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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총선, ‘국정화 저지’ 내걸면 이미 진 싸움

내년 총선, ‘국정화 저지’ 내걸면 이미 진 싸움

[뉴스분석] 불편한 진실, 투표율 감안하면 찬성 더 많아… 야당 전투력 한계, 새누리당 의제 물타기 가능성도

박근혜 정부가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고시 한 이후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총선 승리를 위해 총선의 핵심 의제로 국정교과서 반대를 내걸어야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새정치연합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은 5일 ‘프레임과 내년 총선, 그리고 대응전략’이라는 문건을 공개했다. 민주정책연구원은 이 문건에서 새누리당이 그간 선거에서 종북 공세로 대표되는 이념 프레임을 주로 사용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정교과서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이 문건에는 총선에서 국정교과서를 전면에 내걸어야 한다는 주장도 등장한다. 민주정책연구원은 “집권 4년차와 총선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들고 나온 박근혜 정부의 정치전략적 차원에서의 의도를 명확히 하고 대응하면서 동시에 경제정책 실패나 민생파탄, 혹은 국정화의 반민주성과 반민생성을 드러낼 수 있는 전략에 집중해 ‘국정화의 덫’에 걸려 들도록 할 수 있어야한다”고 지적한다.

민주정책연구원은 또한 “학부모와 젊은 세대의 교과서 국정화와 역사회귀에 대한 반대여론이 비등하다는 점에서 총선 승리로 국정화를 저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거는 것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당내에서는 총선에서 이겨 국정화를 막아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4일 JTBC 뉴스룸과 인터뷰에서 “(국정화 저지를) 내년 총선 공약으로 제시해서, 우리가 총선에 승리해서 입법하겠다고 국민께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의 관측대로 실제 중도층과 무당층, 수도권을 중심으로 국정화 반대여론이 높다. 새정치연합의 한 수도권 중진의원은 “총선 때까지 쟁점이 이어지면 선거 공보물에도 교과서 이야기를 쓸 셈이다”라고 밝혔다. 국정화 찬반여론을 보면 국정화 저지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고 총선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새정치연합의 전략이 잘못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몇 가지 변수가 있다. 첫 번째 변수는 새누리당의 총선 전략이다. 매일경제의 단독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산하 ‘비전2016 위원회’가 양성평등과 환경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내세워야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전략 보고서를 당에 제출했다고 한다.

매일경제는 “지난 대선·총선에서 야당의 전유물이던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여당 어젠더로 끌어들여 중도층을 흡수했던 전례를 교훈으로 삼자는 얘기”라며 “콘크리트 지지세력인 보수층을 집결시키는 것보다 수도권 중도층을 포용하기 위한 전략 마련이 급선무”라는 보고서 내용을 소개했다.

새누리당이 교과서라는 이념 이슈 대신 총선에서 민생 등 중도층 이슈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전략대로라면 새누리당은 총선에서 새정치연합의 국정교과서 공세에 대해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두고 이념논쟁을 벌인다”며 역공을 펼칠 것이다.

두 번째 변수는 투표율이다. 주간동아가 시대정신연구소에 의뢰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여론조사를 19대 총선 당시 투표율로 재계산한 결과, 찬성 54% 반대 46%로 찬성이 더 높았다. 일반적인 여론조사는 우리 국민의 실제 지역별·연령별 인구분포를 고려해 조사 결과를 보정한 뒤 발표하지만, 그런 보정을 거치지 않고 투표율을 기준으로 재계산해본 것이다. 

20대 투표율이 항상 평균 아래인 반면 국정화를 지지하는 50~60대 층의 투표율이 평균을 밑돌기에 찬성이 더 높게 나왔다. 만일 총선에서 국정교과서 등 이념 논쟁이 핵심 의제가 된다 해도 국정화를 반대하는 여론이 투표장에 갈 것이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다. 

세 번째 변수는 ‘총선에서 이겨 국정화를 막자’는 주장이 새정치연합의 출구전략으로 활용될 경우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4일 당이 국정화 저지를 위해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에 대해 “(국정화) 문제를 푸는데 좋은 방법이 아니다”며 “신뢰를 얻어 다수당이 되는 게 이 문제를 푸는 정공법”이라고 말했다. 

이런 전략은 야당 지지자들에게 ‘국정화 막겠다더니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총선 때 이용해먹을 생각 밖에 안 한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지금 야당을 지지하는 이들도 야당에 대해 등을 돌릴 수 있다. 6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43%가 야당의 농성에 대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답했고, 40%는 “하지 말아야할 일”이라고 답했다. 야당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총선에서 이기면 해결된다는 논리를 내세우면 이 40%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새정치연합은 ‘국정화 저지’를 내세우며 야당 지지층의 단일대오를 유지하면서도 야권 지지층과 중도층을 투표장으로 나오게 할 또 다른 매개를 만들어내야 할 상황이다.

민주정책연구원의 문건 안에 이미 답이 있다. 민주정책연구원은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고 새누리당이 이를 선거에 이용하였으나 무상급식과 같은 생활밀착형 정책의제에 더 큰 영향을 받아 투표선택 요인으로 작동한 점은 고무적이며 내년 총선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