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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글/한겨레 hook

그들의 투쟁엔 더 많은 외부세력이 필요하다!

그들의 투쟁엔 더 많은 외부세력이 필요하다 : 홍대 청소노조 투쟁에 부쳐

 

요즘 밖을 돌아다니면 살을 에는 듯한 한겨울 강추위를 체험할 수 있다. 약속이 있어서 잠시라도 밖을 걸어 다니면, 금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런데 이런 날씨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차가운 건물 바닥에 몸을 기대어 숙식을 해결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홍익대 청소, 시설 관리노동자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외부세력’들이다.

홍익대는 그 동안 용역업체를 통해 청소, 시설관리 노동자들을(미화, 경비 노동자) 간접 고용해왔다. 간접 고용된 미화, 경비노동자들은 그 동안 매우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다. 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씩 일해 왔지만 이 중 근로시간으로 인정되는 시간은 하루 7시간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시간은 ‘휴게시간’으로 책정되어 임금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휴게시간은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노동자가 사측의 관리, 감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는 시간인 데 반해, 이들은 항상 업무 지시를 기다리며 ‘대기’해왔고, 정해진 장소에서만 휴식할 수 있었다. ‘대기시간’은 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시간임에도 사측은 이를 휴게시간으로 책정하여 지급해야 할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것이다.1) 더욱이 홍익대가 청소노동자들에게 지급한 2010년 용역단가는 한 달에 약 81만원으로 4대 보험을 공제하면 약 75만원으로 떨어진다. 이는 법정최저임금 85만 8,990원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이다. 식대는 하루 300원 씩, 한 달에 9천원 밖에 지급되지 않았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홍익대 청소,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노조를 결성하여 임금 인상 및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던 중 홍익대와 용역 업체 간의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 다가왔고(2010년 12월 31일) 홍익대는 2010년과 동일한 용역 단가로 3개월만 계약을 연장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고 용역 업체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하려면 용역 단가를 올려야만 했기에 결국 재계약은 무산되었다. 그 결과 홍익대의 청소, 시설관리 노동자들 170명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고, 이들은 이에 맞서 홍익대 본관과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며 투쟁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은 트위터를 비롯한 각종 미디어를 통해 알려졌고, 홍대생 일부를 비롯한(청소노동자와 함께하는 홍익대 서포터즈) 다른 대학의 학생들과 홍대 근처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 민주노총과 정당 활동가들이 모여들어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2)

이러한 연대 투쟁에 대해 홍익대과 홍익대 총학생회 측은 ‘외부세력’론을 들먹이고 있다. 외부세력론은 지난 달 홍익대가 용역 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한 이후 나온 총학생회의 첫 공식논평에서 등장했다. 지난달 28일 홍익대 총학생회장은 홈페이지에 올린 공식 논평에서 “학교가 최저임금을 지키지 않으며 최저입찰제로 용역업체를 선정해 청소노동자 복지문제에 소홀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판명됐다"며 "외부 정치 세력과 결탁, 사실과 무관한 내용을 기재하여 여론을 조성하고 언론을 선동하는 방식으로 노동자 복지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으며 정당한 방법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후 총학생회 측은 노조와 연대세력들의 투쟁이 거세지고 여론의 관심이 모이기 시작하자 서명 운동을 시작하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학교 측에 요구하겠다고 밝혔으나, 그 와중에도 ‘외부세력’을 언급하는 일은 빼놓지 않았다. 지난 10일 총학생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 배포된 3쪽 짜리 설명 자료에서 총학 측은 자신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만나서 사태 해결을 모색하는 것을 민주노총 공공노조가 가로막고 있으며, 공공노조가 내세운 교섭 요구가 홍익대 청소노조의 요구안보다 과도해 사실상 대화를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 된다고 주장했다.3) 즉 홍익대 내에서 총학 주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외부세력들이 끼어들어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성격과 원인을 살펴보면, 홍대 총학이 ‘외부세력’ 운운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가 드러난다. 수 없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마찬가지로, 이번 홍대 사태는 한국 사회에서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불안정 노동자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청소노조 조합원들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한 채 최악의 근무 조건 하에서 그야말로 ‘착취’를 당하며, 비정규직이라는 고용 형태를 보장해주는 다양한 고용제도들이 이러한 ‘착취’를 보장한다.

