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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할 수 없는 걸 어떻게 불허하나

허가할 수 없는 걸 어떻게 불허하나
법도 없는데 복면 처벌? ‘시위꾼’ 낙인찍어 집회 금지… 대통령 심기 거스르면 검열, 퇴행하는 민주주의

정부여당이 5일로 예정된 2차 민중총궐기 집회를 앞두고 강경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복면을 쓴 시위대를 테러리스트인 IS와 동일시하고, 일어나지도 않은 집회를 폭력불법집회로 규정했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민중총궐기 이후 보여준 집회에 대한 공격은 이들의 ‘반민주주의적’ 특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법도 없는데 양형기준 상향? 법치는 누가 무시하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은 헌법 제1조에 나와 있는 당연한 명제다. 하지만 민중총궐기 이후 복면금지법까지 추진하는 정부여당의 행태는 이 명제를 의심하게 만든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법치주의지만, 정부는 복면금지법이 통과되기 전부터 복면을 쓴 집회 참가자들을 처벌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은 11월 27일 담화에서 “집회 현장에서 복면 등으로 얼굴을 가리고 폭력을 행사한 자에게는 법안이 통과되기 전이라도 이 시각 이후부터 양형기준을 대폭 상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양형기준은 사법부 소관이다. 이재화 변호사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양형기준은 사법부의 고유권한이다. 법무부장관의 발언은 법원의 판결에 정부가 관여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법부에 대한 압박인 셈이다. 정부여당은 사법부가 집회 참가자들을 처벌해야한다는 식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7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사법부가 국민 안전을 위해 정신 차려야 한다”며 “우리 아들들인 경찰들이 시위대의 불법 폭력에 몸을 다쳐가면서 법을 위반한 현행범을 잡아가도 법원에서 구속영장 발부 안 하고 풀어준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불법폭력집회는 법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법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처벌하겠다는 정부의 태도와 연결시켜보면 박근혜 정부는 ‘국민들이 법을 지키는 것’ 정도를 법치라고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법치는 권력자가 법에 따라 통치하고 ‘법이 정한대로 처벌한다’는 죄형법정주의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과거 자의적으로 통치한 군왕제와 달리 국민의 대표인 의회가 만든 법률로 국가권력을 통제하려는 것이 법치주의”라며 “법치를 법질서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또한 “현대 입헌주의 국가에서 가장 정확한 의미의 법치주의는 죄형법정주의”라며 “법에서도 금지하지 않는 복면 착용을 이유로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것이야말로 반법치주의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복면시위대를 비난한 이후 새누리당의 법안 발의에 이어 법무부의 ‘양형기준 상향 조정’ 발언이 나왔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복면시위는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IS도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느냐”며 사실상 복면금지법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다음날인 25일과 26일 새누리당 정갑윤, 이노근 의원이 복면금지법을 발의했고 이어 27일 김현웅 법무부장관의 발언이 나왔다. 박 대통령 말대로 움직인 셈이다.

유리할 때만 ‘삼권분립’ 여차하면 원내대표도 찍어내기

박근혜 정부 들어서 이처럼 실질적으로 삼권분립을 위배하는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다. 박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는 국회가 법안 처리를 하지 않는다며 ‘립서비스’ ‘위선’ 등의 표현을 써서 강하게 비난했다. 

이전에도 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자신이 ‘경제살리기법’이라 규정한 법안들을 처리하지 않는다며 국회를 비난해왔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이에 대해 “집권 4년차에 치르는 총선은 정권심판론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이에 맞서 ‘국회 심판론’을 계속 쌓아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권분립이 무너진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다. 여야는 지난 5월 29일 본회의에서 시행령 등 행정입법이 모법의 취지나 내용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가 정부에 수정이나 변경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률이 시행령보다 상위법인데도 시행령이 상위법인 법률에 위배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많은 상황이었고, 강제조항이 있지도 않았는데 박 대통령은 반발했다.

박 대통령은 “배신의 정치를 선거로 심판해 달라”며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유승민 원내대표를 비난했고 국회법 개정안에도 거부권을 행사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결국 스스로 물러나야했다. 국회의원들의 선거로 선출된 원내대표가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나가리’ 됐다. 

유 원내대표는 사퇴하며 “나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의 찍어내기와 이에 동조한 친박계 의원들의 압박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암시한 것이다. 

장관직은 ‘총선용 스펙’을 쌓는 자리가 됐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난 8일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총선 필승’이란 건배사를 외쳤다가 비난을 샀다. 정 장관 외에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 박종준 경호실 차장,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등이 물러났다. 이 외에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황우여 교육부총리,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산부 장관 등 출마를 위해 물러날 장관들은 수두룩하다.

박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TK(대구경북) 물갈이론에 청와대 사람들이 총선 출마를 위해 연일 사표를 내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은 “내 사람들을 뽑아 달라”는 선거개입으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했다.

박 대통령은 이처럼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발언들을 쏟아내면서도 정작 본인에게 불리한 사안이 닥치면 ‘삼권분립’을 내세우는 태도를 취한다.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로 이어진 국회법 개정안 파동 때도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이 “삼권분립 위배”라고 반박했다. 

지난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한다는 주장이 일었을 때도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삼권분립과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대통령이 결단할 사안이 아니다”고 밝혔다.

