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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생’처럼 공감가고 ‘송곳’처럼 찌릿한 기사는 없을까

왜 ‘미생’처럼 공감가고 ‘송곳’처럼 찌릿한 기사는 없을까
[뉴스 파파라치④] 주의주장 대신 ‘리얼월드’ 보여주며 공감을 이끌어내는 미생과 송곳의 언어

뉴스과잉시대입니다. 뉴스는 넘쳐나지만 이를 소화할 방법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미디어오늘이 넘쳐나는 뉴스에 체하지 않고 뉴스를 꼭꼭 씹어 소화시킬 수 있도록 뉴스 읽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뉴스 파파라치는 전체 6부, 총 25회로 구성됩니다. 1부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편에서 소개할 4개의 글에서는 뉴스가 신뢰를 상실한 시대를 진단합니다.

두 개의 네이버, 뉴스 댓글창 vs 송곳 댓글창

“노조에 대한 편견이 깨진 웹툰이다” 현재 JTBC에서 방영 중인 본격 노동조합 드라마 ‘송곳’의 원작인 네이버 웹툰 송곳에 달린 한 댓글이다. 최규석 작가는 웹툰 송곳에서 한국에서 흔히 ‘기득권 이익집단’ 취급을 받는 노조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송곳의 모든 것은 웹툰으로써 흔하지 않다. 배경은 대형마트에서 벌어진 노동조합의 투쟁과 파업이고 주인공은 노동조합 간부 이수인과 노동상담센터 구고신 소장이다. 틈만 나면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이 등장한다.

네이버 뉴스 댓글창에 등장하는 독자들과 네이버 웹툰 송곳의 독자들 사이에서는 서로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은 이질감이 있다. 노조에 관한 네이버 뉴스 댓글창에는 ‘종북좌파’ ‘귀족노조’라는 비난이 많이 달리지만, 웹툰 송곳의 댓글 창에는 “가슴을 울린다”는 공감의 댓글이 다수 등장한다.

송곳에 앞서 노동 문제에 대해 알린 또 다른 웹툰은 윤태호 작가의 ‘미생’이다. 비정규직 장그래가 운 좋게 ‘원 인터네셔널’이라는 종합상사에 입사해 ‘상사맨’으로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다. 2013년 연재 당시 누적 조회 수가 10억 건을 넘길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매 회마다 1000개 넘는 댓글이 달리던 미생은 결국 TVn 드라마로 제작됐고 출판된 만화는 2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미생은 2012년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만화부문 대통령상끼지 수상했다.

  
▲ TVn 드라마 미생.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비정규직의 대명사가 됐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을 강행하며 장그래를 위해 노동개혁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내세웠고, 반대로 노동계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장그래를 정규직으로 만들어줄 수 없다며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를 구성했다. 이처럼 미생의 장그래는 정부와 노동계 모두가 탐낼 만한 20대 비정규직의 대표 아이콘이 됐다.

미생과 송곳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미생에는 워커홀릭들이 등장한다. 늘 충혈된 눈을 하고 있는 오 차장이 대표적인 워커홀릭이다. 이들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장할 뿐 노동시간 단축이나 노동환경 개선 등에는 관심이 없다. 반면 송곳에는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마트 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노동조합’이 전면에 등장한다.

최규석 작가는 지난 5월 출판기념회에서 “미생에서 장그래가 노조를 만들어 송곳의 경쟁작이 될까봐 걱정했다”며 “신입 땐 미생을 참조하시고 혹시 회사가 이상한 일을 하거나 노조를 만들어야 할 때는 송곳을 참고하시라”고 말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작품의 공통점은 노동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슈를 웹툰의 형식을 빌려 사회문제로 환기시켰다는 점이다. 미생은 결국 정규직이 되지 못한 장그래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의제화했고, 송곳은 파리 목숨인 마트 노동자들을 통해 비참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생과 송곳이 해야 할 역할 중 일부는 원래 언론이 했어야 할 역할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언론은 미생만큼, 송곳만큼의 신뢰도 받지 못하고 파급력도 없다. 대신 영화, 드라마, 웹툰이 언론 노릇을 하고 있다. 삼성 백혈병 문제를 알리기 위해 많은 언론들이 나름 고군분투했으나 영화 ‘또 하나의 약속’만큼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는지는 의문이다.

