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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좌파-우파란 무엇인가?

블로그를 통해 메일을 보낸 어떤 분과 좌파-우파 그리고 사회주의 자본주의에 대해 나눈 메일을 올려둡니다.

1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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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윤호씨,

제가 메일을 보내는 이유는, 조윤호씨에게 질문을 하기 위해서인데요.

흔히 우리가 보수/진보, 좌파/우파 개념을 이야기 할 때 어떤 담론화되어 정해진 틀이 없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제 지식이 부족해서 그런거일수도 있겠지만, 신문 기사나 심지어 교수님들이 쓰는 글속에서도 명확하게 '무엇이 무엇이다'라고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거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정치 스펙트럼을 갈라 사람사이에 갈등적 관계가 되는것을 좋아하지 않아 진보/보수, 우파/좌파의 기준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습니다. 우파/좌파의 개념이 프랑스 의회에서 변화를 원하는 쪽과 현상 유지를 원하는 쪽 사람들의 의석이 좌,우로 나뉘어졌다는데에서 유래했다는거 밖에 모르기 때문에 그 기준으로 어떤 사람의 정치스펙트럼을 정하자고 하니, 답이 안 나오더군요. 현실에서 쓰이는 개념은 훨씬 복잡한거 같고요.

그래서 묻습니다. 정말 저같이 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쉽게 저 개념들에 대해서 설명좀 해주실래요? 정말 저 네가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바쁘신데 제가 시간을 빼앗는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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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답변

안녕하세요, 조윤호입니다.
1주일도 넘어서야 답장을 보냅니다. 기다리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이것저것 글 쓸 게 좀 쌓여 있어서, 그걸 먼저 처리하느라고 좀 늦었습니다.

질문하신 좌파/우파, 그리고 보수/진보의 개념은 님께서 먼저 밝히고 계시듯이 사실 합의된 개념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이 각자의 ‘좌파/우파’ 그리고 각자의 ‘진보/보수’의 개념을 사용합니다. 각 나라마다, 각 시대마다 이 개념은 다릅니다. 그래서 뭐라 정의 내려 답하기가 참 애매합니다. 특히 조중동 같은 보수언론에서 사용하는 ‘좌파’라는 단어는 ‘나쁜 놈’ 이외에 어떤 의미도 없는 그냥 욕입니다.

이 개념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은 서적이나 논문들을 찾아보시면 잘 정리되어 있을 겁니다.

다만 저는 제가 좌파/우파, 진보/보수를 사용할 때 제가 어떤 식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설명함으로써 조금이나마 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먼저 좌파/우파에 대해 말하자면
노르베르트 보비오라는 정치학자가 좌파 우파에 대해 남긴 정의가 저는 제일 명확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바로 ‘평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의 차이인데요.

우파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보니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에 좌파는 모든 인간이 평등해야만 하고,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들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우파라 불리는 이들은 정치적 불평등을 인정했던(귀족과 평민이라는 신분제를 인정한) 보수주의자들과, 정치적 불평등을 타파하긴 했으나 경제적 불평등은 용인하려고 한 이들, 흔히 말하는 부르주아들입니다. 반면에 프랑스혁명 당시 로베스피에르는 경제적 평등마저 이룩하려고 했던 인물입니다. 이들을 흔히 자코뱅(좌파)라 부르죠.

인간의 불평등을 인정하는 우파의 입장은 소득 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자본주의 논리와 맞아떨어지고, 이 불평등의 논리가 인종이나 민족 간의 불평등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입장으로 말 그대로 극단적으로 이어지면 파시즘으로 치닫게 됩니다. 인간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는 좌파의 입장은 공산주의, 사회주의와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덧붙이자면, 평등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좌파들도 여럿으로 나누는데, 전통 맑스주의의 입장에 따라 이 불평등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사회적 계급 간의 관계에서 기인한다고 판단하고 계급철폐를 요구하는 이들을 급진좌파라 부릅니다. (참고로 전 급진좌파입니다.ㅎㅎ) 그리고 이를 계급철폐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부의 재분배로 해결하려는 입장을 자유주의 좌파라 부릅니다.

