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글 /기사

“기필코 막아내겠다”더니, 야당은 뭐하나

“기필코 막아내겠다”더니, 야당은 뭐하나
정부·여당, 국정화 확정고시 강행하고 “민생 챙기자”며 출구 전략 모색… 국회 올스톱, 장기 전략 부재

정부가 3일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확정고시를 발표함에 따라 국정화 국면이 2차전에 접어들었다. 이제 야당이 대응전략을 고민해야할 때가 됐다. 

정부여당은 3일 국정화 확정고시를 계기로 여론에서 불리한 국정화 국면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제 국정화가 확정됐으니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정쟁을 그만두고 민생에 전념하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국정화를 정치가 아닌 행정의 영역으로 밀어두겠다는 태도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제 역사교과서 문제는 국사편찬위원회와 역사학자, 전문가에게 맡기고 국회는 법안과 예산처리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것을 강력히 야당에 촉구한다”고 밝혔다. 황진하 사무총장 역시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정부의 공교육 체제에 따라 전적으로 교육부가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으로 사실 국회에서 왈가왈부할 사안이 아니다”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는 2일 최고위원회의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등 정기국회에서 꼭 통과시켜야 할 법안이 주 의제가 될 것이다. 역사교과서는 더 이상 논의될 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여당은 이처럼 한중FTA 등 각종 ‘민생 의제’를 부각시키며 국정화를 지우는 행보에 나설 것이다.

확정고시를 발표한 황우여 교육부총리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황 부총리는 3일 브리핑에서 “교육부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자라나는 후대에게 안기어줄 것”이라며 “이를 지켜봐주시고 이제 정쟁과 이념 싸움에서 벗어나 화급한 민생에 전념하는 초당적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황우여 부총리를 교체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러한 전략의 일환이라 해석할 수 있다. 3일 언론보도를 통해 황 부총리가 교체된다는 점이 알려졌다. 국정화를 책임지던 황 부총리가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국정화가 일단락된 모습을 연출한다는 것.  

새정치민주연합은 고시 이후에도 싸움을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새정치연합은 확정고시 하루전날인 2일 저녁 1년 3개월 만에 국회에서 로텐더홀에서 농성을 하기로 결정하고 당 지도부와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위 위원들을 중심으로 노숙 농성을 했다. 교육부가 국정화 확정고시를 발표하는 시간에 국회에서 규탄대회를 이어갔다. 

문재인 대표는 3일 오전 의원총회에서 “우리당은 이 무도한 독재세력과 맞서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 우리당은 끝까지 국민들과 함께 역사국정교과서 기필코 막아 내겠다”고 말했다.

당장 쓸 수 있는 카드는 국회 보이콧이다. 3일 열리기로 한 본회의는 자동으로 보이콧한 상황이다. 5일로 예정된 본회의, 4일 여야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 간 2+2 회의 등에 대해 보이콧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각종 상임위의 법안 심사, 예산안 심사, 해양수산부 및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등 예정된 국회 일정이 올스톱 될 가능성도 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국민여러분 국회를 중단하고 국회를 피하는 것이 우선 눈앞에 국민에게 큰 불편을 드리는 것이라 생각해도 이번에는 용서해주시라”며 “어쩔 수 없다. 우리의 뜻을 이해해주시라”라고 밝혔다.

야당은 겉으로 국정화 추진에 국회 일정 보이콧을 비롯한 강경대응을 예고하고 있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확정 고시 이후 국정화 국면이 장기화되면 오히려 야당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이 예산안 처리를 매개로 ‘민생경제’를 주장하고, ‘일하는 정부여당 vs 발목 잡는 야당’으로 프레임을 짜면 수세에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이달 30일까지 여야 협상이 불발되면 정부 예산안이 본회의에 자동 상정되는 상황도 부담이다.

김정훈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의 3일 원내대책회의 발언에는 야당의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다.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이후에도 교과서 문제로 투쟁일변도의 정치를 해나갈지 국민들은 매섭게 지켜볼 것”이라며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다고 그것이 곧 야당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난번 재보선에서 보지 않았는가”라고 말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2일 ‘이주의전망’ 보고서에서 “새누리당은 국정교과서 전선이 노동‘개혁’, 산업구조개혁, 전교조 시국선언에 대한 찬반으로 확대되면 오히려 유리해진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반대진영의 덩치가 커지고 여러 의제들이 섞이면 여당과 보수진영이 공격할 수 있는 포인트가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민생 문제, 사회 경제 문제들을 집중해야 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3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당내 분위기가 전면 보이콧 분위기는 아니다. 대체적인 당내 분위기는 예산을 끝까지 볼모로 잡고 이것을 투쟁해야한다는 의견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장기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법안처리 등의 활동은 하되 교문위를 중심으로 전문가그룹과 연대하며 국정화 불복종 운동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정세균 새정치연합 상임고문은 지난달 25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 서 “교학사 교과서 논란 때 당 지도부는 정치현안을 챙기고 교문위 의원 전원은 전국의 역사교사들을 접촉해 교과서 채택 시도를 막았다. 이번에도 시기가 지나면 총선을 준비하면서 국정화 문제가 소강상태로 가지 않도록 국민들과 소통할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종환 의원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김무성 대표만 빠져나가고 싶은 거지 교과서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교사와 교육청이 불복종 의사를 밝히고 있으므로 현장에서 싸움이 일어날 것이며 교사들은 징계하고 교육청에는 예산을 안 내려 보낼 것”이라며 “앞으로 할 일이 무지하게 많고, 야당은 예산 집행 등 집필과정을 계속 점검하고 자료요청하며 1년 내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국정화 대응전략을 둘러싸고 주류와 비주류가 강경론 vs 회군론으로 맞서고 문재인 대표의 거취문제, 공천 갈등 등과 결합되면서 집안싸움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보수언론은 ‘친노강경파’가 대여투쟁을 선도한다며 내홍을 부추길 것이 뻔하다. 국정화 2차전을 앞두고 새정치연합의 정밀한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