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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좌관 삥 뜯고 친인척 꽂는 의원, 왜 이렇게 많을까

보좌관 삥 뜯고 친인척 꽂는 의원, 왜 이렇게 많을까

세비만으론 지역구 관리 예산 턱없이 부족, 후원금도 한계… 왜곡된 주군-가신 관계, 보좌관 고용 안정이 우선 과제


20~30여명이 넘는 보좌관들이 사라졌다. 서영교 의원의 친인척 채용 사실이 정치권 전반으로 퍼져 나가며 열흘 동안 24명의 보좌관들이 면직처리됐기 때문이다. 친인척 채용과 함께 보좌관 월급을 정치자금으로 쓰는 관행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관행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지난달 30일 더불어민주당 당무감사원은 서영교 의원에 대한 ‘엄중한 중징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모았고 서 의원도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서 의원은 지난 22일 친 딸을 인턴비서로 채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이후 동생을 5급 비서관으로, 오빠를 회계책임자로 고용했으며 보좌관으로부터 후원금조로 월 100만원씩 총 5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새누리당은 서 의원을 강하게 비판했으나 이어 자당 의원들에 대한 비슷한 의혹이 터져 나오며 민망한 처지가 됐다.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이 5촌 조카와 동서를 보좌진으로 채용했으며 이군현 의원이 보좌진 월급 2억 원 가량을 빼돌려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혐의로 고발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국회를 오래 출입한 한 기자는 “한 번 터져 나오면 고구마줄기처럼 엮어 나올 것이다.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관행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좌진 월급 가져가는 이유? “돈이 없다”

이 군현 의원의 경우 2억 원이 넘는 금액을 가져갔지만 대부분 의원들이 가져가는 보좌진 월급의 액수가 어마어마하지는 않다. 서 의원의 경우 월 100만원 씩 500만원을 가져갔고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은 매달 120만원 씩 1500여만원을 상납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왜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 돈을 가져가려 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보좌진들은 “한 푼이라도 아쉽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지역 활동을 하는 의원들의 경우 세비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전직 보좌관 A씨는 “예전에는 지구당이 있어서 중앙당에서 지구당으로 돈을 보내주고 이 돈이 분배가 됐는데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지구당이 사라진 이후 지역구 운영의 부담이 전부 국회의원 개인에게 돌아가게 됐다”며 “특히 정치 신인들에게는 비용 문제 때문에 사무실 운영하는 것부터가 힘들다”고 말했다.

A씨는 “이런 상황에서 머리를 쓴 게 기존에 주어지는 자원을 빼서 지역에다 투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진 월급 일부를 가져다 지역구 사무실 운영에 보태거나 지역을 관리할 ‘미등록보좌진’ 월급으로 준다는 것이다. A씨는 “지역 정치라는 게 사실 돈 정치다. 지역에서 정치하려면 사람 만나고 챙겨야 되는데 그게 다 돈”이라며 “경조사만 챙겨도 한 달에 200만~300만원씩 나간다. 후원금 모으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솔직히 잘 나가는 정치인 빼고 후원금 모아서 정치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토로했다.

지역 사무실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보좌관 B씨는 “국회의원 세비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흥청망청 써서 그런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 구조가 그렇다”며 “국회에서 공식으로 채용할 수 있는 보좌관이 9명인데 이들 말고 지역 관리하려면 지역에서 입김 세고 발 넓은 사람들 섭외해야 하고 그 사람들 인건비도 줘야하고, 거기다 사무실도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 한 달에 그 비용으로만 1000만원 넘게 나갈 때도 있는데 국회의원 월급이 1000만원이니까 월급을 다 쓰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B씨는 또한 “의원실마다 상황이 다르긴 한데 선거 한 번 치러보니까 의원 세비만으로 지역구 사무실까지 돌리기에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러니까 보좌관 월급 반만 주고 나머지 가져가고 그런 관행이 생긴 것”이라며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고용하면 서울보다 월급을 덜 줘도 괜찮다는 인식도 이런 관행을 부추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월급 갈취’에 한 몫 하는 의원-보좌진의 관계

