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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세대론 혹은 20대 담론에 대한 나의 입장

나름 '사회의식있는 젊은이'로 살아가면서(그것도 좌파 공산주의자 젊은이) 좋건 싫건 마주 해야 하는 몇 가지 쟁점들이 있다. 우석훈의 <88만원 세대> 출간 이후 촉발된 '세대론' 이 바로 내 의지와 무관하게 마주 해야 하는 쟁점들 중 하나였다.

그 동안 나는 세대론 자체에 대한 온갖 문헌들 - 1) 우석훈, 박권일 등 20대가 아닌 저자들의 20대 담론 2) 한윤형, 노정태 등 20대 저자들의 글들 - 88만원 세대를 전유하고자 하는 나름의 담론들 - 1) 20대여, ~에 미쳐라와 같은 식의 자기계발, 2) 특이한 20대들의 삶을 그린 인터뷰집 등 - 세대론 자체에 대한 사회학적 비판 - 신광영 등의 계급론적인 세대론 비판 - 등등의 관련 자료들을 스크랩하며 읽어왔다. 사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20대 사회적자립 프로젝트' 공동생활전선의 문제의식 역시 세대론과 무관하지 않다.

그럼에도 내 자신이 세대론에 대한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종종 툭툭 술자리에서나 트위터에서나 댓글로 후려갈긴 적은 있어도 뭔가 진지하게 각잡고 흠, 세대론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라고 의견을 밝힌 적은 없다는 것이다. 마침 친구에게서 이에 대한 질문을 받아 블로그에 모처럼 기고용이 아닌 편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세대론을 지켜 본 나의 최종적인 견해를(이 말은 내가 '세대론은 떡밥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전제를 깔고 있음을 함축하고 있다.) 정리해볼까 한다.

1. 세대론 vs 계급론, 당신의 선택은?

이 블로그의 메인 사진 밑의 나의 한용운적인 정서에도 깔려 있듯이(아, 님은 갔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맑느님은 갔습니다.) 나는 맑스주의적 계급론을 사회분석의 틀로 지지하고 있으며, 또한 이론적으로도 세속적으로도 유물론자이기도 하다. 고로 나는 계급갈등이 없어졌다는 모든 우파들에게 칼을 내리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런 관점에서 세대론이 '무능'하다거나, 무언가 은폐하고 있다는 식으로 오버액션을 취하고 싶진 않다. 이는 특정한 담론 -세대론-이 등장하게 된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로. 철저히 비-맑스적인 망언이기 때문이다.

우석훈은 당연히 쉽게 까일 수 있는 저자이지만 그의 저서 88만원 세대가 어떻게 그토록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냐는 점을 고려한다면 '쉽게' 까서는 안 된다. 한윤형의 말을 빌리자면, "세대론적 접근의 함의는, 계층적인 시각에서 볼 때 '지금까지 내가 이긴다고 믿고 있었던 사회의 평균적인 인간들이 패배할 거라는 사실을 폭로한' 데에 있다." 즉 '이전에 그 정도까진 아니던 것들이 그 정도까지 진행되었다는 것'으로부터 세대론이 출발한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당연히 계급갈등이 도사린다. 세대론은 더 많은 '20대'가 사회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하층 '계급'으로 포섭되어 간다는 의미에서의 계급론이다. 세대론과 계급론은 대립되지 않는다.

물론 나는 당연히 세대론의 이 맥락 - 더 많은 '20대'가 사회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하층 '계급'으로 포섭되어 간다 - 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세대론을 이것저것에 마음대로 적용했을 때 도사리는 위험성을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에 앞장 선 노동자들을 '세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스마트폰과 트위터를 통해 투쟁을 하건, 조직에 포섭되지 않는 채 투쟁을 즐겁게 하건 그런 '세대적' 특질보다 더 부각되어야 할 것들은 바로 그런 젊은 세대가 비정규직이 되어 앞장서 투쟁하는 바로 그 계급적 현실이다. 세대론을 통해 '차이'만 부각시켜 '여전히 지속되는 그 모순'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확실히 세대론의 위험한 적용이라고 생각한다.

2. 기존의 20대 담론에 대한 평가 : 20대 담론에 20대가 있는가?

그 다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20대 담론, 혹은 세대론의 논의들을 거의 대부분 훑어본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20대 담론 일반에 대한 평가이다. 즉, 88만원 세대로 떡밥이 던져진 이후 보수건 진보건 가리지 않고 88만원 세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쏟아내 놓았다. 이는 대부분 20대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사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저자들의 견해이거나(88만원 세대에서부터 20대여 ~살아라, 20대~에 미쳐라 등등의 책들) 20대이지만 나름의 삶을 잘 개척하여 잘 살고 있는 특별한 20대를 인터뷰한 것들(<요새 젊은 것들>, <이십대 전반전>, <개청춘> 등등)이다. 그러나 이 대부분의 논의들에 정작 '제일 중요한 20대의 목소리'가 빠져 있다는 것이 나의 문제의식이다.

