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고양이’ 살 빼려면 ‘살찐고양이법’으로 안 된다
[해설] 정책 아닌 의제‧운동에 가까운 심상정의 ‘최고임금법’… 소득재분배 실효성 없어, 최저임금 견인 효과도 의문
‘사이다 법’.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최근 발의한 ‘최고임금법’에 붙은 호칭이다. ‘사이다’란 속이 시원해지는 사건, 발언을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모두가 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주목할 때 최고임금을 제한하자는 아이디어에 통쾌함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최고임금법을 꼼꼼히 따져보면 허점이 많다.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지난달 28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고임금법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법인에 근무하는 임원 및 직원의 최고임금 상한을 최저임금의 30배(2016년 기준 약 4억5000만 원)를 넘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최고임금법에 따르면 법인은 최고임금액 이상을 지급받는 자의 명단을 국세청장에게 제출해야 하며 최고임금액을 초과하는 임금을 수수한 개인과 법인에게는 부담금 및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 이로 인해 거둬진 수입으로 사회연대기금을 만들어 최저임금자, 저소득층, 비정규직 노동자 지원 사업에 사용한다.
최고임금법의 취지는 소득재분배와 양극화 해소다. 심 대표가 발의한 최고임금법 1조는 “이 법은 법원 임원 등의 과도한 임금 등을 제한함으로써 소득재분배의 효과를 제고하고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하여 소득재분배를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임금 격차가 극심한 것은 사실이다. 2014년 기준으로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받은 보수는 216억 원이고 한화 김승연 회장은 178억 원이다. 216억 원이면 전체 노동자 평균 임금의 806배, 최저임금의 1650배에 달한다.
심
상정 대표는 28일 기자회견에서 “2014년 기준으로 10대 그룹 상장사 78곳의 경영자 보수는 일반직원의 35배, 최저임금의
무려 180배다. 323개 공기업 가운데 이사장의 연봉이 1억5000만 원을 초과하는 곳도 무려 130곳”이라며 “임금소득의
격차가 불평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OECD 국가들에서 상위 10%와 하위 10% 사이 평균 격차는 5~7배 정도인데
우리나라는 11개 넘는다”고 설명했다.
최고임금법이 ‘살찐 고양이(fat cat)법’이라 불리는 이유다. 살찐
고양이는 배부른 자본가, 기업인을 조롱할 때 쓰는 말로 2008년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금융회사 임원들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보수
및 상여금을 받으면서 이들의 임금을 제한해야 한다는 ‘살찐 고양이법’ 논의가 활성화됐다.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좌파당의 장
뤽 멜랑숑 후보가 CEO 임금이 중간 소득의 20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자고 제안했고 2015년 영국 노동당 당대표 제레미 코빈이
당대표 경선과정에서 최고임금법을 제안하는 등 해외에서는 이미 논의가 활발하다.
하지만 최고임금을 제한한다고 소득
재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우선 이 법을 통해 소득재분배에 활용할 재원을 걷으려면 기업이
최고임금을 초과하는 임금을 임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즉 최고임금법은 목적(소득재분배에 필요한 재원 확보)을 위해
규제대상자(기업)가 법을 어길 것을 기대해야 하는 모순적인 법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과징금을 내면서 임원 보수를
높게 책정하기보다는 임원활동비 등 회사의 회계 계정으로 비공식적인 자금을 만들어 법을 피해갈 가능성이 높다.
최고임
금법이 소득재분배에 기여할 것이라는 또 다른 근거는 ‘최저임금’과의 연동이다.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로 제한함으로써
경영계 입장에서 최고임금을 올리고 싶으면 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찬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영계를 대변하는 사측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이 매년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런 설계는 그럴 듯해 보인다.