좌/우파를 구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준은 ‘현재 체제’를 긍정하느냐, 바꾸려고 하느냐 입니다. 그리고 보통 현대사회에서 그 ‘현재 체제’란 자본주의로 환원됩니다. 즉 자본주의를 긍정하고 자본주의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은 우파이고 자본주의를 뒤집어 업고 공산주의 혹은 자본주의의 개혁을 이루려는 이들을 좌파라 부릅니다. 이 바꾸고자 하는 ‘현재 체제’는 민주주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여기서 민주주의란 대의제, 부르주아적 민주주의를 말합니다.) 그래서 지젝이라는 좌파정치철학자는 ‘이제 더 이상 자본주의를 욕해서는 좌파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비판해야 좌파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좌파/우파는 진보/보수보다는 비교적 어느 정도 명확하게 합의가 된 개념입니다. 진보/보수는 그 사회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바꾸려고 하느냐 인데, 이건 이 개념 용례를 수십 번 살펴봐야 ‘느낌’으로 알 수 있을 만큼 - 아, 저 사람은 진보구나, 저 사람은 보수구나! - 자의적인 개념입니다. 그래서 사실 전 이 개념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1970년대까지 케인지언들이 득세하고 있을 때 나타난 밀턴 프리드먼이나 하이에크 같은 신자유주의자들은 진보적 세력입니다. 케인지언이 득세하는 현실을(복지국가, 큰 국가) 바꾸려고 하니까요. 하지만 케인지언과 신자유주의자들 모두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에서는 우파들입니다. 또한 동유럽을 비롯한 구 공산권 국가들에서 그들에 맞선 민주화 운동가들은 소련식의 국가사회주의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진보적 세력이지만, 그들은 시장 경제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우파들입니다. 또한 한국에서는 아직도 극우개발주의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보수 세력(한나라당, 이명박)으로 득실거리고 있는데, 이 상황에선 제대로 된 신자유주의를 하자는 입장이 진보적인 세력이 되죠.(민주당, 노무현, 김대중) 하지만 이 둘 다 자본주의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파들입니다.

이 정도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보/보수는 제가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 쓰이는 개념인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보/보수 대신 좌파/우파라는 범주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 대부분의 정치세력들이 우파가 되어버리기에 공산주의자들이 아닌 이상 거부감을 느낄 겁니다. 이에 관해서는 제 친구가 쓴 좀 긴 글 하나를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http://blog.naver.com/paxwonik/40113897822)

한국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이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는 지에 대해서는 제가 블로그에 일전에 올린 글(http://blog.aladin.co.kr/jobonzwa/3944115)을 참조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 자세한 건 구체적인 ‘질문’을 정하셔서 물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북한 문제에 대해 진보.보수는 어떻게 나뉘느냐 등등(최근에 나온 “좌우파 사전”이라는 책에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공산주의자 입장에서는 약간 맘에 안드는 책이지만....)처럼 구체적 사안에 대해 알아가면서 거꾸로 개념을 잡아나가는 게 더 좋거든요.

아니면 한 번 만나서 같이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 이런 문제로 이야기하는 거 저 되게 좋아합니다. 메일로 연락을 주시거나 핸드폰으로 연락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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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편지

안녕하세요 조윤호님,

성실하게 답변해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작년에 뭣도 모르고 르몽드디플로마티끄를 읽었었는데(이해도 하지 못하고 정말 읽기만 했습니다.) 그 내용들이 조윤호님이 정리해 준 글 보고, '그게 그거였구나'하는 감이 조금 잡힙니다. 그리고 수업 시간에 읽은 내용도 중복되고요. 그래도 아직도 머릿속이 뿌연거는 어쩔 수 없을 듯 합니다. 그쪽 공부가 부족해서겠지요. 그래도 상식 수준에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거에 만족은 합니다. 그쪽 공부를 더 깊게 하기 전까진 말이죠.

