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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일본 여행기

4박 5일 오사카 여행기 ④ <오사카성으로 시작해 야키로 끝나다>

오사카에 오기 전 나에겐 하나의 편견이 있었다. 오사카의 랜드마크 오사카성에 관한 것이다.

역사와 유적보다 미식과 놀 거리로 유명한 오사카의 유일한 대중적 유적지가 있다면 바로 오사카성이다. 해자로 둘러쌓인 요새, 오사카가 내려다보이는 전망, 무엇보다 삐까뻔쩍한 천수각의 위용. 오사카에 와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오사카성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거점으로 삼았다는 그 오사카성과 전혀 다른 것이다. 복원된 천수각은 목조가 아니라 철근콘크리트로, 그 자체로 현대 건축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천수각은 1931년 만들어진 20세기 건물) 

철근콘크리트야 불타 없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이해한다지만 옆에 붙어 있는 그 흉물스러운 엘리베이터의 꼬라지는 진짜......엘리베이터를 보는 순간 흥이 다 깨진다. (나의 오사카성은 그렇지 않아!)

이 흉물스러운 엘베 어쩔거야..

심지어 1~4층은 도쿠가와 시대의 양식, 5층부터는 도요토미 시대 양식으로 만들어 놨다. 조금 심하게 말해서 경복궁 복원하는데 처마는 고려시대 식으로, 단청은 조선시대 식으로 만들어놓은 셈이다.

이런 편견을 가득 안고 여행 마지막 날인 128일 아침, 오사카성으로 향했다. 나의 편견은 더 강화될 것인가, 아니면 오사카성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오사카성 여행을 소개해준 유튜버 '오다마  ODAMA' 영상 캡처

오사카의 랜드마크답게 오사카성 주변에는 역이 다섯 개가 있다. 덴마바시역, 오사카비즈니스파크역, 오사카조코엔역, 다니마치욘초메역, 모리노미야역.

어디로 들어갈지 찾아보다 모리노미야역을 선택했다. 모리노미야역 앞에서 오사카 천수각 앞까지 가는 로드 트레인을 탈 수 있기 때문. 집에서 가까운 니폰바시역에서 지하철 환승을 거쳐 모리노미야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내리면 친절하게 1번 출구로 나가면 된다는 한글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표지판 안내를 따라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오사카성 지도, 그리고 로드트레인 티켓 박스가 나온다.

모리노미야역 1번 출구 바로 앞의 오사카성 지도
로드 트레인 티켓박스

아침 850분쯤 도착했는데 티켓 박스가 꺼져 있었다. 두리번거리자 옆에 서 있던 백인 아저씨가 티켓은 9시부터 구매할 수 있고, 9시 반에 로드트레인 첫 차를 탈 수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친절한 관광객 아저씨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여기 직원이었다.

오사카성 로드트레인

바로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때리고 나와 로드트레인 티켓을 구매했다. (편도에 400) 대부분의 승객들이 유아들과 유아 동반 부모들이었다.

아동 타켓 열차였는지 출발할 때 쀼쀼’ ‘쀼쀼 같은 카와이한 소리가 났다. 장난감 기차에서 나는 것 같은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지며 트레인 직원들이 몰려 나와 아리가도” “쒜쒜” “감사합니다” “그라씨아스를 외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이들과 함께 열차를 타고 20분 정도 경치를 감상하자 오사카 천수각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모르게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경치가 진짜 예뻤다. 햇빛 때문에 덩달아 반짝이는 호수, 한겨울임에도 푸르름을 유지하려 애쓰는 나뭇잎들, 그 사이로 비치는 천수각까지.

서서히 천수각이 보인다.

 

로드트레인에서 내려서 10여분 정도를 걸어가면 천수각으로 갈 수 있다. 천수각이 점점 가까워지는 게 아쉬울 정도로 풍경 하나하나가 절경이다.

오사카성에 들어왔으니 이쯤에서 일본 성에 대해 간단히 설명 시마쓰.