하지만 배당, 스톡옵션 등
최고임금을 피해갈 우회로가 있는 상황에서 고연봉의 임원들이 최저임금을 올리는 데 얼마나 더 관심을 갖게 될 지는 의문이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해 11월 16일 열린 최고임금법 토론회에서 “턱없이 많이 가져가는 고위임원의 연봉을 줄여서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고위임원의 연봉을 줄인다 해도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이 올라간다는 보장이 없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차장 정책특보는 미디어오늘과 주고 받은 메시지를 통해 “최대임금 초과분 회수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업이 그 이상 지불하여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방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이라며 “문제는 ‘30배’라는 숫자의
현실성이다. 월 4억5000만 원이 최고임금 상한선인데 한국에서 몇 명이나 이에 해당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상
헌 특보는 또한 “해당자가 대부분 CEO일 것이다. 이들이 자신의 임금을 높이기 위해 최저임금을 인상하는데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라며 “최저임금 인상용으로 최고임금을 생각하고 있다면 비율을 더 낮추어야 할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이 제안에 대한
반대도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 ⓒ정의당 |
하 지만 경제민주화 조항은 사문화된 규정이나 다름없어 이를 관철시키려면 강력한 정치적 압박이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임원의 보수는 회사와 개인 간의 계약에 대한 것이며 이러한 ‘계약자유의 원칙’은 근대 민법의 기본 원칙이다. 최고임금제를 도입하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인 ‘계약자유의 원칙’을 넘어설 법적 정당성을 갖춰야 한다. 최저임금법 같이 최저한을 설정하는 것은 ‘기본권 보장’의 측면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지만 임금 최고치를 설정하는 것은 법적 정당성을 얻기 힘들 수 있다.
임원 보수를 제한하는 해외 법안들도 대부분 보수 자체를 규제하기보다 보수 결정과정을 규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0년 미국에서 도입된 ‘도드 프랭크법’은 임원 보수의 결정권한을 이사회가 아닌 독립적인 보상위원회에 맡기도록 하는 내용이다. 2013년 스위스는 기업 임원의 보수를 주주가 결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규제안을 국민투표에 붙여 67.9%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이 런 이유로 소득재분배를 위해 증세나 조세제도 개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노동전문 변호사는 “최고임금은 위헌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데, 일단 최고임금을 정하는 기준부터가 문제다. 근로자 중에서도 정말 뛰어나서 인센티브나 상여금으로 10억 원, 100억 원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이 사람들 임금까지 제한하는 것은 소득재분배와 거리가 있어 보인다”며 “재벌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거라면 배당수익이나 소득세율을 강화하는 게 맞다. 법인세를 올리는 문제, 조세정의를 바로잡는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최고임금법은 실제 소득재분배를 이뤄낼 효율적인 정책이라기보다 소득재분배와 불평등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의제로 봐야 한다. 이 법을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김정진 변호사는 지난해 11월16일 정의당이 주최한 최고임금법 토론회에서 “소득격차 완화는 소득세, 법인세 및 복지지출 강화로 장기적으로 달성해야 하나 현재 소득세, 법인세 확대는 교착상태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단기적으로 이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최고임금제는 조세제도 개편이나 증세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대안이라고 볼 수 있다.
김 변호사는 또한 “이에 반해 보수제한은 대상자가 비교적 소수이며 한국의 부가 집중된 재벌대기업 및 그 종사자 임원에 대한 직접적 규제로 그 효과가 가시적이고 직접적”이라며 “심각한 소득격차 문제에 대해 여론의 환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소득격차 완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심상정 대표 역시 지난달 30일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최고임금법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의당의 정책패키지 중 하나다. 앞으로도 정의로운 사회를 위한 정책과 제도개선 방안을 계속해서 제출할 것”이라며 “최고임금법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실제 입법으로 승화한 범국민적 입법촉구 운동을 벌여나갈 것이다. 최고임금 도입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운동본부를 발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임금법’을 “살찐 고양이의 살을 빼야 한다”는 문제제기를 확신시키는 데 활용할 것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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