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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주체로서의 20대는 가능한가

정치적 주체로서의 20대는 가능한가


정문정 기자 moon@naeil.com 사진 양태훈 학생리포터

지난달, 19대 총선 결과로 야권의 패배가 확정되자 SNS에서는 20대 투표율이 27%였다는 소식이 재빠르게 확산됐다. 그 중에서도 20대 여성의 투표율은 8%였다는 말까지 돌았다. ‘등록금 비싸다고 징징거리지 말아라’ ‘개념없는 20대들, 부끄럽다’는 내용의 말이 덧붙여졌다. 이후 방송사의 출구조사 추정치가 서울 지역 20대 투표율은 64%이고, 전국 20대 평균 투표율은 45%라는 결과가 나오자 이십대는 다시 영웅으로 호명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에 20대의 투표율이 큰 힘을 보태고, 등록금 정국 등으로 정치에 관심을 갖는 20대가 많아지면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기성 정당은 저마다 청년비례대표를 내보냈고, 20대를 주축으로 청년당이 창당하기도 했다. 총선이 끝나고, 저마다의 해석이 분분하지만 이 과정에서 트램플린에 태워져 상처 입은 20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거의 없다. 그래서 청년 문제와 정치에 대해 꾸준히 발언해오고 최근에 관련 책을 출간한 진보 진영 논객 박연주씨와 조윤호씨를 만났다.

어떻게 책을 쓰게 됐나.
박연주(이하 박)
2003년부터 블로그를 했다. 책 읽고 서평을 썼는데, 출판사에서 서평집을 내자고 제안해 왔고, 20대가 가기 전에 20대에 대한 이야기를 서평과 함께 써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조윤호(이하 조) <한겨레신문>에서 운영하는 ‘훅’에서 2010년부터 20대와 정치를 주된 주제로 글을 썼다. 출판사에서 20대 문제가 한국 사회의 중요한 여러 문제와 연관되어 있으니 20대로서 견해를 써보라고 해서 책을 내게 됐다.


책 제목이 긍정적이다. ‘잘한다 청춘’이나 ‘개념찬 청춘’이라고 지은 이유는?
기성세대는 20대에 대해 ‘88만원 세대’라거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만 한다. 잘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도 나름 괜찮은 삶이라고 응원하고 싶었다.
어른들이 말하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만 넘친다. 얼마 전에도 총선 결과를 보고 20대 개새끼론이 나왔는데, 투표하면 개념 있고 투표 안하면 개새끼라고 말하는 반응들이 정형화되어 있다. 진짜 개념 차다는 건 이런거다, 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지금 20대는 원자화되어 있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건 우리가 특별히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맞물려 적응한 거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을 바꾸는 문제 중에는 공동으로 대항해야만 하는 부분이 있으니 함께 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십대가 이십대의 이야기를 하는 책을 냈다. 책을 통해 어떤 변화를 기대하나.
20대를 위로해주면서 불쌍하다고 하는 거, 지겹다. 나처럼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이야기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높이 날면 자세히는 못 보지만, 낮게 날면 대신 자세히 볼 수 있지 않나.
청춘 담론이 한쪽으로만 치우쳐져 있으니까 나도 이십대가 스스로 이십대에 이야기 하는 책이 계속 많아져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어른들이 우리에게 좀 너그러워졌으면 좋겠고. 고등학교 때까지 양육되다시피 자랐는데 뭐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겠나? 지금 3, 40대도 생각해보면 우리 때 그랬을 텐데.

" 이십대
투표율을
가지고
욕하는 건
예전에도
그랬다
희생양을
찾으려고
하는 거다
20대가
제일
만만하니까"

청년 정치


조윤호씨는 진보신당 당원이고, 박연주씨는 이번에 민주통합당 청년 비례대표에 출마했다. 19대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보나.
이십대 투표율을 가지고 욕하는 건 예전에도 그랬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는데, 거기에 방해되는 게 있으면 희생양을 찾으려고 하는 거다. 20대가 제일 만만하니까.
투표 안 하는 것도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투표를 안 하면 무개념이라고 불린다. 또, 모든 20대가 야당을 지지하는 건 아닌데도, 20대 투표율이 높으면 야당이 승리한다고 말한다. 프레임을 정하고 그 안에 밀어 넣는 거다.
미선이와 효순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시위하던 10대들이 지금 투표권을 가진 20대로 성장했다. 그때의 애들이 20대가 되면서 갑자기 이상해졌나? 사회적이고 경제적 조건을 살펴서 분석할 생각을 안하고 책임만 떠넘긴다.


