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꾼 홍용표, 찍어누른 박근혜, 진실은 저 너머에?
장관이 "자료 없다" 실토했는데 대통령은 "김정은 체제유지에 들어가" 고집… 근거 없이 주장만 난무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중단의 근거로 제시한 ‘개성공단 자금의 핵무기 개발 유용설’에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는 점이 드러나는 데는 채 5일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구체적인 근거없는 ‘설’을 고집하고 있다.
박
근혜 대통령은 16일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에서 개성공단 가동중단의 정당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제 더 이상
설마 하는 안이한 생각과 국제사회에만 제재를 의존하는 무력감을 버리고, 우리가 선도하여 국제사회의 강력한 공조를 이끌고, 우리
스스로 이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가능한 모든 방법’이 개성공단
가동중단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해서는 북한으로의 외화유입을 차단해야만 한다는 엄중한 상황 인식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을
통해 작년에만 1320억 원이 들어가는 등 지금까지 총 6160억 원의 현금이 달러로 지급되었다. 우리가 지급한 달러 대부분이
북한 주민들의 생활 향상에 쓰이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이미 홍 장관이 스스로 근거가 없다고 밝힌 내용이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지난
10일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선언하며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총6160억 원의 현금이 유입됐고 작년에만 해도 1320억
원이 유입됐으며 정부와 민간에서 총1조190억 원의 투자가 이뤄졌는데 그것이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고도화하는 데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6160억 원’이라는 수치가 박 대통령이 언급한 내용과 일치한다.
홍 장관은 이후 지속적으로 근거를 대라는 요구를 받아왔다. 홍 장관은 지난 12일 브리핑에서 “개성공단 임금 등 여러 가지
그런 현금이 대량살상무기에 사용된다는 그런 우려는 여러 측에서 있었고, 여러 가지 관련 자료를 정부는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료를 공개하라는 질문에는 “공개할 수 있는 자료였다면 벌써 공개를 해 드렸다. 필요한 범위 내에서 검토하고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자료가 있지만 공개할 수 없다는 취지다.
더 구체적인 발언은 14일 ‘KBS 일요진단’에서 등장했다. 홍
장관은 일요진단과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에 지급된) 돈 중 약 70%가 (노동당) 서기실 등으로 전해져서 쓰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서기실이나 39호실로 들어간 돈은 핵무기, 미사일 개발, 치적 사업 등에 쓰이고 있다는 것이 파악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하루 만에 말이 뒤집혔다.
홍 장관은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비공개로 전환하고 자료를 공개하라’는 요구가 쏟아지자 “자금이 들어간
증거자료를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와전됐다”고 답했다. “여러 경로를 통해서 보니까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자금의 70% 정도가 당
서기실, 39호실로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말한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한 마디로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는 뜻이다.
홍 장관이 말을 번복한 이유에는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3월 7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2094호는 핵이나 미사일 개발에 기여할 가능성이 있는 다액의 금융 자산 이동을
금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자금이 핵, 미사일 개발에 쓰이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면 유엔 안보리 제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16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개성공단 폐쇄의 명분을 찾아 있지도 않은 사실 꾸며냈다가 안팎에서 유엔결의안 위반 논란 터져 나오자 부랴부랴 꼬리자르기식 대응에 나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근거가 없다는 홍 장관의 말에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신 ‘노동당 서기실’ ‘39호실’ 등 홍 장관 입에서 나왔던 구체적인 표현은 박 대통령 입에서 ‘노동당 지도부’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또한 홍 장관은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고도화하는 데 쓰여진 것”이라고 말했는데, 박 대통령은 “(자금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노동당 지도부에 전달되고 있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표현이 더 애매해진 것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 일부가 북한 당국으로 전달된다는 것과 그 전달된 자금이 핵 무기 개발에 사용된다는 점은 엄연히 다른 팩트다. 조선일보는 15일 단독보도를 통해 “노무현 정부 시절 개성공단에 미국 달러로 유입된 현금의 상당 부분이 북한 노동당에 상납된 사실을 당시 정부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공문서가 존재했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
하 지만 조선일보가 공개한 것은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임금이 북한 당국으로 전달된다는 내용과 관련된 문서이지, 그것이 핵이나 미사일 개발에 쓰였다는 근거는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상 원칙적으로 개인소유가 금지되며 따라서 임금의 일부를 당국에서 가져간다는 것은 정부와 기업도 이미 알고 있던 사항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시정연설에서 “세계 여러 나라가 대북 제재에 동참하고 있는 것도 국제사회의 도움이 북한 주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김정은의 체제유지에만 들어간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핵이나 미사일 무기 개발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자금은 모두 차단하겠다는 뜻이다.
유 엔 안보리 결의위반 논란도 정면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북한 정권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사실상 지원하게 되는 이런 상황을 그대로 지속되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 결의위반 소지가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홍용표 장관의 발언과 어긋난다. 홍 장관은 15일 외통위 회의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위반 아닌가’라는 질문에 “확증이 있다면 위반이라고 할 수 있지만 확증은 없는 상태에서 우려만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지원”했다고 말한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결국 홍용표 장관의 ‘말 뒤집기’는 나름의 소신 발언이었던 셈이다.
한
편 이날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수로 박 대통령의 본회의장 입장을 반겼다.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안내로 입장한 박 대통령은 통로에 서
환영하는 새누리당 의원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눴다. 곧바로 이어진 연설에서 박 대통령은 북한에 강경한 대응 필요성과 국민의
단합을 강조하는 발언을 쏟아내는 대목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격려했다.
본회의에 참석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도 박 대통령을 맞으며 기립하고 박수를 쳤다. 다만 박 대통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여러 의원들께서 국민의
소리를 꼭 들어줄 것을 부탁한다”며 국회에 관심법안 통과를 촉구한 대목에서 유 의원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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