'평등', '자본주의'를 보는 시각에 따라 좌/우파가 나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물론 그것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기준이 있겠지요) 너무 근본적인 이야기 같지만, 개인적 생각으로는 세상을 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전부 다르기 마련인데 어떤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집단을 묶는다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보이고, 굳이 꼭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서 대립각을 세울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듭니다. (이건 제가 '화합'이라는 가치관을 중시해서 그럽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적 성향을 판단하면서 생활하지는 않는거 같습니다. 선거를 할 때, 정치인이 되고자 할 때, 학문을 할 때, 등등 몇몇 상황을 제외하고는 일반인들은 '잘먹고 잘사는'데에 관심을 갖는거 같아요. 물론, 좌/우를 나누고 진보/보수를 나누는 것도 어떻게 더 '잘 먹고 잘 사냐'는 방법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 방법을 찾는 목적이 전도되어 '본(本)이 권력을 위한 다툼'으로 타락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2명 이상만 모여도 정치를 한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현실 정치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이슈들에 대해서는 저도 현실적인 입장에서 보는 편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것은 잊지 말아야겠죠.

제가 지식이 부족해서 이렇게밖에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물론, 윤호씨가 제가 한 말에 '내가 언제 아니라고 했나?' 이런 말은 안하셨지만 답변 해주신거에 감사드리는 인사를 드리면서 몇자 적어봤습니다. 다음에 기회 되면 또 이야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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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답변

제대로 된 답변을 못 드린거 같아서 죄송합니다.

다만 한 가지 더 집고 넘어간다면 전 화합의 가치를 강조하느냐 분열과 투쟁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좌파/우파가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화합과 통합, 대립을 세우지 않는 것, 말로는 참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권력을 쥐고 있는 우파의 입장에서는 매우 내세우기 좋은 가치입니다. 자신의 권력에 대한 도전을 화합과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융합하기에 딱 좋거든요. 예컨대 흔히 우파들이 쓰는 드립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느니’ 하는 국익이니 국민이니 하는 것들입니다. 누구의 이익인지를 모호하게 하는 ‘우리의’ 이익이라는 화합의 가치는 현실 권력에 대한 도전을 뭉개버리는 중요한 이데올로기 수단이지요. 그리고 말씀하신 ‘먹고 사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 역시 우파적 가치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먹고사는 걸 중시 여기는 이른바 먹고 사니즘이 판치는 세상에선 급격한 변화나 개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보수화되는 이유는 전체적인 경기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영업자라는 특수한 계급이 많기 때문이지요. 이들대부분이 자신들에게 부를 ‘분배’를 해줄 대통령이 아니라 전체적인 경제를 살려줄 이명박을 지지했습니다. 그리고 사회운동을 하는 많은 이들이 운동을 그만두게 만드는 그 가치가 바로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 않니’라는 그 가치입니다. 저는 그래서 ‘잘 먹고 잘사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충분히 가난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좌파는 사회를 어떻게 바꾸냐를 이야기해야 하는 입장에서 기존 권력과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 권력과의 화합을 이야기하면서 세상을 뒤집어엎을 순 없지요. 그래서 좌파들은 흔히 대립을 일으키고 ‘좋은 게 좋은거지’라는 한국적 가치에 상처를 입히는 존재들로 표상됩니다. 그러나 좌우의 화합 같은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제 입장입니다. 현실 권력이 우파에게 있는데 화합하는 순간 좌파는 몰락의 길로 들어섭니다. 그래서 좌파는 화합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라는 그 가치 자체를 전복하려는 것이 좌파입니다. 잘먹고 잘사려면 현실 권력 밑에 기어들어가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국가에 종속되거나 자본에 종속되어야하지요. 그것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좌파입니다. 아니, 수용하되 결국 그것을 전복하려는 것이 좌파입니다. 이 먹고사니즘을 타파하지 않고는 공산주의는 오지 않습니다. 공산주의는 파편화된 개인들의 욕망의 체계를 지양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파는 정치를 ‘국민들 배부르게 먹여주는 것’과 같은 지배자의 입장에서 정의하지만, 좌파는 세력들 간의 끊임없는 인정 투쟁으로 정의합니다. 좌파와 우파는 쓸데없이 대립각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진짜 쓸데없이 대립각을 세우는 좌파와 우파도 있습니다.) 그들의 대립각은 ‘현실 권력을 수호하느냐’, ‘그 권력을 뒤집어 업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느냐’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지요. 화합이라는 가치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보수, 진보를, 좌파 우파를 아우르지도 않습니다. 화합이야말로 가장 우파적인 가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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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질문

