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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일본 여행기

4박 5일 오사카 여행기 ③ <헤이조쿄에서의 1대1 데이트>

128, 오늘은 오사카 동쪽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8세기 일본의 도읍지였던 나라’(헤이조쿄).

지난 밤에 자주 애용하는 여행 가이드앱 ‘get your guide’에서 나라 투어를 예약해두었다. 고민 고민하다 밤 9시에 예약했는데 다행히 마감되지 않았는지 나라역 3번 출구 앞에서 보자는 가이드의 답장을 받았다.

get your guide 앱에서 예약했는데 다시 보니 '프라이빗 투어'가 1대 1 투어라는 뜻이었나보다.

일본의 민속학자 야나키 구니오에 따르면 나라의 어원은 평평하게 한다는 뜻의 나라()’에서 왔다. 구릉지를 완만하게 만든 땅이라 나라라 부르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라 이전의 고대 일본의 도읍지는 후지와라쿄(현재의 가시하라시)였다. 치수와 교통망 등 여러 문제가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역병이 심하게 도는 바람에 당시 겐메이 천황이 재수가 없다고 여겨 새로운 도읍지를 마련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지금 나라의 땅은 사금도에 잘 맞으며, 삼산이 지켜주고 귀서의 점술을 따른다 겐메이 천황이 나라 땅에 헤이조쿄라는 이름을 붙이고 천도를 했을 때 내세운 논리였다. 삼산이란 나라 동쪽의 가스가산, 북쪽의 나라산, 서쪽의 이코마산을 의미하고 사금도에 잘 맞는다'는 말은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북현무...한 마디로 풍수지리에 딱 맞는다는 뜻.

9시 미팅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찌감치 7시 반쯤 집을 나섰다. 집 근처의 니폰바시역에서 킨테츠선을 타고 50분 정도 가면 된다고 해서 일찍 도착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좀 먼 거리라 680엔.
숫자만 주르륵 나와도 당황하지 말고~내 목적지가 어떤 구역인지 확인해보자.

생각 없이 열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다음역에서 내리라는 방송이 나왔다. 알고 보니 방향은 맞는데 킨텐츠나라역 두 정거장 전인 야마토사이다이지행 열차를 탄 것이다. 역이 혼잡해서 어떻게 가야할지 헤매고 있던 중 다행히 '나라 행'이라 적힌 열차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해 냅다 올라탔다. 다행히 제 시간에 킨텐츠나라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라역에서 맞아주는 사슴들

3번 출구로 나가자 웬 일본인 청년이 ‘get your guide’라 적힌 팻말을 들고 서 있었다. 나의 가이드임을 직감적으로 알아보고 말을 걸었는데 역시 맞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안 왔냐고 묻자 나 혼자 하는 투어라고 한다. ???? 당연히 여러 명이 함께하는 가이드 투어인줄 알았는데 졸지에 일본 청년과 11 나라 데이트를 하게 되었다. (3시간 투어가 15만원이나 하는지 의문이었는데 11이라서 그런 거였다.)

가이드의 이름은 마사였고 내가 첫 한국인 손님이라고 했다. 솔직히 영어를 잘 하진 못하는데 매번 미국인, 영국인을 상대하다 한국인 손님을 맞아 기대가 된다고 했다. (내가 영어를 잘 못할 거라 생각한 모양인데, 아주 정확했어.)

마사는 전날까지 아무도 투어를 신청하지 않아 내일 장사는 조졌다고 생각하고 집에 누워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밤 9시에 갑자기 투어 신청이 들어오는 바람에 황급히 밤늦게 일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 손님인 것을 보고 AI 번역기를 돌려 한국어 자료를 만들었다고. 

나라역 앞에 나와 있는 승려 쿄키의 상
마사가 준비한 AI 한국어 자료.

민간외교관이라는 마음가짐으로 한일관계에 대한 뜻깊은 대화를 나누며 첫 번째 목적지인 고후쿠지(흥복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다이소가 보여서 한국에서 다이소의 위상에 대해(A...베리 칩 앤 페이머스 스토어 인 코리아!) 설명해주었다. 그러는 사이 금방 고후쿠지에 도착했다.

고후쿠지 입구에 있는 남엔당

고후쿠지에 들어서자 마사는 나에게 사찰과 신사의 차이에 대해 아는 지 물었다. 알지만 그걸 설명할 영어 실력은 되지 않아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사가 사찰은 외래 종교인 불교를 실천하는 곳인 반면 신사는 일본의 토착 종교인 신토와 관련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일본 사람들은 사찰이나 신사에서 기도하기 전 향 연기로 마음과 몸을 정화한다고 한다. 목이 아프면 목 부위로, 어깨가 아프면 어깨 부위에 연기를 갖다대는 식.