복면은 벗기고 ‘시위꾼’ 낙인 덧씌우고

복면금지법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집회 참가자들의 복장까지 강제하며 표현의 자유와 헌법상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노근 의원이 발의한 복면금지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복면도구를 착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복면을 착용할 수 있는 상황을 대통령에게 맡긴 셈이다. 복면 착용이 반드시 불법과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근거도 없기에 복면금지법이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도 있다.

복면금지법은 이미 여러 차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폐기된 바 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03년 10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대한 위헌소원 결정에서 “집회 참가자는 복장을 자유로이 결정할 수 있다”며 복장의 자유가 집회시위의 자유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2009년 복면금지법에 대해 “복면 등의 착용 금지 규정은 복면 등을 쓰고 집회 등에 참석하면 불법 폭력 집회를 하려 한다는 잘못된 전제를 기초로 하고 있어 집회·시위의 자유를 중대하게 위축시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2차 민중총궐기를 아예 금지시킨 것도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남대문경찰서는 11월 29일 집회신청을 한 전국농민회총연맹에 “2차 민중총궐기를 금지한다”고 통고했다. 

근거는 집시법 제5조다. 집시법 5조는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損壞),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해 집회 및 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경찰은 집회 신청을 한 전농이 14일 1차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집단 중 하나이고 따라서 이번 집회 역시 폭력집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를 넓게 해석할 경우 집시법의 이 조항은 사실상 집회 허가제로 변질될 수 있다. 

사법부도 집시법의 해당 조항이 집회 허가제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대법원은 2011년 10월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고, 2012년 4월에도 “집회신고는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사실상 집회 신고제를 허가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집회 금지를 집회 ‘불허’라 표현한다.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29일 현안브리핑에서 “상습적으로 불법폭력집회를 해온 전문 시위꾼들이 주도하는 집회는 불허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는 앞서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불온한 세력들이 신청한 집회는 불허해야 한다. 공권력은 이들을 원천봉쇄해야 한다”고 경찰의 집회 금지를 압박했다.  

정부여당은 또한 민중총궐기 집회를 주도한 시민단체와 민주노총 등을 불법폭력 시위꾼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는 3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8년간 반정부 성향의 5개 대형집회 모두 민주노총이 주도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의 이러한 행태는 사실상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에서 무단이탈해 정치적 목적을 꾀하는 정치집단이자 사회를 무질서와 무법천지로 만드는 시위를 주도하는 전문시위꾼 집단이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한 “2011년부터 올해 8월까지 총 190건의 불법폭력시위가 있었는데 이중 절반이 노동계 집회에서 발생했고, 특히 올해 들어 8월까지 발생한 14건의 불법폭력시위 중 9건이 노동계 주관”이라고 강조했다. ‘폭력집회를 주최했던 단체의 집회는 금지한다’는 경찰 논리에 발 맞춰 민주노총을 ‘폭력 집회를 주도한 시위꾼’으로 규정한 셈이다. 

대통령 심기 거스르면 ‘검열’의 칼날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정부와 경찰, 새누리당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들을 내놓는다. 예술영역의 검열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문화연대는 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진 문화검열 사례들을 분석한 결과 “시국사건이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표현의 검열보다는 박근혜(및 박정희)와 관련된 내용에 대한 검열이 더 많았다”며 “정치적 검열의 성격이 이 정권 하에 달라졌다”고 밝혔다. 

지난 2013년 12월 월간 ‘현대문학’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소설가 이제하, 정찬, 서정인의 소설을 연재 중단한 것이 대표 사례다. 경찰이 2014년 10월 20일 광화문 인근 동화면세점 옥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뿌린 이하 작가를 연행하고 지난 2월 23일 박근혜 정부를 패러디한 경국지색 전단지를 제작, 살포한 윤철면씨 자택을 압수수색한 사건도 있었다. 

  
▲ 박근혜 정부 하에서 벌어진 문화예술분야 검열 사례. 자료=문화연대.
 

지난 9월 11일 국회 국정감사 중에 도종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박근형 연출가가 2013년에 발표한 연극 ‘개구리’에서 박 대통령을 풍자했다는 이유로 연극 지원 창작산실 사업 지원 대상에서 박근형 연출가의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배제됐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정치의 전면에 나타난 국정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상 명제가 퇴행하는 동안 사라져 있던 것들이 나타났다.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에서 일해야’하는 국가정보원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국정원 대선개입부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해킹 의혹까지 국정원이 개입한 영역은 다양했다.

법에는 있으나 사문화된 ‘내란’ ‘정당해산’이란 말도 다시 등장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한창이던 2013년 여름 국정원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과 RO가 내란음모를 꾸몄다는 ‘내란음모사건’을 터트렸다. 헌법재판소는 이 혐의를 토대로 헌정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석기 전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는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내란선동을 인정해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초유의 정당 해산이 ‘반민주적 폭거’라고 반발했다.

정당해산까지 당하고, 이석기 의원이 감옥에도 가 있지만 통합진보당을 이용해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옥죄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기도한 통합진보당의 부활을 주장하고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까지 등장했다”며 민중총궐기 집회와 통합진보당과 이석기 전 의원을 연결시킨 것이다.

동아일보는 24일 “북한의 대남공작조직 225국에 포섭돼 지령을 받은 목사가 민주노총 가맹조직의 간부 및 통합진보당 간부 출신 등과 지하조직 결성을 시도한 혐의로 국가정보원에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국정원은 민주노총이 주도한 14일 집회와 이 목사 등이 북한으로부터 받은 지시 사이에 연관 관계가 있는지 조사 중이라고 한다. ‘반민주적 폭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