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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 /단상

끔찍한 날이 다가온다.

민족의 대이동이니 뭐니 다 떠나서 나에겐 친척집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이다. 그들이 나에게 일용할 용돈을 많이 쥐어준대도 마찬가지다. 친척들이 돈 쥐어주며 덕담이랍시고 내뱉는 소리들 자체가 역겹기 때문이다. 세속적 물신주의에 찌든 나의 패밀리들은 삼삼오오 모여 평소엔 하지도 않았을 과시를 해대며 시너지효과란 무엇인지를 입증한다. 나는 웬만하면 듣지 않으려고 방 안에 틀어박혀 라캉이나 맑스를 읽고 있지만 어른들은 그 시간에도 공부한다고 다른 조카들한테 좀 배우라고 한다. 그 조카들이 내가 읽고 있는 것들을 공부하게 된다면 매우 고무적이겠으나(미래의 공산주의자들이 바로 여기있다!) 아마 저 어른들은 내가 공부하는 것의 실체를 안다면 날 때려죽일 듯이 경멸할 거다. 난 이미 그들을 때려죽일 듯이 경멸하고 있기에 상관없긴 하지만.

맑스는 독일적 현실을 비판하며 아직 부르주아 혁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 대한 패악과 자본주의가 들어옴으로써 생긴 패악이 맞물린다고 했는데, 이는 한국에 매우 적실한 표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가장들은 쉼없이 몰아치는 구조조정과 봉건적인 권위주의의 횡포에도 같이 저항해야한다. 한국인 대학생들이 가진 외국계 기업에 대한 환상은 바로 여기서부터 기인할 것이다. (특히 구글) 마찬가지로, 나는 지금 자본주의의 병폐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병폐의 해결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가족 이데올로기에도 저항해야 한다. 흔히 좌파들에게 내리치는 가장 무서운 칼날은 한국에서 "자본주의적 현실"보다는 "가족 생각해." "자식이랑 마누라 생각 안하냐?" 아닌가? 배후자야 같은 공산주의자랑 결혼한다치고 자식도 그렇게 교육한다고 쳐도 부모를 비롯한 일가친척들의 압박은 서로가 서로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감시하는 이상적인 경찰국가 같다.

이택광이 한국인들이 자본주의적 병폐를 견뎌내는 원동력이 가족 이데올로기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는 무언가 개혁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취업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이며 동시에 같잖은 현실주의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한국인들에게 '쉼터'일지 몰라도 좌파들에겐 '지옥'이다. 이 굴레를 영원히 못 벗어나게 할 끔찍한 지옥.

나에겐 차라리 일본 우익들 앞에서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부르고 어버이연합 앞에서 공산주의 만세를 외치는 게 맘 편하다. 욕하면 같이 욕하고 총쏘면 같이 총쏘고 테러하면 같이 테러하면 될 거 아닌가. 그런데 이 놈의 친척들한테는...아 내려가기 싫다. 씹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