다”
- 미군은 직접통치, 소련은 간접통치했다고 썼다며 미군을 나쁘게 묘사했다고 하더라.
“정치학계와 역사학계에서 통용되는 팩트다. 간접통치 한다고 북한이 소련 눈 밖에 벗어나는 행동을 했을까? 아니다. 통치방식의
차이를 설명한 거다. 자신의 잣대로 모든 걸 다 해석하니 팩트를 말해도 뭔가 있는 듯이 잘못된 의도를 읽어내려 한다. 이런 걸
‘편견’이라 한다.”
- 교육부는 독재라는 말이 북한은 2번, 남한은 24번 나온다며 편향됐다고 하는데.
“현대사는 중단원이 5개~6개다. 이 중 북한은 한 단원이다. 분량이 적으니 표현이 적게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 교과서니까 한국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현대사는 남한 중심으로 한반도 역사를 서술한다.”
▲ 신주백 교수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 중 자신이 집필한 천재교육 교과서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사진=조윤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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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문제제기를 보면 국정화의 목표가 근현대사 축소인 것 같다.
“정부는 근현대사를 늘리는 방향으로 교육과정을 바꿔왔다. 현재를 사는 세대에 직접 영향을 미친 근현대사 중심의 교육이 더 도움이
된다는 거다. 미국, 일본, 중국 다 이런 방향이다. 근현대사 축소는 그간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국정교과서 ‘국사’가
(상)(하)로 나눠졌을 때도 (하)편이 근현대사였다”
- 논란이 많으니 아예 줄이자는 걸까.
“양은 줄일 수 있다. 문제는 어떤 내용요소를 넣고 뺄 것인가에서 발생한다. 앞으로 이와 관련해 논란이 있을 수박에 없다. 또한
내용을 축소하면 추상적인 설명을 할 수밖에 없고 교사가 교과서를 설명하기 위해 참고자료를 잔뜩 사용해야한다. 학생들 부담만 더
늘어난다. 아니면 EBS교재만 보고 수능준비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교육 강화인가”
- 교육부는 학생들이 미성숙해 북한 이야기가 나오는 교과서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그럼 앞으로 북한 관련 방송 하지 말라고 해라. 교과서보다 영상이 더 임팩트 있지 않나? 그런 논리면 조선노동당 열병식 생중계하는 방송들은 다 없애야지. 학생들이 스스로 비판적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못 믿는 것 같다.”
- 비슷한 논리구조인데, 교과서가 하나면 역사관이 통합될까.
“70년대 3차 교육과정 때 만든 국정교과서로 배운 사람들도 지금 다 다른 역사관을 갖고 있을 거다. 교과서가 하나가 되면 역사인식이 통일될까? 북한도 그렇게 못한다. 그랬으면 누가 탈북하나”
- 교육부의 또 다른 논리는 검인정 체제에서 집필진 권한이 막강하다는 것이다.
“2013년 교학사 교과서 나왔을 때 재검정에서 오류가 829건 나왔다. 필자들이 일부 오류 수정을 거부하자 교육부에서 ‘발행
정지’ 조치 취하겠다고 했다. 교과서 출판자체가 불가능해지는데 누가 그걸 감당할까?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하나 만들려면 편집자 두
명이 붙는다. 이 두 명의 월급, 필자들에게 주는 선인세, 검인정 신청본 인쇄 때 제작비용 등 선금으로 1억 이상이 들어간다.
검정 통과 여부에 편집자 운명이 걸린다. 교육과정을 절대로 위배할 수 없다. 일본은 합격이 전제된 검정제로 100종 중 많아야
5종만 탈락하지만 한국의 검정은 매우 엄격하다."
- 국정화 하면 역사에 국가가 개입할 여지가 더 커질까.
“국정에서는 국가 방침에 배치되는 교과서가 나올 수가 없다. 검정이면 학문적 소신에 따라 때려치고 계약금 반납하고 나와 버릴
수라도 있지. 국정제는 그렇게 안 된다. 집필자가 써도 연구위원, 심의위원이 수정할 수 있는 것이 국정제다.”
- 교과서 내용 말고 관점을 문제 삼는 시각도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권희영 교수는 기존 교과서가 ‘민중사관’을 따른다고 한다.
“그 분이 말하는 민중사관이 뭔지 잘 모르겠다. 만약 계급사관을 뜻한 것이었다면, 계급사관의 교과서는 검정을 절대 통과할 수 없다. 한국 근현대 교과서의 관점은 ‘국민이 어떻게 형성됐는가’이다."
- 그런 관점에서 ‘균형 잡힌 서술’을 하려면 어떻게 써야하나.
“근현대사 140여년을 서술하며 국민국가가 형성된 과정을 설명한다. 이를 부정하는 사건들이 있다. 외세의 침략, 친일, 북한의
남침, 분단 등등. 이런 부분은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고 반성하는 것도 교과서가 공유할 수 있는
지점이다.”
- ‘긍정’ 이야기하니 생각났다. 기존 교과서가 대한민국을 긍정하지 않는 ‘자학사관’인가.
“교과서는 경제성장과 민주화에 대해 다룬다. 둘 다를 써야 진정한 긍정사관이다. 2차 세계대전 때 독립한 국가 중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모두 이룬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충돌하고 보완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면 된다. ‘자학사관’
주장하는 이들은 경제성장을 부각시키고 민주화는 다루지 말라는 식이다. 되묻고 싶다. 우리가 북한보다 나은 점이 ‘경제력’
뿐인가?”
- 북한 이야기 나왔으니 묻고 싶다. 북한은 왜 국정교과서 채택했나.
“유일체제니 한 종의 교과서만 허락한다. 하나의 역사관만을 이야기하고, 수령과 수령 가족들의 행적이 곧 역사다. 이런
역사교육에서는 창조적 사고가 나올 수 없다. 탈북자들 이야기 들어보면 학교에서 김일성, 김정일 말씀 암기하고 낭송하는 교육을
받는다고 하더라. 이런 교육에서는 반대되는 생각은 물론이고 ‘다른 생각’이 나올 수 없다”
- 한국 교과서가 국민의 형성에 주목한다면 북한 교과서는 무엇에 대해 서술하나
“주체사상의 국가가 어떻게 형성됐는가다. 한국은 1876년 개항을 근대사의 시작으로, 1945년 8월 15일을 근대의 끝이자
현대사의 시작으로 본다. 북한은 반외세투쟁을 중시해 신미양요와 병인양요가 있던 1860년대가 근대사의 시작점이다.
1960년대까지는 한국처럼 45년이 현대사의 시작이었는데, 70년대부터 1926년을 현대사의 시작으로 보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그
해 ‘타도제국주의동맹’을 만들었다는 이유다. 물론 나는 26년에 그런 단체가 결성될 수 없다고 보지만, 어쨌든 주체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역사구분이 바뀌었다. 북한을 이해하기 위해 주체사상을 알아야하는 이유다”
▲ 북한의 중고교역사교과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원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습니다’로 시작한다. | ||
- 북한 국정교과서의 단점이 한국에서도 나타날까.
"입시제도 때문에 하나의 해석을 강요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정보가 통제된 사회고 우리는 미디어도 발달했고 교과서가 수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국정화의 ‘통제’ 효과는 대학입시 때문에만 가능한 셈이다“
- 그렇다면 국정교과서로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말은 착각일까
“70년대에도 못했다. 통합이 아니라 획일화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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