늘 속보와 자극적인 이슈를 따라가기 바쁜 언론과 달리 영화, 드라마, 웹툰은 모두가 잊고 있던 이슈를 다시 환기시키며 ‘뉴스 그 이후’를 더 고민해야 하는 언론의 ‘심층 취재’ 역할을 대신한다. 영화 ‘도가니’는 광주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장애인 성폭행사건을 다루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경찰의 재수사까지 이끌어냈다.

많은 기자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왜 기사를 아무리 써도 미생 같은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송곳 같은 찌릿함은 주지 못하는 걸까. 한겨레 윤형중 기자는 지난 1월 윤태호 작가와 인터뷰 기사에서 “기자들이 쌍용차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 숱한 기사들을 써왔지만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만한 파장이 없었다”며 “미생으로 인해 비정규직 문제가 의제화 된 것을 보면, 과연 언론은 어떻게 해야 중요한 사안을 사회적 의제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고 밝혔다.

언론은 구사하지 못하는 미생과 송곳의 언어

언론이 약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공감을 얻기 어려운 이유는 이 사회의 언어와 사고방식이 가진 자의 언어와 사고방식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은 자신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에게 쉬운 언어로 설명할 필요성이 적다. 즉물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이기 때문이다. 반면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진보세력의 언어는 매우 복잡한 맥락을 가지고 있기에 항상 풀어서 설명해야 한다.

예컨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서울 대한문 앞에서 농성 중인 상황을 설명한다고 가정해보자. 보수의 언어는 깔끔하다. “불법점거” 실제 조선일보는 이런 언어를 통해 사안을 설명했다. 보수언론들은 지난 11월 14일에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대해 묘사하며 ‘폭력’ ‘불법’ 등의 단어를 사용했다. 불법은 무조건 나쁘고, 폭력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에 기초한 매우 명료한 설명이다.

반면 진보의 언어는 복잡하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한문 앞에서 점거 농성을 하는 상황이 왜 불법점거가 아닌지, 왜 ‘합법’인지를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아니면 왜 이들이 불법을 각오하고라도 점거를 할 수밖에 없는지를 또 구구절절 설명해야한다. 귀에 잘 안 들어온다.

실제로 많은 진보언론의 노동 기사에 주의주장은 많다. 집회에 가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를 제목으로 뽑아 기사를 쓴다. 해고노동자를 만나 ‘해고는 살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전한다. 물론 많은 이들이 이런 기사를 보면서 공감하고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또 다른 많은 이들은 ‘감성팔이’라거나 ‘그럼 기업이 망해야 되냐’고 다그친다.

미생과 송곳에는 주의주장 대신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송곳의 이수인 과장은 마트 노동자들을 괴롭혀서 스스로 나가게 만들라는 점장의 지시를 거부한다. 왜 수많은 관리자 중 이수인만 이 지시를 거부했을까? 정의로운 사람이라서? 그런 의문이 드는 순간 그의 과거 이야기가 펼쳐진다.

  
▲ JTBC 드라마 송곳.
 

이수인은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부당한 선거개입에 반기를 들 정도로 융통성이라곤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그런 그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같이 벌점을 나누자”고 도와준 동료, “너 없으면 부끄러울 뻔 했다”고 칭찬한 선배가 있었다. 그들의 존재 덕에 이수인은 자신의 신념을 유지했고 부당한 지시를 또 한 번 거부할 수 있었다.

원칙에 철저한 이수인은 아마 회사가 합법적으로 명예퇴직 절차를 밟아 노동자들을 내보냈다면 반발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회사가 그에게 강요한 방법은 괴롭히기 등 부당한 것이었고 이수인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많은 노조원들이 서로를 불신하며 노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수인은 “(노조를) 나가실 분은 나가셔도 된다”고 선언한다. 구고신이 “조합원들에게 실망했나?”라고 묻자 이수인은 “저는 사람에게 실망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한다.