우리나라 성도 비슷할 텐데 일본 성은 크게 네 가지 종류로 나뉜다. 첫째는 산성. 우리나라의 남한산성, 행주산성을 떠올리면 된다. 험준한 산악 지형을 바탕으로 한 산성에는 '자연 방어'라는 극강의 장점이 있지만 일상이 불가능하다는 극강의 단점도 있다. 산 중턱에 있어 물자 수송이 어려운 데다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전쟁만 나면 산으로 도망쳐야 한다.

이런 단점을 보완한 것이 높은 평지나 언덕에 쌓은 평산성이다. 산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면서도 평지와도 맞닿아 빠른 이동이 가능한 구조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도련님>에 나오는 마쓰야마성이 대표적인 평산성.

이어 일본 센코쿠 시대에 평지 위에 쌓은 평성이 등장했다. 전쟁이 일상이던 시대, 산성이나 평산성에서는 병력을 빠르게 출동시키기에(즉 침략을 위해선) 어려움이 있어 생겨난 성이다. 약점인 방어 능력을 보완하고자 성벽을 높게 쌓고 해자, 즉 인공수로를 파서 성을 에워쌌다.

이쯤 설명하니 하나의 성이 떠오르지 않는가? 맞다. 바로 오사카성이 일본의 대표적인 평성이다. 오사카성은 성 바로 앞을 흐르는 1차 해자(소토 보리) 그리고 성 외곽에 파낸 2차 해자까지(우치 보리), 이중 해자로 성을 방어할 수 있도록 설계한 평성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자 같은 인공수로가 아니라 바다나 강을 끼고 만들어진 성을 '수성'이라 한다.

이런 해자가 바로 오사카성을 난공불락으로 만든 핵심 요인이다.

이중해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히데요시의 아들 히데요리와 새로운 패자 도쿠가와 이에야스 간의 오사카성 전투가 벌어졌을 때 오사카성은 난공불락을 자랑하며 도쿠가와 군의 공세를 모두 방어해냈다. 하지만 이에야스의 계략에 넘어가 히데요리 측이 스스로 해자를 메우면서 오사카성은 함락되고 만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넓은 해자를 어떻게 다 메웠을지 생각하며 천수각에 도착했다. 천수각 입장 티켓도 미리 구매하는 게 좋다. 현장에서 구매하면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클룩’이라는 앱을 통해 미리 표를 구매했다. 천수각 안으로 프리패스!

들어가자마자 바로 길게 늘어선 줄을 목도한다. 문제의 흉물, 엘리베이터다. 8층 전망대 가는 엘리베이터를 타려 길게 늘어선 줄인데, 나는 한 층 한 층 들르며 전시된 유물들을 보고 가기 위해 계단으로 향했다.

지금은 전망대 정도의 의미뿐이지만 센코쿠시대 천수각은 성의 방어를 위한 필수요소였다. 전국시대 다이묘들의 성내 최종 방어기지라 할 수 있다. 당시 오사카성 천수각은 굉장히 가파르게 만들어 적들이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암살자나 내부 침입자에 대비해 바닥에 삐걱대는 소리가 나도록 설계하기도 하고, 밖에선 내부가 보이지 않는 특수한 창을 만들기도 했다고.

1층에서부터 오사카성의 역사와 관련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꽤나 볼만했다. 전망대가 목적이 아니라면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3,4층은 유적 보호 때문에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었다.

왼쪽은 저번 편에 소개한 상상의 동물 샤치. 오른쪽은 호랑이. 현재 천수각에 사용되는 용마루 장식(샤치)과 후루코(호랑이 릴리프)의 실제 크기 복제품
사나다 유키무라 부대와 마츠다이라 다다나오 부대의 오사카성 전투를 재연해놓았다.

