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을 뒤흔든 김종인, 선거 이후엔 더민주 흔들 수도
[뉴스분석] 조직 논리는 뒷전, 주군 모시는 책사가 아니라 정무적 판단에 능한 마키아벨리형 관료 스타일
지난 1월 14일 취임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40여 일 동안 연일 뉴스의 중심에 서 있었다. 신문 1면과 종편 뉴스까지 김종인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으로 뒤덮였다. 김종인 대표가 뉴스를 만드는 법을 분석해봤다.
뉴스는 뉴스로 덮어라
김
종인 대표의 리더십이 기존 더민주 지지층과 최초로 충돌한 시점은 ‘북한 궤멸’ 발언이다. 지난 2월 7일 북한의 로켓 발사로 온
뉴스가 북한 뉴스로 도배됐다. 종편은 정치인들에게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북한이나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
집권여당이 유리해진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던 2월 9일 김종인 대표는 경기 파주의 군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장병들이 국방 태세를 튼튼히 유지하고 우리 경제가 더 도약적으로 발전하면 언젠가 북한 체제가 궤멸하고 통일의 날이 올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야
권에서 나온 ‘북한 궤멸’ 발언에 언론은 온통 김 대표 발언의 의도를 해석하기에 바빠졌다. 더민주 DNA와 김 대표 발언이
다르다는 점, 김 대표의 발언에 대한 국민의당 인사들, 당 내부의 비판, 더민주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오는지 등등을 전하며 김
대표의 궤멸 발언이 뉴스를 도배했다.
이제 필리버스터 중단 국면에서 보여준 더민주 지도부의 내부 갈등으로 온 신문 지면과 방송 뉴스가 도배됐어야할 시점이었다. 그런데 김 대표는 3월 2일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뜬금없이 “야권에 다시 한 번 통합에 동참하자는 제의를 드린다”며 야권통합 이슈를 던졌다. 테러방지법과 필리버스터 소식으로 채워지던 언론사 정치면은 순식간에 야권 통합으로 뒤덮였다.
국민의당은 야권통합에 찬성하는 인사들과 반대하는 인사들로 나뉘어 거의 ‘내분’ 양상으로 치달았다. ‘북한 궤멸’을 이야기하던 김 대표가 국민의당을 궤멸시킨 셈이다.
김 대표는 이처럼 야당이 불리한 국면에 처할 때마다 새로운 뉴스를 던져 뉴스를 전환시킨다.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 유머’에는 김종인 대표를 ‘기레기 조련사’라고 부르는 글이 올라와 화제를 끌기도 했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같은 이야기도 언제 던지느냐에 따라 굉장히 좋은 패가 되기도 하고 또 쓸모없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데, 김 대표는 타이밍을 잘 잡는다”며 “심상정 정의당 대표, 박지원 의원 등 야권통합을 이야기하는 분들은 많았지만 김 대표처럼 파괴력 있게 이 메시지를 던지고 큰 효과를 거둔 사례는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더민주의 한 관계자는 “확실히 김종인 대표가 이슈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판을 쥐고 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언론은 갈등을 좋아한다, 김종인도 갈등을 좋아한다?
김
종인 대표는 갈등을 일으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독설을 꺼리지 않고, 다소 오만하거나 무례하게 비춰질 수 있는 정치인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설전이 대표 사례다. 김 대표의 안 대표에 대한 첫 번째 공격은 2월 10일,
‘북한 궤멸’ 발언 직후 등장했다.
안철수 대표가 내놓은 ‘공정성장’론에 대해 김 대표는 “그 사람(안 대표)은
경제를 몰라서 누가 용어를 가르쳐 주니까 공정성장론을 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한 “내가 그와 많이 이야기해봐서
그가 어느 정도 수준이라는 것을 내가 잘 안다”며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기자들은 안철수 대표의 반응을 듣기 위해,
그리고 김 대표의 재반박을 듣기 위해 카메라와 녹음기를 들고 안 대표와 김 대표를 기다리며 진을 쳤다.
두 번째
공격은 김 대표가 야권통합을 제안한 직후에 나왔다. 안 대표가 김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에 ‘정치공작’이라고 반발하자 “안 대표가
더민주에서 탈당한 동기는 본질적으로 대선에서 내가 후보가 돼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 반대의견을 낼 수밖에
없다”며 안 대표를 몰아세웠다.
안 대표는 3월 6일 일요일 기자회견을 열어 “(내가) 문재인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문재인 후보 함께 다니는 동안 김종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하면서 문재인과 민주당에 정권을 맡기면 안 된다고 한 분”이라고 김
대표를 공격했다. 김 대표는 이에 “(안 대표가) 자제력을 상실했다”고 받아쳤다. 김 대표는 9일 안 대표를 향해 “정치를 잘못
배웠다”고 공세를 이어갔다. 안 대표는 다시 “김 대표는 ‘모두까기’ 짜르”라고 비난했다.