물론 ‘돈이 없다’는 원인이 ‘월급 갈취’라는 결과로 곧바로 연결될 순 없다. 돈이 없을 때 하필이면 보좌진 월급을 가져갈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원 입장에서 보좌진이 만만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보 좌관의 신분은 9급, 5급, 4급 등으로 나뉘어 보기에는 공무원처럼 보이지만 공무원처럼 안정적이지 않다. 의원이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하는 상황이 많다. 4년 동안 보좌관 16명을 교체했다, 22명을 갈아치웠다는 이야기는 전설처럼 떠돌아다닌다. 나아가 의원이 공천에서 떨어지느냐 혹은 재선하느냐에 따라 보좌진의 운명도 같이 결정되는 상황은 보좌관이 의원의 지역구 관리에 월급이라도 보탤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국회의원과 보좌진 간 관계 변화도 이런 ‘월급 갈취’에 한 몫 하고 있다. 과거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는 ‘주군과 가신’이었다. 국회의원 자리를 물려주거나 구 의원, 지자체장 등 ‘정치적 보상’에 의해 맺어지는 관계였기에 월급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재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는 고용주와 고용인, 더 정확히 말하면 사장과 노동자의 관계로 바뀌어가고 있다. 보좌진들은 여야를 넘나들며 이력서를 내고 일자리를 찾는다. 실제로 보좌관들 중에는 자신의 국회의원을 “사장님” 혹은 “사장”이라 부르는 이들이 있다.

▲ MBN 뉴스 갈무리.

‘월 급 갈취’ 혹은 상납은 이런 과도기에서 나타난다. 여전히 주군과 가신 관계가 남아 있어 국회의원은 충성을 원한다. 하지만 그 충성 보증의 방식이 ‘정치적 보상’이 아니라 고용관계에서 얻어지는 월급의 일부를 반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관련 기사 : "국회의원들, 왜 보좌진 월급에까지 손 댈까?"

보 좌관 C씨는 “보좌관 월급은 세금으로 주는 건데, 국회의원 중에 이걸 자기가 주는 돈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어차피 내가 주는 거니 내가 필요할 때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좌관 D씨도 “의원들은 여전히 주군과 가신 관계로 생각하는데, 보좌진은 고용관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한 한 현직 보좌관은 “어느 순간 정치가 혐오스럽다는 국민정서가 있고 그러다 보니까 국회의원이 뭘 하는 것들에 대해서 굉장히 제약을 받고 특히 돈을 모금하고 하는 것에 제약을 받았다. 돈은 없는데 토론회를 뭐하든 돈을 써야하니 이제 각출을 하게 된 것”이라며 “지역관리를 해야 하는데 사무실 운영비가 많이 든다.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 인사권 가진 분이 십시일반하자고 (뉘앙스를) 풍기면 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모자란 세비와 돈 정치, 국회의원과 보좌관의 관계 등 구조적인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생겨난 관행이라는 뜻이다.

친인척 채용, 문제는 맞지만…

보 좌관들은 월급 갈취보다는 친인척 채용이 더 보편적 관행이라고 입을 모은다. 보좌관 E씨는 “월급 갈취는 생각만큼 흔한 문제는 아니다. 진짜 월급이 절실한 보좌관의 월급을 가져가는 경우는 흔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가져가도 뭐라고 안할 만한 처지라거나 의원실 방이 결의해서 떼가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했다. 보좌관 C씨는 “월급 갈취는 실제로 당하고 있다고 해도 누군가 잘못됐다고 말을 하지 않는 한 드러나지 않는다. 나 같아도 쪽팔려서 말 못할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서영교 의원 파문 이후 드러난 ‘국회의원 특혜’ 논란 중에서 사람들의 가장 많은 공분을 일으킨 사안이 친인척 채용이다. 시조카를 9급 비서로 채용한 추미애 더민주 의원, 6촌을 5급 비서관으로 쓴 안호영 더민주 의원, 동서를 4급 보좌관으로 쓴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 조카를 5급 비서관으로 쓴 박대출 새누리당 의원, 조카를 6급 비서로 쓴 송석준 새누리당 의원, 조카를 9급 비서로 쓴 강석진 새누리당 의원, 6촌을 7급 비서로 쓴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등이 해당 보좌진을 면직처리했다.