(원래의) 오사카성의 주인이었다보니 당연히 오사카성 내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대기와 업적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조선인의 후예로서 민족적 원수를 찬양하는 행태를 묵과할 수 없었기에 눈에 불을 켜고 임진왜란 부분을 뒤졌다. (정당한 전쟁이었다거나 영토 확장이라고 써놨기만 해봐.)

휴우~

다행스럽게도 임진왜란 관련 서술에서는 조선 침략은 비전투원을 포함한 대량 살육, 포로의 강제 연행 등 조선 민중에게 큰 상처를 남겨주었다며 나름의 객관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온전히 마음에 드는 서술은 아니었으나 민간외교관으로서 한일 간 역사 논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판단에 자제했다.

드디어 8층 전망대 도착. 오사카성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경치를 자랑했다. 아마 이곳에서 히데요리와 요도도노(요리맘)는 해자를 가득 채운 도쿠가와 군대를 목도했을 것이다. 해자가 있어 든든하기도 했지만 거꾸로 해자를 가득 메운 시신들과 핏물들을 보며 자신들이 고립되어 있다는 공포도 배가되었을 것 같다. (그래도 스스로 해자를 메운 건 멍청한 짓이었다)

꼭대기 전망

천수각 밖에 있을 때만 해도 전체적으로 흉물스러운 엘베에 화려할 뿐 근본 없는 디자인 때문에 심기가 상당히 불편한 상태였으나(그런 것 치곤 사진을 졸라게 찍었잖아..) 안에 들어와 유물들을 감상하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유적과 역사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기 때문이다. 대충 관련 영상만 틀어놓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홀로그램으로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도운 점,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사무라이 투구, 진바오리(갑옷 위에 입던 옷)를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한 점 등등.

홀로그램 역사 설명
사무라이 코스프레촌
오사카 팜플렛과 도장

이런 작은 도장 하나에서도 어떻게든 이곳을 오래 기억하게 만들고 싶은 정성이 느껴졌다. 한 번 보고 버릴 팜플렛이라도, 아무것도 아닌 도장 한 번 찍고 나면 왠지 오래 간직하고 싶어지지 않겠는가. 그리고 볼 때마다 오사카성의 기억이 떠오르겠지.

오사카성 공원
안녕 천수각~

천수각을 전부 둘러보고 이번엔 로드트레인을 타지 않고 걸어서 오사카성을 구경했다. 도쿠가와 군이 쳐들어왔을 루트를 거꾸로 구경하는 역주행 코스. 먼저 사쿠라몬을 지났다. 도요토미 시대에는 이 부근에 벚꽃 가로수가 있어 '사쿠라몬(벚꽃 문)'이라 불렸다. 천수각을 바라보는 본성의 정면 입구이다.  

사쿠라몬

오사카성 같은 평성의 또 다른 특징은 전쟁만 나면 도주해야 했던 산성과 달리 성 안에서의 일상 생활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를 성 아래 마을’, 즉 조카마치(성하마을) 라 한다. 이 지역에 무사들의 집과 상가, 공방 등이 들어섰고 마을과 다른 도시를 잇는 도로도 정비되었다.

오늘날의 조카마치에 자리 잡은 피규어 상점..

사쿠라몬을 지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히데요리를 기리는 신사, 호코쿠 신사도 잠시 둘러보았다. 민족적 원수이기에 참배는 생략했다.

호코쿠 신사
풍신수길 상

이어서 센간야구라, 다몬야구라를 지났다. 야구라는 한 마디로 오사카성 입구를 지키는 중간 방어선이었다고 보면 된다.

센간야구라. 화승총 총부리를 내밀어 적을 겨냥하는 '총안'이 안에 있다고 한다.
다몬야구라. 대문을 지나는 적에게 위에서 창을 떨어뜨리는 장치인 '야리오토시'가 있다고 한다.
다몬야구라 가는 길

야구라 시리즈를 지나 오사카성의 정문인 오데몬에 도착! 오데몬에 달린 '접시꽃 문양'은 도쿠가와 막부가 만든 것이다. 히데요시의 시대는 끝나고 도쿠가와의 시대가 왔다는 상징.

