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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갈등’ 말고 정책기사 쓰라고? 쓰고 싶어도 못 쓴다

‘계파갈등’ 말고 정책기사 쓰라고? 쓰고 싶어도 못 쓴다

[정치기사 바로보기⑤] 정치부 기자들이 ‘정책’을 모르는 게 현실… 중요하지만 안 읽혀, 문제는 트래픽

총선과 대선이 연달아 이어지는 2016년과 2017년은 정치의 계절입니다. 정치뉴스가 가장 잘 팔리는 이 시기에 정치 기사는 ‘욕하면서 보는’ 막장드라마가 됩니다. 미디어오늘이 정치혐오의 탈을 쓴 막장 드라마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사실 속의 소설’ 정치기사 안에서 사실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4·13 총선 이후 야당의 ‘정책통’으로 불리는 인사에게 인터뷰 요청을 한 적이 있다. “기자님이 쓴 기사를 찾아보고 답변 드리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며칠 뒤 “정책보다는 정치 담당이신 것 같다. (인터뷰를) 사양하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가 말한 ‘정치 기사’란 좁은 의미의 정치 기사다. 대한민국 정치부 기자들이 가장 많이 쓰고 신문과 방송뉴스, 포탈의 정치면을 주로 장식하는 정치 기사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 “A가 주장했다, B가 반박했다”와 같은 정치인의 말을 소재로 한 ‘워딩’ 기사, 당내 계파 간의 관계나 권력 다툼을 다룬 계파 기사, 당내 내홍이나 정당 간 대립을 다룬 ‘갈등’ 기사다.

정책 기사도 ‘정치기사화’된다

흔 히 언론이 정책 기사를 많이 써야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새누리당이나 더민주, 국민의당이 내놓은 정책과 법안을 분석하고 의미를 짚어주는 ‘정책 기사’들이 여타의 ‘정치 기사’보다 공적인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변화라 하더라도 다수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정책이다.

정책이나 법안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시기인 선거 때도 정책 기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방송학회 산하 저널리즘연구회는 지난 4월22일 학술대회에서 3월2일부터 4월12일까지 지상파 3사와 종합편성채널 4사의 메인뉴스를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지상파와 종편 모두 정당공천과 계파갈등에 대한 보도에 사실상 올인 했다는 것이다. 정당에 대한 보도가 1552건으로 63.19%를 차지했고 선거판세에 대한 보도가 15.76%였다. 후보자의 정책, 능력, 도덕성에 대한 보도는 6.23%에 불과했다.



앞 서 4월1일 한국방송학회가 발표한 ‘20대 총선 관련 방송보도 분석과 평가’ 연구 중간결과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3월2일부터 22일까지 방송3사와 종합편성채널4사의 메인뉴스에 등장한 선거보도를 전수 조사한 결과 정당을 다룬 보도는 77.9%(769건)로 후보에 대한 보도 91건(9.1%)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보고서는 “정당별 공천과 계파싸움에 대한 보도가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체 보도 중 후보들의 공약과 정책을 비교하거나 분석한 보도는 5.37%에 그쳤고 후보자나 공약을 검증한 보도 역시 5.47%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선거보도는 유권자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 생산에 주력해야 한다. 후보의 정책, 능력, 도덕성 등에 대한 기사 건수가 많이 늘어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정치 기사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정당이 어떤 정책을 발표하건 이는 정치 기사의 하나로 활용되기 일쑤다. 지난 3월29일 더불어민주당 국민경제상황실은 핵심 경제 공약으로 ‘777’ 플랜을 제시했다. 777이란 국민총소득(GNI) 대비 가계소득 비중을 2020년까지 70%대로 끌어올리는 것, 노동자(자영업자 포함)에게 배분되는 몫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을 70%대로 제고하는 것, 중산층(중위소득 50~150%) 비중을 70%대로 복원하는 것을 뜻한다.

기자들은 777 공약에 대해 무슨 질문을 했을까? 기자는 “앞서 새누리당이 더민주의 청년일자리 대책은 ‘표퓰리즘’이라고 비판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런 이야기하는 여당이 참 염치없다고 생각 한다”는 주진형 국민경제상황실 부실장의 말이 돌아왔다.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한 이유는 정책의 의미를 알지 못해 심도 있는 질문을 할 수 없고, 새누리당과 더민주 사이에서 경제정책을 둘러싼 공방이 오가도록 해야 ‘정치기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진형 부실장은 지난 4월25일 ‘MBC 신동호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실업대책에 대해서 사실 정치권에서 운운하고 정부가 운운하는 것  그 시각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많은 언론은 발언의 내용보다 이러한 입장이 김종인 대표의 입장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한국경제는 “이는 실업대책을 조건으로 정부의 구조조정에 협력하겠다는 김종인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생각과 정면 배치된다”고 보도했고 연합뉴스도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더민주가 정책을 발표하거나 정책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혔을 때 다수 언론에게 중요한 것은 정책 자체에 대한 보도나 검증이라기보다 그것이 새누리당과 어떤 갈등으로 나타날지 혹은 당 내부의 갈등 요인은 없느냐이다.

