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교육부 보고서에서도 “이념논쟁 확산, 사고력 제한 우려”
‘TF팀’ 연구관이 참여한 보고서, “국가가 특정 역사관 옹호한다는 우려, 상당한 설득력 있어”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확정고시를 발표했음에도 국정화 반대 목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교육부의 연구용역보고서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보고서는 검정제의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검정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교육부는 ‘한국교원대학교 산학협력단’에 교과용도서 구분 고시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긴다. 문이과 통합형으로 교육과정이 개정됨에 따라 초중등학교 교과용도서를 국정, 검정, 인정도서로 구분하기 위한 정책연구다. 최근 논란이 된 교육부 ‘비밀TF팀’ 소속 유상범 연구관이 이 연구보고서의 연구협력관으로 참여했다.
이 보고서는 2014년 4월 30일~9월 30일 5개월간의 연구를 거쳐 탄생한 보고서로, 검정제를 채택한 일본, 인정제를
채택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자유발행제를 채택한 프랑스 사례를 연구한 뒤 국가발행제(국정화)와 검정제의 장단점을 분석한다.
“교과서 발행은 최근 검정제를 확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검정제 시행 이후 역사 교과서 내용과 관련된 상당한 논란이 벌어진 바 있는데, 그러한 논란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일각에서는 국가 발행제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며 “국가발행제와 검정제의 문제점을 각각 살피는 방식으로 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보고서 64페이지)
보고서는 국가발행제를 “국가가 단일종의 한국사 교과서를 발행하는 것”이라 규정한 뒤 국가발행제의 단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국가주의 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 지배층 위주의 서술이 많아질 우려가 있다 △과거 국가발행제 하에서는 교과서 심의위원회가 교육과정을 참조하지 않고 신축적으로 심의하는 등 교육과정의 수용정도가 낮았던 바 그러한 문제점이 재연될 수 있다. △교과서 내용이 최신 성과를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획일적인 교과용도서 체제로 현대사회의 다양한 가치 반영이 어려울 수 있다. △독창성 있는 교과용도서의 개발을 기대하기 어렵다.
보고서는 “‘독창성 있는 교과용도서의 개발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은 집필진이 여하히 구성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다. 따라서 반대의견으로는 설득력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특정 역사관을 국가가 옹호, 제시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실제로 국가발행제로 전환될 경우 집필진 구성에 따라서는 이른바 ‘이념논쟁’이 더 확산되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한 “교육과정은 그 개발, 구현, 피드백 과정 자체가 공공성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교육과정의 작성 및 구현(교과서 개발) 과정이 소수에게 집중될 경우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교육의 공공적 성격이 약화될 우려가 있는 바,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이 수립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국가발행제 찬성논리도 검토한다. △이념논쟁에서 벗어난 교과서가 필요하다 △국가의 정체성 확립과 국민 공통 교육 이념 추구가 우선시될 수 있는 과목이므로 국가가 주도하여 교과서를 개발해야 한다 △자원의 낭비와 출판사 간의 과다경쟁을 막을 수 있다 △검정교과서 내용의 분량과 수준이 너무 많거나 높아 학습 부담이 높으므로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교육 내용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등이 찬성 의견이다.
보고서는 “역사교과서가 ‘이념논쟁’에서 벗어나야 하며 객관적인 사실로 내용이 구성돼야 한다는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최근 국가발행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대개 기존 교과서 내용과 다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지행하고 있는 만큼 실제로 국가발행제가 도입된다고 했을 때 검정론자들 뿐만 아니라 국가 발행제 도입론자들까지 교과서 저술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며 “그러한 상황에서 교과서 내용이 어느 한 쪽의 시각으로 보아 문제가 있다고 보일 경우 지금과 유사한 사회적 논란이 다시 발생할 우려가 높다”고 경고한다.
▲ 교육부 정책연구과제 연구결과 보고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개발에 따른 교과용도서 구분고시 방안 연구’의 일부 발췌. | ||
역사학계에서는 국정교과서 집필에 편향된 역사관을 지닌 학자들만 대거 참여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은 상황인데, 보고서는 이러한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역사학자 90%는 좌파”라며 역사학자 대다수를 적대시하는 상황이기에 이러한 지적은 더욱 유효하다.
보고서는 검정교과서의 분량이 많고 수준이 높아 학습부담이 높으므로 국가가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대해 “상당 부분 타당하다”면서도 “집필상의 유의점에 분량 제한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도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보고서는 국정발행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첫째, 내용적 편향성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국정제가) 거론되고 있으나 오히려 기존의 이념논쟁이 더욱 확산되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특정 가치관과 역사관을 제시함으로써 역사적 사고력을 제한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보고서는 “공모 방식으로 국가 발행제 교과서 원고를 확보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며 “복수 원고를 공모의 형식으로 모아 그 중 3~4종을 발행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국정제를 한다면 폐해를 줄이기 위해 단일종을 개발하지 말고 공모형식으로 원고를 받아 3~4종의 국정교과서를 채택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과거 국가발행제의 사례를 돌아보면 교과서 저술에 세부 부문별 전문가의 광범위한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용상의 문제점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며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집필 과정에서 집필진 외에 검토, 심의진을 동시에 구성하고 참여 인원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정부가 앞장서서 ‘90% 역사학자가 좌파’ ‘99.9% 교과서가 편향됐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이런 방안은 요원해보인다.
이 보고서는 현행 검정제도가 내용의 오류, 편향성 문제 발생, 질 저하, 학생 부담 등의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각 단원별 서술의 범위와 내용이 현행보다 더 명확해야 한다는 점, 교육과정이 충실화되어야 하며 교과서의 내용 분량을 줄이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점 등 검정제도 개선 및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처럼 교육부의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대한 단점이 적시되어 있다는 점이 드러난 만큼 정부가 국정화를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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