오데몬

오데몬까지 지나면 진짜 오사카성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히데요리와 요도도노가 왜 전쟁에서 졌는지 알겠다. 이 경치를 보면서 전쟁할 맛이 났겠는가? 시나 읊으면서 떨어지는 꽃잎에 한 잔, 저물어가는 석양에 한잔, 별을 머금은 호수 빛에 한잔하고 싶었겠지.

오전 내내 걷다보니 금새 허기가 져서 퇴각하는 도쿠가와 군대 마냥 발걸음을 재촉했다. 15분 정도 걸어가면 슈하리라는 유명한 소바집이 있다고 하여 얼른 달려갔는데 맛집답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얼른 늘어선 줄을 살폈다. 할머니 한 분, 두 분, 세 분...삐비빅 할머니 맛집 인증 완료.

아기자기한 메뉴판과 디자인으로도 잘 알려진 가게였다. (못 읽는다는 건 함정)

다행히 20여분만 기다려 소바집 안으로 들어섰다. 일단 날씨가 추워서 기본적인 '온 소바'를 하나 시켰다. 온 소바 하나만으론 백퍼 배고플 것 같아 다른 메뉴를 보고 있다가, 가만히 옆자리의 할머니의 선택을 기다렸다. 니혼오바아상의 픽대로 타고토라는 소바를 같이 시켰다.

정갈하기 짝이 없는 온소바
덴푸라가 올라간 타고토 소바

그리고 다시 절감한다. 역시 할머니 선택에는 실패가 없었다. 그냥 조오오오오온나게 맛있다. 가벼운 소바랑 덴푸라가 어울릴까 싶었는데 바삭한데다 부드럽고 조화로운 식감에..마음 같아선 여기 있는 다른 소바 하나씩 다 시켜먹고 싶었다.

소바로 대충 배를 채우고(?) 잠시 근처 스타벅스에서 재정비를 했다가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다음 목적지는 오사카의 명소 텐만구(천만궁) 신사. 덴마바시역에서 다니마치선을 타고 미나미모리마치역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펼쳐진 건 뜻하지 않은 상점가였다. 텐진바스시라는 상점가인데 도톤보리만큼은 아니지만 갖출 건 갖춘, 꽤나 넓은 시장가이자 길거리 음식촌이었다. 시장가 바로 옆에 텐만궁의 입구가 보였..지만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시장 탐방을 시작했다.

텐진바스시 입구

좀 걷다보니 허기가 져서(소바는 거들 뿐..) 간식으로 타코야키를 시켰다. 타코야키만 먹자니 옆에 있는 야키소바가 서운할 것 같아 평등하게 둘 다 먹기로 했다. 참고로 야키굽다라는 뜻의 일본어로 일본 음식에 가장 많이 들어가는 단어 중 하나다. 타코야키, 야키소바, 오코노미야키, 몬자야키, 야키토리..등등.

안에서 먹으려면 3000엔 이상 주문해야 한다고 해서 걍 테이크아웃.
야키소바
타코야키

야키 시리즈를 사들고 근처 공원에 앉아 흡입을 시작하는데 예상대로 냄새를 맡은 비둘기들이 몰려든다. (나 먹을 것도 없어 이것들아) 세계비둘기연합회라도 있는 것인지 서울에서도 로마에서도 카이로에서도 이것들은 여전했다.

몰려드는 비둘기 떼..

그 와중에 양배추를 하나 떨어뜨렸는데 이건 먹지도 않는다. 놈들이 노리는 건 타코와 소바인 듯 했다.

내가 주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인간이 먹기에도 너무 짰다고. 다 니들 생각해서 몸에 좋은 양배추만 준 거야. 길바닥 닭둘기라고 아무거나 먹으면 되겠어? 누군가는 비둘기 건강 챙겨야 하잖아.

