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못하면 해고” 반박할 수단이 없다
고용노동부, 일반해고·취업규칙 지침 공개… 이기권 장관 “쉬운 해고라 폄하하지 말라”
정부가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관련한 지침을 공개했다.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하게 한 해고지침과 노조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가 없이도 노동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고용노동부는 30일 오전 서울정부청사에서 ‘직무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력운영과 취업규칙 관련 전문가 간담회’를 열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주최로 열린 이 간담회에는 노사관계, 노동법, 인적자원관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고용노동부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관련 가이드북 초안을 공개했다.
정지원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관이 발표한 가이드북 초안에는 현행 근로기준법에 규정돼 있는 징계해고와 경영상 해고 외의 해고 유형으로 ‘통상해고’(일반해고)를 제시하고 있다. 정부 초안에 따르면 통상해고는 ‘근로계약상의 근로제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을 뜻한다.
통상해고가 가능한 경우로 ‘근로자의 부상, 질병 그 밖의 건강 상태를 이유로 한 해고’, ‘유죄판결 등을 이유로 한 노무제공 의무의 이행불능’ 등이 적시됐다. 가장 논란이 될 만한 지점은 ‘능력부족, 업무성적 불량 등을 이유로 한 해고’가 통상해고가 가능한 사유로 적시됐다는 점이다. 노동계가 우려했던 ‘저성과자 해고’ 지침이다.
정부 초안에는 저성과자 해고 지침을 마련한 이유로 “근로제공에 대한 임금의 지급이라는 근로계약의 본질을 고려할 때 업무능력의 현저한 결여, 근무성적이 부진한 경우에는 별도의 징계사유가 없더라도 통상해고의 사유가 된다”며 “업무 수행 능력의 현저한 결여는 근로제공 의무를 불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으로 근로계약 해지의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정부 초안은 또한 업무능력 결여를 이유로 해고하는 경우 “근무성적 등이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객관적으로 불량한 정도”에 이른 경우에 해고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정부는 저성과자 해고가 ‘쉬운 해고’라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간담회 자리에서 “오늘 지침과 가이드북은 법과 판례에 따라 구체적인 절차와 기준 만드는 지침인 만큼 이를 자의적으로 정치적으로 해석하거나 폄하해서는 안 된다”며 “진영논리나 정치논리로 마치 임금을 깎기 위한 것이랄지 쉬운 해고를 하는 것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수많은 판례와 법원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기권 장관의 말을 반영하듯 정부 초안에는 통상해고가 엄격하고 제한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겼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과정과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훈련 기회 제공, 적합한 업무로의 배치전환 등의 ‘절차’를 거치고도 개선의 여지가 없거나 업무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통상해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 초안에는 “근로자의 업무능력 또는 근무실적에 대한 평가가 해고에 대한 법적 규제를 회피하고 퇴직을 종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등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거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기준을 현저히 위반한 경우 위법하다” “업무 수행과정, 결과와 관계없이 ‘업무처리 과정이 원활하지 않다’는 개인적 감정이나 주관적 판단으로 평가를 하는 것은 합리성을 인정받기 어렵다”는 내용이 담겼다.