답변 고맙습니다.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조윤호님께서 말하는 ''화합'이 우파의 가치다.' 이런거 저 잘 모릅니다.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반인들도 모릅니다. 일반인들은 그저 현실에 안주해서 하루하루 살기 바쁩니다. 가난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체제의 유지, 전복'의 의미를 벗어나서 '인지상정,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 즉 생리적 욕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겁니다. 좌파에서 중시하는 '인권' 가치에는 분명히 '인간 답게 살 권리'가 포함돼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 답게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를 가져야 되는가에 대해 논론의 여지가 있겠습니다만, 그 논리를 역설적으로 '가난해져야 한다'는 것으로는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제가 '보편적'이라고 말을 한다면, 이것 또한 '우파적이다'라고 말씀하실 것 같아 꺼려지지만, '많은 이들에게 좋은 제도가 그나마 낫다'라는게 제 기본적인 입장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저에게 뭐라고 하신다면 저는 할말이 없습니다만,(예를 들어,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시각으로 저를 비난하신다면 저는 거기에 대해 할 말이 없습니다.) 만약, 좌파들이 말하는 이상적인 사회 '사회주의'가 도래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저는 찬성입니다. 저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어떠한 체제를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 '생명 유지' '행복' 등등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겁니다. 조윤호씨가 받아 들인 것과 조금 초점이 달랐었을 수도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만 국한하셔서 말씀하신거 같은데, 사회주의 노선이 강한 정당이 정권을 잡는 유럽의 국가들 같은 경우는 체제를 유지하려는 쪽이 좌파가 되는거 아닌가요? 이럴 경우에는 우파가 대립각을 세우는 쪽이 되는건가요?

제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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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답변

다시 답변드리지요.

화합이 우파의 가치다 라고 제가 말한 것은, 진보 보수 혹은 좌파 우파를 왜 가르는지 모르겠다고 대립각을 꼭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고 말한 것에 대해서 그런 태도는 좌파 우파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파적으로 전유될 수밖에 없는 가치임을 말하고자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하나 기본적인 욕구, 즉 인간의 생명 유지와 행복 같은 것들을 부정하는 자들은 없습니다. 이건 좌파 우파 인권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인간의 행복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생명 유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파시스트들도 안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좌우파 공동의 가치입니다. 다만 좌파와 우파가 사용하는 행복, 인권, 생명유지 같은 기본적 욕구에 대한 개념이 다를 뿐이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인권을 보장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생명유지를 추구할 수 있느냐가 다른 것입니다.