혼자 여행하다보니 혼잣말이 늘었는지 슬슬 미쳐 가는지 비둘기들에게 중얼중얼 일침을 가하며 식사(아니 간식 흡입)를 마쳤다. 그 뒤로도 시장 구경을 하다 드디어 원래의 목적지인 텐만구로 향했다.

텐만구 신사 입구

텐만구는 일본 3대 축제 중 하나인 여름 축제 텐진마츠리가 열리는 오사카의 대표 신사로 입시철, 취업철, 개학 시즌이 되면 사람이 미어터진다고 한다.

하지만 비수기에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생각만큼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면 매우 예쁠 것 같았다.

황량하지만 기도하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교토의 후시미 이나리 여우신사가 생각나는..
텐만구 냥이

텐만구를 한바퀴 구경하고 좀 쉬다보니 대충 오후가 지나갔다. 슬슬 다시 배가 고파져서 숙소 근처인 닛폰바시역으로 귀환한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오코노미야키다. 마지막 메뉴를 오코노미야키로 정한 이유는 아까 간식으로 타코야키, 야키소바를 먹으며 또 다른 야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한 메뉴 선택)

도톤보리 쪽 오코노미야키 맛집을 찾았는데 진짜 줄이 말도 안 되게 길어서 몇 군데를 더 헤맸다. 그러다 우연히  골목길을 헤쳐 오코노미야키 집을 하나 찾았다. (헤매다 기분 따라 들어온 곳이라 어딘지도 모르겠다.)

일단 목에 나마비루 한 잔 집어넣고, 그 다음 모둠 오코노미야키를 하나 시킨 채 하이보루를 마셨다. 아까 야키’ ‘야키거리다 오코노미야키가 먹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오사카의 마지막 날 밤은 오코노미야키로 장식하는 것이 근본이다.

"나마비루와 히타츠쿠다사이" 이 말만큼은 원어민 급이다.
모둠 오코노미야키

일본어로 고노미는 좋아하는 것, 취향, 기호를 뜻하며 야키는 굽다는 뜻, ‘는 일본어로 겸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오코노미야키는 결국 취향에 따라 이것저것 넣어 구운 음식이다.

히로시마가 근본인지 오사카가 근본인지 논쟁이 있는데 사실 두 곳의 오코노미야키는 스타일이 다르다. 오사카 오코노미야키에는 밀가루가 많이 들어간 반면 히로시먀야키는 대부분이 양배추라는 게 특징이다. (비둘기들은 안 먹을 듯)

 

포크 오코노미야키 한 판에 하이보루 두 잔을 더 흡입하고 집으로 귀환했다. 오사카성으로 시작해 야키로 끝난 마지막 밤, 지나는 시간이 아쉬워 집에서 여느 때처럼 캔하이보루를 한 잔 깠다.

오사카의 밤을 떠나 보내며 오늘 오전을 함께한 오사카성을 떠올려본다.

유물, 혹은 유적과 마주한다는 것은 사라진 시간과 만나는 일이며, 현재와 과거를 이어붙이는 일이다. 문화재를 복원하는 일도 이러한 본질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오사카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근본 없는 문화재 복원에도 불구하고 유적지의 본질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철근 콘크리트로 시작했으나 오사카성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테마파크, 접근성이 높은 오사카 시민의 공원으로 진화했다. 성 곳곳에도 오사카의 역사를 오래 기억하게 만들고자 하는 치열한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유적지의 매력은 이런 것이다. 파괴되고 사라져도 그 흔적만으로 인간을 과거로 데려다 놓는 힘. 설사 누군가 그 흔적 위에 흉물을 세워놓는다 해도, 후대의 노력으로 더 나은 공간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매력. 과거가 현재를 구하기도 하지만 현재가 과거를 구하기도 하기에 아름다운 역사의 무궁무진함.

역사 뽕에 흠뻑 취하며 128일의 일정은 마무리. 다음 편은 한국 귀환과 오사카 여행 총평의 시간이다.

다음 편 : <아쉬움마저 맘껏 즐길, 완벽한 타인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