이어 마사는 일본 사찰에서의 예법(돈 내는 법)에 알려주었는데, 1) 바로 앞에 서서 인사한 후 종을 친 다음 2) 헌금을 상자에 넣고 3)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한 다음 4) 인사하고 떠나면 된다고 했다.

예법 실천한 곳..

배운 대로 예법을 실천(동전 헌납)한 후 본격적인 고후쿠지 탐방을 시작했다. 고후쿠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나라의 대표 사찰이다. 669, 일본 아스카 시대 중신이자 후지와라씨의 선조인 후지와라 카미타리가 그의 아내 가가미노 오카미의 질병 회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세웠다. (일본 서윗남의 대표주자, 후석열)

나 사랑 때문에 유네스코 문화유산까지 지어봤다?!

고후쿠지는 원래 교토에 지으려다 도읍이던 후지와라쿄로 이전했고, 헤이조쿄로 옮겨왔다. 후지와라가 당대의 최고 권력자였던 만큼, 수도 이전에 따라 고후쿠지도 덩달아 이사를 반복한 모양이다. 든든~한 배후 후지와라가 있었기에 이후 교토로 천도를 한 뒤에도 고후쿠지는 꽤나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고후쿠지 본당에 해당하는 동금당. 원래 옆에 고후쿠지의 또 다른 상징인 오층탑이 있어야 하는데 오층탑은 현재 공사중.

이쯤해서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두 마리 동물에 대해 알아보자. 하나는 상상 속 동물 샤치. 고후쿠지 본당 지붕에 달려 있는 황금빛 물체가 바로 샤치다.

고후쿠지 동금당. 지붕 위에 황금빛 무언가가 보이는지?

마사가 나에게 저 동물이 뭐처럼 생겼냐고 물어보기에 ? 드래곤?’ 아니냐고 답했는데 정답은 물고기라고 한다. 당대 동북아시아 건축물 대부분이 그렇듯 일본 사찰 또한 목조건물이라 화재에 너무 취약했다. 그래서 물로 불을 막아달라는 의미를 담아 샤치라는 상상의 동물상을 지붕에 설치했다는 것.

하지만 안타깝게도 샤치가 직무유기에 근무태만을 벌인 것인지 고후쿠지는 여러 차례 화재로 전소되었다가 재건되는 수난을 겪는다.

나라를 상징하는 또 다른 동물은 사슴이다. 나라역에서 내리자마자 이곳은 사슴이 먼저다를 실천하는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아마 사슴들이 모여 내란을 일으켜 불당을 불태우고 불상을 박살내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을 것 같았다. 

고후쿠지를 배회하는 사슴들

나라에서 사슴이 마스코트로 자리잡은 이유는 오래전부터 전승되어 온 설화 때문이다. 전설에 따르면 8세기 다케미카즈치라는 신이 백사슴을 타고 나라로 내려왔다고 한다. 다케미카즈치는 가시마 신궁의 주신으로 알려져 있는데, 가시마 신궁을 대대손손 숭배하던 이들이 바로 아까 소개한 나라의 권력자 가문, 후지와라 씨족이다.

이 때문에 나라 시대에 사슴은 신의 사자로 존중 받았다. 당시에는 사슴을 죽이면 벌금을 내야 했고, 마사의 설명에 따르면 지금도 사슴을 죽이면 큰 처벌을 받는다.

사슴의 습격..

이런저런 사슴 이야기를 들으며 나라의 사슴공원으로 향했다. 사슴공원이란 말로는 부족한 표현이다. 그냥 사슴천국이다.

마사가 미리 구입해놓은 사슴 먹이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아무데서나 먹이를 꺼내들면 이곳에서는 봉변을 당할 수 있다. 배고픈 사슴들이 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한 놈에게 먹이를 주고 있으면 다른 놈이 와서 머리로 등을 받아버린다.

포위 당하는 중. 아니, 먹이주는 중
황급히 자리를 피하는 중, 아니 사슴과 즐거워하는 중

사슴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 먹이 없어’를 뜻하는 제스처를 취하면 된다. 두 손을 하늘 위로 들어올리면 어떻게 알아챘는지 사슴들이 슬그머니 다른 먹잇감에게로 사라진다. ‘먹이 없음을 어필하는 개구진 표정을 지으면 더 효과적일 지도.

