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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공성’ 간데없고 ‘환자 불편’만 나부껴

‘의료공공성’ 간데없고 ‘환자 불편’만 나부껴 ]

[기자수첩] 서울대병원 노조 6년 만에 파업, 본질 아닌 현상만 전하는 언론들


24일 주요 아침신문과 방송뉴스는 서울대병원의 파업소식을 다뤘다. 23일 오전 5시부터 민주노총 의료연대지부 서울대병원분회 조합원들이 파업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노조는 △의사성과급 폐지 및 적정의료시간 보장 △비정규직 정규화 및 병원 인력 충원 △임금 인상(13.7%) △ 어린이환자 식사 직영 등을 요구했다. (관련기사 : <“15분 동안 환자 13명, 달랑 1분 진료하는 서울대병원”>

대다수 언론은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발생한 ‘현상’을 스케치했다. 노조 조합원들이 서울대병원 1층 로비 한 편에서 파업 집회를 벌이면서 병원 로비가 소란스럽고 북적거렸다는 소식과, 400여명의 조합원들이 일손을 놓게 돼 환자들이 불편을 겪었다는 소식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파업으로 인해 환자들이 불안해한다는 소식도 전했다.

서울대병원 노조 전면 파업…일부 환자 불편”(KBS)
“서울대병원 노조 파업 이틀째…환자 불편 우려”(SBS)
'서울대병원 파업' 노사 입장차에 환자만 불편”(YTN)
“서울대병원 노조 6년만에 총파업…진료 차질 환자 불편”(MBC)
“서울대병원 진료파행 환자가 무슨 죄”(세계일보)
“서울대병원 6년 만에 파업 환자들 ”진료 못 받나“ 발 동동”(동아일보)
“‘의료공백 현실화’ 발 구르는 환자들”(국민일보)
“본관 로비 점거농성 또 환자만 골병”(서울신문)
“병원인지 농성장인지 환자가 볼모인가”(한국경제)
“서울대병원 노조 또 환자볼모 파업”(매일경제)

물론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에 환자들이 불편을 겪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사업장과 달리 병원은 사람의 생명이 결정되는 곳이다. 언론이라면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 환자들의 불만과 진료 지연은 일정 부분 사실이기 때문이다.

   
▲ 23일자 YTN뉴스 갈무리

하지만 나아가 언론은 현상을 넘어서 현상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환자들의 생명을 보살펴야 할 병원 직원들이 왜 환자들을 볼모로 잡는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일손을 놓게 된 것일까.

이 지점에서 언론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서울대병원 노조의 요구는 임금인상이 다가 아니다. 이들은 국립대 병원인 서울대병원이 의료공공성을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의사성과급제를 폐지하고 환자들에게 적정 의료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대병원이 검사건수에 따라 수당을 받는 의사성과급제를 도입한 이후 의사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을 제대로 진료하기보다 검사 건수를 늘리는 데 주력해왔고, 이에 따라 ‘1분 진료’가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이다. 또한 환자들이 100% 부담하는 선택진료비로 의사들에게 진료수당을 지급하므로 의사성과급제로 인해 환자 부담이 늘어났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나아가 노조는 의사성과급제로 인해 병원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과 강도가 늘어났다고 지적한다. 병원 노동자들은 의사들이 검사 건수를 늘리기 위해 환자를 많이 받으면서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노조의 주장을 요약하면, 서울대병원이 ‘돈벌이진료’를 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환자와 노동자 모두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언론은 서울대 노조가 임금인상 외에 의료공공성을 중요한 의제로 내걸었다는 데 주목하지 않았다. 노조의 요구 중에 환자들의 이해관계와 관계된 부분이 있는데도 그 부분에 대해 다루기보단 노조의 요구와 환자들의 이해관계가 별개라는 태도를 견지했다. 파이낸셜뉴스는 “환자는 없는 그들만의 구호”라며 노조를 비판했는데, 의료공공성을 외치는 것이 왜 환자와 관계없는 요구인 걸까.

노동자와 환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면은 또 있다. 노조는 ‘어린이병원 급식 직영’을 요구한다. 급식이 직영이 되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에게 좋다. 노조는 동시에 “어린이환자 급식을 외부 위탁하면 병원의 일상적인 관리가 어렵고 문제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며 환자들을 위해 급식 직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사실은 주요 아침신문과 방송뉴스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다. 조선일보, 한국경제, 파이낸셜뉴스. 동아일보,YTN 등은 파업 때문에 환자들이 1회용 도구로 식사를 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환자들이 불편함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똑같이 환자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인데, 왜 급식 직영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은 걸까?

   
▲ 24일자 조선일보 12면
이런 보도를 우려한 것인지 파업 첫째 날 집회 사회를 맡은 최은영 간호사는 그들을 향해 플래시를 터트리는 기자들에게 “우리는 단지 임금인상만을 위해 파업한 것이 아닙니다. 의사성과급제를 비롯한 의료공공성의 문제는 환자들과 관련이 있고, 이 부분에도 주목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 서울대병원에서 시행되는 2인실 병실료 인하 및 TV무료 시청, 보호자를 위한 장의자 설치, 다인실 병실 증대 및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선택진료비 전액 감면, 야간주차비 천원으로 인하 등은 노조의 요구로 인해 일어난 변화다. 2004년 파업 때 서울대병원 노조는 병실료 인하, 선택진료제 폐지, 입원환자의 무료 주차시설 이용 등을 요구했고 2007년 파업 때도 2인실 병실료 인하와 보험적용 병실 확대 및 선택진료제 폐지 등을 요구했다. 최은영 간호사는 “언론이 우리가 환자들을 불편하게 만들며 임금인상만을 요구한다고 보도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1층 로비에 붙여있는 벽보. 사진=조윤호 기자

이는 언론이(특히 보수언론)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투쟁을 전할 때 갖는 일반적인 관점 중 하나다. 언론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시청자 권리’가 침해당한다고 말하고, 교사들이 거리투쟁을 하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당한다고 말하고, 철도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시민들의 교통권’이 침해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공공의 가치’가 연관될 때도 있다. 언론노동자들의 파업은 공정방송을, 교사들의 거리투쟁은 참교육을,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은 철도공공성을 주장한다. 언론의 역할이 사회의 공공성을 증진하는 것이라면, 이러한 부분에도 주목해야 한다.

서울대병원 파업 첫째 날, 한 조합원이 파업 현장을 찍고 있는 카메라들을 보며 “잘 좀 보도해주세요”라며 “어제는 이상하게 나가서…”라고 말을 흘렸다. 그 말이 계속 머리를 맴돈다. 지금 언론은 ‘잘’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