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몰카 범죄, 언론이 2차 가해자였다”
[인터뷰] 대학에서 벌어진 몰카 피해자 A씨… “취재원은 보호하며 왜 피해자는 보호 안하나”
몰래 카메라도 성범죄의 일종이다. 성범죄에 1차 가해와 2차 가해가 있듯이 몰래 카메라 범죄에도 1차 가해와 2차 가해가 있다. 1차 가해자가 직접적으로 몰래 카메라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면, 2차 가해자는 몰카 범죄 사실을 피해자의 동의 없이 함부로 말하고 다니거나 피해자의 신상을 털어 소문을 내는 사람들이다.
몰래 카메라 범죄를 보도하는 언론도 이러한 2차 가해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학생 A씨가 겪은 몰카 사건이 이에 해당한다. 몰카보다 더 끔찍했던 건 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였다. A씨는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언론 보도 이후 사건 해결이 더 힘들어졌다”고 털어놨다. (미디어오늘은 또 다른 피해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당시 몰카 사건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생략한다)
몇 해 전 모 대학에서 벌어진 몰카 사건은 대학 사회를 꽤나 떠들썩하게 했다. 한 대학교의 남학생이 몇 년에 걸쳐 같은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 여러 명을 상대로 몰래 카메라를 찍다가 적발됐다. 가해자는 여러 여성을 몰래 찍은 영상을 세세하게 분류해 보유하고 있었다. 영상이 적발되면서 조사가 시작됐다.
피해자들도 서로가 피해자인지,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A씨는 “피해자가 몇 명인지도 모른다. 몇 년 동안 찍었는지도 모른다”며 “나는 내가 찍힌 사진들만 확인했을 뿐 다른 사람들이 찍힌 것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흔히 사람들은 몰래 카메라를 통해 짧은 치마나 파인 옷을 입은 여성들을 찍는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건을 보면 이런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언론 보도에는 가해자가 치마 속이나 가슴 부분을 찍었다고 나왔다. 하지만 그런 사진은 일부에 불과했다. A씨는 “개는(가해자) 히잡을 입고 다녀도 찍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A씨는 “그냥 다 찍었다. 조금도 파인 옷이 아니어도, 무릎 정도로 내려오는 치마를 입고 있어도,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있어도 사진을 마구잡이로 찍었다”며 “영상에는 사람들 얼굴이 나오는 것도 있고 나오지 않는 것도 있다. 다만 옷차림을 보면 친한 사람들은 누구인지 구별할 수 있는 정도다”라고 말했다.
몰카는 일상이었다.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카메라를 무음으로 설정해놓은 뒤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거나 핸드폰을 만지는 척했다. 사실 그 동안 계속 영상을 틀어놓고 있었다. A씨는 “언론보도에는 마치 ‘술자리’에서 음란한 사진을 찍은 것처럼 나왔는데, 그건 일부에 불과하다. 그 애는 내 기억 속에 항상 핸드폰을 들고 있었는데, 그 때마다 사실 핸드폰을 만지는 척하며 몰카를 찍고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A씨는 처음에는 분노했다가 나중에는 가해자가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A씨는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다. 친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고민 있으면 같이 이야기하던 사이였는데, 그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몰카로 날 찍고 있었다. 배신감이 컸다”며 “그런데 막상 사진을 보니 몰카를 일상적으로 찍는 애였다. ‘이런 사진에 성적인 흥분을 느끼는 건가?’ ‘몰카가 습관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A씨는 “나중에는 병인 것 같아서 ‘애는 치료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불쌍하기까지 하더라”라고 밝혔다.
A씨는 그래도 자신은 피해가 큰 편이 아니라고 했다. A씨는 “나는 몰카 사진이 10장 정도 발견됐는데, 사진이 훨씬 더 많은 피해자들도 있었다”며 “사진의 정도가 심한 피해자들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A씨는 “크게 두 부류였다. 한 부류는 너무 화가 나서 ‘만나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며 “또 다른 부류는 상처를 많이 받아서 숨어버린 이들이다. 누구인지 파악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A씨는 사건이 터지고 난 뒤 학내에서 해결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언론에 먼저 알려지면서 이러한 방식의 공론화는 무산됐다. 한 언론은 ‘단독’을 달아 사건을 보도했다.
매우 자극적인 단어들이 제목에 등장했고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정보까지 나왔다. 피해자들의 영상은 학내 기구와 경찰만 가지고 있었는데 기사에는 영상의 상세한 내용까지 나열됐다. 대학 이름이 명시됐고 대학마크까지 기사에 등장했다. 여성의 그림자 실루엣 같이 묘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림도 기사에 첨부됐다.
A씨는 ‘단독’ 기사를 쓴 기자에게 항의했다. A씨는 “왜 그렇게 자극적인 제목을 달았느냐고 하자 제목은 자기 권한이 아니라고 하더라. 그럼 나는 도대체 어디에 항의해야 하나”라며 “학내 기구 차원에서도 기사를 내리라고 항의했다. 피해자들의 대리인 격인 학내 기구에 연락도 없이 기사가 나갔기 때문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A씨는 “피해자도 피해자 대리인도 말한 적 없는데 기사가 나가서 정보의 출처가 어딘지 물었다. 기자는 취재원 보호상 말 할 수 없다고 했다”며 “왜 취재원만 보호하고 피해자는 보호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자극적인 기사보다 더 A씨를 분노하게 만든 것은 기사가 나간 뒤 긍정적인 방식의 공론화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A씨는 “애들이 겁을 먹었다. 성범죄를 방지할 제도를 만들고 싶었는데 언론 보도 때문에 무산됐다”며 “예상치 못한 시기에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기사가 나가면서 사람들이 움츠러들었다”고 밝혔다.
A씨는 “기사가 나간 뒤 당사자인 나한테 지인들이 ‘피해자가 누구야? 가해자가 누구야?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라고 질문을 했다. 나도 피해자인데 말이다”라며 “전에 소속이랑 이름을 밝히고 학내 언론에 (이 사건과 다른 사안으로) 인터뷰를 한 적 있는데, 기자들이 이걸 보고 나한테 연락해왔다. 내가 학교 이야기를 잘 해줄 거라고 생각했나보다”라고 말했다.
A씨는 “지인과 기자들에게 그런 전화를 받을 때마다 굉장히 불쾌했다. 내가 당사자일 거라고는 생각 안 하는 건가? 그런 질문을 받아야하는 내가 피해자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조금도 안 하는구나 싶었다”며 “그러다 ‘내가 당했을 거라고 생각은 안 하고 그런 걸 물어보냐’고 쏘아붙인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또한 “아마 나 말고 다른 피해자들도 이런 일을 많이 당했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애(피해자)는 부모님한테 말을 안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너희 과 이야기라며?’라고 물어봤다고 한다”고 전했다.
몰카를 비롯한 성범죄에 대한 보도준칙이 없는 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2012년 ‘성범죄 보도 권고 기준’을 제정했다. 피해자와 그 가족의 신상정보 공개 금지, 성범죄에 대한 잘못된 통념을 강화할 수 있는 보도 자제, 가해자의 범죄수법과 자세한 수사상황의 지나친 상세 보도 금지, 수사기관이 제공한 정보의 적절한 활용, 사진과 영상 등 사용 시 2차 피해 주의 등의 내용이다. 지켜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A씨는 “우리는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스캔들처럼 떠드는 걸 듣고 있어야했다. 왜 사람들 의지와 상관없이 언론이 공론화를 시키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며 “언론에 의해 통제가 안 되는 공론화가 이뤄지면서 2차 가해가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A씨와 피해자들에게 언론도 가해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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