자본이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정규직 제도가 노조와 같은 형태의 노동자 연대를 어렵게 만들어 기업 입장에서는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주고, 그 결과 자본의 수익을 높이는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기업들 입장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IMF 외환위기 이후 전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이 때문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구별과 이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는 그들을 ‘노동자’라는 이름하에 함께 연대할 수 없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또한 비정규직이 대부분 그 고용에 있어서 파견, 도급이나 용역, 사내 하청 등의 ‘간접고용’의 형태를 띤다는 점 역시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노동자들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와 ‘실제로’ 그들을 고용하는 사용주가 다르기 때문에, 기업은 해고가 필요할 때 귀찮게 진통과 논란을 겪지 않고 그냥 하청 업체나 용역 업체에게 ‘계약 해지’만 통보하면 된다. 어차피 일하려는 사람은 많고, 다른 업체를 구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해고에 대해 책임을 묻고 투쟁할 대상이 애매해진다. 형식적으로 자신들을 고용하는 것은 용역이나 하청 업체인데, 자신들에게 임금을 주고 해고하는 실제 당사자는 원청 업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정규직의 현실은 홍대 청소노조 사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청소노동자들은 학교가 아닌 용역업체에 이력서를 내고 취직하지만 실제로는 학교 측에 고용되어 일한다. 노조원들은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했으나, 실제 임금을 지불하는 당사자는 홍대이기에 용역 업체는 계약 연장 시기에 학교 측을 상대로 임금 인상과 처우 개선을 요구해야만 했다. 그러나 학교 측은 이를 거부하고 ‘계약 해지’를 해버렸다. 농성이 진행되는 지금도 실제 고용주인 홍익대는 ‘계약 기간이 끝나 계약해지를 한 것 뿐’이라며 법적 하자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용역 업체 소장은 용역비, 근로시간 등 모든 근로조건을 사실상 학교가 정하므로 업무시간 조절이나 임금 인상에 관해서 자신에겐 권한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책임 공방이 진행되는 와중에 홍익대 사무처는 지난 10일 계약연장을 포기한 청소, 경비, 시설관리 업체 2곳을 대신할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전성표 홍익대 사무처장은 이러한 사실을 밝히는 동시에 노동자에 대한 부당대우 문제에 대해 “학교는 정해진 법률에 따라 최저가 공개입찰을 했다.”며 “용역 회사 간 경쟁을 통해 용역비가 낮아졌고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을 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사회적 구조로 인한 문제점인데 학교 측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것이다.4)

 
이 문제가 ‘사회적 구조로 인한 문제점’이라는 홍익대 사무처장의 지적은 매우 정확하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홍대 청소노조의 투쟁에는 ‘외부세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들의 투쟁은 단순히 홍익대 측이 새로운 용역 업체에 대해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를 보장한다고 해서 끝날 수 있는 성질의 투쟁이 아니다. 간접 고용의 완전 철폐와 더 나아가 비정규직 제도 자체의 철폐가 없이 이 투쟁은 끝나도 끝나는 투쟁이 아니다. ‘법적으로 하자 없이’ 착취하다 일회용품처럼 버리는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홍대 청소노조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용 불안정 상태에 있으며 언제 또 다시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보장’이라는 구호가 적힌 빨간색 몸 띠를 서로에게 매어줘야 할 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규직 완전 철폐는 청소노동자들의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지금 착취 받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과 앞으로 착취 받게 될 미래의 노동자들, 그리고 자본의 자기 이익 극대화에 저항하려는 모든 이들의 연대로만 쟁취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내부세력의 힘만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그들의 투쟁에는 ‘더 많은 외부세력’이 필요하다.

각주

1) 김윤나영, "하루 밥값 300원…'아줌마들 팔아 평생 거지같이 살라' 막말까지", 프레시안, 2010.12.2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01222095429&section=02)

2) 손기영, “노동자, 학생, 음악인 ‘연대의 힘’”, 레디앙, 2011.01.15.(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1156)
3) 김봉규, “배우 김여진 "홍대 교수들, 어른이 애들 뒤에 숨다니 비겁해"”, 프레시안, 2011.1.11.(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110111040723&section=02)
4) 이재우, “'홍대 비정규직 사태' 새국면…학교측, 새 용역업체 물색”, 뉴시스, 2011.01.10.(http://media.daum.net/society/view.htmlcateid=1067&newsid=20110110110805231&p=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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