이번 총선은 SNS의 한계도 명확히 보여줬다. 트위터로 소통이 된다고 믿는 건 지나치게 순진한 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트위터를 많이 하지만 트위터랑 현실이랑 혼동하면 안된다. 내 타임라인만 보면 진보신당이 집권 여당이다.(웃음) 어떤 사안이 터지면 떠드는 사람만 떠드니까 그들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인터넷 상에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가 훨씬 중요한 거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지 트위터가 소통의 도구인 양 생각하면 안된다. 트위터는 홍보에는 좋은 수단이지만 소통이라는 개념은 맞지 않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진행했던 청년비례대표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장기적인 프로젝트는 못된다. 확실히 관심을 끄는 차원에서도 미흡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떠들썩하게 한다고 했지만 정작 국민들은 이준석과 손수조만 안다. 새누리당은 손수조는 확실히 밀어주고 이준석에게는 진짜 권한을 줬으니까.
흥행이 안 된 부분도 실제로 있다. 하지만 희망도 있었다. 나는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에 지원하면서 나 말고도 지원한 사람이 370명이 넘기에 놀랐다. 특히 여성들이 많았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간다면 20대의 정치 참여가 확대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20대 국회의원이 국회에 10명만 들어가도 얼마나 힘이 세질까? 축제처럼 같이 참여하는 문화가 커질 것도 같다는 생각을 이번 총선을 통해서 했다.


이런 질문도 해보자. 20대가 정치 참여를 왜 꼭 해야 하나?
20대 만이 20대 문제를 풀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당사자이기 때문에 다른 세대가 디테일한 부분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분명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대가 적극적으로 정치참여권을 요구해야 한다. 한국은 부재자 투표도 번거롭고 이십대가 잘 모르는 곳에 투표소가 있고, 투표하는 게 굉장히 번거로운 일이 돼버렸다. 부재자 투표소를 늘린다든지, 만 25세 이상만 정치인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을 수정하는 등의 방식을 통한 정치참여권을 주장해야 한다. 국회에선 청소년 위원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도 금방 없앤다. 청년 정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잘 안 하고, 거대 담론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우리 생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한다. 그러려면 20대가 참여해야지.


그렇다면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20대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보나.
교육권 문제, 주거권 문제, 노동권 이 세 가지 문제다. 등록금이 너무 비싸서 돈이 없으면 교육을 받기 힘들고, 월세가 너무 비싸서 20대가 도저히 독립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힘들게 졸업을 해도 취업이 안 된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20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맞다. 반값등록금을 세대이기주의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그런데 사실, 반값등록금을 시행해도 이십대가 혜택 보는 건 별로 없다. 등록금은 어차피 부모님이 주니까. 생활비 정도는 대부분 자기가 돈을 벌어 해결하지만 등록금은 도저히 자기가 해결할 수가 없다. 이건 전 세대를 아우르는 문제다.

"우릴
보고
가볍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즐길 줄
아는 거다"

20대의 결


기성세대는 20대를 궁금해한다. 20대는 다르다고 생각은 하는데 뭐가 다른지 전혀 모른다.
20대의 연애와 관련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편집부에서 “이건 20대 이야기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실을 수 없다고 하기에 어이가 없었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20대 모습이라는 게 있는 거지. 내가 거기에 동의하지 않으니까 ‘이건 아니다’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20대는 하나로 정의가 안 된다. 청년비례대표 후보자가 나올 때마다 ‘이십대를 대표 못한다’ 그러는데 누구를 데려다 놔도 대표 못한다. 20대 안에 많은 결이 있다는 건 분명히 인식하고 가야 한다. 물론 20대가 공유하는 것도 분명 있다. 촛불집회와 월드컵을 경험하면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양식의 민족주의가 있다. 민족과 국가를 위해 나를 바치는 게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그 자체를 긍정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 있고. 하지만 동일한 경험을 하더라도 구체적인 부분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결을 생각 안 하니까 20대만 자꾸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놈) 되는 거다.


