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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소비자는 왕이 아니다

엊그제 아침 트위터에(12월 22일) 로그인하자마자 타임라인에서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지난 12일 모 대형 피자업체 체인점에서 배달원으로 일하던 최 아무개씨(24)가 오토바이로 피자를 배달하던 중 택시와 부딪치는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이르는 사건이 있었는데, 끝내 사망하고 만 것이다.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인 최 씨는 5개월 전부터 주말마다 피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족한 학비를 벌고 있었으며, 시급 4500원에 배달 한 건당 400원을 추가로 받아왔다고 한다.1)

사실 피자와 같은 프랜차이즈 외식업종의 배달 사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 업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한 이 외식업종들은 맛은 물론 조금이라도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음을 소비자들에게 강력히 어필하려고 한다. 외식업종들이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서비스 중 하나는 ‘신속한 배달’이다. 그리고 이 신속한 배달을 제도화한 것 중에 하나가 몇 몇 피자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30분 배달 보증제’이다. 이 제도는 대표적으로 도미노피자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도미노피자에서는 30분 이내 배달할 수 있는 지역에서 배달이 늦어질 수 있다는 공지 없이 30~45분 사이로 배달되면 피자 가격에서 2000원을 할인해주며, 배달시간이 45분을 초과하면 피자 값을 아예 받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30분 배달 보증제가 피자배달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30분 안에 피자를 배달하기 위해 피자배달원들이 신호와 안전수칙도 무시한 채 곡예운전을 펼치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거리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피자배달원들이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운전을 하는 동기에는 ‘빨리 배달해야 한다.’는 서비스 정신도 있으나 ‘실제로’ 피자배달원에게 (늦은 배달에 대한) 책임이 전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30분 배달 보증제를 지키기 위해 특정 업체들이 해당 피자 값을 배달원에게 부과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은 이 제도가 도입되던 때부터 제기되어 왔다. 모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회사원 유 씨가 30분 배달 보증제를 실시하는 한 피자 회사에게 피자를 주문했다가 배달이 늦어진 것에 대해 항의하자 매장 점주는 배달이 늦은 것에 대해 “배달 직원이 책임을 지기로 했다.”고 말했고 고객 상담센터 직원도 “배달이 지연되면 배달한 직원이 비용을 부담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보도를 한 언론의 문의에도 업체 고객센터 관계자는 “배달 지연으로 늦어지는 경우 배달 직원의 인건비에서 고객 부담 비용을 제한다.”고 대답했다. 배달 직원들은 대부분 시급 4500원을 받는 아르바이트생들인데, 한 시간에 4500원을 받는 아르바이트생들이 배달에 늦으면 한 판에 3만 원 정도 하는 피자 가격을 물어내야 하는 것이다.3) 어제 사망한 최 씨 사건을 보도한 매체에 따르면 최 씨 역시 평소 가족들에게 30분 안에 배달하지 못하면 가게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말해왔으며4) 사고 당일에도 배달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호가 바뀌자마자 출발했다가 신호를 무시한 택시와 부딪쳐 변을 당했다.5)

30분 배달 보증제는 기업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고객 서비스’들이 노동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사업장에 내거는 ‘소비자는 왕’이라는 도식에 따라, 소비자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을 훈련시키고, 소비자들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곤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업주들은 이 ‘소비자는 왕’이라는 도식을 이용해 노동 착취를 아무렇지도 않게 실시한다. 한겨레21에서 기획하고 취재하여 책으로 출판된『4천원 인생』에는 고객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착취를 당하는 노동자들의 현실이 잘 드러나 있다.6)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해선 ‘고객 만족’이 안 된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밀고 나가는데 또 손님이 들어오고 저쪽 테이블에서는 김치를 더 갖다달라고 한다. 커피를 타달라는 이도 있다. 점심시간에만 홀에 있는 29개 테이블의 손님이 두세 번 바뀐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모든 일을 해내야 한다. 내게는 첫날이지만 손님들에겐 상관없는 일이다. 내가 굼뜨게 행동할수록 “아줌마!” “여기요!” 외치는 소리, 테이블 벨 울리는 소리는 잦아진다. 손님이 식사를 마치면 최대한 빨리 상을 치워야 다음 손님을 받을 수 있다. 쟁반운반차가 없으면 뚝배기와 도자기 그릇이 가득 든 쟁반을 손으로 날라야 한다. 무게에 팔목이 꺾인다. 그래도 그릇이 깨질까 조심조심 옮긴다.(안수찬 외,『4천원 인생』, pp.26-27.)

삼겹살부터 한우 꽃등심까지 제대로 구워 제 타이밍에 잘라주지 않으면 큰일이다. 한쪽 면이 익어 핏물이 나올 때쯤 뒤집어 잘라줘야 한 번에 잘린다. 삼겹살을 자를 때는 비계 쪽부터 자른다. 한우 꽃등심은 1인분에 3만5000원이다. 내 시급이 4487원꼴이니, 한우 꽃등심 1인분을 사먹으려면 8시간 이상을 일해야 한다. 하다못해 5000원짜리 ‘점심 특선’도 내 시급보다 비싸다. 그러니 ‘비싼 음식님’에게 잘해야 한다.(안수찬 외,『4천원 인생』, p.34.)

