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둘째 주 좋은 기사 솎아보기
1. “친구들의 빈자리, 그런 건 안 물어보더라고요”
‘산 사람은 살아야지.’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일각의 목소리다.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되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제 자기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진짜 ‘산 사람’들은 살고 있을까, 살 수 있을까? EBS 다큐프라임이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네 명의 스무 살을 만났다.
“친구들 문제가 가장 크죠. 맨날 ‘사고가 어땠냐’만 물어보고 ‘친구들의 빈자리가 크지 않냐’ 그런 부분은 안 물어보고, 다 괜찮은 줄 알고 계시더라고요.”
세월호에서 마지막으로 탈출한 단원고 졸업생 박준혁 씨의 말이다. 또 다른 생존자 이종범 씨는 사망한 친구 재강이의 사진을 항상 지갑에 넣고 다닌다. “혼자만 나왔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국가적 비극’을 넘어 친구들을 잃은 ‘빈자리’로 인식한다. 그래도 그들은 도망치지 않는다. 생존자 장애진 씨는 사고 이후 응급구조과에 진학했다.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세월호 리본은 팔에 문신으로 남아 있다. 생존자들은 대학생활을 하고 운전면허를 따는 스무 살의 일상적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또 다른 시간을 사라진 친구들과 공유하고 있다.
● EBS 다큐프라임
2. 분노는 최순실에서 세월호 7시간으로 향했다
박근혜에 대한 탄핵 가결은 분노한 촛불 민심으로 가능했다. 촛불 민심은 어떻게 두 달 가까이 중심을 지킬 수 있었을까. 배영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가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SNS에 나타난 광장의 소리를 분석했다. 탄핵에 대한 요구는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시작됐지만, 분노가 이어진 계기는 세월호 7시간이었다.
10월 13일부터 탄핵 가결 후 7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월 10일까지 SNS를 분석한 결과, 초기에는 하야에 대한 언급이 탄핵보다 많았다. 11월 19일 4차 촛불집회 이후 탄핵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같은 시기에 볼 수 있는 특징적 현상은 ‘세월호’, ‘7시간’에 대한 언급도 급증했다는 것이다
‘탄핵’과 함께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연관어 중 가장 두드러진 단어 역시 ‘세월호’였다. 직접적인 탄핵 요건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정농단이나 재벌과의 관계에 대한 언급보다 ‘세월호’에 대한 언급이 지속적으로 비중 있게 나타난 셈이다. 야당이 새누리당의 요구에도 세월호 7시간을 탄핵소추안에서 빼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 한국일보
3. 자기 자신을 구중궁궐에 가둔, ‘왕’ 박근혜
성난 촛불 민심은 청와대로 향했다. 촛불은 청와대 100m 앞까지 나갔고, 인간 띠는 청와대를 에워쌌다. 청와대는 그렇게 성난 민심에 귀 닫은 ‘불통’의 상징이 됐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박근혜가 있었다. 경향신문이 박근혜의 집권 2년 차 한 해 공식 일정을 전수조사한 결과 박근혜 대통령은 공식 일정이 없는 날이 129일에 달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64일)보다 2배 이상 많았고, 1년의 3분의 1을 관저에 머물렀다.
전속 사진사들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줬던 여타 대통령과 달리, 박근혜의 일상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계산된 연출이었다. 연출되지 않은 사진을 찍으면 사진을 지우라고 기자들을 압박했고, 외장 플래시로 사진을 찍으면 ‘대통령이 싫어한다’는 이유를 대며 괴롭혔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는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서는 조직도는 물론 각 부서 담당자의 내선 번호조차 공유되지 않았다.
같은 청와대 직원들끼리도 서로를 잘 알지 못한다. 각 비서관실 간의 교류가 사라져서 다른 실 소속 사람들은 복도에서 마주쳐도 그냥 같은 청와대 직원이려니 짐작만 할 뿐 어색하게 지나친다. 인사가 청와대 직원들도 잘 모르게,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자기 스스로 왕이 되어 구중궁궐 청와대 안에 자신을 은폐했고, 간신배들은 국정을 제 맘대로 농락했다.
● 경향신문
4. 아직 끝나지 않은 투쟁, ‘사드’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라는 파도에 묻힌 수많은 쟁점이 있다. 성주와 김천 주민들의 ‘사드 반대 투쟁’이 대표적인 사례다. 촛불은 광화문보다 먼저, 성주와 김천에도 존재했다. 대구MBC가 사드 배치 결정 이후에도 이어지는 성주 군민과 김천 시민, 원불교 교단까지 합세한 5개월간의 사드 반대 투쟁을 집중 조명했다.
7월 중순부터 5개월 간 성주와 김천 지역을 중심으로 사드 반대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5개월 간 성주와 김천 시민들은 ‘국가안보 사안에 반대하는 빨갱이’라는 도식을 스스로 깨뜨렸다. 지역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뛰어넘어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는 안 된다’는 구호를 체득했다.
사드는 ‘국가안보’라는 답만 강요하고 있을 뿐 수많은 질문을 해소하지 못했다. 검증이 더 필요한 무기라는 점, 재검토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깨고 부지를 변경했다는 점,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중앙언론이 말하지 않으면, 지역 언론이라도 계속 말해야 한다.
● 대구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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