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으로 떼돈 번 건 하청 준 대기업들 뿐”
[인터뷰] 개성공단 입주기업에서 일한 공장장 A씨… “개성공단은 끝났다, 다시 가동돼도 오더 주겠나”
박근혜 정부가 설 명절 연휴 중에 기습적으로 개성공단 가동중단을 선언하고, 북한은 남측 체류인원을 즉각 추방했다. 남북 간의 잇따른 강경책 속에서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직격탄을 받았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은 124개로, 6천여 개의 협력업체를 포함하면 개성공단 관련된 고용인원은 12만 명으로 추정된다.개성공단 폐쇄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 이들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다. 미디어오늘이 개성공단에 입주기업인 아동복 의류업체 S사에서 관리직 공장장으로 일했던 A씨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A씨의 요청에 따라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됐다.
원래 A씨는 전주에서 의류 제조 사업을 했다. 그러다 1년 전부터 개성공단에 입주한 의류업체의 생산관리직, 공장장으로 취업했다. A씨는 “원래 전주에서 옷 만드는 사업을 했는데, 개성공단이 열리면서 의류 ‘오더’(주문)들이 다 개성공단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현상이 확대되면서 개성공단에 가게 됐는데, 이럴 바에는 안 들어갔어야 했다”며 “기왕 들어간 거 마무리를 잘 하고 나왔어야 하는데, 이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고 토로했다.
A씨는 설 명절연휴 때 개성공단을 떠나 고향에 내려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2월 10일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중단을 선언한 이후 공단으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A씨는 “통일대교를 넘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서울로 왔고, 아예 개성공단이 폐쇄된 후 지금은 일이 없어 전주에 있다”며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돼서 황당하다. 큰 기업체라면 몰라도 대부분 기업들은 정부 지원이 없는 한 도산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박근혜 대통령이 시간을 좀 줬어야 한다. 명절이라 쉬러 갔더니 다음날 예고도 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그래서 기업들이 원부자재를 포함해 물건들을 다 놓고 왔다. 시간을 줬으면 이렇게까지 피해는 안 봤을 텐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일각에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돈 벌러 간 거 아닌가’라는 냉소적인 시선도 있다. 조선일보는 2월 13일 사설에서 “이런 투자로 돈을 벌 때는 아무 말 없다가 손해를 보게 되자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리면 어느 국민이 납득하겠는가”라며 피해대책을 요구하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을 비난했다.
A씨는 이에 대해 “정부가 가라고 해서 간 거 아니냐. 대통령이 바뀌긴 했지만 들어가라고 세금도 낮춰주고 물꼬도 터줘 놓고 이제와서 기업들에게 위험을 감수한 거 아니냐고 책임을 돌리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돈 많이 벌었다는데, 초기부터 들어간 신원이나 BYC 같은 기업들은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들어간 기업들은 돈도 별로 못 벌고 여러 차례 도산 위기에 처했다”고 강조했다.
A씨 는 또한 “사업이라는 게 적정한 인원도 있어야하고 오더(주문)도 있어야 하지 개성에 들어간다고 다 돈 버는 것도 아니다. 적자 난 데도 많다”며 “어떤 사업이든지 10개 하면 3개 정도는 적자가 난다. (개성공단) 들어간 기업은 모두 돈을 엄청 벌었다는 식의 보도는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A씨는 나아가 “개성공단으로 진짜 돈 번 기업들은 중소기업에 하청 준 대기업들”이라며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오더줄 때 국내단가로 안 주고 후려치기해서 싸게 주문한다. 본청이 이득 본 셈”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애초에 하청에 단가 후려치기로 주문을 했기에 개성공단에서 싸게 생산해도 그 마진은 대기업들에게 돌아갔다는 설명이다.
정부의 보장이 있었다 해도 남북 관계의 역사를 보면 개성공단은 언제나 존폐 위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의 어떤 점이 기업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걸까. A씨는 “사회주의라 (기업) 마음대로 못하는 게 있다는 점은 단점”이라면서도 “적응만 잘하면 (기업 입장에서) 돈 벌 수 있는 기회는 된다”고 설명했다.
