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이름 대신 ‘ㅇㅇ닷컴’ ‘디지털뉴스팀’…왜?
정확성보다 속보성 중시하는 시장 환경의 변화 탓…언론은 물론 포털에도 문제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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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자 이름 없는 기사의 대부분은 ‘낚시성’ 기사들이다. 조선일보 10월 23일자 기사 <서울대병원 총파업, “병원이야, 농성장이야?”…”없던 병도 걸리겠네”>는 서울대병원 파업이 환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인데, 정작 기사 안에는 “병원이야 농성장이야” “없던 병도 걸리겠네”에 해당하는 내용이 없다. 11월 12일자 기사 <밀양 송전탑 반대 ‘도보 순례단’, 16일 만에 서울 입성… “돌아갈 때도 도보?”> 는 송전탑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이 전국을 도보 순례한다는 내용인데, 제목에 ‘돌아갈 때도 도보?’라는 말을 붙여 밀양 주민들이 집에 갈 때는 걸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하지만 정작 기사 안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다.
송의달 뉴스디지털부장은 “제목은 기자들이 아니라 조선닷컴 편집국에서 다는데, 아무래도 검색어와 연관되어 그런 제목이 달리는 것 같다”며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다른 언론들이 검색어 장사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많이 하는 편은 아니고 수동적, 방어적 차원에서 한다”고 말했다. 당일 포탈 인기검색어에 맞춰 기사를 만들어내는데, 더 눈길을 끌려다보니 내용에 없는 제목을 달게 된다는 뜻이다. 그는 “송강호 기사도 당시의 상황 때문에 그런 기사를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 ‘변호인’ 개봉을 앞두고 변호인이 인기검색어에 오르자 그런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조선일보만 이런 ‘기자 이름 없는 기사’를 내보내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동아일보다. 동아일보는 기자 이름이 없는 ‘동아닷컴’발 기사를 많이 내보낸다. 지난 13일 하루에만 총 252개의 ‘동아닷컴’ 발 기사가 올라왔다. 이 중 방송‧연예/문화/스포츠/라이프 기사가 총 210개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기사내용을 보면 특정 검색어나 키워드를 통해 유입되는 접속자들의 클릭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13일에 올라온 252개의 동아닷컴 기사 중 모델 ‘미란다 커’의 근황과 몸매에 관한 기사가 27개다. 기사들은 미란다 커의 벗은 사진에 네티즌이 감탄했다는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배우 양정아씨가 3살 연하 사업가와 결혼할 예정이라는 기사도 24개나 올라왔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볼펜으로 탑을 쌓아 올렸다는 내용의 기사가 제목만 바뀐 채 22개나 올라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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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닷컴 갈무리. 같은 내용의 기사가 제목만 바뀌어 올라가 있다. |
이렇게 기자 이름 없는 기사들이 늘어나는 데는 시장 환경의 탓이 크다. 최진순 한국경제 기자는 “정확성이나 완전성보다 속보성을
중요시하는 시장의 특성, 뉴스에 기자 이름을 다는 식으로 뉴스에 가치를 부여하기보다 빠른 대응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시장 환경의
탓이 크다”며 “언론도 뉴스의 질보다는 일단 시장에 대응하는데 초점을 두면서 이름 없는 기사들이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의 ‘디지털뉴스팀’은 일종의 ‘속보 대응팀’으로 운영된다. 채용된 기자들이 디지털뉴스팀으로 배치되면 기자 이름이 아닌
디지털뉴스팀 이름으로 기사를 쓴다. 팀에 약 10명의 인원이 배치되어 있으며, 편집자와 팀장을 빼면 5~6명의 기자들이 속보와
단신 기사를 쓴다.
김석 디지털뉴스팀장은 “디지털뉴스 팀은 속보나 단신처리를 주로 한다”며 “출입기자가 따로 있는데 출입기자도 아닌 기자가 이름을
걸고 해당 분야의 기사를 쓴다는 게 적절하지 않아 디지털뉴스팀 이름을 걸고 기사가 나간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출입기자가
출입처에서 자료를 받았는데 바빠서 정리하지 못하는 경우 디지털뉴스팀 기자들이 자료를 받아 처리한다”며 “이럴 경우 출입기자 이름을
달기도, 쓴 기자 이름을 달기도 애매해서 디지털뉴스팀 이름을 달고 나간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러한 ‘이름 없는 기사’들이 언론 윤리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사의 정확성과 확실한 검증 여부 등에 대한 책임을 질
주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기사를 읽는 독자 역시 기사를 보고 문제제기를 하기 힘들어진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재건연구원 교수는
“이름 없는 기사는 기자가 기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책임회피의 결과로 이어진다”며 “만약 다른 기사를 표절해서 작성했을
경우 책임소재를 묻는 것도 불분명해진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름 없는 기사’에 포털 서비스의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진순 기자는 “언론 입장에서 비용의 문제를 생각해야
하는데, 좋은 기사를 쓴다고 해서 돈을 버는 상황이 아니라 쉽게 트래픽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 같다”며 “검색어라는
장치로 언론의 수준 낮은 대응을 조장하고 연예/스포츠 뉴스를 비중 있게 다루게 만드는 포털 서비스의 한계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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