예컨대 우파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인간의 경제 활동을 통한 자유로운 욕구 충족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행복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반면에 공산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적인 체제라고 비판하는 것이지요. 좌파는 자본주의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계급의 잉여가치를 절대소수인 자본가계급이 착취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그 체제 하에서 인간은 절대로 자유롭지도 또 행복하지도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를 뒤엎어 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체제를 굴러가게 하기 위해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고 소비를 하게 만듭니다. 이 소비를 위해 인간은 노동하고, 노동을 하기 위해 자본에 종속 되구요. 제가 ‘가난해도 좋다’라는 건 욕망을 포기하고 수도승처럼 살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을 노예처럼 만드는 이 자본주의의 ‘부자 되기’ 프로젝트를 거부하고 의식적으로 가난하게 삶으로써 자본주의의 모순을 경험하고 체제를 뒤엎을 불순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적어도 좌파라면요. 이게 인간의 행복을 위해 좌파가 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이 공산주의에서야말로, 즉 자본가 노동자 계급이 없고 절대다수가 스스로가 스스로의 노동을 향유하고 자신이 노동한 결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는 이 공산주의에서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게 좌파의 관점입니다. 체제를 논하고 싶지 않고 생명 유지와 행복을 말하고 싶으셨다구요, 체제를 논하지 않고 생명 유지와 행복을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좌파 우파 모두가 인정하는 겁니다. 구조를 빼놓고 환경을 빼놓고 인간에 대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나요?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게 마르크스의 인간에 관한 테제입니다. 저는 체제를 논하지 않으면서 기본적 욕구에 대해 논하는 방법을 모르겠네요.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사회주의 노선이 강한 국가는 체제 유지하려는 게 좌파 아니냐고 하셨는데, 여기서 유럽 사민주의 국가 말고 - 원래는 어땠을지 몰라도 이들은 공산주의를 추구한다기보다 복지국가 모델이라는 시장에 반대되는 의미의 국가 권력 강화로 나아가기 때문에 좌파로 보기 애매합니다. - 마오의 중국이나 레닌, 스탈린 시기의 소련을 예로 들겠습니다. 이 시기 시장의 자유를 주창하며 반기를 드는 이들은 분명 진보적인 세력입니다. 그리고 우파이지요. 누가 현실 권력을 쥐고 있고의 여부보다 저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입장으로 좌파와 우파가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를 극복하려는 이들이 집권을 하고 있다면 그들은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보수세력이지만 좌파는 맞겠지요. 물론 공산주의를 끝까지 밀어붙인 이들이 실제로 없기에 이 문제는 생각보다 상당히 복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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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질문

좋은 답변 고맙습니다. 매번 많은 공부가 되네요.

우선, '구조를 빼놓고 환경을 빼놓고 인간에 대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나요?' 이 점에 대해선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저는 체제를 논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잘먹고 잘사려면 현실 권력 밑에 기어들어가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국가에 종속되거나 자본에 종속되어야하지요.' 저는 '잘 먹고 잘 살자'는 의미를 조금 더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권력이 있어야, 많은 부를 가져야, 소히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출세'정도로 말하려고 했던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현실 권력 밑으로 종속되거나 자본주의에 복속돼어야 '잘 먹고 잘 살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의미는 조금 더 원초적인 의미로, '행복'과 관련하여 이야기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조윤호씨는 그걸 '좌파적 시각'을 받아 들이셔서 저는 그것을 경계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래서 그 시각을 벗어나 '행복'을 보자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인간이 '사회 제도'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인간의 행복은 그 범주안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체제는 사회 제도 안에 포함되는 개념이니까요.

그렇다면, '좌파'의 등장은 '자본주의로 부터의 반동'에 의해 태동되었다고 이해하면 되는건가요? 그리고 좌파의 원조가 '마르크스'라고 이해해도 되는건지요?

만약, 그렇다면 '좌파' 개념이 등장하기 전, 마르크스가 태어나기 이전에는 마르크스가 얘기했듯이 '원시공동체' 사회처럼 자본주의가 발달되어 있지 않았던 인류의 역사도 있었는데요, 그런데 그 당시에도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던거 같은데), 경제적 개념은 존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대의 '자본주의'를 '부르주아의 노동자 착취, 노동에 종속'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보지 않는다면, 그 때의 경제적 관념과 지금의 경제적 관념이 '규모'면에서 다르다는 것 외에 근본적으로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이건, 궁금해서 물어보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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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답변

다시 답변 드립니다.