이 런 종류의 기사는 팩트가 잘못된 기사는 아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경제정책은 당연히 다를 수 있고 정책현안에 대한 입장이 당 내부에서 엇갈릴 수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갈등과 차이만 부각됐을 때 기사를 읽는 사람들 머리 속에 정책에 대한 정보 대신 싸움과 갈등만 남기 쉽다는 것이다.

“정치부에 오래 있다 보면 잡문가 된다”

정 치부 기자들이 정책 기사를 쓰지 못하는 이유는 정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 정치부 기자는 “정치부에 오래 있다 보면 잡문가(잡다함+전문가)가 되어 겉만 핥는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국회에 앉아 있으면 하루에도 온갖 이슈들이 터져 나온다.

기자가 2016년 5월~6월 두 달 간 쓴 기사의 키워드만 해도 세월호 참사, 어버이연합, 남양주 사고, 구의역 사고, 롯데 검찰수사, 임을위한행진곡, 가습기살균제, 구조조정 등등 매우 다양하다. 우리사회의 모든 이슈가 정치 문제화되기 때문이다. 이슈가 발생하면 정치인들은 서둘러 정치권 안으로 이슈를 끌고 들어온다.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회의에서 관련된 발언을 하고 의원들은 법안을 내놓는다.

정치부 기자들은 정치권에서 터지는 이슈를 따라가기 바쁘다. 자연스레 정책이나 법안을 설명해주는 기사는 보도자료를 받아쓰거나 정치인들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 기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 야당 출입 기자는 “정책 기사는 솔직히 어려워서 못 쓴다. 터지는 사건 따라가기도 바쁘다”며 “예컨대 김종인 대표가 구조조정에 대해 한 마디 해도 의미를 잘 이해 못 한다. 그냥 겉으로 보기에 정부와 비슷한 입장이다 싶으면 ‘야당 대표도 동의한 구조조정’ 이렇게 쓰는 거다”라고 밝혔다.

반면 정치부 기자들이 가장 전문성 있는 분야는 사람, 즉 정치인 간의 관계다. 연차가 높은 정치부 기자들 중에 ‘A는 어느 정치인 캠프 출신이다’ ‘B는 18대 때는 대변인을 했는데 총선 때는 총괄기획단장을 했다’ 등 정치인이나 당 관계자들의 이력을 줄줄 읊는 기자들이 있다. ‘C는 손학규계인데 지금은 범친노고 D는 김근태계인데 지금은 친문이다’라는 정보를 줄줄 외운다. 정치부 기자의 전문성이란 이처럼 사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6월 초 한 초선 의원이 주최한 기자단 오찬 자리에 참석했다. 초선 의원은 정책이나 법안에 대해 궁금하면 물어보라며 정책 보좌관을 데리고 왔다. 기자들은 초선 의원과 보좌관에게 무엇을 물어볼까? “김종인 대표와 사이는 어떤가?” “초선 의원들 중에 주로 어떤 의원하고 친하나” “참여하고 있는 의원 모임이 있나” “보좌관님은 전에 어떤 의원실에 있었나”

정치 부 기자에게 중요한 것은 이런 정보다. 의원들이 기자를 만났을 때 말하는 것도 주로 이런 정보다. ‘안희정계’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대선 출마를 했을 때 관계자들로부터 멘트를 받을 수 있다. 친박이 누구고 비박이 누군지 알아야지 친박을 비판하는 비박의 목소리를 들을 때 전화를 걸 수 있다. 이 취재원들은 대개 기사에 ‘한 측근’ ‘한 관계자’ ‘비박계 한 중진 의원’ 등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대부분의 정치부 기자들이 주로 정당에 출입하기에 정당 내 역학관계나 세력관계를 잘 알아야 정치기사를 잘 쓸 수 있다.