양당의 친인척 채용이 드러나면서 국민의당은 “앞장서서 특혜를 없애겠다”고 나섰지만 언론 보도를 통해 송기석 국민의당 의원은 형수의 동생을 수행비서로,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부인의 7촌 조카를 비서관으로 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보 좌관들은 친인척 채용이 문제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고 말한다. 보좌관 F씨는 “일도 안 시키고 보좌관으로 등록해놓고, 출근도 안 하면서 돈만 받아가는 이들도 있다. 이런 건 문제지만 단순히 친인척을 고용했다고 매도하긴 어려운 면이 있다”며 “회계나 수행의 역할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보좌관 B씨도 “보좌진이 의원의 문제를 폭로하고 이런 문제도 정치의 세계에서 생긴다. 정치를 하다보면 배신도 많다”며 “그러다보니 결국 나랑 마음이 통하는 건 가족과 친척뿐인 것”이라고 밝혔다. B씨는 또한 “딸이나 아들, 처남을 고용하는 건 너무 과했고 국민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지만 먼 친척까지 하나하나 문제 삼는 건 과하다고 본다”며 “특히 회계담당자의 경우, 돈 때문에 정치인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데 자기 통장을 생판 모르는 남에게 맡길 수 있나. 그러다보니 친인척을 쓰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억울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면직된 안호영 의원의 6촌 비서관이 대표 사례다. 그는 30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일을 통해 “저는 2006년 17대 국회에서부터 심재덕 전 의원, 유시민 전 의원, 18대 김영록 전 의원, 19대 김광진 전 의원, 서기호 전 의원 등을 보좌하며 10년 가까운 세월동안 국회의원 보좌진으로서의 전문역량을 가꿔왔다. 지난 2012년 국방위의 노크귀순을 최초로 밝혀내는 등 나름의 전문성을 발휘해 왔다라고 생각한다”며 “16‧17대 대선과 18‧19‧20대 총선, 2010년 경기도지사선거, 2011년 서울시장보궐선거 등에서 정책, 홍보, 공보, 메시지 등의 분야를 담당하며 국회 보좌진뿐 아니라 선거전문가로서의 역량도 키워왔다”고 설명했다.

이 비서관은 이어 “이번 선거도 집안 어르신들과 선배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돕긴 했지만, 당선만 시켜드리고 제 갈 길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이 계획 한데로 이뤄지지 않았다. 선거 때 정책공약을 내 놨으니 당선 이후의 노인법지법률안개정에서부터 산악관광특별법제정까지 제 손으로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자꾸 생겨났다”며 “그래서 약간은 억울하다.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 것처럼 6촌지간의 관계로만 안호영 의원님을 보좌한 것이 아니라 국회보좌진임이 자랑스러운 전문직업인으로서 일해왔다는 점을 확실히 해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오랜 기간 동안 보좌진으로 경력을 쌓았고 전문성을 살려 이번 선거에서 자신의 고향 지역구에 출마한 안호영 의원을 도왔는데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면직처리된 것이 억울하다는 뜻이다.

송 기석, 정동영 의원의 친인척 채용으로 논란이 된 국민의당 역시 2일 논평을 통해 “송기석 의원은 형수 동생이 서울 길을 잘 알아 수행비서(운전기사)로, 정동영 의원은 20년간 함께 일한 부인의 7촌 조카를 채용한 것”이라며 “이들은 법적 친인척은 아님에도 국민의 요구와 정서는 법을 초월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의 엄격한 정서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초점은 ‘친인척 채용 금지’가 아니다

법 을 초월하는 국민정서’ 때문일까. 서영교 의원 파문 이후 정당은 하나같이 ‘친인척 채용 금지’를 내걸고 있다.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은 29일 국회의원의 배우자 및 4촌 이내 혈족과 인척의 보좌진 채용 금지와 선거사무장 및 후원회 회계책임자 선임을 금지하는 내용의 이른바 ‘국회의원 셀프 채용 금지3법’을 발의했다.

하지만 보좌관들은 초점이 달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보좌관 C씨는 “진짜 나쁜 건 지역유지나 후원 많이 하는 사람들 아들 딸 채용하는 것이다. 친인척 채용은 털면 드러나기라도 하지만, 이런 건 잘 나오지도 않는다”고 지적했다.

보 좌관 E씨는 “친인척 채용이 문제인 이유는 자질이 안 되는 사람에게 권한을 줬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제도 정비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씨는 “5급 비서관을 하려면 6급, 7급 혹은 그에 준하는 경력을 몇 년 이상 갖춰야 한다거나 4급은 또 몇 년 이상 일을 해야 한다는 근무기준을 두면 자연스럽게 친인척이 파고드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인턴은 없애버리거나 정규직 채용을 의무화하면 된다”며 “시스템으로 정비해야 되는 부분이지 ‘친인척은 아예 못한다’는 식의 접근에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보좌관 월급 갈취’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의원과 보좌관의 관계를 재정비하는 작업이 우선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좌진을 면직처리할 때 면직예고기간을 두는 방안이 대표 사례다. 의원이 보좌진을 해고할 경우 미리 통보해야한다는 것이다. 김관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4년 11월 19대 국회에서 면직처리 30일 전 서면으로 통지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임기만료로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