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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조선일보의 무한도전 (2)

2011년이 밝아오기 하루 전인 지난 12월 31일, 정부는 종합 편성 및 보도전문 방송채널 사업자를 확정 지었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31일 오전 11시 30분경에 기자회견을 열어 종합편성에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신문> 등 4개사가 최대주주로 참여한 법인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보도 채널에는 <연합 뉴스>가 최대주주인 법인을 선정했다. 종합 편성 채널에 신청서를 낸 이들 중에는 <한국경제신문>과 태광산업이 최대주주로 참여한 법인이 탈락했으며, 보도채널에 신청서를 낸 이들 중에는 <머니투데이>, <해럴드 미디어> <서울신문> 등이 선정 과정에서 탈락했다.1)

이번 종편 선정을 둘러싸고 많은 뒷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야권 및 시민단체, 진보적인 언론들은 이번 종편 선정이 친정부적인 보수언론들에 특혜를 나누어 준 것이라며 선정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선정된 채널들 간의 과다한 경쟁으로 인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넘쳐나 방송의 전체적인 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종편 선정의 의미를 ‘방송 콘텐츠의 질 하락’이나 ‘정부의 대언론 길들이기’보다는 한국의 기득권 세력이 ‘마침내’ 시장의 영역에 제대로 들어섰다는 데서 찾고자 한다.

지난 번 훅에 올린 글에서 지적했듯이(http://hook.hani.co.kr/archives/16324), 한국의 보수 세력은 단순히 ‘시장주의’를 고수하는 이들이 아니다. 한국의 기득권 세력은 말로는 ‘시장주의’를 외치지만 시장주의를 실현할 생각이 조금도 없으며 시장주의를 방해한다고 ‘좌파 탓’을 하는 집단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보수 세력은 사적 자금으로 사익을 추구하는 이들이 아니라, 공적 자금으로 사익을 추구하면서 이것이 경제성장을 위한 것이라고 생떼를 부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소비자의 불매운동을 ‘시장을 방해하는’ 반시장적 행위라고 비난하고 각종 규제를 없애라고 주문하는 데다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책이나 복지 확충을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로 규탄하는 등 ‘입으로는’ 시장주의를 수호하자고 외친다. 그러나 그들은 신문 구독의 대가로 자전거도 주고 현금도 주면서 시장을 교란하는 불공정 상거래 행위를 일삼는 데다 막상 경제위기의 여파가 자신들에게까지 닥치면 공적 자금의 투입과 같은 정부 개입을 호소하는 이중적인 집단이다. 그러나 입으로는 경쟁의 긍정적 효과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독점을 유지하며 온갖 기득권을 누리던 그들이 이제 ‘실제로’ 피 튀기는 경쟁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것은 이번 종편 선정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조중동이나 한국경제, 매일경제 같은 신문들이 케이블 TV와 종편에 뛰어드는 이유는 그들이 개별 인간이나 집단이 저항하기 힘든 변화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기술진보로 신문사의 수익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으며, FTA 등으로 인한 미디어시장 개방은 그들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도록, 즉 ‘진짜로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되려는 노력을 하도록 만들었다. 조중동과 매경이 진입한 이 시장에서 그들은 기득권 세력이 아니다. 이미 방송 3사가 방송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들의 주 수입원이 될 광고시장 역시 포화상태이다. 동원할 수 있는 자본력 역시 시장 지배자들에 비해 현저하게 딸린다. KBS와 MBC의 연매출액이 1조4천억 정도인데, 이번 종편 사업 신청자들이 약속한 자본금 규모는 평균 4천억 원으로, 4개사 다 합쳐야 1조 4천억 원이다. 거기다 장비와 인력이 완비되어 있는 기존의 시장 지배자들과 달리 신규 진입자들은 기본시설을 갖추는 데 엄청난 자금을 써야 한다. 조선일보는 자본금 3100억을 만들겠다고 했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4천억을 만들겠다고 투자의향서를 냈는데, 이제 실제로 돈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 대기업의 투자를 받지 않는 이상 참여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독점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어찌 보면 ‘무모한’ 사업에 대기업들이 얼마나 투자할 지는 미지수이다.2) 또한 신문사가 실질적으로 종편의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려면 ‘대주주’가 되어야 하는데, 방송법상 대주주가 되려면 전체 자본의 40%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경우 1600억 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해야 하는 셈이다. 더욱이 당분간은 수익 없이 계속 투자를 해야 할 지도 모른다.3) 게다가 정부가 선정 이후 생길 잡음을 우려했는지 문제를 제기할 만한 언론사들을 모두 종편 채널로 선정해버리는 바람에 안 그래도 치열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 종편 선정이 ‘승자의 저주’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전문가들이 새로 선정된 4개 채널 중 1개 이상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MBC 사장 출신인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오마이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종편 선정에 대해 “보수 세력이 스스로 절벽으로 가고 있다.”고 표현했으며, 이상돈 중앙대 법대교수는 “불나방처럼 뛰어든 신문사들의 용기가 가상하다.”4)고 표현했다.