중요하긴 한데 재미가 없어

따 라서 정책 기사에 집중하는 언론은 정치부 기자의 출입처부터 바꿔야 한다. 머니투데이가 만든 정치 사이트 the300이 대표 사례다. “정치는 정책이다”는 슬로건을 내건 the300은 정당의 입법 과정을 뉴스 콘텐츠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the300이 다른 언론과 가장 다른 점은 출입처다. the300은 상임위원회별로 기자를 배치했다. 기자가 상임위원회에서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속적으로 지켜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기자 입장에서의 고민은 정책 기사는 재미가 없고 잘 안 읽힌다는 것이다. 당내의 계파갈등에는 스포츠게임이나 궁중암투를 그린 대하사극 같은 흥미진진한 요소가 있다. “김무성 대표가 옥새를 가지고 도주하고 원유철 원내대표가 이를 잡으러 갔다”는 식으로 희화화 되서 뉴스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반면 정책이나 법안 관련 기사는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잘 읽히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대보증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거나 “직무중심의 채용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는 말로 시작하는 기사를 누가 읽을까. 어차피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기자들도 열심히 쓰지 않고, 쓰지 않다보니 더욱 더 정책에 대해 알지 못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박용현 한겨레 정치에디터는 4월18일 ‘열린편집위원회’ 회의에 서 ‘정책검증보도가 부족했다’는 외부 편집위원들의 지적에 대해 “정책 보도는 재미가 없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기자들도 많은 고민을 한다”고 말했다. 박용현 에디터는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독자들이 흥미를 갖고 볼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등은 대다수 언론 종사자들의 큰 고민거리”라고 밝혔다.

언론도 ‘읽히는 정책 기사’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한다. 정책이나 법안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컨셉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머니투데이 the300이 1월5일 발행한 기사 ‘일하는 당신의 권리…법과 현실 사이’는 “26세 미혼 여성 이하나씨는 요즘 가족들과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이 많다”로 시작한다. ‘이하나’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노동관련 법안에 대해 설명한다.

▲ 머니투데이 the300 홈페이지 갈무리

the300의 2014년 6월20일자 인터렉티브 기사 ‘칼퇴근 못하는 이유’는 ‘김나리’라는 가상 인물을 통해 생활에 적용되는 법안과 시행령의 불일치를 설명했다. 예컨대 김씨가 편의점 알바를 가기 위해 한 시간 일찍 출근한 이유가 ‘가맹사업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 때문이라는 식이다.

문제는 여전히 조회 수

문 제는 여전히 정치 기사에서 정치인의 말을 전하는 워딩 기사, 계파 기사, 갈등 기사가 주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유용하고 잘 읽히는 정책 기사를 써도 묻히기 일쑤다. 그나마 이런 시도도 기자를 여러 명 배치할 수 있고, 기자에게 공부할 시간을 줄 수 있는 여력을 가진 매체에서 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A가 말했고 B가 반박했다”는 기사는 점점 더 넘쳐나고 있다.

국 회에 출입하는 한 정치부 기자는 “데스크가 말로는 ‘정책 기사 많이 써라’ ‘입법과정에 집중해’라고 하지만 막상 일이 터지면 ‘이게 이슈던데’ ‘이것도 챙겨야 하지 않겠나’라고 한다. 정책 기사가 조회 수가 별로 안 나오기 때문”이라며 “YTN이나 연합뉴스 속보 받아서 올린 기사는 조회 수가 100만이 넘게 나오는데 공 들여 만든 정책 기사는 정치부 기자들과 보좌관들 밖에 안 읽는다”고 말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법칙은 정치 기사 시장에서도 통한다. 그리고 나아가 악화는 현실도 변화시킨다. 정치인들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방법은 정책이나 법안을 잘 만들어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 앞에서 센 발언을 하거나 이슈가 터졌을 때만 잠깐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18대 국회에서 야당 보좌관을 지낸 한 정당 관계자는 “대정부질의 때 야당 의원들은 모두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데 주력했다. 유일하게 우리 의원실만 입법준비 중이던 법안에 대한 질의를 했다”며 “예상대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 의원들에 대한 기사만 나왔다”고 말했다.

그 는 “언론이 정책이나 법안에는 큰 관심이 없고 계파갈등을 너무 좋아한다. 대정부 질의 끝나고 법안에 대해 물어본 기자는 단 한 명 뿐이었다”며 기자에게 물었다. “친박이 권력을 잡든 친이가 권력을 잡든 국민의 삶에 달라지는 게 뭐가 있나?”

* 정치기사 바로보기 시리즈

(1) 오보도 특종도 모두 말에서 나오는 ‘사실속의 소설’

(2) 혐오라는 이름의 편향, 정치혐오는 누구의 편인가

(3) ‘친노 패권주의’ 진짜 조중동이 만들었나요

(4) 친노패권은 있는데 왜 친박패권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