그래도 확실히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생활문화나 인식이 다른 부분도 있다.
네트워크가 가능하다. 재밌는 거다 싶으면 잘 뭉친다. 근데 조직으로 하긴 힘들다. 생각하는 게 너무 다르니까. 이 안건에 대해서 수평적으로 이야기하자고 하면 굉장히 진행이 빨리 되고, 뭔가를 시키면 잘 안 하지만 뭘 할까 물으면 아이디어를 내서 재밌게 한다. 수평적 조직관이 익숙한 세대다. 20대는 개개인의 특성과 취향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강요를 잘 안한다. 학생운동을 하는 모습만 봐도, 윗세대는 우릴 보고 ‘가볍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즐길 줄 아는 거다. 상황이 심각한 것도 안다. 그런데 심각하게 해봤자 뭐가 달라지나? 강정마을에 가면 20대 친구들은 뛰어다니고 음악 듣고 게임하면서 재밌게 논다. 그러다 시위할 때는 또 모이고. 그런데, 그래서 더 길게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거다.
2008년 촛불집회 때도 처음에 경찰이 진압 못했다. 춤추고 노래하는 데 잡아갈 수 없으니까. 예전에는 진압하려고 하면 욕하고 싸우니까 그냥 잡아가면 됐지만. 지도부 같은 개념도 없다. 누가 해산하라고 해도 안 한다. 자기가 가고 싶어야만 간다. 이제는 대의도 중요하지만 동참하고, 그걸 보여주는 방식도 즐긴다. 대의를 소비하는 방식이 다른거다.


분명 인식 차가 크다. 그런 차이가 확연히 드러났던 게, 김예슬 선언에서다. 그를 보면서 30대 이상 세대는 오히려 우호적이었는데 20대는 대부분 시큰둥하거나 비판하더라.
우선 ‘대자보’라는 방식이 어른들 입맛에 맞았다. 향수를 느끼게 하는. 김예슬 씨 같은 경우는 크게 두 가지 인 것 같다. ‘나도 떠나고 싶다’하는 부러움과 나는 못 떠나니까, ‘운동권 스펙이다’라는 비틀어 보는 얄미움 같은 거.
김예슬은 일단 학벌이 화려하니까 떴다. 나는 지방대를 나왔는데 지방대는 휴학했다가 학교에 돌아오는 비율이 50퍼센트가 안 된다. 자퇴는 익숙한 문제인 거다. 지방대 애들은 그 문제를 일상적으로 봤는데 김예슬 자퇴만 뜨니까 상실감, 박탈감을 느낀다.
비슷한 맥락에서 88만원 세대라는 담론 자체도 서울 수도권 대학생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다. 지방에 있는 대학생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 ‘원래 그런 거 몰랐냐?’ 한다. 예전에는 수도권 대학을 나오면 취업이 잘됐는데 이제는 안 되니까 문제가 되는 거다. 지방의 가난한 대학생은 원래부터 88만원 세대였는데. 김예슬 사건처럼 같은 20대라도 다른 결이 있는데 그걸 포착 못 하는 거다.


총선 결과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 수도권의 대학생과 지방의 대학생의 투표율 차, SNS 이용 비율의 차가 이미 너무 크게 벌어졌다는 거였다.
사회적 목소리 자체가 서울 중심적으로만 흘러간다. <나는꼼수다>도 지방에 있는 친구들은 잘 모른다. 서울에서는 진보적 목소리가 크고, 총선 결과도 그렇게 나왔는데 서울은 개발이 대부분 끝났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서울은 이제 삶의 질을 추구하는 단계거든. 그런데 지방에선 일단 사는 게 해결이 안 되고 미래가 전혀 안 보이니까 그럴 수가 없다. 보수 꼴통이라 그런 게 아니고. 점차 심해지는 지방과 서울의 대학생의 정보 격차, 인식 격차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대학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