일단 보수적인 20대 담론들은 너무나 당연히 20대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는 88만원 세대들을 향해 너희들이 이렇게 된 것은 386들 때문이라며, 그 빨갱이공작의 본능을 세대론으로 전유하는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면 모르겠는데, 이들은 88만원 세대가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비법으로 놀랍게도 가장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주체'가 되라고 이야기한다. G세대 같은 말 같지도 않는 20대 담론이 대표적이다. 이 G세대는 해외로 왔다 갔다하며 글로벌 감각을 키우는 20대를 미래의 주역들로 제시하고 있는데, 나는 굳이 왜 이런 걸'20대'의 주체성으로 호명하는 지에 대해 불순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으며 이렇게 해외로 유학도 다니고 어학연수도 다닐 수 있는 여건의(그러면서 돈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20대는 애초에 본인들이 88만원 세대가 될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이는 88만원 세대 이후의 세대론이라 부를 순 없다. '20대여, 창업을 하라.'며 실크로드니 뭐니 하는 개드립을 쳐대는 변학사 변희재도 마찬가지 수준이다. 노동자가 되면 망하니 창업을 해서 자본가가 되라는 말 같은데, 본인은 조선일보랑 자유기업원들 같은 우파단체 딴따라 노릇의 대가로 후원금 잔뜩 받아 먹고 같잖지도 않은 글써서 벌어먹고 살면서 가난한 20대더러는 도전정신이 없다고 충고하는 꼴은 보기가 참 좋지 않다. 게다가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는 현실 자체를 무시하고 '부자가 되라'고 말하는 이런 것까지 20대 담론으로 '평가'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우파의 현실적 권력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렇다면 진보적 20대 담론들은 20대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는가? 나는 이 진보적인 20대 담론의 '의도 자체'를 의심하고 싶지 않다. 20대에게 무언가 비전을 주고, 세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진보적인 어른들의 좋은 의도를 의심하고 싶지 않지만, 그 안에 20대의 목소리가 없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20대가 ~게 해라,'라거나, '20대가 스스로 말하게 하라'는 식의 어른들의 충고는 20대 자체의 목소리를 사라지게 만든다. 또한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멋있게 살아가는 20대들의 청춘을 인터뷰하는 것들 역시 '20대의 목소리에 대해 다루었다.'는 점에서 좋은 시도이긴 하지만 특수의 사례로부터 보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정말로 세대투쟁을 통해 변혁을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우리가 동원하고 함께해야 할 20대는 음악과 예술, 공부 등을 통해 깨어 있음으로써 이 모순에 저항하거나 이 모순을 직시하고 있는 혹은 이 모순과 상관 없이 사는 이들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 20대들이기 때문이다. 즉 '너희들도 이렇게 살 수 있어'라고 하기 전에, '이렇게 살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부터 듣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김예슬의 자퇴 선언에 대한, '지잡대생이 자퇴했어도 주목을 받을까요.'라는 냉소와 '글 잘 쓰는 거 보니 자기소개서 잘 쓸 것 같아 부러워요.'라는 체념과 마주 해야 하는 것이 세대론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한윤형이 '세대론 종결자'라고 표현하기도 했던,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매우 의미 있는, 그 자체로 세대론인 동시에 세대론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저작이었다고 생각한다.)

3. 결국 우리는 세대론을 끝장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르겠다. 담론이라는 것이 내 맘대로 의지로 끝장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결국 20대 당사자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맞써고자 한다면, 설사 그 운동이 세대론을 끝장낼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운동이 아니라 할 지라도 필연적으로 세대론의 종말에 기여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공동생활전선의 기획에 참여하고 있다. 공생전이 담론 투쟁에 들어서는 목적은, 20대 내에서도 좌파적, 맑스주의적 기획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20대 담론적 주체성을 방해하는 기존의 담론들과 대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기존의 세대론은 20대의 담론적 주체성을 오히려 방해하는 식으로 진행되기에, 우리는 필연적으로 '현실의' 세대론과 대결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 마지막이니 솔직히 까놓고 이야기하자. 나는 20대의 입장에서 20대의 목소리를 내긴 하지만, 이 때의 20대란 특수이익의 대표가 보편이익의 대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하나의 '계급'이다. 프롤레타리아 특수 이익의 대변이 사회 전체와 억압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기획이듯이, 내가 그리고 공동생활전선이 기획하는 담론 투쟁이란 억압받는 모든 이들을 억압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자본주의에 대한 투쟁이기도 하다. 즉 나는 20대의 취직을 위해 피크 타임제 도입이나 정년 축소와 같은 식의 방안에 동의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취업 대책을 고작 '청년'실업의 수준에서 사고할 생각도 없다. 20대는 곧 프롤레타리아다, 나에게 세대론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