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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놀라운 상상력, 당신들은 그냥 "자살"하시오

얼마 전에 오랜만에 가슴이 확 깨이고 머리가 띵 하는 기사 하나를 보았다. 바로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에 붙은 대자보에 관한 기사였다.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씨가 남긴 전지 3장에는 오늘날의 대학생이 가질 수 있는, 아니 가져야만 하는 최고의 고민이 녹아 있었다. 나는 대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하여 각종 대학생 커뮤니티들에 접속하여 이 김예슬 씨의 ‘자퇴 선언’에 관한 글들, 혹은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많은 학생들이 심정적으로나마 이 자퇴 선언에 동조해주었고, 격려를 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몇 몇 또라이들이 이 자퇴 선언에 대해 놀라운 상상력을 발휘하더라. 심심한 분들은 들어가 찾아보시라. 아, 대표적으로 이 고대생의 신원을 조회하려는 고파스의 또라이들이 있다. 이 병신 새끼들은 그냥 좀 죽어줬으면 좋겠다. 제발 자살이라도 좀 해주시길.

길 잃은 88만원 세대 온몸으로 ‘저항 선언’




김씨는 자신의 세대를 “G(글로벌)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20대, 뭔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라고 표현했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대학 관문을 뚫고 25년간 트랙을 질주했다는 고백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나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는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며 “더 거세게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자보에는 대학과 기업, 국가를 향한 또래 세대의 울분도 실렸다. 그는 “이름만 남은 ‘자격증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라며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새 자격증도)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고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며 “큰 배움 없는 ‘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돼 부모 앞에 죄송하다”고 적었다.

그는 이 선택으로 “길을 잃고 상처받을 것”이며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해도 탑은 끄떡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대자보 앞에는 오후 내내 수십명의 학생들이 이어졌고, 대자보 옆에는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글귀가 쓰인 두 장의 A4용지와 장미꽃 세 송이가 나붙기도 했다.

김씨는 이날 경영대에 자퇴원을 제출했으나 학교 측은 일단 ‘학부모 동의서가 없다’며 접수하지 않았다.

김씨는 경향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 개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인터뷰를 사양했다.

내가 보았던, 글에 담을 만한 수준의 댓글들을 나열해보겠다. “운동권 출신이라던데.” “자퇴하는 것도 곧 스펙” “재입학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던데.” “저거 쇼임.” 등등.

학생운동이 종말한 시대라고 한다. 학생운동이 필요 없어져서가 아니라, 학생운동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운동권’에 대한 반감, 그 바탕에는 ‘운동권’이라는 실체가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실체론이 근거하고 있다. ‘민주화 세력’이 뭉쳐야 된다는 이야기만큼이나 웃기는 이야기이다. 이름 짓기는 속성 그 이후의 일인가, 아니면 속성 그 이전의 일인가? 정확히 말하면, 운동권이라서 운동하는가, 운동하기 때문에 운동권인가?

지금 일부 대학생들(일부라고 믿고 싶다.) 사이에 존재하는 운동권에 대한 반감은(예컨대 “3번 후보 운동권이야, 뽑지마.” 등등.) 운동권이라는 무언의 실체가 있고 그들이 대다수 대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소동을 일으키는 학생운동이란 것을 주도한다는 믿음에 근거하는 듯하다. 그런데, 과연 운동권이란 무엇인가? 80,9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이들을 운동권이라 하는가? 그들을 누가 운동권이라고 규정했는가? 맞다, 바로 독재정권이다. 독재정권은 그들의 권력 행사에 맞서 거리에서 데모하는 학생조직의 우두머리를 운동권이라 불렀다. 그 머리들이 대학생들을 빨갛게 물들이고 반정부 투쟁을 이끈다. 운동권을 운동권이라 부른 것도 독재정권이요, 운동권이 운동하게 만든 것도 독재정권이다. 즉, 대한민국의 운동권들은 독재정권이라는 타자의 호명에 따라, 독재정권이라는 모순과의 대립을 통해서 존재하는 텅 빈 존재들이다. 즉, 실체가 없다는 말씀이다.

운동권은 이처럼 독재정권에 의해 만들어져 독재정권을 결국 타도했다. 이 타도와 함께, 운동권은 ‘멋진 녀석들’에서 ‘기피대상’이 된다. 모순이 민주주의라는 종합을 통해서 극복되었을 때, 아직도 혁명을 부르짖는 이들은 이상한 놈들이 된다. 독재가 사라졌는데 뭐? 뭐가 문제인데? 도대체? 왜 아직도 학생운동인데? 이 생각에는 심각한 착각 두 가지가 상존하고 있다.

