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과 ‘악연’ 검찰, 지는 싸움 시작했다?
대선개입·간첩조작사건 이어 국정원과 마주한 검찰…고발장에 ‘이병호 원장’ 이름 빠진 이유는
국정원 해킹 사건이 이제 검찰의 손에 넘어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검찰이 시대적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으나 국정원과 검찰의 악연을 고려할 때 진상규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새정치연합이 23일 국정원의 해킹 사건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해킹프로그램 RCS 구매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 전 원장과 국정원의 구매 대리자 (주)나나테크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장은 23일 오후 2시 경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새정치연합은 고발장에 “국정원 해킹 의혹과 관련한 사람들만이, 이 사건과 관련되어 비밀의 장막 속에 숨어 있는 국정원 직원들만이 법의 단죄를 받기를 소망한다”며 “검찰이 이 시대적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고발장에 적시됐고, 따라서 검찰이 밝혀내야 하는 혐의는 여러 가지다. 우선 나나테크가 스파이웨어 수입‧판매 과정에서 미래부의 인가를 받지 않은 것에 위법 소지가 있다. 감청설비를 인가 받아야한다는 통신비밀보호법 제17조에 위배된다는 것.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나나테크가 구매한 스파이웨어를 ‘감청설비’라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다.
또한 국정원의 스파이웨어 전달 및 유포 행위는 악성프로그램을 전달 또는 유포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정보통신망법 제48조를(위반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국정원의 해킹 및 정보취득 행위가 형법 314조 영업방해, 정보통신망법 제49조 비밀 보호 등에 위배된다는 것이 새정치연합의 주장이다.
핵심은 스파이웨어 전달 및 유포, 정보취득이 국내에 있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했느냐이다. 새정치연합은 고발장에 해킹 프로그램이 설치된 SKT IP주소 3개를 명시했다. 이 주소의 주인공이 내국인으로 밝혀질 경우 국정원이 ‘내국인 사찰’에 해킹 프로그램을 이용한 것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국민정보지킴이위원회 위원장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국정원이 국내 SKT 사용자를 대상으로 악성 프로그램을 심어놓은 사실에 대한 엄밀한 조사가 필요하다”며 “이 IP의 스마트폰 가입자가 누구인지 확인하면 내국인과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찰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SKT는 영장 없이 개인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니 검찰 수사를 통해 해킹 대상이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 새정치연합이 고발장에 명시한 IP 3개. | ||
또 다른 핵심은 ‘윗선’을 밝히는 것이다. 국정원이 사망한 직원 임모씨의 죽음을 계기로 해킹 의혹을 ‘꼬리자르기’하려는 의혹이 일고 있다. 국민일보는 원세훈 전 원장의 변호사와 인터뷰를 통해 원 전 원장이 “그 정도 물건(해킹프로그램)은 원장에게 보고 안 하고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해킹 프로그램 구입이 원장이 모른 채 사망한 임모씨나 국장급의 전결 처리로 이루어졌다는 주장이다.
임씨는 유서에서 “오해를 일으킨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은 이는 ‘공전자기록위작 및 변작’에 해당할 수 있다며 “임모씨가 사망하였다는 점에서 임모씨에 대한 공소권은 없으나 이를 공모하거나 교사한 사람에게는 공전자기록변작죄의 공동정범이나 교사범은 성립할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검찰이 이러한 핵심 의혹들을 밝혀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검찰 입장에서도 국정원은 부담스러운 대상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초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이끌던 검찰은 특별수사팀을 꾸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했다. 그러나 채 전 총장은 ‘혼외자 의혹’으로 사퇴했고 윤석렬 팀장 등 관계자들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검찰이 국정원이 내민 증거를 바탕으로 간첩을 잡으려 했다가 증거조작이 드러나 망신을 당한 유우성씨 사건도 있다. 검찰은 뒤늦게 증거조작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그러나 검찰이 국정원과 공모했다는 책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고 사건을 담당한 검사들은 징계나 감봉처리 됐다. 한 검찰 출입기자는 “검찰 입장에서는 국정원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벌써 세 번째 악연인 셈”이라고 전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벌써부터 검찰 수사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회 정보위 소속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24일
원내대표단-정책위부의장단 연석회의에서 “제1야당이 검찰고발이라는 초강수의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에는 정말 온당치 못한 일”이라며
“이런 식의 막무가내 검찰고발은 사안의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점에서 새정치연합이 고발 직전 피고발장 이름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을 뺀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안철수 위원장은 23일 고발 대상으로 이병호 국정원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 국정원 관계자, (주) 나나테크를 꼽았다. 그러나 오후 1시 30분 경, 즉 고발장 접수 직전 새정치연합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을 제외한다고 밝혔다.
국민정보지킴이위원회 소속 송호창 의원은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고발장 표지의 피고발인 명단에 빠져 있는 것이고, 고발장 내용을 보면 ‘원세훈 전 원장 등 관계자들’이라고 표현돼 있다”며 “수사를 하면서 (이병호 원장이) 대상이 되는지 아닌지 검찰에서 구체적으로 판단을 하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이 현직 국정원장을 수사해야 하는 검찰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고발장에서 이병호 원장의 이름을 빼고 “어떤 사람이
관련된 것인지 수사기관에서 밝혀 달라”고 적시했다는 것이다. ‘정치공세의 빌미를 주지 말자’는 당 법률자문단의 의견에 따라 이
원장의 이름이 빠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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