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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영화. 문학 외

부당거래의 갑과 을은 누구인가

 


부당거래 (2010)

The Unjust 
8.6
감독
류승완
출연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 천호진, 마동석
정보
범죄, 드라마 | 한국 | 119 분 | 201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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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래간만에 영화관에서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인터넷에 올라온 평들을 살펴보았는데, 대체로 ‘재미있었으나 보고 나니 씁쓸했다.’는 것이었다. 경찰과 검사, 그리고 스폰서 역할을 하는 기업, 언론까지 엮인 그들 사이의 ‘거래’는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 권력층의 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부당 거래’는 누구와 누구 사이에서 이루어졌는가? 즉 이 거래의 갑과 을은 누구인가? 겉으로 보기에 이 거래의 갑과 을은 광역수사대 최철기와 경찰 상부, 검사 주양과 스폰서 해동 장석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당 거래는 그들 전체를 둘러싼 구조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즉 이 거래의 갑과 을은 특권층과 이 특권층에게 권력을 맡긴 비특권층이다.

경찰은 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검찰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공익을 위하여 범죄자를 수사, 처벌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즉 그들이 가진 권력, 그리고 그들이 누리는 사회적 명예와 특권은 철저히 공익을 위해 사용하라는 의미에서 부여된 것이다. 시민들은 경찰과 검찰의 존재를 믿고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 거래는 매우 부당하게 깨어진다. 공정해야 할 검찰은 스폰서의 지원을 받으며 공익이 아닌 사익을 위해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범인을 잡아야 할 경찰은 실적과 더 높은 권력에 대한 충성을 위해 범인을 만들어낸다.

한국에서 정치가 사유되는 방식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는 투표를 통해 우리의 이익을 대변해 줄 대표자를 뽑고, 우리의 권력을 그들에게 양도한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정치의 핵심은 이 ‘대표성’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정치란 의석을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한 권력투쟁과 이를 위한 음모나 모략, 사익을 추구하다가 쇠고랑을 차는 이들의 모습이다. 이 매우 부당한 거래는 대책 없이 지속되는 중이다.

이 부당한 거래의 최대 피해자는 결국 자신의 권력을 다른 이에게 양도, 위임해주고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게다가 그 부당한 모습을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반 시민들이다. 영화 첫부분과 마지막 부분에서 신문을 든 채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 시민들, 여중생 살인사건과 범인 이동석의 체포, 검사 주양의 구속을 TV를 통해 바라보는 그 시민들이다. 최철기(황정민 역)는 살해당했으나 이 대국민 조작을 주도한 경찰 상부는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이 연극을 계속 수행할 것이다. 해동 장석구(유해진 역)와 태경 김양수는 모두 살해당했으나, 또다른 장석구와 또다른 김양수는 여전히 검찰의 스폰서 노릇을 하며 부당한 방법으로 건물 입찰권을 따낼 것이다. 검사 주양(류승범 역)은 비리 혐의로 구속되었으나 증거 불충분이나 혐의 없음으로 곧 풀려나거나 가벼운 징계를 받은 채 돌아와 다시 대기업으로부터 후원(?)을 받으며 대기업의 비리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가할 것이다. 그리고 설사 주양이 계속 감옥에 갇혀 있는다해도 이 부당거래는 멈추지 않는다. 이 부당거래는 구조의 차원에서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최철기가 없어도 장석구가 없어도 주양이 없어도 지속된다. 이 역겨운 작태를 언론을 통해 계속 지켜보면서 그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밖에 없는, 그리고 자신의 자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 권력층으로 도약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일반 시민들이야말로 이 거래의 부당함이 낳은 최대의 피해자들이다.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