첫 째로, 당신들이 생각하는 운동권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거다. 운동권 후보를 뽑지 말라고 하는 당신들의 머릿속에 박힌 운동권에 대한 개념은 무엇이냐. 바로 괜한 소란을 일으키는 이상한 놈들 정도가 아닌가? 즉 거칠게 말해서 나쁜 놈들 아니냐고. 바꿔 말하면 무엇이냐면, 당신들이 “운동권 후보를 뽑지 마.”라는 말은 “저 나쁜 놈들 뽑지 마.”와 같은 유치한 수준의 말이다. 괜히 운동권이란 말로 포장하면서 뭔가 있는 척 좀 하지 마시라. 당신들은 그들을 나쁜 놈들이라 미리 규정한 채로, 그 나쁜 놈들을 뽑지 말라고 하는 것뿐이다, 왜냐고, 그들은 나쁜 놈들이니까! 당신들은 (만일 운동권이란 게 있다고 치자면.) 운동권이 뭔지, 무얼 주장하는지 관심이 없다. 왜? 나쁜 놈들이니까. 당신들의 근거는 그게 다다. 이게 내가 당신들에게 자살을 추천하는 첫 번째 이유다. 스무살씩이나 처먹어서 초딩들도 기피하는 흑백논리로 접근한다. “엄마가 재들이랑 놀지 말래”는 차라리 수준 높은 근거일 정도다. 그냥 죽어라, 이 병신들아.

두 번째로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면, 당신들은 정말로 답이 없다. 뭐가 문제 이길래, 당신들이 운동권이라 규정하는 이들이 아직도 맑스의 책을 가지고 세미나를 하면서 반전시위를 하고 반FTA 집회를 열고 촛불을 키며, 학교와 투쟁하려고 하는지 말이다. 88만원 세대를 옥죄어 오는 저 자본의 칼날과 대학의 시장화, 포부와 꿈을 잃고 던져진 채 스스로가 G세대 인 마냥 신나라하는, 그 문제를 보지 못하고 문제없는 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라고 한다면. 그건 참으로 절망적이다.

논의가 정신없어서 정리하면 이렇다. 원래 운동권이란 개념은 실체가 없는 독재정권에 의해 만들어진 부정적 개념이고, 지금 당신들은 독재정권이 운동권을 규정하는 것과 똑같은 행태를 하고 있다는 거다.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저놈들, 사회는 아무런 문제없는데 말이지. 그리고 그 개념 자체는 실체 없이 공허하기에, 여기엔 누구나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아니, 누구나는 아니다. 당신들이 운동권을 정의하는 단 한 가지 속성, “나쁜 놈들”이라면 바로 운동권이 된다. 뭔가 사회에 저항하는 삘이 나고, 조용히 학교 다니고 싶은데 데모하라고 선동이나 하고, 그런 나쁜 놈들은 운동권들이다. 이 얼마나 편한 도식이냐. 그렇게 편하게 살고 싶다면, 그냥 편하게 자살하시길 강추한다.

당신들이 만들어낸 운동권이란 허상에 맘에 안드는, 아니 욕하고 싶은 사람들 집어넣고 낄낄거리지 않았으면 한다.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 구체화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우리는 상상력이라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들의 상상력은 매우 놀랍다.

아 그리고 우리 사회에 팽배한 반정치주의에 대해 한 마디 하고 싶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늘 나오는 냉소주의적 댓글들이 바로 ‘또 정치하겠지.’, ‘민노당 회원 아니야.’인데. 냉소주의가 멋있는 줄, 착각에 빠진 당신들에게 또 한 번 자살을 권고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간으로 취급 안했다고 한다. 그걸 넘어서서 정치에 대한 환멸로 무장한 채 환멸 그 자체를 위한 환멸만 거듭하는 당신들의 반정치주의는 죽어 마땅하다. 이런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을 바탕으로, 정치 참여하는 건 당연한 거다. 현실에 문제를 느끼고 바꾸고 싶다면, 정치에 참여해야하는 게 마땅한 거 아니냐. 그걸 조롱하고 싶다면 그냥 난 민주주의가 싫어요, 라고 말해라. 무관심한 걸 중립적인 걸로 포장하는 그 무능력한 냉소주의에 헛웃음만 나온다. 너희 같은 새끼들 때문에 플라톤이 민주주의를 싫어했나보다.

논리적으로 쓸 생각 전혀 없이 너무 열받아서 주절거린 글인데,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사실관계도 모르면서 떠드는 당신들에게 다시 한 번 자살을 권고한다. 김예슬 씨가 학생처에 “재입학이 가능하냐?”고 물은 이유는, 제도적으로 부모님의 동의가 없으면 자퇴 처리가 절대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님은 자퇴 절대 동의 안하고,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재입학 가능하냐.”고 물은 거란다. 전후 사정은 모른 채 “재입학 가능하냐”고 물었다면서, “쇼하는 거라”던가, “정치인 기질이 있다.”는 말들은, 그대들의 찌질함과 무식함을 한층 더 고양시켜줄 뿐이다. 당신들은 쇼라도 할 용기라도 있으신가. 그리고, 당신들은 그리하여서 “정치인 기질마저도” 없다. 그냥 죽는 게 사회를 위해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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