▲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유머 게시판 갈무리. |
▲ 인터넷 커뮤니티 오늘의유머 게시판 갈무리. |
김
대표의 또 다른 상대는 국민의당에 입당한 정동영 전 의원이었다. 정 전 의원은 국민의당 입당을 결정한 이후인 21일 새벽
SNS에 올린 글에서 김종인 대표가 더민주의 정체성에 맞지 않는 행보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심심하니까 글
한 번 쓰는 것이겠지”라고 평가절하했다. 국민의당이 논평을 통해 “예의를 지키라”고 밝히자 김 대표는 “무슨 예의를 지켜. 쓸데
없는 소리 하면 그런 소리를 듣는거지”라고 일축했다.
언론은 갈등을 좋아한다. 특히 정치인 간의 갈등과 말싸움은
언론의 정치기사의 주요 소재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당 대표 급 정치인들은 다른 정치인들의 비난이나 공격에도 입장을 밝히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김종인 대표는 먼저 상대 정치인을 공격하거나 공격에 대해 다시 반격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뉴스의 중심을
차지한다.
하고 싶을 때를 골라서 말해라
3
월 22일, 비례대표 공천 문제를 둘러싼 내홍으로 칩거 중이던 김종인 대표가 이틀 만에 국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비공개
비대위 회의에 참여했고 더민주 관계자는 “김 대표가 나와서 이 자리에서 백브리핑을 하실 것”이라며 기자들이 김 대표를 기다릴
자리까지 정해줬다. 기자들이 한 시간 넘게 김 대표를 기다렸으나 김 대표는 백브리핑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향했다. 당황한
기자들이 허겁지겁 김 대표를 따라갔으나 아무 말 하지 않은 채 국회를 떠났다. 김성수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김 대표가 비례대표 순번
결정권을 위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오후 5시 20분 경 자택으로 들어가며 ‘비대위원에게 위임한 명단에
대표 본인이 포함돼 있나’라는 기자의 질문을 받자 “나를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무슨 말이냐”라고 반문했다. ‘셀프지명’으로 논란이
된 비례대표 2번을 비워두라고 했다는 뜻이다. 이는 사퇴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고, 결국 비대위원들이 직접 자택을 방문해
사퇴 의사를 밝히며 김 대표를 만류하는 그림이 만들어졌다.
지난 3월 14일 더민주가 6선의 이해찬 의원을 컷오프 해
논란이 일었을 때도 비슷한 태도를 취했다. 김 대표는 “정무적 판단”이라며 답을 피했다. 기자가 집요하게 묻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니까 자꾸 그런 걸 묻는다”며 기자에게 핀잔을 줬다.
▲ 3월 14일 SBS 비디오머그 영상 갈무리 |
하지만 김 대표는 이틀 뒤인 16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전반적으로 선거를 생각해볼 것 같으면 경쟁력 문제도 생각해야겠고 어느 한 사람의 위치로 인해 선거에 미치는 영향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탈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처럼 언론이 묻는 대로 답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서 입을 연다. 침묵하고 있는 상황에는 김 대표의 침묵을 해석하는 언론의 기사가 쏟아지고, 입장을 밝히면 또 이슈의 중심에 선다.
김종인은 희대의 ‘전략가’일까
김
종인 대표가 취임한 이후 야권은 이슈의 중심에 섰고 새누리당을 밀어냈다. 최영일 평론가는 “김종인 대표는 외톨이다. 박근혜
캠프에서도 두 번이나 당무거부를 했고, 이번에도 사퇴 카드를 꺼내들어 이슈를 만드는 이유는 세력이 없기 때문”이라며 “조직을
조련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이러한 이유로 야권 지지자들은 김 대표를 ‘전략가’ 혹은 ‘책사’라고 부른다. 하지만
김 대표가 ‘뉴스메이커’이긴 하지만 전략가나 책사로 보긴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흔히 전략가나 책사는 모시는 주군이나 조직이
있고, 따르며 그 주군이나 조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책략을 마련하는 인물을 일컫는다.
김 대표가 책사라면 김 대표의
주군은 누구일까. 문재인 전 대표일까, 아니면 더불어민주당일까. 김 대표는 박정희 정권 시절 부가가치세 도입에 반대하며 박정희
대통령과 맞섰고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국보위에 참여해 부가세 폐지에 반대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했다가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버리자 이번엔 야당을 선택했다. 주군의 승리를 위해 복무하는 책사가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시대에 필요한
‘경제정책’을 위해 주군을 선택한다.
최영일 평론가는 “김 대표는 전략가가 아니라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마키아벨리형 관료”라며 “컷오프시킨 정청래, 이해찬 의원은 물론 대권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공동대표마저 자신이 세운
장기판의 말로 보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지난 16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김 대표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대선후보들이 함량미달 아니냐’라는 질문에 “1년 이상 남았으니 나름대로 준비하면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주자들에 대한 김 대표의 인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야권 지지층 일각에서 제기되는 김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당 내에서 ‘숙청’을 하고 있다는 해석은 아전인수라 볼 수 있다. “문재인이
김종인의 배후”라는 식의 국민의당 일각의 해석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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