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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KBS를 봤네” 주어가 없으니 대통령 아니다?

“하필이면 KBS를 봤네” 주어가 없으니 대통령 아니다?

“목에 칼 대고 도와달라고? 협조 요청 아니라 협박”… 새누리당, “통상적인 업무” 정치공방으로 물타기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KBS 보도개입에 대해 야권은 청문회와 특별위원회 구성을 거론하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청문회를 거부하는 것은 물론 야당과 언론계의 문제제기를 ‘정쟁’으로 치부하며 버티기에 들어갔다. 새누리당의 보도개입 뭉개기 논리는 크게 다섯 가지다.

1. 고압적으로 소리 질러도 통상적 업무?

정 부여당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 때부터 이 전 수석의 보도개입이 ‘통상적 업무’라는 입장을 고집했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운영위 회의에서 “이정현 홍보수석이 뉴스를 보고 이야기했던 것은 홍보수석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협조(요청)을 했던 것 아닌가라고 추측한다”고 밝혔다.

KBS 앵커에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민경욱 새누리당 의원도 같은 자리에서 “본연의 업무수행을 했다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정현 의원이 오보를 바로잡기 위해 전화한 것일 뿐이라는 논리다. 민 의원은 “언론에서 오보가 발생할 경우 홍보수석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라고 물었고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바로잡기 위해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답했다.

이정현 의원 본인도 같은 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와 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거나 위기 상황이 있을 때 언론에 협조를 구하고 언론에 자료를 내는 게 제 역할”이라며 “분명한 사실이 있는데 다른 뉴스를 내보낸다면 언론사의 신뢰도가 문제가 되고 국민들이 다른 내용을 알게 된다. 제 입장에선 당연히 잘못됐다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나”고 밝혔다. 전날 “다 저의 불찰”이라고 말하던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정부여당이 입을 맞췄다는 의심이 가능하다.

관련기사 : “다 제 불찰”이라던 이정현, “홍보수석 역할” 입장 선회

오 보였기에 바로잡았을 뿐이라고 하지만 당시 언론 보도의 출처는 정부다. 이정현 의원과 김시곤 KBS 보도국장 간의 녹취록에도 이 전 수석이 “국방부 이 사람들이 용어를(잘못 썼다)”이라며 “용어를 통제가 아니라 순서대로 이렇게 들어간다는 얘기를 해야 되는데 이렇게 통제를 하고 못 들어가게 했다 그래버리니까 야당은 당연히 이걸 엄청 주장을 해버리지”라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 한 이정현 의원이 잘못된 보도를 바로잡는 목적으로만 김시곤 전 국장에게 전화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 잘못된 보도를 고쳐달라고 한 건 2014년 4월30일 전화통화에서 말한 내용인데, 이 의원은 앞서 2014년 4월21일 김시곤 전 국장에게 전화해 “해경을 비판하지 말라”고 윽박질렀기 때문이다. 이 의원은 보도 내용이 잘못됐다는 점을 문제삼은 게 아니라 기사의 전반적인 방향을 문제 삼았고 5분 넘게 김시곤 전 국장이 반박을 하지 못할 정도로 거세게 몰아붙였다.

2. 녹취록 전문 다 나왔는데 맥락을 보라?

녹취록 전문까지 다 나왔는데도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보도개입이 아니라는 주장도 등장했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4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 서 “녹취록을 자세히 보면 이정현 홍보수석이 부탁을 하는데 김시곤 보도국장이 안 된다고 잘라말하는 부분이 있다. 그 뒤에 이정현 홍보수석이 ‘제발 부탁한다, 정정 보도된다면 나한테 전화 한 통 부탁한다’고 이런 말로 읍소를 한다”며 “도와주십시오라는 말을 7, 8회 연거푸 한다”고 말했다.

도와달라고 했으니 보도개입이 아니라 읍소라는 논리다. 미방위 소속 김성수 더민주 의원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칼을 목에 들이대고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협조요청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지적했다.

이 정현 의원이 한 말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김정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1일 운영위 회의에서 이 의원이 다급한 나머지 통화에서 주요 단어를 생략했을 것이라며 “(사실과 다른 부분을) ‘좀 바꿔주면 안 될까’, (사실과 다른 부분을) ‘대체해주던지’라고 읍소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라는 말을 너무 급해서 생략한 채 말했다는 것이다.

김 원내대변인은 “홍보수석으로서 몇 개 단어를 생략하고 사실관계를 제대로 알리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원종 실장은 “녹취록을 보면 (보도가) 잘못나간 것이 안타까웠다는 것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고 화답했다.

3. 보도개입 비판하면 정쟁?

‘문 제제기하면 정쟁’ 혹은 ‘정치공세’라는 논리도 반복됐다. 이런 주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이정현 의원의 보도개입에 대한 청문회를 촉구하면서 등장했다. 지상욱 새누리당 대변인은 3일 구두 논평에서 “야당은 사안만 터지면 청문회 타령을 한다. ‘청문회 지상주의’ 아니냐”며 “야당의 청문회 개최 주장은 무책임한 정치공세”라고 말했다.

민경욱 새누리당 원내대변인 역시 같은 날 구두논평에서 “홍보수석의 직군에 따른 당연한 조치가 논란으로 비화돼선 안 될 것”이라며 “야당은 (정치)공세를 위한 청문회 공세는 자제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민 대변인은 앞서 1일 국회 운영위 회의에서도 “이 일이 더 이상 정쟁이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보도개입에 대한 문제제기를 정쟁으로 치부하는 태도를 보였다.


4. 주어 없으니 대통령은 개입 안 했다?

야 당이 청문회까지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보도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의원와 김시곤 전 국장 간의 녹취록에는 이 전 의원이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님이) KBS를 오늘 봤네. 한번만 도와주시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뉴스를 보고 보도개입을 지시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자 정부여당은 박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김도읍 원내수석부대표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녹취록을 보면 ‘대통령이 하필이면 봤네’라는 말이 아니고 대통령은 괄호가 돼 있다. '하필이면 봤네'라는 말에 대통령이 괄호가 돼 있더라”라며 “녹취록 전문을 한번 보시면 대통령이라는 언급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주어가 없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녹취록을 보면 그렇게 돼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같은 인터뷰에서 “그러면 이정현 수석 부인이 봤다는 얘기겠나? 대통령이 봤으니까 황급히 전화를 한 것”이라며 “그 내용(녹취록)을 보면 11시 거라도 빼고 나중에 다루라고 얘기가 나온다. 당장 텔레비전 9시 뉴스를 봤던 부분에 대한 심기보호 차원에서 그렇게 다급하게 전화를 한 거라고 보여진다”고 반박했다.

정 부도 박근혜 대통령은 관계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1일 운영위 회의에서 “(이정현 의원)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도 1일 기자들에게 “두 사람 사이에서 나눈 대화에 대해 제가 얘기를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5. 수사 중이니 아무 말도 못한다?

수 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언급을 피하는 것도 뭉개기 수법의 하나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5일 대정부질의에서 “고발이 있고 검찰에서 당연히 철저한 조사를 할 수 있기에 수사 결과를 기다려달라”며 “사실 판단이 어렵다.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도 운영위 회의에서 “그 사건은 고발되어 있는 사건이다. 확실히 잘못됐다 안 됐다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김성수 더민주 의원은 “정부여당은 검찰 수사한다니 기다리라는 입장인데 현실적으로 검찰 수사를 믿기 어렵지 않나. 그래서 청문회를 열어 지금 드러난 내용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