일단 제 시각이 ‘좌파적 시각’이라고 보신다면 정확히 보신 겁니다. 전 좌파이고, 그런 면에서 경계하신 거라면 경계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체제와 구조에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행복, 저는 좌파로서 그게 혁명을 가능케 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특정한 것만이 행복이라 말해도 그것으로부터 탈주하는 개인들이 있지요. 그 원초적 의미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로 혁명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꾸미는 이들이 좌파들입니다. 전 그런 의미에서 원초적 의미의 행복이란 거 굉장히 긍정합니다. 철저하게 좌파적 시각에서요. 이건 제가 제 시각을 급진적으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영역이기에 서로가 무엇을 말하려는 지 아는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하신 건 상당히 복잡하긴 한데 최대한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좌파의 등장은 자본주의로부터의 반동이냐는 질문에 있어서, 일단 바로잡을 것 하나는(사소하긴 하지만) 자본주의로부터의 반동이라기보다 지양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반동은 자본주의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의미에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죠. 하지만 좌파들은 봉건사회로의 회귀를 꿈꾸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이건 그닥 중요하지 않은 용어 지적이었구요.

일단 좌파가 자본주의에 대한 지양이냐는 질문은 좌파를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제 생각은 넓은 의미에서 좌파가 꼭 자본주의 이후에 등장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르크스가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와 혁명을 외친 게 아니듯이, 마르크스 이전에도 마르크스의 사상에 영향을 준 사회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게 프루동이나 바쿠닌 같은 아나키스트들이지요. 게다가 전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인류 최초의 좌파는 예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좌파라는 용어가 생긴 것 자체가 부르주아 자본주의 혁명(프랑스 혁명) 이후이기에 엄밀히 말하자면 좌파는 자본주의 이후에 생겼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좌파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입니다.

물론 자본주의 이전에도 경제활동은 존재했습니다. 고대 노예제 경제라든가 중세 장원제 경제에도 물론 ‘경제’라는 개념이 있었습니다. 시장도 있었구요. 물론 막스 베버나 페르낭 브로델 등 수 많은 학자들이 자본주의와 그 이전의 연속성과 단절점에 대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논하기에 그 당시의 경제와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가 같았느냐 달랐느냐 딱 잘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셨듯이 ‘규모’가 일단 다릅니다. 그런데 이 규모가 다르다는 것이 단지 규모를 결정하는 것 뿐 아니라 이른바 ‘양적 변화로 인한 질적 변화’를 가져옵니다. 시장의 규모가 혹은 경제적 영역의 규모가 넓어질수록 단순히 양적 차이를 넘어선 질적 차이를 가져오게 되지요. 예컨대 시장이 커지면 화폐유통이 활발해집니다. 시장에 넘쳐나는 화폐는 이제 시장에 있는 물건들의 가격을 거꾸로 결정하는 힘을 지니게 되지요. 자본주의에서 화폐는 단순히 교환수단이 아닙니다. 양적 차이에서 시작했지만 질적 차이를 가져오는 거지요.