나 먹이 없어~ 사슴 : 어~그래
배고파서 아무거나 뜯어먹는 사슴..

마사는 사슴 먹이를 파는 노점상 할머니를 가리키며 나라 최대의 미스테리라고 말했다. 사슴 먹이를 쌓아놓고 판매하는데 사슴들이 이 할머니를 습격해서 먹이를 탈취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가 할머니가 관광객에게 먹이를 파는 순간부터 관광객에게 귀신같이 달려든다고 한다. 폭동을 지양하는 합법 사슴들이었기에 여태까지 살아남았겠거니 싶었다.

먹이를 구매하자마자 달려드는 사슴

사슴 떼가 점령한 공원을 지나 오늘의 백미, 도다이지(동대사)로 향했다. 도다이지는 일본 전체를 통틀어 역사, 문화적으로 가장 중요한 불교 사찰 중 하나다. 도다이지의 대불전은 한동안 세계 최대 목조 건물이었을 정도로 그 위용이 엄청나다. 8세기에 완공되었으나 고후쿠지처럼 지진과 화재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다가 재건된 상태다.

도다이지 본당 대불전
가까이 다가가면 느껴지는 대불전의 엄청난 규모
마사 덕분에 나라에선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다.

관광객 입장에서 도다이지의 장점은 내부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 사찰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대부분의 일본 사찰은 내부 촬영이 불가능하다.(그래서 고후쿠지 내부도 못 찍었다.)

도다이지 남대문에 위치한 금강역사상. 도다이지의 니오(두 왕)로 알려져 있는데, 수호상의 높이가  8.4 미터가 넘는다 .

여러 볼거리가 많지만 이곳 도다이지의 상징은 대불전 안에 있는 엄청난 크기의 불상이다. 공식 명칭은 비로나자불 좌상으로 좌상 높이만 5층 건물 높이인 15미터에 달한다. 손바닥 너비만 3미터, 발 길이는 약 4미터.

도다이지 조감도에 의하면 대불전 창문으로 대불상 얼굴이 보일 정도로 대불상의 규모는 엄청났다.(아래 사진 참조)

그리고 드디어 대불상 실물 영접!

도다이지 대불상

대불상 아래에 놓인 것은 실물 크기의 연꽃잎이다. 마사가 영어로 열심히 설명한 다음 의미심장하게 한국어 자료집을 딱! 보여줬는데 갑분 이탈리아어가 등장했다. 내가 이탈리아어 아니냐고 물어보자 마사는 미안해하며 실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어인줄은 어떻게 아냐고 물어봤다. (명예이탈리아인임을 AI가 눈치 챈 것일까?)

한국어랑 너무 다르잖아 마사...
앞에서 설명한 상상 속의 동물 샤치. 직무유기 근무태만으로 사실상 화재의 진범이다 .

대불상이 워낙 압도적 크기라 그렇지 대불상을 지키며 에워싸고 있는 코쿠조 보살, 코무쿠텐, 타모쿠텐, 여의륜관음 모두 걸작이다.

찬찬히 불상들을 감상하고 보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무희>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무희>의 한 등장인물은 국립박물관에 놓인 불상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애잔한 천진난만함 속에 맑고 넓은 위대함이 있고 스며드는 듯한 고요함 속에 깊은 힘의 움직임이 있단 말이야. 마음속의 구름이나 불결한 것이 깨끗하게 정화되지. 여러 가지 피곤이나 더러움 같은 것들이 없어지는 것 같고, 뭐라 말할 수 없는 따스한 감정을 갖게 해줘.”

어김없이 놓여 있는 정화의 향로

도다이지 탐방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마사와의 역사 토크가 시작됐다. 마사가 내가 입고 있는 이집트 문양의 티셔츠에 대해 물어본 것이 계기였다. ‘자신도 이집트에 꼭 가고 싶다’길래 내가 이집트를 왜 좋아하는지 설명하다보니 자연스레 역사 토크로 대화 주제가 옮겨 붙었다.

나는 일본 역사도 좋아한다며 센코쿠시대를 특히 좋아한다고 말했고. 마사도 이에 동의하며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운명을 가른 아케치 미츠히데의 명언 적은 혼노지에 있다!”(어 에너미 이즈 인 혼노지!) 드립을 치자 깔깔 거리며 좋아했다. (이걸 듣고 이렇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기뻐)

거 역사 이야기하기에 딱 좋은 풍경이구만

역사 토크는 메이지유신 시기의 '사카모토 료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고 마사는 나고야, 히메지성 등 나의 다음 일본 역사 탐방지까지 추천해주었다. 역사 토크 삼매경에 빠져 (이쯤 되면 내가 돈을 받아야되지 않을까?) 도다이지 내부를 산책하다 문득 이곳의 사찰들이 작년에 갔던 교토의 사찰들과는 매우 다르다는 점을 인지했다.