그의 현실은 다시 한 번 육사 생도 시절의 과거와 오버랩 된다.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다음 날 늦잠을 잔 이수인. 목청껏 그를 깨우던 동료는 그에게 실망의 눈초리 대신 “같이 깨우자”고 말한다. 그 동료 덕에 이수인은 흔들리는 조합원들에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송곳은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튀어나오는 이수인 같은 송곳들이 왜 송곳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자세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감과 이해를 끌어낸다.

대형마트라는 공간은 일반 사람들에게 매우 익숙한 공간이다. 푸르미라는 회사도 노조를 강하게 탄압하는 회사는 아니다. 용역을 동원해 노동자들을 두들겨 패거나 노조를 만든다고 미행하고 납치하지도 않는다. 최규석 작가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그러나 크지 않은 사건을 중요하게 느껴지게 그리고 싶었다. 누가 봐도 ‘저건 너무 하네’라고 할 만한 사건을 ‘이것 보세요’라고 애기하고 싶진 않다”고 말했다.

미생도 마찬가지다. 미생은 기업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나 사장과 직원 간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라 ‘노동’ 그 자체를 다룬다. 나의 이야기지만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파티션 밑의 이야기다. 팀장부터 대리까지, 신입사원부터 워킹 맘까지 자기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캐릭터와 등장인물들의 존재는 공감도를 높인다.

미생에서 가장 많은 공감과 반향을 불러일으킨 장면 중 하나는 워킹맘 선 차장의 이야기였다. 남편은 육아를 위해 선 차장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말한다. 남편을 욕하는 많은 댓글이 달렸다. 그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남편이 왜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라고 말하는 지, 그 이유가 등장한다. 가장인 자신이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 강박에서 한 번도 벗어나 본 적 없는 그 역시 무언가의 피해자였다.

미생과 송곳처럼 웹툰과 드라마, 영화에는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와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송곳은 ‘이것이 옳다’고 말하는 대신 묵묵히 이수인과 마트 노동자, 그리고 구고신의 싸움을 보여준다. 이수인은 처음으로 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용역들을 보며 충격을 받는다. 그 때 구고신은 이수인에게 “웰컴 투 더 리얼월드!”라고 외친다. 송곳은 독자들을 ‘리얼월드’로 안내하지만 공감으로 인한 설득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람들은 좋은 기사가 하는 말을 듣는다”

언론은 어떨까. 기사에는 주의주장이 아닌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구고신은 조합원들과 서먹서먹한 이수인에게 “밥부터 같이 먹어요”라며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라고 조언한다. 이 말을 조금만 바꿔보자. “사람들은 옳은 기사가 하는 말 안 들어. 좋은 기사가 하는 말을 듣지”  

  
▲ 웹툰 송곳의 한 장면.
 

뉴스 소비자들은 ‘비정규직 정규화’ ‘살인은 해고’를 외친 수많은 기사 대신 미생과 송곳을 선택한 셈이다. 옳은 말만, 아니면 누가 한 말만 앵무새처럼 전하는 언론 대신 나의 이야기를 대신 해주고 남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웹툰, 드라마, 영화를 선택했다. 웹툰, 드라마, 영화가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는 현상은 ‘언론 불신’의 한 단면이자 기회이다. 송곳처럼, 미생처럼 쓰자.

* <뉴스 파파라치> 연재목차

1. 기레기와 찌라시 전성시대

(1) 사람들은 왜 뉴스 대신 찌라시와 음모론을 믿나

(2) 진영언론과 객관성 : 조선일보와 한겨레, 둘 중 뭘 읽어야 할까

(3) 기레기를 위한 변명 : 낚시 기사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4) 뉴스가 할 말, 드라마와 영화가 대신하다 : 미생과 송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