양적 차이 이외에도(물론 모두가 상호작용합니다만) 자본주의 이전과 자본주의 이후 경제체제의 가장 큰 차이는 노동력에 대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 이전에는 노동력을 ‘판다’고 하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즉 임노동이라는 현상은 근대 자본주의 이후에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 임노동은 노예나 농노 같은 어떤 인간에 대한 어떤 인간의 종속을 완전히 폐지하는 정치적 혁명을 통해서만 가능하죠. 그래서 모두가 평등하게 시장에 나가 자신이 노동력을 팔 수 있는 시대가 온 겁니다. 또한 동시에 인클로저와 같은 현상들은 농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토지를 잃게 만들었고 결국 이들이 노동자가 되게 만들었습니다. 즉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자본주의 이전의 경제와 자본주의 이후의 경제를 결정짓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는 과학혁명이라던가 기술의 발달, 인간관, 세계관, 종교관의 변화 등 다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을 동반한 것입니다. 제가 메일로 쓰기엔 버거운 내용이군요. 하지만 ‘달랐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중세 시대까지 토지를 가진 귀족이 농노를 부려 토지에서 나오는 생산물을 통해 부를 취득했죠. 그런데 자본주의 이후부터 이 귀족은 이 토지 위에 공장을 짓고, 시장에서 노동자를 사서 최대한 싼값에 생산물을 생산해 (집에 쌓아두지 말고) 시장에 내다파는 짓을 계속 반복해야합니다.

이에 관해서 글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책 한 권을 추천합니다. 이진경의 <모더니티의 지층들>을 추천합니다. 이 책에 자본주의 이전과 자본주의가 달라지게 된 원인, 더 나아가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의 차이에 대해 잘 서술해주고 있습니다. 제가 더 설명하는 것보다 이 책을 읽는 게 더 이해하기 빠르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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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질문

답변 감사합니다.

변화의 두 가지, '질적 변화'와 '상품으로써의 노동력'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화폐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이 경제가 양적 변화에서 질적 변화로 변했다는 예가 될수 있다는 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화폐가 가격을 결정한다는 것은 화폐량이 물가 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을 말하시는거 같은데, 화폐가 단순하게 교환가치를 갖는 수준을 벗어나 물가 수준을 조정함으로써 경제 주체의 소득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그들의 생활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에 양적 변화가 오게 되었다고 하신건가요? 제가 책을 아직 읽어 보지 않아서 제 지식 수준에서는 이렇게밖에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 양해 바랍니다.

책 추천 고맙습니다. 독서를 많이 한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많이 배우고, 많은 정보 얻겠습니다.

아, 그리고 좌파는 혁명을 하고 나서 '공산주의'를 세우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건가요? '공산주의'는 관념적이라고 생각되는데, 구체적으로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메커니즘에 대한 담론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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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 답변

네. 다시 답변드립니다.

사실 양적 변화와 질적 변화의 상호작용 이야기는 맑스가 계급혁명 이야기를 하면서 하는 건데, 자본주의의 형성단계에서도 유용한 ‘드립’이라고 생각해서 좀 써먹어본 것입니다.ㅎㅎ 말씀하신대로 여기서는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이어지는 수 많은 예 중 하나로 화폐가 교환가치를 넘어서서 물가 수준을 조정하는 힘을 갖게 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이야기한 맥락에서는 님이 이해하신 것이 맞습니다. 다만 제대로 된 양질의 변화 이야기는 맑스가 이야기하기에, 맑스 책을 읽다보면 계급구성에 있어서, 혹은 유물론에 있어서 양질의 변화가 무엇인지 차차 아시게 될 겁니다. 제일 좋은 건 맑스의 <자본론>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라 생각되네요. 자본주의에 대한 역대 최고의 분석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질문 하신 건 사실 좌파들의 아킬레스건이기도 합니다. 아, 여기서 좌파는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자들’로 한정하겠습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담론들이 있기는 합니다. 맑스 역시 <독일 이데올로기> 등에서 중간 중간 언급하기도 했고, 발리바르 같은 이들도 조금이나마 구체화하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도대체 뭐냐’라고 이야기하면 조금 애매한 것이 사실이죠. 자본주의의 ~을 지양한다, 라는 식으로 밖에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산주의, 하면 원시공산주의 같은 자본주의 이전을 상상합니다.