상국사, 은각사 등 교토 사찰 내부에는 꼭 정원이 딸려 있다. 그래서 교토의 사찰들을 보며 정원이야말로 일본 사찰의 특색이라 생각했는데, 아마도 교토 사찰의 특색이었던 모양이다. 대신 나라의 사찰들은 압도적 규모의 본당과 탑, 그리고 불상이 핵심 요소인 듯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교토의 사찰들은 나라 시대 사찰에 비해 불교가 조금 더 일본인들의 일상 속에 깊숙히 침투한 이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닐지 짐작해본다. 사찰 건축양질 전환이 이루어진 셈.

도다이지 탐방을 마치고 나오자 마사가 배고프지 않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도다이지 안에 있는 라멘집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실패가 없는 돈코쓰라멘을 골랐다. 

나는 한국에 '경주'라는 나라와 비슷한 고대 국가의 도읍지가 있으니 역사를 좋아하면 꼭 와보라고 추천했다. 내가 백제의 수도인 부여에서 태어났다는 말도(어쩌라고...) 전해주었다. 고대에 일본과 백제가 동맹국이라는 점도(사실 일본이 백제의 식민지였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식민지라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설명해주었는데 마사가 역사책에서 봤다고 답했다.

마사는 일본에서 맛있다는 표현인 우마이오이시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우마이는 친한 사이에만 쓸 수 있는 말, 오이시이는 존댓말의 의미라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코노라멘와 우마이라고 했더니 마사가 환하게 웃었다.(너무 플러팅이었나?)

그 밖에도 한국와 일본의 차이점(징병제, 크리스마스 휴일 유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애니메이션 이야기가 나와서 슬램덩크, 드래곤볼, 귀멸의 칼날에 대해 심도 있게 토론하는 등 수다 삼매경에 한참 빠졌다. (왜인지 BTS랑 트와이스 이야기도 했던 것 같다.)

수다의 끝은 한국 음식의 매운맛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한국 음식은 한국인이 먹기에도 매운 편이라며 떡볶이, 마라탕을 예로 들었다. 마사는 마라탕에 대해 잘 모르는 듯했고 그래서 유튜브에 들어가 마라탕후루 챌린지영상까지 보여줬다. 영상을 보여주며 내가 “she say that ‘Please buy me malatang, senior’”라고 설명하자 마사는 와이~?”라고 물어봤다. (..그게 말이야...)

그럼 제가 마사 맘에 탕탕..

마사는 일본에도 매운 음식이 있다며 와사비를 예로 들었다. 그래서 나는 와사비를 정말로 좋아한다며 방어회 먹을 때 와사비 떡칠을 해서 먹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와시비 참교육 앞에서 마사는 잠시 시무룩해진 듯했다.

마 이게  k- 와사비야 !
마사와 인스타를 주고받았는데 마사가 나의 와사비 사진에 좋아요를 눌렀다.

식사를 마치고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아쉬운 마음에 역으로 가는 길에 있던 신사에 대해 물어봤는데, 마사도 아쉬웠는지 신사에 가보고 싶냐고 말해 잠시 신사에 들렀다.

마사와의 마지막 여정으로 들른 신사
신사에 있던 얼음

신기하게도 이곳 신사는 얼음의 신을 모시는 곳이라 이렇게 곳곳에 얼음을 두었다고 한다. 혹시 이곳 신도들이 '오징어게임2' 를 봤다면 매우 좋아하지 않았을까? (얼음~~~~!!)

나라역 앞에서 마사와의 아쉬운 작별인사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헤이조궁으로 향했다. 마사가 다음 나라 탐방 코스로 추천해준 곳이다. 킨텐츠나라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두 정거장을 지나나 야마토사이다이지역에 내리면 걸어서 갈 수 있다.

멀리서 보이는 헤이조궁 '제1차 다이고쿠덴 '

지금은 황량한 궁터에 불과하지만, 8세기만 해도 이곳 헤이조궁 일대는 당나라 장안을 모델로 만든 신도시였다. 규모는 남북 4.8킬로미터, 동서 6.3킬로미터에 이르렀고, 장안의 도시설계대로 시가지의 북단에 궁전(헤이조궁)을 짓고 천황의 대궐인 다이리(지금 공사중), 정무를 보던 다이코쿠덴을 지었다.

