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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법원, 한명숙 유죄판결이 발목잡을까

상고법원, 한명숙 유죄판결이 발목잡을까

"정치적 판결" 야당 거센 반발… "상고법원 아니라 증원으로 해결해야, 위헌 소지도"

대법원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고법원 설치’가 고비에 부딪쳤다.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유죄판결을 계기로 새정치민주연합이 대법원을 개혁하겠다는 목소리를 내면서 대법원의 역점사업인 상고법원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상고법원 설치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숙원사업이다. 대법원 홈페이지는 상고법원 웹툰, E-BOOK, 해설 동영상, 블로그 등 상고법원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상고법원이란 상고심을 담당하는 법원으로, 대법원은 1심과 2심에서 승복하지 못한 채 3심까지 가는 소송이 늘어나면서 대법원의 업무가 과중해졌고 상고심을 다룰 상고법원을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3명의 대법관이 1인당 연간 3000건이 넘는 사건을 처리하게 되면서 재판이 부실해지므로 대법원이 소수의 사건, 즉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건들을 중심으로 다루고 나머지는 상고법원에서 처리하겠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 대법원 홈페이지.
 

대법원의 상고법원 홍보는 국회를 상대로도 이루어져왔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법사위 의원들을 1 대 1 마크하며 로비를 펼치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법사위 의원 뿐 아니라 지역구 의원들을 상대로도 로비가 펼쳐지고 있고, 실제 홍일표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고법원 관련 법안에는 여야를 막론한 168명 의원들의 서명이 담겨 있다.

그러나 야당이 상고법원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불법정치자금 수수의혹에 대한 대법원 판결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의원에 대해 징역2년에 추징금 8억 8천만 원을 선고한 2심을 확정했다. 

관련 기사 : <한명숙 징역 2년 확정, 의원직 상실>

그러나 돈을 건넸다는 한만호 전 한신건설 대표가 검찰진술을 법정에서 뒤집었는데도 유죄를 선고했다는 점, 사건 초기부터 검찰이 표적수사를 한다는 논란이 일었다는 점 등 때문에 새정치연합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대법원 선고 직후 “검찰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새정치연합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을 계기로 사법부 개혁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는 20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사법의 민주화와 정치적 독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대법관 임명절차의 민주화, 또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같은 날 의원총회에서 “대법관 임명절차의 민주화와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을 이룰 수 있는 입법 노력을 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박수현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23일 오후 서면브리핑을 통해 “정치검찰과 정치재판이 사라지지 않는 한 국민의 검찰, 국민의 사법부는 존재할 수 없다”며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은 검찰의 정의와 사법부의 공정성 확보, 정치적 독립을 지켜내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며 사법제도 개혁에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상고법원과 한명숙 전 총리 재판이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상고법원 설치에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7월 상고법원 관련 법안을 논의했으나 위원 간 찬반이 갈리면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도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변호사협회는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10문10답 브로슈어까지 제작해 배포했다. 

재판 부실화에는 동감하지만 굳이 상고법원을 설치하지 않아도 대법관 증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며, 상고법원 설치가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많다. 사실상 4심 재판이 되어 위헌소지가 있고,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안에 대한 판단을 대법원에게 전담하게 해 대법원 권한만 강화한다는 의견도 있다. 몇몇 야당 의원들은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는 등의 대법원 개혁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지난 5월 상고법원 설치와 배치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대법관 수를 13명에서 18명으로 증원하고 대법관 정원의 3분의 1 이상을 고위법관 및 검사 출신이 아니라 법률가로 임명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 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웹툰 ‘대법원과 함께하는 상고법원 이야기’의 한 장면.
 

즉 야당이 한명숙 전 총리 판결을 계기로 대법원 개혁을 요구하고, 상고법원에 반대하며 대법원을 압박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27일로 다가온 이기택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상고법원 반대 및 대법원 개혁을 강하게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현재 항소심까지 유죄를 받은 박지원 의원, 입법로비 혐의로 항소심에서 유죄를 받은 김재윤 의원과 입법 로비 1심 선고를 앞둔 신계륜, 신학용 의원, 위증혐의로 재판을 앞둔 권은희 의원 등 법원 판결에 운명이 달린 야당 의원들이 수두룩하다. 야당 입장에서 대법원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일 요인이 큰 이유다.

새정치민주연합 법사위 간사를 맡고 있는 전해철 의원은 24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 전 총리 판결과 상고법원이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당의 입장은 상고법원이 설치돼기 위해서는 하급심 강화와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두 가지 다 미흡한 것이 아닌가”라고 밝혔다. 

법사위 위원을 맡고 있는 서영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대법원의 일이 많고 일을 나눠야 한다는 것에는 충분히 동감하지만, 그 전에 대법원의 다양성이 이루어져야 하고 소수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존재로 대법원이 재구성돼야 한다”며 “대법원이 권력이 개입되는 사건에 대해 (권력의) 하수 역할을 하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임명권을 갖게 될 상고법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