조금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본다면, 공산주의에서 일단 ‘노동’의 문제에 있어서 소외된 노동과 분업의 폐해가 나타나지 않아야 합니다. 소외된 노동이라 함은 쉽게 이야기해서 노동의 주체는 노동자들임에도 노동의 결과물은 노동자의 것이 되지 못하는 - 노동자들의 총 임금으로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상품들을 모두 살 수 없죠. - 현상입니다. 이 노동의 소외 현상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흔히 자본주의의 폐해는 노동이 끊임없이 분업화되어 내가 담당하는 일이 아니면 하지 못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는 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에 따른 필수적인 과정인 동시에 앞서 말한 소외된 노동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노동자들이 스스로 노동과정을 통제하기보다, 노동과정 자체가 노동자들의 노동을 결정짓는 겁니다. (컨베이어 벨트에 따라 노동자들이 놓여지죠.) 노동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소외당하는 거죠. 물론 공산주의에서도 분업이 있습니다만, 공산주의에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하는 역량을 갖출 수 있어야 합니다.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가 살짝 언급하기도 했듯이 아침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밥을 짓고(물론 이건 비유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뿐, 이런 게 공산주의 사회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하는 식으로 개인의 다양한 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사회이어야 하지요.

또 하나가 화폐의 물신성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앞에서 제가 화폐가 가진 힘이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는 물가 수준을 결정하는 화폐량의 의미만을 지닌 것은 아닙니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이야기하는 화폐의 물신성이 그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C -> M -> C(C는 상품, M은 화폐)가 무한히 반복됩니다. 그런데 C와 M이 곧바로 전화되지는 않죠. 즉 화폐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것을 상품으로 곧바로 바꾸지 않는 상태가 있습니다. 맑스에 의하면 상품은 결국 노동자의 노동력에 의한 결과물인데, 자본주의의 교환 형식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교환수단에 불과한 화폐에 무언가 힘이 있어 상품을 살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이런 현상이 화폐의 물신성인데, 이 상태에서 맑스는 인간관계가 인간 대 인간이 아니라 화폐로 대체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어떤 인간, 그 인간 특유의 본질이 아니라 연봉 얼마로 기억되죠. (물론 맑스의 물신성 과정은 이렇게 나이브하지 않고 복잡합니다.) 이 상태를 깨부수는 것이 공산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방법론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가 있지만, 저는 아직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진 못합니다.

결국 공산주의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동시에 지양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공산주의를 정의한 한 구절은 ‘개인들의 자유로운 연합이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은 해놨어도 애매한 것이 사실입니다. 공산주의 이후의 노동 형태나 화폐 물신성 제거, 더 나아가 개인의 자유로운 연합이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를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앞으로 좌파들의 과제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공산주의는 생산력 발전을 부정하지 않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이런 가정 하에서 중세 수도승들의 공동체나 원시공산주의는 공산주의 사회의 모델이 될 수 없죠.(물론 그런 모델들에서 수용해야 할 요소들은 있지만 사회 ‘전체’의 지향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 하나, 맑스가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이야기했듯이 공산주의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가 바뀌는 것이기에 자본주의 하의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체제라는 것입니다. 저의 한계이기도 하죠. 자본주의가 무너져갈수록 자본주의의 패악을 많은 이들이 느껴갈수록 이 상상력 또한 증대할 것입니다.

뭐 사실 뒷부분은 저도 잘 모르는 부분이라 명확하지가 않네요. 한형식 씨가 쓴 <맑스주의 역사 강의>라는 책을 또 다시 추천합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관한 논의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잘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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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메일

좋은 답변 고맙습니다.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소외된 노동, 분업의 폐해' 그리고 '화폐의 물신성', 분명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분석이라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공산주의에 대해 생각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정말, 그렇다면 대안점을 찾는데에 만족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 되는군요.

공산주의가 생산력의 발전을 부정하지 않는다는거는 처음 알았습니다. '공산주의'가 상당히 이상적인 체제라는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완벽해 보이는지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말그대로 '이상적'인 것에 그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궁금한거 있으면 질문 하겠습니다. ^^
(매번 성실히 답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