천황의 정무공간이었던 다이코쿠텐

헤이조궁에서 남쪽으로 뻗은 곳을 스자쿠오지’(주작대로)라 불렀고 이를 기점으로 동쪽의 사쿄, 서쪽의 우쿄로 헤이조쿄의 구역이 분리되었다. 사쿄의 동쪽 방향에 '게쿄' 지역이 만들어졌고 이 게쿄 방향으로 쭉 가면 내가 다녀온 도다이지, 고후쿠지 등의 대사찰들과 이어지는 구조다.

헤이조코 궁터의 남쪽 문인 스자쿠몬

이렇게 거대한 도읍지였던 헤이조쿄도 결국 간무 천황의 천도로 인해 화무십일홍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체험했다. 간무 천황이 선택한 새로운 도읍지가 바로 천년고도 교토다. 이후 헤이제이 천황 때 헤이조쿄로 다시 천도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한 때 천황이 머물던 도읍지에 지금은 황량한 벌판과 바람소리 밖에 남아 있지 않으니, 도도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권력이란 얼마나 무상한 것일까. 헤이조궁 앞에서 500년 고려 왕조 멸망을 두고 문인 원천석이 지은 시조가 떠올랐다.

흥망(興亡)이 유수(有數)하니

만월대(滿月臺)도 추초(秋草)로다.

오백년(五百年) 왕업(王業)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석양(夕陽)에 지나는 객()

눈물겨워 하노라.

헤이조궁 관광안내소에 설치된 판넬. '나라에서 로마까지' 실크로드를 전시해놓았다. 로마까지..? 이건 좀..싶었지만 바깥의 황량한 풍경과 대비되며 한 때 도읍지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다.

석양에 지나는 객의 눈물은 아마도 모진 추위와 바람 때문일 것이라, 잠시 인근 스타벅스에서 재정비를 하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를 찾아보니 카페와 서점을 겸하는 스타벅스-나라 츠타야 서점이란 곳이었다.

스타벅스 겸 서점. 우연히 찾은 곳인데 너무 좋았다. 단 시간 제한이 있다.
역시 이곳에서도 사슴.

어제 사카이에서의 경험처럼 이곳 스타벅스에 오니 갑자기 고대에서 현대로 시간 이동을 한 기분이다. 익숙한 일본 만화책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신나게 만화책 구경을 마치고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나라를 탈출하기로 한다.

찾아내자 드래곤볼
이게 점점 망조를 향해간다는 그 만화인가요?
원피스

스벅을 빠져 나와 신모이야역으로 향했고, 지하철을 타고 난바역으로 귀환했다. 오늘의 저녁 목적지는 미리 찍어놓은 우동가게 츠루동탄 소에몬초.

츠루동탄 소에몬초

같은 우동 가게였지만 첫날 방문한 우동집 '이마이'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현지인보다는 한국 엠쥐(커플)들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줄을 길게 늘어선 곳이었다. 밖에서만 20, 안에서 20분의 대기 끝에 '쓰루톤 잔마이'라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와 맛있게 생긴 고등어초밥, 나마비루를 주문했다.

유부와 튀김, 소고기, 계란 등이 들어간 모듬우동이다 .
고등어 초밥.

쓰루톤 잔마이를 먹고 나니 첫날 갔던 할머니 우동 맛집 이마이와의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사진 찍기 좋은 비쥬얼과 분위기, 맛있는 것을 다 때려넣은 푸짐함. 무척 맛있었지만 첫날 우동에서 느낀 정갈함과 담백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확신한다. 맛집은 할머니 픽이 지대로구나. 아쉬운 마음이 남아 집 오는 길에 하이볼에 과자를 좀 사들고 숙소로 복귀했다.

k새우깡과 비교해보려고 했는데 맛이 똑같았다. 술 취해서 그런가?

어느새 내일이 마지막 날이라는 아쉬움에 한 입, 오늘 목격한 사찰과 궁터를 떠올리며 또 한 입. 그러다 문득 인스타에 들어가 보니 마사가 좋아요폭탄을 던져놓고 갔더라. 난데없는 좋아요 폭탄에 다시 한 입. 맛으로 먹나, 낭만으로 먹지.

오사카에서의 마지막 날, 내일은 일본 전국시대의 마지막 장면이 담긴 오사카성으로 간다.

다음 편 : <오사카성으로 시작해 야키로 끝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