A씨는 “북한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우리나라보다 많이 떨어진다. 사회주의라 분배 받는 게 똑같아서 그런지 욕심이 없다”며 “한국 노동자 한 명 일하는 걸 그쪽이 세 명이 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A씨는 또한 “말이 통하는 장점도 있지만 북한도 우리처럼 관리하는 사람에 따라 지시나 오더를 잘 따르기도 하고 안 따르기도 한다. 나 같은 경우 노동자들이 지시나 오더를 잘 따르는 편이었는데, 마음을 얻지 못하면 관리자 말 안 듣고 그런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A씨는 또한 “무엇보다 개성공단의 최고 장점은 원부자재를 빠르게 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 저녁 서울에 요청해서 원부자재를 달라고 하면 내일 아침 공단에 도착한다”며 “서울에서 개성까지 한 시간 반이다. 베트남만 해도 물류비가 비싸서 원부자재를 배송하려면 통째로 배송해야지 한 두 개 품목 씩은 배송할 수 없다. 그 점에서 개성공단이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 2월 13일자 조선일보 사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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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이런 점에서 개성공단이 사실상 폐쇄된 게 “아쉽다”고 했다. A씨는 “개성공단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 두 번이나
중단된 셈이니 다시 가동돼도 기업들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게는 오더(주문)를 주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북한 체제를 믿을 수 없고 미사일 쏘고 그러니까. 문제는 기업들에게 말미도 안 주고 눈치도 안 주고 그냥 문을
닫아버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성공단 업주기업들은 경제적 피해 외에도 하나의 멍에를 메게 됐다. 북한이 핵 개발과
미사일 개발 자금을 댔다는 멍에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난 14일 'KBS 일요진단‘과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에 지급된) 돈
중 약 70%가 (노동당) 서기실 등으로 전해져서 쓰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서기실이나 39호실로 들어간 돈은
핵무기, 미사일 개발, 치적 사업 등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 파악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 뒤인 15일 국회에 출석해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는 점을 인정했다.
관련 기사 : “개성공단 자금 70% 노동당으로” 홍용표, 증거자료 없다 머리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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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는 이런 주장에 대해 “개성공단 자금이 북 당국에 갔다고 볼 수도 있다. 근데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 아닌가”라며 “사회주의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호하지 않는다. 정부가 쌀도 라면도 배급하는 나라”고 밝혔다. A씨는 “정부가 임금 일부를 떼 간다는 말은
필요 없는 이야기다. 자금으로 들어갔다 안 들어갔다가 중요한 쟁점인가? 사회주의 체제가 그런 건데”라고 덧붙였다.
북
한이 사회주의 체제라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임금의 일부를 떼가는 것은 정부도 기업도 다 알고 있었다는 말이다.
조선일보는 15일 개성공단 임금의 일부가 북 노동당으로 들어갔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는 노동자의 임금 일부가 노동당으로
흘러간다는 근거이지, 그 돈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쓰였다는 근거는 될 수 없다.
외교통일위원회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심윤조 새누리당 의원도 15일 외통위 회의에서 “북한이 어떻게든 쓸 수 있는 외화를 다 사용해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는 뜻이다.
구체적인 근거도 없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은 폐쇄됐고 입주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노동자들의 솔직한 심정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여러 노동자들과 접촉했지만 인터뷰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언론에 이름이 나가서 재취업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했고, 어떤 이들은 “정부가 폐쇄까지 해서 다 끝난 마당에 인터뷰하면 뭐하나”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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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뷰를 거절했던 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노동자 B씨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이 말만큼은 꼭 기사에 내보내달라고 했다.
B씨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욕해선 안 되지만, (정부의 이런 행동이) 김정은이랑 다를 게 뭐가 있나 싶다”라며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에 올인한 경우가 많다.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됐는데, 정부가 이런 식으로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는 것에 대해 실망감이 크다”고 비판했다.
B씨는 이어 “나라가 들여보낸 거다. 정부는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공단을 폐쇄했다고 했다”며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공단에서 내보내는 것이 그 사람들을 살리는 건가. 자산 다 몰수당하고 직장
잃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야하나.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화기 넘어 분노와 허탈감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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