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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사상초유 용역 등장 편집국 봉쇄 파문

한국일보, 사상초유 용역 등장 편집국 봉쇄 파문

전산시스템마저 폐쇄, “최악의 신문 발행…회장이 자신의 목 옥죄”


한국일보 사측이 용역경비를 동원해 기자들을 쫓아내고 편집국을 봉쇄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노조의 장재구 회장 검찰 고발과 편집국장 경질을 둘러싼 편집권 갈등으로 이어졌던 노사 간의 대립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일보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은 15일 오후 6시 20분 경 박진열 사장, 이진희 부사장, 편집국 간부와 함께 한국일보 편집국에 들어왔다. 이 과정에서 약 15명의 외부 용역이 동원됐고 편집국에 있던 기자 두 명은 강제로 편집국 밖으로 쫓겨났다. 당시 편집국에는 당직을 서던 사진부 기자 1명과 개인적 용무 때문에 편집국을 들렀던 경제부장이 있었다고 한다. 
 
사측은 편집국에 있던 기자들에게 ‘근로제공 확약서’라는 문서를 보여주며 이 문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편집국에 들어갈 수 없다며 서명을 요구했다. 근로제공 확약서에는 ‘본인은 회사의 사규를 준수하고 회사에서 임명한 편집국장(직무대행 포함) 및 부서장의 지휘에 따라 근로를 제공할 것임을 확약합니다. 만약 이를 위반할 경우 퇴거요구 등 회사의 지시에 즉시 따르겠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 사측이 제시한 근로제공 확약서
ⓒ한국일보
 

기자들이 서명을 거부하자 사측은 15층 편집국 출입문을 봉쇄했고, 15층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를 수동 조작해 엘리베이터 4대 중 1대만 가동되게 만들었다. 15층 비상계단과 신관과 구관 사이를 연결하는 연결통로도 폐쇄했다.
 
비대위는 사측이 전산시스템 '한국일보 기사집배신'을 폐쇄하고 기자들의 접속아이디도 삭제했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기사집배신은 신문지면 제작을 위해 기사를 작성하고 송고하는 전산시스템이다. 현재 한국일보 기자가 집배신에 접속하면 "로그인 계정***은 퇴사한 사람입니다. 로그인 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한국일보
 
 
장재구 회장이 편집국 폐쇄를 감행한 것에 대해 별도의 인원을 꾸려 신문을 제작하려는 회장의 구상이 실행에 옮겨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비대위는 지난 7일 창간기념일 이후 장재구 회장이 ‘회장 뜻에 동참하겠다는 사람과 퇴직 사우 등을 이용해 따로 신문을 제작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한 바 있다. 당시 사측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회장의 구상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최진주 비대위 부위원장은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우리가 파업을 하거나 제작거부를 하지 않으니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 같다"며 "회장은 한국일보를 제대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다. 최소한의 인원으로 명맥만 유지하며 신문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쁜 수를 뒀다고 본다. 회장이 스스로 자신의 목을 죄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16일 오전 9시 사옥 1층에서 총회를 열었다. 총회를 열어 노조가 사측의 편집국 봉쇄 조치에 어떻게 대응할지 결정한다. 노조는 편집국 폐쇄 및 기자 아이디 삭제 조치에 대해 '사원 지위 확인 가처분 신청' 등을 내는 등 법적 대응을 하고, 장재구 회장의 배임 혐의에 대해 검찰에 추가고발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일보 사측은 이번 사태에 대해 ‘편집국 정상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한국일보 박진열 사장은 “회사는 편집국을 폐쇄하지 않았다”며 “인사 발령에도 불구하고 편집국을 장악하며 정상제작을 방해해온 전 편집국 간부 같은 외부 인사의 출입을 선별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박 사장은 “정상적인 신문 제작에 동참하겠다는 편집국 간부나 기자들은 누구나 편집국 출입”을 할 수 있고 “회사는 충돌을 막기 위해 남대문경찰서에 10명의 시설경비요원을 사전 신고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한편 편집국 봉쇄 사태에 따라 당장 17일 조간신문이 정상적으로 발행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진주 부위원장은 "다른 기사를 대충 베껴서 적은 면수로 발행하려고 하는 것 같다. 거기다 편집인력 확보를 못한 걸로 알고 있다. 내일 최악의 신문이 발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용역들이 가로막고 선 한국일보 편집국 앞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