교육훈련 기회 제공에 대해서는 “근로자의 근무태도, 역량, 근무성적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 이후 비로소 해고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해고회피 노력’에 대해서도 “근로자의 퇴출을 종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업무상 필요성 즉 회사가 능력과 성과중심의 인력 운영을 통해 조직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절차가 현실적으로 이행되기 어렵다고 우려한다. 민주노총은 12월 30일 발행한 이슈페이퍼에서 “정부가 말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란 어불성설”이라며 “현재 현장에서 사용되는 인사평가기준들을 보면 ‘리더십이 있는가, 책임감이 있는가, 부서원과의 소통은 원만한가, 창의성을 발휘하고 있는가, 업무에 적극적으로 임하는가’등과 같은 극히 주관적인 평가지표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고용노동부 역량평가기준 매뉴얼을 보더라도 ‘기획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추진할 능력이 있는가’,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계발하려는 자세와 의지가 있는가’는 식으로, 업무성과 평가 항목이 매우 주관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객관적인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실적도 근로자의 능력보다 사용자가 어떠한 업무를 부여하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또한 “공정한 평가를 하였는지 여부를 그 누구도 확인할 수 없다. 기준 자체가 사용자의 주관에 따른 것이고 그에 따른 평가도 사용자의 주관에 달려있을 수밖에 없기에 점수부여의 적정성을 입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며 “달리 말하면 사용자가 의도적으로 근로자들에게 하위의 인사고과를 부여하여 저성과자로 만든다고 할지라도 그 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밝힌 해고에 앞선 배치전환, 교육훈련도 사실상 해고의 연기에 그칠 수 있다. 민주노총은 “저성과를 이유로 한 노동자 학대가 개선의 기회를 부여하는 교육훈련과 배치전환으로 둔갑할 수 있다”며 “노동자 스스로 사직하게 하려고 생소한 업무를 부여하거나, 무의미한 교육을 지속하거나, 몇 개월 단위로 전보시키면서 노동자를 괴롭혀 왔던 “학대 해고”를 합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KT 사례가 대표적이다. KT는 인력퇴출 프로그램을 동원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했는데, 그 과정에서 업무재배치와 교육훈련이 있었다. 사무직 텔레 마케팅을 하던 사람을 울릉도로 보내 전봇대를 타게 하거나 업무특성상 생산성이 낮을 수밖에 없는 부서로 보내는 방식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9월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절차성과 정당성은 다르다. 근로기준법은 정당하지 않으면 해고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는데, ‘정당성’은 절차적으로 공정했느냐를 뛰어넘는 광범위한 개념”이라며 “저성과자 해고는 ‘절차성’만 있으면 된다. 절차만 잘 지키면 텔레마케터가 전봇대를 타도 된다는 것으로 이는 명백히 헌법과 노동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정부가 공개한 초안에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조건을 완화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기존의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조건을 갖추거나 복무규율을 강화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때는 노동자 과반 혹은 노동조합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정부 초안은 “기업이 경영상 필요성 등 여러 가지 사정상 취업규칙 변경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내용도 합리적인 것으로 인정되는데도 근로자집단의 동의를 받지 못하여 사용자의 경영권이 과도하게 제한을 받게 되고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 기업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근로자는 고용이 불안해지는 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힌다.
또한 정부 초안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해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다면 동의를 받지 않아도 취업규칙에 효력이 있다는 내용의 대법원 판례를 소개한다. 정부 초안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가 노동개악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듯 “사회통념상 합리성 인정은 제한적으로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적시한다.
하지만 ‘사회통념상의 합리성 인정’은 규정이 너무 모호해 각각의 사례를 검토한 뒤 결정하는 판례로는 그 규정이 가능할지라도 이를 일반화된 지침으로 만드는 것은 어렵다는 비판이 많다.
노동자들이 동의하는 방식도 문제다. 정부 초안은 “(사측이) 동의를 강요하는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 동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면서도 “사용자측이 단지 변경될 취업규칙의 내용을 근로자들에게 설명하고 홍보하는데 그친 경우에는 부당한 개입이나 간섭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규정한다.
문제는 단순 설명과 홍보, 그리고 강요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올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국립대병원들에서는 취업규칙 변경 동의를 받기 위해 관리자가 서명 여부를 감시하고 직원을 퇴근시키지 않고 부서장이 따로 불러 서명을 강요하는 현상이 벌어졌다.
고용노동부 간담회에서도 이번 지침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간담회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사용자를 위한 가이드라인처럼 보인다. 산자부가 아니라 노동부가 만드는 것이기에 근로자를 보호하는 가이드라인이 되어야하며 통상해고 대상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가이드북을 만들어야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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