종편에 선정된 언론들도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1월 3일자 사설 <정부가 ‘종편’ 신설한 본뜻 어긋나지 않으려면>5)에서 “지상파 3사가 광고시장의 77.7%를 차지하고 있는 지상파의 광고 기득권 체제 속에서 4개나 되는 종편이 조속히 자리를 잡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1월 1일 머리기사 <[종편 사업자 4곳 선정] 시장규모 비해 사업자 너무 많아… “종편 안착 위한 대책 필요”>6)에서는 “종편사업을 통한 글로벌 미디어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면 소수의 종편 사업자가 국내에서 자체 역량을 축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거꾸로 종편사업자들은 출범하자마자 극심한 생존 경쟁에 시달리게 됐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역시 1월 1일자 기사 <[동아미디어, 종편사업자 선정]종편채널 등장 의미>7)에서 “종편 채널의 등장으로 국내 콘텐츠 산업은 한 단계 도약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지만 일각에서는 다수의 종편사업자 등장으로 국내 미디어 시장에 과열 경쟁 양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이라는 막강한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중앙일보는 그동안 적정 사업자 개수와 관련해 “심사 기준을 통과하면 누구나 사업권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혀왔으나, 막상 4개 사업자가 선정되자 부담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고 한다.8)

그렇다면 조중동은 이러한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그들은 그들이 평소에 시장의 약자들, 중소기업들과 구직청년들에게 외친 것처럼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으로 승부하라.’거 나, 대기업의 횡포를 저지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시장 질서를 유린하지 마라.’고 외친 것처럼 ‘이런 시장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열심히 해서 헤쳐 나가보겠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들은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들이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그대로 드러냈다. 조중동은 새해 첫날부터 정부에 종편채널에 대한 특혜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황금채널’ 배정, 전문의약품 광고 규정 해제, KBS 2TV 광고 폐지 등을 통해 종편 채널을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조선일보는 지면과 사설을 통해 종편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2~3년 간 케이블TV의 낮은 채널 번호(지상파 6,7,9,11번과 인접한 5,8,10,12)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하면 현재 방송통신위원회가 규제 완화를 논의하고 있는 의약, 생수 광고의 경우 일정 기간 종편사업자에만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며 비대칭 규제를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1일자 사설을 통해 “방통위가 새롭게 출범하는 종편채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후속조치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KBS 2TV의 광고를 폐지”할 것을 주문했다. 중앙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정부가 새 방송사들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9)



▶ 1월 3일자 한겨레 그림판

이들은 자신들이 여태까지 떠들어 온 논리와 반대되는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주장한 ‘채널 배정’은 명백히 특정 집단에게만 부여되는 특혜이다. 14번에서 17번 채널은 이미 홈쇼핑들이 갖고 있는 번호이기에 이미 정해진 것을 자신들에게 달라는 것은 거의 생떼에 가까운 요구이다. 특정 기업에게만 특정 광고를 허용해주는 것 역시 명백한 특혜이다. 조중동이 이런 요구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이런 공정하지 못한 경쟁에서 신규 진입자들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중동은 바로 이러한 이유로 진행된 정부의 각종 시장 개입을 ‘반시장적 행위’라고 규탄해 왔다. 조선일보는 조중동의 맏형답게 평소의 조선일보를 알면 깜짝 놀랄 주장을 펴기도 한다. 조선일보는 1월 1일자 8면 기사에서, “삼성전자나 현대 자동차 등 대기업도 국내시장에서 축적한 역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했지만 종편사업자들은 초반부터 종편사업자끼리는 물론 거대한 지상파 3사와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한다.”고 불평한다. 그동안 각종 시장 개방에 대해 ‘외부 충격론’을 들먹거리며 경쟁력 있는 산업이 되려면 ‘아직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산업’ 시장 역시 개방함으로써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건 다 뭐란 말인가? 사실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그들은 항상 이렇게, 입으로는 시장주의를 외치면서 본인들이 불리할 때는 정부 개입을 외치는 이중인격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득권 세력을 해체하고 싶은 야권이나 시민단체 등의 진보세력이 앞으로 주력해야 할 일은 (물론 종편 선정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정부가 절대로 이 생떼에 넘어가 조중동에게 새로운 특혜를 더 얹어주지 못하게 막아내는 일이다. 실제로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한 종편사업자 소속 기자들이 방통위 관계자에게 낮은 채널 배정을 위한 정책방안과 한정된 방송시장 현실 타개책을 묻자, 방통위 관계자는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지원을 다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10) 방송 진출을 허락해달라고 정부를 압박하다가 이제는 먹여살려달라고 노골적으로 생떼를 부리는 이들에게 더 이상 정부가 지원할 수 없도록 저지해야 한다. 저들이 그렇게 좋아 죽는 ‘시장 원칙’에 따라 ‘경쟁력 없는 기업은 시장에서 사라지도록’ 말이다.

각주

1) ”종편 네 곳 선정은 한국 방송시장에 재앙이다.”, 한겨레, 2010.12.31.(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456623.html)
2) 기업들의 종편 주주 참여 현황에 대해서는 한겨레 보도를 참조하라 : 김경락, 김성환, “종편 사업 자본에 재벌 ‘숨은 그림자’”, 2011.01.02.(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456822.html)
3) 황방열, “보수세력, 스스로 절벽으로 가고 있다.”, 오마이뉴스, 2010.12.31.(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02763)
4) 김혜영, “불나방처럼 뛰어든 신문사들 용기, 가상하다.”, 부스앤뉴스, 2011.01.03.(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70753)
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02/2011010200975.html
6)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01/2011010100069.html
7) http://news.donga.com/3/all/20110101/33642350/1
8) 안경숙, 김종화, “일단 되긴 했는데…종편 갈 길 ‘첩첩산중’”, 미디어오늘, 2010.12.31.(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005)
9) 조중동의 종편 관련 보도에 대해서는 다음의 기사들을 참조하라 : 김원정, “권언유착 ‘조중동방송’ 특혜 더 달라”, 미디어오늘, 2011.01.03.(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020), 김상만, “조선·동아, 방송 얻고나니 이젠 특혜 달라?”, 미디어오늘, 2011.01.01.(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3010)
10) 문현숙, “방송까지 급속한 보수 쏠림…민주주의 훼손 위기”, 한겨레, 2010.12.31(http://www.hani.co.kr/arti/society/media/456681.html)


<한겨레 훅>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