9월 넷째 주, 나와 주방 언니는 하루 차이로 생리를 시작했다. 내가 생리통에 고통스러워하자 주방 언니는 비밀스럽게 말했다. “반찬 냉장고 앞에 잠깐 엎드려 있어. 내가 손님 오나 보고 있을게.” 주방 입구의 반찬 냉장고 앞은 구석진 곳이어서 밖에선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더럽고 차가운 바닥에 엎드렸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이 4시간 이상인 경우 30분 이상, 근로시간이 8시간 이상인 경우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휴게시간이란 ‘사용자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이란다. 하지만 이 기준대로라면 인천 B감자탕집에 휴게시간은 단 1분도 없다. 정식 휴일도 못 쉬는데 생리휴가가 통할 리도 없다. 손님과 사장의 눈을 벗어나 앉을 수 있는 곳은 화장실과 이 냉장고 앞뿐이다.(안수찬 외,『4천원 인생』, pp.38-39.)

혹자는 소비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소비자 주권 의식을 표출하는 소비자 운동이야말로 자본의 횡포에 효과적이고 조직적으로 맞설 수 있는 대안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소비자는 왕’이라는 구호가 늘 소비자들에게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자영업자와 노동자가 다수인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확산되어 사회 전체가 저임금 불안노동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대규모 청년실업과 명퇴 등의 중장년 실업으로 많은 이들이 아르바이트로 살아가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소비자는 왕이 아니라 노동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악의적으로 그럴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할지라도 서비스 문제에 있어 소비자의 권리를 요구하면 할수록, 이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노예로 종속된다. 7) 비록 소비자 운동이 겨냥하고 있는 것이 자본의 횡포라 할지라도, 우리가 ‘소비자 주권 의식’으로만 자본을 견제하려고 한다면, 자본은 그 책임을 자신이 소유한 노동자들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30분 배달 보증제’라는 고객 서비스를 위해 피자 값을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떠넘기는 피자 업계의 행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상당히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상식 밖의 막무가내 주장을 하거나 직업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소비자인 ‘블랙컨슈머’ 문제에 대해 기업들은 그 (금전적) 부담을 아르바이트생에게 전가하는(임금에서 까는) 식으로 해결하곤 한다.8)

따라서 소비자 의식과 소비자 운동은 소비자 개개인이 동시에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즉 소비자 운동은 노동 운동의 목표와 연대해야 한다. 재능교육의 부당한 노동 탄압에 맞서 노동·시민단체들과 진보신당이 ‘재능교육 불매운동’을 선언했듯이9), 불매운동과 같은 식의 소비자 운동은 자본의 횡포에 맞서 노동자와 소비자가 자본 앞에서는 동일한 약자들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하는 것이다.

각주

1) 임지선, “‘30분안 배달’ 맞추려다…피자배달원 끝내 숨져.”, 한겨레, 2010.12.21.
2) 실제로 2009년 기준 전국 음식점에서 발생한 7,621건의 재해 중 교통사고의 비율이 재해 1위였다. 교통사고 란 음식 배달 중 넘어지거나 보행자 또는 차량과 충돌하는 경우이다.( http://blog.naver.com/koshamedia/120113761999 참조)
3) 김희정, “도미노피자, 알바생 울리는 ‘30분 배달제’”, 머니투데이, 2010.02.08.(http://news.mt.co.kr/mtview.php?no=2010020418274577288&type=1), 조민경, “[기자수첩]사고 부추기는 ‘30분 무료배달’”, 프라임경제, 2010.12.15.(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7119)
4) 배소진, “‘30분 배달’ 그 피자는 아니지만…중단 기자 회견한다.”, 머니투데이, 2010.12.22.(http://news.mt.co.kr/mtview.php?no=2010122210093077837)
5) 김은성, “사람 잡는 ‘30분 배달제’ 폐지하라”, 매일노동뉴스, 2010.12.23.(http://www.labortoday.co.kr/news/view.asp?arId=101311)
6) 한겨레21 사회팀 기자들의 노동 르포,『4천원 인생 –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 시대의 노동일기』(한겨레출판, 2010.4월.)를 참조하라. 고객 서비스를 통한 노동 착취에 관한 사회학적 연구서로는『감정노동』(앨리 러셀 혹실드, 이가람 역, 이매진, 2009.12월.)을 참조하라.
7) 한윤형, “[본격정치평론]2PM 재범이 남기고 간 것.”, 딴지일보, 2009.09.07.(http://old.ddanzi.com/articles/article_view.asp?installment_id=271&article_id=4744)
8) 김진언, “‘블랙컨슈머’ 등쌀에 알바생 속탄다.”, 국제신문, 2008.01.08.
9) 재능교육의 노동 탄압과 이에 대한 저항에 관한 내용은 다음의 기사를 참조하라 : 이은영, “재능교육, ‘노조가입’ 이유로 계약해지”, 레디앙, 2010.12.06.(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0862), “재능교육, 불매-입사거부 운동 확산”, 레디앙, 2010.12.21.(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1031)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